클로저 이슬비 보고서 - 1

루프트바페 2015-02-12 1

 

 소나기가 쏟아진 후, 어둡고 검은 그림자뿐인 고독 속에서 어린 아이가 울부짖었다. 시커먼 검은색과 음울한 잿빛으로 이루어진 부서진 공간의 중심에 유난히 눈에 띌 정도로 밝은 분홍색 머리칼을 가진 아이는 산산조각 나버린 보금자리를 가늘고 연약한 두 팔로 껴안았고, 자연적이지 못한 푸른 두 눈은 슬픔으로 젖어있었으나 분노로 점철되어있는 눈동자는 당장이라도 불꽃이 피어오를 기세로 발광했다.

 

 아이는 한때 보금자리이자, 산산이 부서져버린 두 남녀의 시신의 새빨간 일부분을 끌어안고 알 수 없는 말로 울부짖었다. 하지만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것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단지 아이가 있는 공간에는 땅바닥에 내려 꽂혀있는 수십 대의 차량 잔해 사이로 바람이 통과될 때 마다 소름끼칠 정도로 날카로운 소리만 있을 뿐이었다. 그 내리꽂힌 차량의 잔해 사이에는 알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어떤 생물체가 짓눌려져 있었는데, 그것들은 모두 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박살나 있었다.

 

 아이가 그 자리에서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주위를 살펴봤다. 아무것도 없고, 몇 군데 구멍이 난 건물과 파편만 있는 공간엔 살아있는 것이라곤 자기 하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두 남녀는 더 이상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는 분노를 표출했고 그 작은 체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분노는 주위의 지반이 뒤흔들며 쏟아져 내렸다.

 

 먼 곳에서 빛이 보인다. 그 빛의 근원지는 오래 전 봤던 장난감과 똑같이 생긴 것이었다. 바퀴가 달린 탁한 녹빛 장난감이 혼자서 움직였다. 장난감은 영화에서 봤던 공룡이 그르렁대는 소리를 내며 아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유니온 녹취록 자료 P-44-21-76.

 

 57, 캘리포니아 주 방위군 긴급 보호시설.

 

 심문자 - 잭 포드 요원

 피심문자 - 제임스 힐턴 중위

 

 잭 포드 요원의 임시 사무실에 제임스 힐턴 중위가 노크를 하고 들어온다. 잭 포드 요원이 들어오세요.’ 라고 말하자 군복을 입은 제임스 힐턴 중위가 조금 긴장한 모습으로 문을 열고 들어온다. 잭 포드 요원은 보고 있던 서류를 책상 서랍에 넣고 살짝 일어나 어서 오라고 말하며 손짓한다.

 

 잭 포드 요원은 녹음기를 책상 중앙에 올리고 켠 뒤 말한다.

 

 잭 포드

 “- 57일 녹취자료. 코드 P-44-21-76. 피심문자 제임스 힐턴 중위.”


 잭 포드 요원이 맞은편에 있는 의자에 앉으라고 손짓한다.

 

 잭 포드

 “이쪽에 앉으세요. 긴장할 거 없습니다.”

 

 제임스 중위가 뻣뻣하게 움직이며 왼손 검지로 콧방울을 긁으며 앉는다. 잭 포드 요원은 두 손을 모아 편하게 앉으며 긴장한 모습의 중위를 안심시킨다.

 

 잭 포드

 “긴장하지 않아도 됩니다. 별 거 없어요. 이건 그냥 질문만 할 뿐이니 긴장 푸세요.”


 제임스 중위

 “, 알겠습니다.”


 잭 포드

 “몇 가지 질문을 할 건데, 예민한 사항은 본인 의사를 표시하고 거부할 권한이 있습니다. 혹시라도 제가 중위에게 민감한질문을 한다면 응답을 거절해도 되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제임스 중위

 “, 알겠습니다.”

 

 잭 포드 요원이 짧은 기침을 낸다.

 

 잭 포드

 “좋아요, 중위. 제가 질문할 사항은 며칠 전 있었던 차원종 습격에 관해서입니다. 중위가 지휘하는 소대가 당시 차원종에게 습격당하고 부모를 잃은 한 아이를 구조했다고 하던데 사실 입니까?”


 제임스 중위

 “, 그렇습니다.”


 잭 포드

 “당시 상황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제임스 중위

 “... 여타 군부대에 비상이 걸렸을 때와 작전에 돌입할 때까지는 통상적인 상황과 별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잭 포드

 “‘통상적인이 무슨 뜻입니까?”


 제임스 중위

 “간단합니다. 군장을 챙기고 작전을 회의하고 군부대를 움직여서 전투를 하는 것 까지요. 블랙 호크 다운 보셨습니까? 모가디슈에서 아이린 작전을 펼치기 이전에 회의를 하고 작전을 설명하고 작전에 나갈 부대를 편성하고 헬기에 탑승한 뒤 돌입하기까지를 말합니다. 우리는 헬기 대신에 기갑차량을 이용한 것과 사전 정찰을 빼면 거의 유사합니다. 물론 흑인 정보원도 없었죠.”


 잭 포드 요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는 채 한다.

 

 잭 포드

 “그렇군요. 그럼 그 이후를 설명해 주세요.”


 제임스 중위

 “제 소대는 브래들리 장갑차와 험비에 탑승하고 다른 소대와 함께 중대 단위로 편성되어 시가지로 향했습니다. 시가지에 들어서기 전에 차원종과 짧은 교전이 벌어졌는데, 안개가 정말 자욱했습니다.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잘 안 되지만 30미터 정도 피아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말입니다. 아무튼 수십 대의 브래들리와 에이브람스 전차를 앞세우고 험비로 빠르게 이동한 후 열영상으로 차원종 구별하면서 때려잡고 있을 때, 자세하기 설명하기 힘들지만, 너무 정신이 없는데다 안개가 자욱해서 제 소대가 다른 소대와 떨어져 버렸습니다. 월드 인베이전에서 미 해병대가 시가지에서 거의 와해된 상황과 비슷했죠. 다만 무전기는 정상적으로 작동해서 별 문제는 없었고 무엇보다 사상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은데다 소대원 모두 장갑차를 곁에 두고 있어서 작전에는 무리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첫 교전 이후에 시가지로 들어섰을 때 차원종 수가 격감하더니 나중에 가서는 단 한 종의 차원종이 나타나지않더군요. 도심지에서는 처음과 달리 꽤 조용했습니다. 가끔 몇 개체가 무리지어 움직이는 걸 포착하면 장갑차의 기관포로 박살을 내버렸죠. 그런데 시가지에 돌입하고 30분이 지나자 차원종이 거짓말처럼 말끔하게 사라졌습니다. 다른 소대는 아직 교전하고 있는 걸 무전기로 수신 받았는데, 우리 소대가 의도치 않게 맡은 지역에는 차원종이 증발해 버린 것 같았어요. 그와중에 제 소대는 헬기를 요청해서 도심에 남아있는 민간인들을 구조했죠.

 

 계속 이동하던 중, 안개가 걷히더니 4차선 도로에 진입했습니다. 여전히 차원종은 보이지 않았고, 민간인들도 거의 보이지 않더군요. 게다가 주위 분위기가 굉장히 음산하고 축축했던지라 마치 소대원을 제외하면 모두 사라진 게 아닐까 했습니다. 무전기가 멀쩡히 작동해서 그런 불안감은 다행이 없었습니다만...“

 

 갑자기 제임스 중위가 말문을 끊고 심란한 표정을 지었다.


 잭 포드

 “중위? 괜찮습니까?”


 제임스 중위

 “, 이런. 죄송합니다. 잠시 딴 생각을 하고 말았군요.”


 잭 포드

 “문제가 있다면 의무반을 부르겠습니다.”


 제임스 중위

 “아닙니다. 그냥 조금 피곤해진 겁니다.”

 

 제임스 중위가 고개를 살짝 숙였고 잭 포드 요원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의 미간을 노려봤다.

 

 제임스 중위

 “... ... 다시 이야기 하자면, 안개가 걷히고 났을 때 소대는 어떤 4차선 도로에 진입했습니다. 거기가 어디였냐면 표지판이 다 부서져있었는데... 잠깐 지도를 봐야겠군요.”


 잭 포드

 “아뇨,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제임스 중위가 군복 자켓에 들어있는 지도를 꺼내려 하자 잭 포드 요원이 말린다.

 

 잭 포드

 “그냥 어떤 상황이었는 지만 말씀해 주십쇼. 그 장소 지명은 상관 없구요.”


 제임스 중위

 “... . 아무튼 4차선 도로에 진입했는데, 이곳저곳이 다 부서져 있었습니다. 알아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굳이 하나 있자면 나이키 간판이 떨어져 나간 신발 매장이 하나 있었죠. 그것 외에는 알아볼 수 있는 게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200미터 전방에 흐릿하게 사각형 기둥 같은 것이 세워져 있는 걸 봤습니다. 도로 한 가운데에요. 그걸 보고 제 총에 부착된 ACOG로 멀리서 확인했는데, 버스가 땅바닥에 꽂혀 있더군요.”


 잭 포드

 “버스요?”


 제임스 중위

 “, 버스 말입니다. 버스 말고도 수십 대의 차량이 도로를 부수고 꽂혀 있었습니다. 그 중에 페라리도 있었는데 멀리서 보기만 했을 땐 꽤 아깝다는 생각을 했죠. 하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버스가 꽂혀있는 지점에서 50미터 정도 가까이 접근하니 분위기가 급격하게 안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잭 포드

 “차원종이 공격한 겁니까?”


 제임스 중위

 “아뇨, 차원종이 모두 죽어있었습니다.”


 잭 포드

 “죽어있었다구요?”


 제임스 중위

 “, 자세히 말하자면, 대부분이 압사 했다고 해야겠군요. 차량과 건물 잔해, 구리 배관 등 수많은 물건에 뭉개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묘지 같았어요. 소대원들은 모두 입을 닫고 긴장했고 저도 마찬가지로 긴장했습니다. 굉장히 섬뜩했다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네요. 차원종의 시체만 있는 게 아니라 민간인 시신도 있었거든요.


 잭 포드

 “민간인들도 똑같이 되어있었습니까?”


 제임스 중위

 “아뇨. 차원종에게 공격받아서 피해가 발생한 걸로 보였습니다. 지나치는 것만 봤는데 제 눈으로 본 것만으로는 손톱에 긁히거나 칼에 베이거나 잡아 찢긴 상태의 시신들이 더 많았습니다, 소대원 몇 명이 확인해봤는데, 겨우 몇 명으로는 모두 다 확인해 볼 수는 없었지만, 살아있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예상 됐습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버스가 꽂혀있는 지점까지 다가가니 근처에 한 아이가 주저앉아 있었고, 그 아이는... 살아있었어요. 우리는 그걸 보고 그쪽으로 부리나케 다가갔죠.”


 잭 포드

 “그 아이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세요.”


 제임스 중위

 “머리카락이 분홍색이었습니다. 왼쪽 머리를 끈으로 묶었고, 파랗게 빛나는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어요. 제 소대에 파란 눈을 가진 소대원이 있었는데 서로 비교해보면 아이의 눈동자는 전혀 자연적이지 못한 색이었습니다. 게다가 정말 빛이 났어요. 이건 비유가 아니에요. 정말 파란색 빛이 났죠. 비가 온 직후여서 날이 어두웠는데 파란 안광이 더욱 두드러지는 분홍색 머리카락을 가진 아이였는데 그...”

 

 잠시 긴 침묵이 이어진다.

 

 제임스 중위

 “그 아이는 분해된 시신을 끌어안고 있었습니다. 조각난 신체부위를 말입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는데, 두 사람 분량이었어요. 소대원들은 모두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자리에서 멍하니 서있었는데, 장갑차 승무원이 뭐하냐고 장갑차 해치를 열고 나올 정도로 오랫동안이요. 그때 그 아이는 사람의 머리로 추정되는 핏덩이 같은 걸 품에 안고 있었는데... , 이런.”

 

 다시 한 번 긴 침묵. 이때 침묵을 깨고 잭 포드 요원이 목을 풀며 말한다.

 

 잭 포드

 “그 피해 아동은 어디있죠?”


 제임스 중위

 “아마도 의무반에 있을 겁니다. 로버트 일병이 보호하고 있겠군요.”


 잭 포드

 “현재 아이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제임스 중위

 “저는 잘 모릅니다. 최초 발견자인 저희 소대가 보호하고 있긴 하지만, 최초 발견 때와 이틀 전 로버트 일병과 함께 있는 걸 빼면 잠깐도 못 봤습니다. 그때 잠깐 봤을 땐 그저 의기소침해 있는 모습이었습니다만, 실질적으로 제가 임시 보호자가 아닌지라 자세한 건 잘 모릅니다.”


 잭 포드

 “그렇군요. 그럼 잠깐이라도 대화를 나눠본 적은 있나요?”


 제임스 중위

 “시도해본적은 있었습니다만,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외국인인 것 같더군요.”


 잭 포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까?”


 제임스 중위

 “대화는 못해봤지만, 말하는 건 최초 발견 당시 본적이 있습니다. 그때 모두 할 말을 잃고 가만히 있던 와중에 의무병인 로버트 일병이 아이에게 다가갔는데 아이가 어떤 쉰 목소리를 낸 건 기억 합니다.”


 잭 포드

 “외국인이라고 하셨는데, 피해 아동의 국적... 아니아니, 대화를 못해보셨다고 했죠.”


 제임스 중위

 “, 그렇습니다.”


 잭 포드

 “피해 아동의 상황과 신상도 모르시겠군요.”


 제임스 중위

 “제가 아는 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애초에 영어를 못 알아듣는데다 아이를 구조하고 복귀한 후에 저는 업무를 보느라 소대원들에게 아이가 어떤지 물어**도 못했어요. 하지만 로버트 일병이라면 잘 알겠군요. 로버트가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잭 포드

 “로버트 일병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제임스 중위

 “그냥 의무병입니다. 일본인인데 최근에 소대에 배치됐죠. 별 특징 없는 군인일 뿐입니다. 다른 동양계 미국인들과 다를 바가 없죠.”


 잭 포드

 “- 그렇다면 로버트 일병과 대화를 시도해봐야겠군요.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만 가보셔도 좋습니다.”


 제임스 중위

 “, 수고하셨습니다.”


 잭 포드

 “녹취 종료.”

 

 잭 포드 요원이 녹음기를 끄자 제임스 중위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서로 간단한 인사를 하고나서 제임스 중위가 물러나 사무실을 나섰다. 잭 포드 요원은 방금 전 서랍장에 넣어둔 서류를 다시 꺼내어 읽었다.

2024-10-24 22:23:10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