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타X소영] 너도, 기억도 지켜줄게
냉정과열정 2017-09-23 6
처음 보았을 때는
그저 특이한 옷을 입고 있는 여자로만 보였다. 여우모양 후드티를 입고 여우네 포장마차라니,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남에서
시간을 보내며, 그 여자를 찾아가는 시간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소영이라는
여자는 나에게 일종의 쉼터였다. 오래 전부터 싸움밖에는 선택지가 없던 나에게는 친구를 만들 필요가 없었다. 친구를 만들면 성가신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나의 생존을 위해
끝없는 투쟁을 하던 나는, 이제 소영이라는 여자를 만나 조금 여유가 생긴 것 일지도 모른다.
어느
날 그녀가 대접해준 어묵이라는 음식을 먹었다. 나에게 식사는 싸우기 위한 힘을 보충하는 정도였지만, 어묵을 경험하는 것으로 그녀는 나에게 미각이라는 감각을 일깨워주었다. 왜
맛있는 음식을 찾아 다니는지, 아주 살짝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녀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네가 나가서 싸워줘서 우리가 여기 있을 수 있는 것 이잖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당신들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야. 나는 오직 나를 위해서 싸우는 것이야. 시민들을
구해주는 영웅 따위는 나의 이상이 아니니까, 나는 나만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야. 이기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옛날부터 내가 싸운 이유는 나만을
위해서였고, 그건 바뀌지 않을 것 같다.
A급
차원종을 제거하는 임무를 받았다. 실패하면 희생을 해야 하기 때문에,
목숨이 걸린 임무다. 강한 적을 상대하는 건 항상 신나는 일이다. 그 놈을 썰어버릴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역시나 내가 이겼다. 아직 나를 이길 수 있는 자식은 그 꼰대 말고는 없을 것이다. 나는
서둘러 포장마차로 향했다. 다짜고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그 녀석을 썰어버리는 것 잘 봤지?!” 자랑스럽게, 칭찬을
허락한다는 말투로 그녀에게 말을 하지만, 소영의 반응이 영 어색하다.
“미안한데…누구니?”
이건
무슨 상황일까. 내 사고가 정지해버렸다. 소영이 나를 잊어버린
건가? 그 짧은 시간에 내가 누군지 완전히 잊어버렸다고? 그때
소영이 말했다. “아, 네가 나를 구해준 사람이니? 홍시영이라는 분이 알려주셨어.” 아, 그 여자였다. 정말 꼰대보다 짜증나는 여자. 바로 썰어버리고 싶지만 빌어먹을 목걸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복종해야 하는 여자. 나는 소영에게 어떤 설명도 할 수 없었다. 그저 퉁명스럽게 굴고는
포장마차를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그 여자에게 갔다. 너무 친해졌다는 이유로 그녀의 기억을 삭제했단다. ** 여자…바로 썰어버리고 싶었지만, 망할 목걸이가 또 방해하는 바람에 실패했다. 민간인과 정이 들기라도
했냐며 나를 비꼬는 그 여자를 노려보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허세 가득한 클로저에게
지역을 이동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하지만 나는 곧장 가지 못했다.
“….어? 또 왔네.” 나에게 인사하는 소영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나를 그저 생명의 은인으로 생각하고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 일까.
네가 나에겐 처음의 휴식처였다는 것을 알 리 없다. 나는 그녀에게 소리쳤다. 내가 모두를 썰어버리겠다고. 짜증나는 놈들은 다 죽여버릴 거라고.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듣기만 했다. 그녀는 나에게 어묵을 권했다. 어묵을 다시 보자 속이 울렁거렸다. 그녀가 주었던 어묵이 그녀가
나에게 주던 휴식이 꿈이 아닌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어묵 한 꼬치에 그딴 의미가 담겨 있을까 보냐, 하고 나는 그녀에게 소리쳤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이 어묵이다. 다시는 내 눈 앞에 나타나지 마라.
나는
포장마차를 나오면서 생각했다. 내가 모두를 이기고, 다 썰어버리고, 내 자유를 찾으면, 네 기억도 찾아줄게. 네가 나에게 주었던 소중한 시간을 다시 기억할 수 있게 해줄게. 내가
너의 기억을 다시 찾아줄 때 까지는 나타나지 말아줘. 우리가 다시 만나면, 나에게 다시 어묵을 권해줘. 그때는 몇 개든 다 먹어줄 테니까, 우리가 잃은 것들을 다시 찾아 올 때까지 기다려 주겠니. 그렇게
나는 강남을 떠났다.
구로역에
도착했다. 내리는 비를 맞으며 또 차원종을 썰어버리려고 작전 구역으로 출발한다. 이곳에 한석봉이라는 소년이 있었다. 밝은 성격의 소영과는 다르게
음침한 분위기지만, 나에게 친절히 대해 주었다는 것은 같다. 그
아이도 나에게 끝까지 친절함을 유지하겠지. 하지만 그렇게 되면 기억을 잃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그 아이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밖에 없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건 정말 바보 같은 짓 이니까.
----신강고등학교/G타워/재해복구구역 스킾----
우리 팀의 도주비용을 위해 이 곳에 왔다고 들었다. 돈 앞에서는 꼰대도 어쩔 수 없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차원에서 차원종을 썰어버리던 도중,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기억을
복구시키는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
다. 눈 앞에 위험한 상대를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이 약이라면 소영의 기억도 돌아올 지 몰라. 그 약을 만들기 위해 나는 모든 노력을 다 바쳤다. 목숨을 걸고 싸울 때처럼, 계속 싸웠다. 강남에서 혼자 다짐했던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내 약이 완성되었다. 나는 소영이 약을 마시는 걸 눈 앞에서 지켜보았다. 그녀는 약을
마시고 난 뒤 기억이 몰려와 어지러움을 느끼고 휘청거렸다. 그리고 나를 보았다. “나타…” 그녀의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촉촉했다. 잊어버린 나에게 사과하는 것인가? 기억을 잃어버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인가? 기억을 잃어버렸다고 내가 화를 낼 것 같은 건가? 나는
가만히 그녀의 첫마디를 기다렸다.
그녀는 애처럼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계속 닦아내면서 말을 이었다. “미안해…너를 잊어버려서 너무 미안해…” 계속 미안하다고 반복하는 그녀에게 나는 이렇게 말을 건네었다. “네가 뭐가 미안하다는 건데. 나중에 어묵이나 주라고…” 나는 그녀를 품에 안았다. 그녀가 나에게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얼마든지 만들어 줄게…” 가슴이 떨렸다. 나를 잊어서 이렇게까지 슬퍼해주는 사람이 있다는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게 되었다. 그녀에게 대답했다. “이제 안심해…아무도 너를 건들지 못하니까...” 이제 아무도 그녀의 기억을 건드릴 수 없다. 내가 계속 그녀를 지킬 테니까. 그녀와 내가 함께했던 시간은 계속 간직할 것이다.
밤에 잠 안와서 써봤네요 재미있게 봐주셨다면 감사합니다(_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