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하] Acrophobia

루이벨라 2017-09-22 5


고소공포증(症) : 아크로포비아(Acrophobia) 증후군. 공포증의 한 형태로, 높은 곳에 올라가면 극도의 불안감과 공포를 느낀다.








 높은 곳을 무서워한다고 느껴본 적은 없다. 단지 높은 곳이 싫을 뿐, 별 거 없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혹시 고소공포증이 있니?' 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뒷통수를 크게 한방 얻어먹은 기분이 들었다.




 -고소공포증 없어.


 -그럼, 왜 높은 곳을 안 올라가려고 하는거야?


 -...싫으니까.


 -무섭기 때문에 싫어하는거 아니야?




 무섭다, 라는 감정과 싫다, 라는 감정은 엄연히 다른 것이었다. 무섭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높은 곳이 싫다는 것으로 이어질 수는 있지만 난 그렇지 않았다. 그저 싫을 뿐. 높은 곳에 대한 공포증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다들 램스키퍼를 탔을 때 탄성을 자아냈던 반면, 나는 구석에서 뚫어지게 어느 지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보았던 것은 램스키퍼가 비행을 하면서 지나가는 동안의 아래쪽에 있는 풍경들. 정말 모든 것들이 작아보인다. 크다고 생각했던 건물도 이리 높은 곳에서 보면 작게 느껴진다.




 이런 경험을 어렸을 적에도 했었다.




 이때만큼의 높은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높은 곳까지, 나 혼자서 올라갔던 적이 있었다. 아마도 7살이었을 것이다. 7살의 눈높이에서 보면 그런 높이도 엄청 높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리고 난 그곳에서 생전 처음으로 '공포' 를 느꼈다. 단순히 높은 곳에 올라가 호흡이 가빠지는 그런 공포가 아닌, 마음 한구석에서 스물스물 피어나오는 공허함과 같이 올라오는 공포. 좀 커서야 알았지만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공허함을 알아내게 된 것에 대해서 치밀어오르는 자기혐오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난 겨우 7살의 나이에 세상이 얼마나 작은지,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나도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에 대해 대충적으로 알게 되었다. 그 뒤로 들어간 학교에서 있었던 좋지 못한 일들은 그런 생각을 점점 확고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건 싫어했지만, 그와 반대로 그 위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은 참 좋아했다. 우러러 볼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었다. 하지만 난 그걸 중학교 때쯤 잃었다. 그와 동시에 내가 마냥 동경만 해서는 안되는 상황이라는 것도 알았다. 내가 있는 이곳은...진흙탕 속이었다.




 그때부턴 하늘을 올려다 볼수 없게 되었다.








* * *








 지금도 높은 곳은 싫어한다. 그래도 이제는 눈을 뜨고서도 높은 곳에서 그럭저럭 버틸 수 있는 경지가 되었다. 아주 짧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다시 위도 올려다볼 수 있게 되었다.




 <검은양> 과 <늑대개> 라는 소중한 인연들을 만나게 되면서 천천히 시작된 변화였다.




 그리고 난 우연히 한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진흙탕 속에서 연꽃이 피어난다는 것. 진흙탕 속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밀며 꽃을 피운다는 것.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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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4 23:17:16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