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lling slowly
흑신후나 2017-09-17 6
이 이야기는 노래 falling slowly를 들으면서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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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삶에서 이따금씩 그러한 순간을 겪는다.
순간적이던 시간들은 마치 누군가가 잡아두듯이 느려지고, 오직 정적만이 느껴지는, 마치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을 경험하곤 한다.
그리고 그러한 순간은 보통 사람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뭐.....뭐라고요?”
“진정하시고, 잘 들으셔야 합니다. 이세하씨.”
데이비드와의 최종결전이 끝이 나고서, 우리들은 전에 없던 평화를 맞볼 수 있었다. 학교도 다닐 수 있었고, 그 따분한 수업시간도 다시 들어볼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전부 원래대로였다.
나만 제외하고.
“위상 종양입니다. 검사 결과 양성반응이고요, 위상력을 담당하는 기관에 세포가 분열을 멈추지 않아서 괴사하고 있어요. 쉽게 말해서 암입니다.”
유니온의 의사는 나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치료해서 완치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건가요?”
“치료를 하면 전파되는 속도를 늦출 수는 있지만 완치는 불가합니다. 그리고 발병한 곳은 여기만이 아닙니다. 여기 이 사진을 봐 주세요.”
의사는 나에게 MRI 사진을 보여주었다. 곳곳에 있는 묵직한 덩어리들이 이질적으로 뻗어 있었다.
“여기 이거 보이시죠? 이게 종양입니다. 여기 한 군데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장, 대장, 위까지 전부 종양으로 덮여있어요, 아직 초기지만 꽤 종양이 큰데, 어떻게 아픈 것을 참으셨습니까?”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평소보다 숨이 가빠지고, 이따금씩 피를 토하고, 아파오고, 위상력을 다루는 정도가 거칠어졌기에 문제가 있는 줄 알았지만, 이토록 심각한 문제는 아닐 줄 알았는데.
“앞으로 더 이상 위상력을 사용하시면 안 됩니다. 발병속도가 더 가속화 될 거예요.”
“얼마나..”
“네?”
“얼마나 더 살 수 있나요?”
내 말에 의사는 쓰게 웃는다. 그것이 결코 좋은 의미가 아니라는 것은 당연하게 다가왔다.
“길어야, 1개월입니다. 위상력을 과대하게 사용한다면 2주도 안 되겠군요.”
순간 찾아오는 정적, 그 정적이 얼마나 길게 흘렀을까 나는 흘깃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의사는 의외의 눈빛으로 쳐다본다.
“대단하군요, 이세하씨 보통 사람들이라면 시한부 판정을 받을 때, 무서워서 울거나 소리를 지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런가요?”
나는 간단히 말하고 진료실을 나갔다. 진료실을 나가는 동시에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 앉아버렸다. 얼굴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수번, 수십 번 얼굴을 닦아냈지만 계속해서 흐르는 눈물은 멈추지가 않았다.
‘왜! 왜! 왜! 왜! 왜! 나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야? 내가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내가 남들에게 피해준 것도 없는데, 왜 이런 일만 나에게 벌어지는 거야?’
만족할 줄 모르는 눈물이 목을 타고 흘렀다. 이미 옷은 눈물로 범벅이 되었지만 그것 따위는 상관없다는 양 계속해서 타고 흘렀다.
“이제.. 이제야 친구도 사귀고, 소중한 사람들도 얻었는데. 왜..... 왜 나만...”
주저앉은 그의 단말마가 쓸쓸한 병실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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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하!”
아침부터 슬비가 세하를 깨우는 잔소리가 부실을 가득히 울렸다. 슬비는 세하하게 언제나와 같이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와! 깜짝이야! 왜 그래 이슬비, 임무는 아까 전에 다 끝냈잖아?”
세하는 부쩍 잠을 자는 횟수가 많아졌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짐작은 간다. 밤새도록 게임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졸린 거겠지.
“네가 계속 잠만 자니까 이러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평소에 게임하지 말고 냉큼 자라니까!”
“알았어, 알았다고. 빨리 잘게, 그러니까 오늘만 한번 봐 주라.”
“그렇게 얼렁뚱땅 넘어가는 게 벌써 몇 번째야? 이제는 더는 안 봐줘!”
“동생, 건강이 제일이다. 일찍 자도록 해 그래야 다음 임무에 지장이 없어.”
“임무라고 해 봤자 남아있는 D급 차원종 소탕이나, 거리 순찰 밖에 더 없잖아요,”
제이 아저씨까지 가세해서 세하에게 말했지만 세하는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슬비는 얼굴이 벌게진 후였다. 아마 머리 끝까지 화가 난 듯했다.
“너 대체 왜 그래!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잖아! 저번 늑대개 팀에게도 이상하게 굴어서 전부 무안하게 만들더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결국 소리를 지르는 슬비였다. 하긴, 세하가 최근 들어서 이상해졌다. 클로저 일에도 무감각해지고, 대화보다는 잠을 많이 잤다. 평소에 우리와 이야기도 했는데, 요즘은 클로저 일이 끝나자마자, 어디론가 휙 가버렸다.
“네가 뭘 안다고 그래!”
세하가 일어났다. 언성이 거칠어졌다. 슬비는 놀란 듯이 눈동자가 둥글어졌다.
“너..너..”
“제발 날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마! 예전부터 그렇게 잔소리하는 게 짜증났다고! 참아주니까 더 잔소리만 해대고! 이제는 그런 거 지긋지긋하다 말이야!”
세하는 슬비에게 폭언을 쏟아내었다.
“...알았어. 더 이상 너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을게.”
슬비는 뒤돌아 나가버렸다.
“바보.....”
작게 소곤거리는 슬비의 말이 들렸다. 세하는 ** 못했겠지만 작은 눈물도 보였다.
더 이상 내버려두면 사태가 심각해 질 것 같았기에 말렸다.
세하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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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하야?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유리가 내 얼굴을 보고서 말했다. 푸르른 눈동자는 나에 대한 걱정과 슬비에게 했던 무례한 폭언에 대한 분노가 섞여있는 듯 했다. 이건 분명히 내가 잘못한 것이다.
“넌 알 필요 없어,”
하지만 잘못했다고 할 수 없었다.
“뭐라고?”
“너도 이제 나 좀 그만 괴롭혀, 귀찮게 하지 말란 말이야.”
머리 끝까지 화가 난 유리가 보였다. 유리도 마찬가지로 문을 닫고 나가 버렸다.
뒤를 둘러서 제이 아저씨를 보았다. 제이 아저씨는 나의 얼굴을 때렸다.
“실망이야 동생.”
제이 아저씨도 나가 버렸다. 하하, 이제 완벽해,
슬그머니 일어서서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나는 더 이상 같이 있지 않았다. 완벽한 고독, 완벽한 고립이었다.
늑대개 팀과도 떨어졌다. 늑대개 팀은 나에게 실망을 금치 못한 표정으로 말을 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이렇게 하면 더 이상 나 때문에 상처받지 않아도 되겠지,
병실에서 나와서 깊게 생각을 했다. 모두가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다. 잃고 싶지 않지만, 그건 그들도 똑같을 거란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죽는다면 얼마나 슬플까? 그런 것은 생각하기 싫었다.
그래서 일부러 심한 짓을 했다. 더 이상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게, 나를 더 이상 좋아해 주지 않도록 심한 짓을 했다. 그런 짓을 할 때마다 마음이, 가슴이 아파왔지만 참고, 견뎠다.
계단을 한 계단씩 오르기 시작했다. 숨이 차기 시작했다.
“여기가 이제 마지막이야.”
자, 마무리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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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가 원 왜 이러는 건지!”
화가 났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원래는 그러지 않았잖아,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슬비야!”
“리더!”
유리와 제이 아저씨가 나에게로 다가왔다.
“괜찮아? 세하 왜 저래?‘
“몰라!”
싫다. 그가 했던 말들이 차갑게 비수에 박힌다. 내가 했던 말들이 모두 잔소리로만 들렸나보다.
울컥 눈물이 났다.
“저기, 잠시 시간 좀 내어 주겠니?”
그때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뒤를 둘러보니 유니온의 의사선생님이었다.
“저 말인가요?”
“너 포함해서 검은 양 팀 전부, 빨리 와 주겠니?”
갑자기 그가 우리들을 불렀다. 따라 간 곳은 유니온의 병원 진료실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모두가 와 있었다. 유정이 언니, 늑대개 팀, 트레이너씨 까지도.
“그래서 할 말이라는 게 뭐요?”
트레이너씨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요즘 이세하씨가 이상하죠?”
의사선생님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모두가 표정이 굳는다. 아마도 긍정의 의미이리라.
“그가 비밀로 해 달라고 사정을 하기에 여태까지 참아왔지만, 이제는 말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잘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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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 한 발, 올라가면서 숨이 차올랐다. 더 이상은 움직일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옥상이었다.
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이 내 코 끝을 적셨다. 이게 마지막 바람이라고 생각하니, 참아왔던 눈물이 다시 나오는 것 같았다. 간신히 이동해서 난간위에 올라섰다.
이제, 아래를 보고 뛰어내리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되는 것이다.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자세를 고쳐 잡았다.
“”세하야!!“”
목소리가 들렸다. 올려보니 유리와 슬비였다.
.
사람은 삶에서 이따금씩 그러한 순간을 겪는다.
순간적이던 시간들은 마치 누군가가 잡아두듯이 느려지고, 오직 정적만이 느껴지는, 마치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을 경험하곤 한다.
떨어지는 순간을 기억한다. 늑대개 팀과 검은양 팀 모두가 나를 잡으려 다가왔다.
테인아 울지마렴, 넌 건강해야 한다.
제이 아저씨 건강하려고 했는데, 먼저 가요, 나중에 봐요
유정이 누나, 항상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나타, 너 하고는 같이 게임하기로 했는데, 못하겠네, 미안해.
레비아, 요리는 하면서 느는 거니까 열심히 노력해, 그렇게 우는 얼굴 하지마.
바이올렛 씨는 당당한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저도 닮고 싶었어요.
티나 씨 트레이너, 하피 씨 모두들 미안해요.
마지막으로 슬비야, 유리야.
“사랑해”
그들이 눈물 짓는 모습을 보면서 떨어지는 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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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즐거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