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유리] 모음집 part 02 (feat. 여름)

루이벨라 2017-08-28 9


※ 혼자 단독으로 올리기에는 너무 '짧은' 세하유리 모음집

※ 여름 방학 다 끝나가는 걸 기념해 '여름' 이라는 주제로 끄적끄적ing(1~3번만 해당)

※ 4번부터는 '여름' 이랑은 상관없는 주제

※ part 01 : http://closers.nexon.com/board/16777337/12317/






1. [세하유리] 바닷가에서


 '바다' 하면 아련한 추억이 떠오른다.


 난 사진을 퍽 그렇게 잘 찍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이, 그 찰나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고 감동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사진을 찍었다.


 -뭐야, 나 찍고 있었던 거야?

 -아, 그, 그게...

 -그럼 미리 말하지!


 넌 내 시선이 자기한테 향해있었다는 걸 바로 알아채고 다가왔다. 시원해 보이는 원피스와 그에 걸맞는 챙이 모자. 너는 바닷바람에 그 챙이 모자가 안 날아가게끔 꽉 잡고 있었다. 한바퀴 빙그르르 도는 너의 뒷태가 참 어여뻤다.


 -어때? 이 자세.

 -...뭐가?

 -에이, 사진에 남길거면 이왕이면 더 멋진 자세로 있으면 좋잖아? 이런거라던가, 아니면 요런거라던가...!


 너는 그 말을 하며 이런저런 자세를 취해보였다. 하지만 난 그런 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내가 아까 무의식적으로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던 건 있는 그대로의 너의 모습이 좋아서. 아무런 꾸밈없이 느껴지는 네 모습 그 자체로도 좋아서. 바람에 흩날리는 너의 머리칼이 참으로 아름다워서, 셔터를 누른 것 뿐이다.


 -흐응, 모델이 자세를 잡아주니 사진사가 일을 안 하네.

 -그런 꾸민 자세 말고 꾸밈 없는 자세면 내가 알아서 잘 찍어줄게.

 -정말? 대신 나한테도 공유해주기다?


 물론이지. 나의 대답에 너는 다시금 앞장서며 총총걸음으로 뛰어간다. 마치 한마리의 토끼 같다. 마침 흰 원피스라 눈 속에 파묻힌 흰 토끼 같기도 하다.


 결혼을 하면 여우 같은 아내, 토끼 같은 자식이라고 하지만 내 경우에는...토끼 같은 아내와 토끼 같은 자식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지도 모른다. 앞장서서 가는 널 나는 뒤에서 바라볼 뿐이다. 네가 어떤 스텝을 밟고 있는지, 어떤 춤을 보여주는지 등을 눈에 새겨가면서.


 그 날 넌 내가 찍은 자신의 사진을 보더니 부루퉁하게 말했다.


 -뭐야, 이게 정말 나야?

 -...미안, 내가 사진을 잘 찍는 편은 아니라서.

 -아니, 그게 아니라...


 난 모르겠다. 사진 속에 있는 너나, 내 옆에 앉아서 그 사진을 보는 너나 똑같이 보이는데. 하지만 너는 그런 내 시각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세하 눈에는 항상 내가 이렇게 보였어?

 -...응?

 -봐봐, 마치 새 같잖아. 하얀 새. 금방이라도 날아갈 거 같은 하얀 새.


 그 때 날아가지 않도록 잘 붙잡아둬야 했는데...


 너를 추억하기에는 너는 너무 멀리 날아가버렸구나. 난 너무 멀리 떨어져있구나.


 카메라를 들고 바닷가를 거닐고 있으면 네가 내 눈앞에서 나타나줄 거 같았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난 사진을 찍지 않을 것이다. 대신 너의 곁으로 다가가 손을 맞잡고 같이 거닐 것이다.


 한번이라도, 딱 한번이라도 그런 기회가 찾아오는 기적이 있다면.


 난 오늘도 너를 추억하며 이 바닷가를 거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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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세하유리] 언제나 내 곁에(Intro)


[세하유리] [夏] 「언제나 내 곁에」이전 이야기


 "우리, 여행 갈까?"

 "여행?"


 어느 날 세하가 꺼낸 말은 매우 뜻밖이었다. 여행을 가자니. 정확히 말하자면 부부 공동의 휴가를 떠나자는 이야기였다. 사실 우리는 아직은 어엿한 '신혼' 이기는 했지만 둘이 같이 보낸 시간은 극히 적었다. 그도 그럴것이 결혼식 끝나자마자 신혼 여행도 가지 못하고 곧바로 전선에 뛰어든 세하와 나였으니까 당연했다. 이렇게 집에서 만나 식사라도 같이 하는 것에서도 그나마 만족을 해야하는 실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세하가 꺼낸 '여행' 이라는 단어에 정말이지 솔깃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둘만의 시간! 아,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어디로 가고 싶어?"


 어디로 가고 싶냐고 부드럽게 묻는 세하를 보며 나는 충동적으로 여행지를 골랐다.


 "강원도!"




* * *




 후에 세하는 의외로 '강원도' 라고 답해서 놀랐다는 말을 해주었다. 해외 여행지를 택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국내인 강원도라니. 그냥 충동적이었다. 그냥 강원도에 가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 때에는 꼭 강원도를 가야할 거 같은 기분이 들었을 뿐이었다. 별 다른 큰 뜻은 없었다.


 강원도에 별장 하나 있어, 라는 세하의 말에 나는 휘둥그레졌다. 별장...? 나로써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침 강원도에 별장을 사두었던건지, 아니면 내가 강원도라는 말에 강원도에 있는 별장을 얼른 산건지는 아직도 의문이었다.


 도착한 별장은 깨끗하고 넓었다. 요즘 시대답지 않게 그 흔한 티브이 하나도 없는 완벽하게 외부와 차단된 공간이었다. 유일한 연결 수단은 낡은 전화기 뿐.


 그야말로 완벽한 도피처였다.


 "어떻게 이런데를 알았어?"

 "...싫어?"

 "아니!"


 너무도 좋아! 난 세하를 있는 힘껏 껴안았다. 세하가 덥다며 뿌리치는 걸 오기가 나서 더 계속 껴안고 있었다.


 "풍경을 달자. 그러면 더 시원해 보일거야."

 "응응! 그러자!"

 "저기 나무 밑에 그네도 달고..."

 "응응!"

 "밤에는 여기서 별도 잘 보인대."


 언제 이런 깜찍한(?) 곳을 숨기고 있었는지 궁금도 했지만, 이곳에 대한 세하의 애정이 퍽 느껴져서 기분이 좋았다. 신이 나가지고 이것저것 꾸미자며 말하는 세하의 빛나는 금안을 보며 나도 모르게 푸스스 웃었다.


 "좋다."

 "좋아?"

 "응. 조용하고, 시원하고..."


 그 뒷말은 차마 낯 부끄러워가지고 말을 꺼내진 않았지만 세하도 대충 눈치를 챈 거 같았다. 더는 케묻지 않고 그냥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걸 보면.


 아, 행복했다.




* * *




 "..."


 아침을 장식하는 화사한 햇살 때문에 난 눈을 떴다. 뺨을 만지니 무언가 물기 어린 자국이 묻어났다. 울었나...? 아, 맞아. 행복한 꿈을 꾸었던 거 같은데, 그게...아마 세하가 날 여기로 처음 데려왔을 때의 꿈을...꾼 거 같았다.


 하하하...바보 같긴. 이미 없는 사람 더는 그리워해서 뭐가 남는다고...


 이 별장에 오면 세하 생각이 더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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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세하유리] 빗 속에서


※ 레인버스 기반

※ '레인버스' 란? : 평소에는 소리를 듣는 것에 이상이 없으나, 비가 오는 날에는 세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고 제 목소리와 소울메이트의 목소리만 들린다. 비가 내리는 세기에 따라 소울메이트의 목소리가 크게 들릴수도 작게 들릴 수도 있다.



 비가 오면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버려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기분을 퍽이나 즐겼다.




* * *




 나는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세상으로부터 단절이 된 이 느낌을 퍽이나 좋아했다. 그리고 그 누구도 내가 숨죽여 우는 이 소리를 듣지 못했다. 비는 사람들에게 혼자가 되어버린 고독감을 준다. 이런 날에 나는 나 뿐만 아니라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고독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에 기쁨마저 느끼고 있었다.


 '소울메이트' 란 존재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모든 걸로부터 차단해주는 이 빗속에서 유일하게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이 빗속을 뚫고 내가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를 가진 사람.


 소울메이트라는게 길거리에 흔한 존재도 아니고 난 가볍게 넘겨들었다. 평생토록 소울메이트를 못 찾아서 그대로 삶을 마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람' 을 찾기에는 행동범위가 너무도 좁았다. 대한민국, 정확하게는 이 신서울을 벗어나지 않을 생각이었다. 게다가 소울메이트라고 해도 내 이런 마음을 이해해줄 사람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기대의 싹은 피어버리기도 전에 밟아버리는 게 나았다. 이미 그런 배신감은 수도 없이 맛보았다.




* * *




 난 그 소울메이트라는 사람을, 딱 한번 보았다. 운이 좋았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만나게 되다니. 하지만 붙잡지는 않았다. 이유는 앞에서 설명했다.


 그 아이를 만난 건 비 오는 날이었다. 그 당시의 나는 상처도 많았고, 우는 날도 많았다. 하지만 엄마가 내가 우는 모습을 보고 서글퍼하시는 게 싫어 일부러 비 오는 날, 밖에서 크게 울었다. 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고 빗물에 얼굴이 씻겨내려 울었는지에 대한 여부도 가늠이 잘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날은 장마였다. 굵은 빗속에서 우는 나의 어깨에 상냥하게 닿던 따스한 손.


 -얘.

 -...?

 -너...우는 거니?


 그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에게 물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우는 걸 알았을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텐데. 빗물이 가려서 우는 모습도 가렸을텐데.


 -내가 왜 운다고 생각했는데?

 -응? 소리가 들렸으니까.

 -...!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나에게도 똑똑히 들리는 그 아이의 목소리. 당황스러웠다. 아무 말도 못한채 집으로 뛰었다. 처음 해보는 경험이었고, 내가 우는 걸 들켰다는 사실에 너무도 당황스러웠다.


 그 아이가 나에게 소울메이트라는 존재라는 걸 나중에 가서야 알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찾을 길도 없었고 찾고 싶지도 않았다.


 나중에 엄마에게 이 사실을 말하니 야단을 맞아버렸다. 왜 그냥 지나치게 했냐는거였다! 이름도, 얼굴도 자세히 ** 못했는데 어떻게 그 아이를 찾느냐는 말을 하시면서. 그 아이를 찾을 필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아, 비 온다."

 "그러게."

 "우산 가져 왔지롱! 세하, 넌?"

 "나도."


 ...지금 이 옆에 있으니까.


 그 아이가 서유리였다는 건 첫 <검은양> 소집일에 알았다. 살짝 스쳐서 보았는데도 불구하고 뇌리에 강렬하게 박힌 그 아이가 동아리방에 앉아있다는 사실에 뜨악했다. 그건 서유리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달랐던 점이 있다면 서유리는 나를 못 찾은 거고, 나는 서유리를 안 찾은 거였다.


 지금은 서로 옆에 붙어다니니...이제는 상관 없는 일이려나.


 "지금도 그래?"

 "뭐가?"

 "지금도 비 오는 날에 비 맞으면서 우냐고."

 "내가 애냐. 울게?"

 "그건 그러네."


 정말 잘 들린다. 스쳐지나가고 있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데, 옆에 있는 서유리의 목소리만 똑똑히 잘 들린다. 아, 맞다. 소울메이트라고 해도 내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어린 시절의 내 걱정은...


 ...그냥 괜한 걱정이었다. 소울메이트가 괜히 소울메이트라는 단어가 아니었다.


 "비 오니 쌀쌀하다. 어디 잠시 카페에 들어갈까?"

 "응, 그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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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세하유리] 왕관을 버려주소서


※ 암광세하 x 암광유리


 "그 가시뿐인 왕관...지켜내서 무엇하려고?"

 "...오자마자 그 이야기인건가."

 "나 정도 되니까 이렇게 끈질기게 말해주는 거라고."


 어깨를 으쓱거리며 나타나는 소녀와 그런 소녀를 보며 담담하다 못해 짜증이 잔뜩 난 표정을 짓는 소년. 둘의 머리는 재와 먼지를 뒤덮은 듯한 백발에, 영롱하다 못해 섬뜩함까지 느껴지는 보라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상처뿐이잖아."

 "..."


 그런 가시로 둘러쌓인 왕관을 억지로 가지고 있으면, 이익도 없고 손해만 막심하다고?


 "너, 상처 입는 걸 좋아하는 이상한 애였니?"

 "입 다물어."


 엄청 까칠해졌다고 해야하나. 소녀는 또 한번 어깨를 으쓱거렸다.


 "충고 하나도 못해주니, 이세하?"

 "충고 같은 거 해달라고 한 적 없어, 서유리."

 "정말 까칠해졌네."


 그런 상처 뿐인 왕관, 왜 가지고 있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지 모르겠어. 하긴, 세하 넌 '인간' 이었던 때에도 이상한 고집을 가지고 있었지? 소녀의 말에 소년은 침묵할 뿐이었다.


 "이제 할 말 다했으면 가 보시지?"

 "나랑 있는 게 싫어?"

 "..."


 예전에는 나와 같이 있으면 모든 세상을 얻는 듯 한 표정을 지었잖아. 사람이, 변한거야? 차원종의 힘을 받아들이고 이름 없는 군단의 군단장이 되었다고? 소녀의 이 말이 지금 소년의 처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었다.


 소년은 소녀의 말대로 차원종의 힘을 받아들여 고위급 차원종인 군단장이 되었다. 지금 소년의 휘하에는 수많은 차원종 병력들이 있었다. 소년의 예전 신분이 클로저였던 걸 생각하면 정말 아이러니한 결말이었다.


 어쩔 수 없이 재와 먼지의 제안을 받아드리기는 했지만 소년은 이 상황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소녀가 괜히 '가시뿐인 왕관' 이라고 표현한 게 아니었다. 인간도 아니고, 차원종도 아닌. 어느 곳으로 속할 수 없는 지금 소년 자신의 처지가 참 한심했다. 그 왕관의 가시에 찔리면 안 아프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왕관이라도 이 악물고 버티고 있지 않으면 소년이 그나마 있는 자리도 사라진다. 참으로 위태롭다.


 그렇게 따지면 소녀의 처지도 지금 이상했다. 재와 먼지가 원했던 이는 소년 하나였다. 소년이 군단장이라는 존재가 되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소녀가 나타났다. 다른 점이 있다면 소녀는 소년에 비해 자유로운 존재였다. 가시뿐인 왕관도 가지고 있지 않았을 뿐더러 자신에 비해 어느 정도 '인간' 의 부분이 많이 남아있었다. 자신과는 달리 마음만 먹으면 소녀는 언제든지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도 자신의 주변을 맴돌며 신경 돋는 말을 하는지 통 알 수가 없었다.


 "그까짓 것...버려도 되잖아?"

 "..."

 "네가 갈 곳이 왜 없어, 세하야."

 "...너와 달리 난 없어, 서유리."


 소년의 변함 없는 대답에 소녀는 더는 이 건에 대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이야기 주제를 바꿀 뿐이었다.


 "이런 동화 알아?"

 "...?"

 "상처뿐인 어느 나라의 젋은 황제를 끌어내린 어느 철없는 소녀의 이야기."

 "..."


 지금 소녀가 소년에게 할 말이 뭔지 소년은 짐작할 수 있었다.


 "도망 가자."

 "..."

 "세하야."

 "...유리야."


 진짜, 이런 나라도 돌아갈 곳이 있을까? 난 여기에 있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소년의 물기 어린 질문에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와는 다른 생기마저 도는 보랏빛 눈동자였다.




* * *




 『철없는 소녀는 이렇게 젊은 황제에게 고했대. 왕관을 버려주소서. 그리고 그 철없는 소녀는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성공했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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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세하유리] 내 마지막은 너였으면 좋겠어


※ 노멀세하 x 암광유리

※ 지인분 낙서 보고 삘 받아서 쓴 것


 손이 떨렸다.


 누구라도 자신의 상황이 되면 이런 감각을 느낄 것이었다. 아니면, 자신의 마음이 너무도 나약하거나. 아니면 둘 다.


 ...손이 떨렸다. 누가 봐도 덜덜 떨리는 게 눈에 띌 정도로 그 떨림은 심해지고 있었다.


 자신의 앞에 누워있는 상대방은 그런 세하와는 달리 웃고 있기까지 했다. 마치 자신의 마지막 바램은 다 이루었다는 표정으로.


 ...만약 그 표정이 맞다면 정말, 정말 이런 게 네가 바랬던거야, 유리야? 어서 대답 좀 해봐. 말이라도 좀 꺼내봐...! 세하는 지금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다행이야."


 잔뜩 쉰, 목소리로 상대방이 말했다. '유리' 라고 울부짖은 세하와는 달리 그 '소녀' 는 유리처럼 보이지 않았다. 유리는 저렇게 백발인 머리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유리는 보라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유리는 제3위상력을 가진 반인반차원종인 존재도 아니었다. 평범한, 그냥 자신과 같은 고등학생일 뿐이었는데.


 "..."

 "...우네."


 툭- 툭- 감정이 엉켜들면서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세하를 대신하기라도 하듯 눈물이, 계속 흘러나왔다. 상대방은 웃었다. 세하를 비웃는 게 아닌, 자신을 비웃는 조소였다.


 "차라리...다행이야."

 "..."

 "내 마지막은 너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어."


 어떤 식으로든. 하지만, 이런 마지막은 상상도 해** 못했는 걸. 아프게 웃는 유리를 보며 세하는 다시금 절규했다. 어째서,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왜 이런 상황으로밖에 만들지 않은걸까. 분명 다른 방법도 있을텐데.


 "세하야."


 다정한 목소리다. 그리고 세하 자신이 좋아했던 유리의 울림이기도 했다.


 "죽여줘."

 "..."

 "네 검으로."


 그리고 유리의 말을 끝으로 세하는 그 신이라는 자는 없다는 걸 뼈저리게 체감하게 되었다.


 "...미안..."


 처음으로 꺼낸 말이었다. 미안해. 이 한마디로도 부족해서 세하는 계속 미안해를 외쳐댔다. 이런 세하를 보며 유리는 그저, 미소 지을 뿐이었다.


 "딱히 미안할 일도 아니야."

 "...유리야."

 "오히려...내가...미안해."


 많이, 많이. 눈물이 앞을 가려 시야가 흐릿했음에도 세하는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유리는,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었다. 그리고 그 유리의 끝을 맺어준 사람은 바로 세하 자신이었다.


 절규했다. 원망했다. 구역질이 날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뒤늦게 나타난 동료들에게 통곡했지만 이미 많은 것이 흘러가버린 뒤였다.


 그 날은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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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세하유리] 미래에서 본 너


※ 암광세하 x 노멀유리

※ 미래로 떨어진 유리가 군단장이 된 세하를 만나는 썰

※ 이건 후에 따로 더 풀어볼 예정


 유리는 지금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다. 그도 그럴것이 포로 상태나 다름없이 밧줄로 묶여있는데다가 주위에는 온통 고위급 차원종들 뿐이었다. 그들은 유리를 조롱하는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크큭, 인간인가?

 -그것도 힘을 가진 인간이군.

 -그 뭐지...클로저라고 하는 것들인가?


 유리가 이렇게 무력하게 묶여있을 필요는 없었다. 저들이 말하는 것처럼 유리는 일단 클로저였다. 차원종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근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이 이상한 곳으로 떨어졌을 때부터 무기는 온데간데 없었고, 무언가가 방해하는지 이상하게 위상력도 쓸 수가 없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유리는 잠시 몇 분 전 과거로 돌아갔다.


 이 '이상한!' 곳에서 떨어진 직후에 본 그 사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신의 동료인 이세하와 똑 닮은 어느 차원종. 인간형 차원종이 있다는 건 몇번의 교전으로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인간의 모습을 한 차원종이 있다는 것에는 그렇게 놀라워하지는 않았지만, 그 차원종이 세하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것에 더 놀랐다.


 -너, 너...!!

 -...인간, 이 몸을 아는건가?

 -...네?!


 세상에, 얼굴만 아니라 목소리도 똑같았다. 혹시 세하에게 어렸을 때 헤어진 차원종 쌍둥이 형제가 있다는...막장 시나리오는 아닐테고. 그냥 우연이라고 치부했다.


 -그, 그게요...!

 -이름.

 -네...?

 -용을 영접했는데도 이름을 고하지 않다니, 무례한 자로구나.


 자칫하다가는 그 옆에 들고 있는 검으로 베어버릴 거 같아 유리는 얼떨결에 '서유하' 라는 이름을 말했다. 서유하라는 이름을 듣자 자신을 용이라 칭한 차원종은 옆에 있던 심복으로 보이는 자들에게 유리를 결박할 것을 명했다. 아니! 네가 원하는대로 이름 알려주었잖아! 근데 왜 결박을 하는건데!? 유리는 억울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서, '그 자' 가 유리의 눈앞에 모습을 보였다. 주변 인물들을 다 무르고 땅에서 왕좌(!) 같은 걸 소환하더니 턱을 괴며 앉았다. 정말...보면 볼수록 세하와 쏙 빼닮았다니까?! 이 사실을 세하한테 말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개꿈 꿨다고 할까, 그것도 아니면 상상력이 너무 풍부하다는 그런...


 이런 유리의 상상은 상대방이 입을 열어 중단되었다.


 "...정말."

 "...?"

 "이름 센스가 최악인 자로구나."


 서유하가 뭐냐. 차라리 서유리라고 하지? 왜 어설픈 가명 대고 그래? 왜인지 모르겠지만 저 사람(?)이 생략한 뒷말은 이랬을 거 같았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세하의 목소리로 들린 건 착각이었을까.


 "...내 이름 센스가 최악이든 뭐든 상관 없잖아요!"

 "상관 있다."

 "네...?"

 "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고...있었다? 아니, 아무리 세하가 아니지만 세하 얼굴로 그렇게 말하면...아니, 얼굴은 또 왜 빨개지는건데!


 "정말이지...서유리는 서유리군."

 "어...내 이름 알아요?"

 "알다마다. 네가 나한테 알려주었다. 정말 신기한 일을 겪었는데 그곳에서 차원종이 된 세하가 있었어, 라고."


 ...내가 당신한테 알려주었다고요? 아니, 난 오늘 당신 처음 봤는데요?! 머리가 복잡해지는 유리를 위해 상대방은 정리를 차분히 해주었다.


 "이곳은 미래다."

 "미래...?"

 "그렇다. 폐허가 되어버린 신서울이 있는 미래."

 "신서울이...폐허가 되어버렸다고요?"

 "그뿐만 아니지. 네가 알고 있는 클로저들은 대부분 죽었다."


 그 중에는 서유리, 너도 포함되어있지. 유리는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에 실감이 가지 않는 표정이었다. 당연했다. 갑자기 유리는 잔뜩 불안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런 불길하고 최악인 생각이 스쳐지나가는 걸까. 인간이 차원종으로 변하는 과정을 몇 번 봐서였을까. 그런 불길한 상상은 왜 이리 쉽게 하는지...


 "그럼, 당신은 누군데요?"


 그리고 상대방의 입에서는 도저히 상상으로만 그치길 바랬던 답이 나와버렸다.


 "이세하다."

 "..."

 "눈앞에서 동료들이 죽어간 분노를 참지 못해 차원종의 어느 군단장이 된, 이세하다."


 비웃을 거면 마음껏 비웃어. 세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런 자포자기한 세하의 행동을 보며 유리는 도저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나...도대체 어떤 미래로 떨어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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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큡세하유리세하] 날 보러와요


※ 큐브세하 x 노멀유리

※ 세하 조금(?) 등장


 -이쪽이야.

 "...!"

 "유리야, 무슨 일이야?"

 "아, 아냐! 아무튼 빨리 가자!"


 요새 들어 자꾸만 이상한 환청이 들린다. 노이즈가 잔뜩 낀, 누구의 목소리인지 불분명한 목소리. 하지만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


 어디서 들어봤더라. 기억이 가물거린다.




* * *




 -이쪽이야.

 "..."

 -난 여기 있다고.

 "또 시작이야..."


 유리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그 노이즈는 점점 사라지고 목소리가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최근에 들어서는 사람다운 목소리가 되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노이즈가 벗어나자 유리는 더 충격적인 진실에 당면했다.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그 목소리가 세하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지금 세하는 임무 때문에 다른 곳에 가 있는 상황이었다. 내가 세하를 그렇게 좋아했던걸까? 막 옆에 없으면 환청이라도 들릴 정도로?! 아, 근데 내가 원해서 들리는 세하의 목소리라고는 하기에는 너무 하는 말이 단조롭잖아. 게다가 세하는 나한테 저런 비슷한 단어를 말한 적도 없고.


 무언가 수상한 냄새가 풍겼다. 그래서 오늘은 작정하고 그 소리의 근원지를 따라가보기로 했다.


 확실히 누군가가 멀리서 자신을 부르는 게 맞았다. 그 증거로 늘 멀리서만 들리던 목소리가 찾겠다고 유리가 마음을 먹자마자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지금 유리를 부르는 사람과 점점 가까워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마침내 유리는 한달 여동안 자신을 괴롭힌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정식요원복을 입은 세하가 팔짱을 낀채 음지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진짜...세하인가? 근데 왜 갑자기 정식요원복을 입고 있지? 분명 특수요원이 된 이후로는 특수요원복만 입은 것만 보았는데...


 멈칫. 유리는 '세하' 에게로 향하던 걸음을 멈추었다. 무언가 달랐다. 세하인데 세하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답은 바로 찾을 수 있었다.


 계속 눈을 감고 있던 '세하' 가 천천히 눈을 떴다. 한국인의 전형적인 흑안도 아닌, 하물며 토파즈 같이 아름다운 금안도 아닌, 핏빛의 새빨간 적안이 유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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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http://cafe.naver.com/closersunion/243465


1~3번 : 개인적으로 '여름' 하면 '바닷가, 숲, 비' 이렇게 3개가 떠올라서요. 그 주제에 맡게 한가지 이야기씩 써보았습니다.

4~7번 : 요즘 떠오른 주제로 간단하게 써보았습니다. 여름이라는 상관없는 주제에요.

개강이라 공홈에는 많이 못 올듯 하네요.

클로저스 공식 카페에서 하는 장편 연재는 학기 중에도 계속 할듯 하네요.

트위터에는 근황도 자주 올라갑니다.

2024-10-24 23:17:02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