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유리] 열(熱)
루이벨라 2017-08-24 4
※ 이즈님 썰 기반~
※ 위상력 때문에 몸에 열이 많은 세하가 고생하는거~ 보고 싶다 하셨는데 언급은 세하만 했지만 멋대로 유리도 추가해버리는 세유글러 애쿼머린 씨(...)
01.
그 상황을 발견한 건 우연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 없이 게임을 하고 있는 세하의 얼굴이 살짝 열에 비쳐있는 걸 유리가 먼저 발견한 게 시초였다.
"어라...? 세하, 너 얼굴이 왜 그렇게 빨개?"
"...응?"
마치 지독한 열감기에 걸린 사람 같이~ 유리는 그게 차마 열이 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것이 열이 뻗쳐있는 상태라고 하기엔 세하는 너무도 태평스럽게 게임을 하고 있어서였다. 잠시 게임기를 멈춘 세하가 자신의 이마를 짚더니 '아, 그러네.' 라고 태평하게 말을 꺼내기 전까지만 해도.
그래서 오히려 당황을 한 건 유리 쪽이었다.
"지, 진짜? 열 나는거야?"
"어. 가끔 그래."
"가끔이라니! 어디 좀 보자!"
가끔 그래, 라며 천연덕스럽게 대꾸한 세하의 반응과는 달리 유리가 느낀 열의 강도는 엄청났다. 그야말로 열이 펄펄 끓는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 그런 상황에서도 태연하게 일시정지한 게임 구간에서 다시 게임을 하는 세하에게 유리는 기가 찰 수 밖에 없었다.
"이세하, 너 감기 같은데...그렇게 있을 수 있어?"
"감기 아니야."
"감기 아니긴! 저렇게 열이 펄펄 끓는데?"
"어쩔 수 없어. 난 타고난 위상력 때문에 몸에 선천적으로 열이 많은 걸."
그러고 보니 세하의 위상력은...열기를 다루는 위주였지, 참...언젠가 한번은 유리가 세하가 막 다룬 따끈따끈(?)한 건블레이드를 만진 적이 있었다. 세하가 뜨겁다면서 장갑을 친히 빌려주었는데도 만져본 건블레이드는 참지 못할 정도로 뜨거웠다. 앗, 하며 반사적으로 손을 뗀 유리를 보며 세하는 옅게 웃었다.
-함부로 손 댈 물건은 아니야.
-세하는...이걸 항상 전투 시에는 들고 다녔단 말이야?!
기계가 과열화 되었다, 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뜨거웠다. 그 말에 세하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항상 이렇진 않지. 보통은 견딜만 해. 오늘은 유독 임무가 많아서 건블레이드를 식힐 시간이 적어서 그런거고.
-아무리 그래도 항상 이렇진 않다면...세하는 그거 안 뜨거워?
-응, 견딜만 해.
보통의 위상능력자들이 열기나 냉기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내성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세하의 건블레이드는 그 정도를 넘어섰다. 정말...이 건블레이드 위에다가 바베큐 해 먹어도 익어지겠는데? 할 정도였다.
그런 열이 이번에는 건블레이드도 아니고 세하한테 들러(?)붙다니...유리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아?"
"응, 견딜만 해."
그리고 걱정스럽게 물어본 이번 대답도 저번 건블레이드때와 비슷했다. 견딜만 하다니...견딜만 한거라면 얼마나 참고 있다는 소리야?! 유리는 혀를 찼다.
"너, 오늘 조퇴해라."
"...?"
"그래가지고 오늘 임무 제대로 수행할 수나 있겠어?"
"아니, 이건 감기 아니고 그냥 가끔 일어나는..."
"가끔이고 뭐고! 견딜만이고 뭐고! 너는 괜찮다고 할지도 모르지만...내가 안 괜찮아!"
"...??"
옆에서 보는 사람은 얼마나 안 괜찮은 줄 알아?! 본인은 괜찮다고 말하지만, 한눈에 봐도 열이 띤 얼굴로 작전을 수행하며 헉헉거리는 거...옆에서 사람이 힘들어하는 게 한눈에 보이는 걸 아, 쟨 원래 가끔씩 저랬지~ 하면서 볼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유리의 조퇴 권유에 세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정말 본인에게는 별일 아닌, 그런 거인데. 오히려 당사자보다 유리가 더 심각해하는 투였다. 유리가 하도 저러니 세하는 다시 자기의 이마를 짚었다. 정말, 평소와 다름 없게 열이 나는 건데...아, 그래도 오늘은 조금 열이 더 뜨거운 감이 있었다. 요 근래 힘든 임무를 많이 해서일까. 최근 몸에 피로가 쌓여서인지 몸이 작은 뒤틀림에도 더 요란하게 반응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럼 오늘 임무는 어쩌고?"
"내가 다 할게!"
엥? 정말? 유리의 의외의 대답에 세하의 눈이 순간 커다래졌다. 자신의 몫까지 대신 다 해주겠다는 유리의 말에 세하는 그럼 오늘은 정말 조퇴를 해볼까, 라는 달콤한 유혹에 휩싸였다. 사실 유리가 너스레를 떤(?) 것도 있지만 오늘 자신의 상태는 평소에 가끔씩 오던 열에 띤 상태보다도 조금 더 심각했으니. 어쩐지 그래서 오늘따라 게임 플레이에 집중을 못했던 것일까? 이래가지고는 석봉이랑 한 게임 스코어 내기에도 좋은 성적을 내기 힘들텐데.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세하는 조퇴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럴까나. 그럼 서유리, 나중에 내가 한턱 쏠..."
"그런 거 바라고 하는 거 아니니까! 가서 푹 쉬기나 해!"
"...정말?"
애가 갑자기 왜 이러지? 짐을 챙기며 먼저 나가는 세하를 보며 유리는 손을 흔들어주었다. 오늘은 걱정 말고 열이나 잘 내리고 와서, 다음에는 건강하게 만나자는 의미의 손인사였다. 동아리방 문이 닫히자 유리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세하와는 꽤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언제 보아도 누가 보아도 최악인 상황에서는 정작 자기 혼자 태연스럽게 구는 걸 보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 상황의 당사자가 자신이어도 세하는 늘 태연했다. 자기 몸은 못 다루고, 언제나 타인을 먼저 생각한달까나. 유리도 세하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몇번 있었다. 임무가 거듭될수록 뜨거워지는 건블레이드를 얇은 장갑의 한면으로 견디는 세하의 손 구석구석에는 데인 자국이 많았다. 참는다고 나아지는 건 아닌데. 그러니까 자기 몸은 한번이라도 소중히 여기면 좋을텐데...
흠, 이따가 임무가 끝나면 죽이라도 싸갈까나?
02.
확실히 자신의 몸 상태가 오늘 조퇴를 하기에 충분한 정도라는 걸 세하는 집에 다다랐을 때에서야 인지할 수 있었다. 예전부터 자신의 몸 상태에는 좀 무감각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그 무감각함이 더 심해졌다. 아마도, 최악의 최악으로 거듭되는 상황이 세하를 더 그렇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오랜만의 휴식. 아무것도 안 하고 침대 위에 누워있는 이 배덕감. 양심에 찔리면서도 기분 좋은 일탈감이었다.
오늘은 하필이면 서지수가 유니온 극비 작전과 관련되어 집에 하루종일 없는 날이었다. 누구 하나 간호해줄 사람 없는 어떻게 생각하면 서글픈 상황이었지만 세하는 딱히 신경쓰지 않았다. 지금 이 상황으로도 세하는 제가 해야하는 의무에서 벗어난 반항 아닌 반항을 하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가끔씩 이렇게 많이 아팠다. 감기는 아닌데 머리에만 열이 나는 경우. 그래서 일상 생활을 잘 할 수 없을 정도로. 이렇게 열이 많이 나는 적은 어렸을 때를 빼고 오랜만이었다. 성인이 다 되어가는 몸은 열에 대한 내성이 생겼다. 뭐든 일이든 익숙해지면 언제나 무덤덤하게 지나가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지금에서는 가끔씩 이런 일이 일어나지만, 어렸을 때는 몸이 제 몸에 있는 위상력을 주체하지 못해서 툭하면 열이 났었다. 심할 때는 일주일에 한번 꼴이었다. 그럴 때마다 서지수는 몸이 불덩이 같은 세하를 안고 병원으로 향했다. 감기가 아닌 다른 이유로 발생하는 열은 그저 스스로 내려가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해열제도 소용이 없었고, 오직 물수건만으로 열을 내려야했다. 특히 어린이들에게는 머리의 열은 치명적이기 그지 없었다. 어린 시절의 세하는 자기 자신은 많이 아픈가보다, 라고 생각될 정도로 병원을 자주 다녔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열은 더 이상 세하에게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이 볼 때는 심각한 열도, 이제는 세하에게 익숙한 일상 중 하나가 되었다. 익숙해진다. 이 얼마나 잔인하고 서글프게 만들어내는 단어인지 모른다. 그냥 몸이 나른하다는 거 빼면 딱히 다를 것도 없는 몸상태였다. 오히려 오늘 같이 열이 펄펄 끓었던 적은 중학교 때 이후로 별로 없었다. 그래서 신기하기까지 한 상황이다. 지금의 나도 이렇게 아플 수도 있구나, 싶은.
'...나른하다.'
기분이 나빠지는 나른함이 아닌, 기분 좋은 나른함이었다. 낮잠을 자면 좋겠다, 싶을 정도의 나른함. 보통은 이렇게 열이 펄펄 끓으면 짜증이 먼저 솟구칠텐데, 아프다고 난리를 칠텐데, 나른하다라고 생각하는 자기 자신도 참...아마도 자신은 일반인보다, 그리고 어느 위상능력자들보다도 훨~씬 열에 내성을 가지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익숙해진 몸 상태이니까.
익숙해진다는 거, 한편으론 좋기도 한데 나쁘기도 하다. 이렇게 침대에 누워서 멍하니 있는데도 옆에 간호해줄 사람이 없는 이 상황을 그래도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다는 세하 자신의 상황이. 제3자가 보면 처량하기까지 한 상태인데.
'...한숨 자자.'
그래도 한숨이라도 푹 자고 나면 열이 조금은 떨어질 것이다. 마침 잠도 오겠다, 잠을 자야겠다. 세하는 자신에게 명령했다. 자자, 이세하. 이렇게라도 안 하면 마음 한구석에서 스물스물 피어나는 고독감이 자신을 짓눌러버릴 거 같았다. 익숙해졌다고는 하지만 그런 마음이 안 드는건 아니니까. 사람의 마음이란 정말 아이러니하다.
03.
딩동- 딩동-
까무룩 잠든 거 같았다. 아까 전에는 창 너머로 보이던 하늘이 주황색으로 변한 걸 보면 못해도 2시간은 잔 듯 했다. 세하는 머리를 짚어보았다. 아까까지는 그래도 들끓던 열이 소강 상태를 보였다. 그래도 여전히 미열이 있는 건 변함 없는 상태였지만. 역시, 오늘만큼은 쉬라고 몸이 그렇게 강렬한 신호를 보냈던 것일까. 아까보다는 한결 나른함이 사라진 몸을 일으켜 세하는 인터폰을 확인했다.
"누구세요?"
이 시간에 택배가 올 리도 없고. 그래서 인터폰에 보인 사람이 택배아저씨가 아니라 유리라는 걸 알자 세하는 무척이나 놀랐다.
-안녕!
"...넌 뭣하러 여기 왔어?"
그리고, 안녕이란 인사는 불과 몇 시간전에도 했잖아. 이 뒷말은 삼켜졌다. 인터폰 화면을 통해 흐릿하지만, 보온병 길쭉한 거 하나를 들이내미는 유리의 환한 미소를 보니 말이다.
-짠!
"...뭐야?"
-보면 몰라? 죽이잖아!
죽...? 아, 아픈 사람들이 입맛 없을 때 억지로라도 먹는 그 죽...? 근데 그 죽을 왜 나한테 싸온거니. 그리고 모양새로 보아하니 사 온 건 아니고 직접 만들어온 거 같았다. 세하의 예상이 맞다면 유리와 세하의 집은 정반대 방향이었다. 거리도 그렇게 가깝지 않았다. 그러니까 유리는 오늘 임무를 끝내자마자 집에 가서 죽을 쑤고, 다시 반대 방향이 자신의 집에 왔다는 소리였다.
세하는 대문을 열어주었다. 잠시 후, 유리가 짠! 하는 자세로 현관으로 나타났다.
"아까보다는 그래도 열이 많이 내려간 거 같네~"
"그래 보여?"
"응! 아까보다는 혈색이 좋아졌어~"
그럼 괜한 걱정이었나? 괜히 죽을 쑤어왔네...죽을 세하한테 내밀며 유리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유리가 잠시 그런 후회(?)를 하던 와중에 세하가 유리의 손에 있던 보온병을 받아냈다. 보온병 크기로 보아하니...한 끼는 물론 하루 종일 먹어도 될만큼 넉넉하게 싸왔다.
"너무 많이 쑨 거 아니야?"
"그, 그런가? 나 원래 손 커서!"
"흐응~"
참고로 유리는 세하가 자신에게 '흐응~' 할 때가 제일 두려웠다.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자신의 감정을 잘 내색하지 않는 세하가 유리에게 내색을 가장 많이 하는 짧은 단어이기 때문이다. 보온병 뚜껑을 열자 무언가 탄 내가 공중으로 흩어졌다. 세하가 물었다.
"...태웠어?"
"응? 어, 어떻게 알았어?"
"아니, 그냥 약간 탄내가 나길래..."
"사실 미음 같은 거...처음 해봐서."
그렇다. 죽이 말이 쉽지, 은근 까다로운 음식이었다. 초보자들이 이렇게 죽을 태우는 건 흔히 있는 일이었다. 탄내가 나서 태웠냐고 물은거 뿐이지 겉모습에서는 별로 티가 나지 않았다. 수저를 한 술 떠서 먹어본 세하를 유리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보았다.
"..."
"어때?"
"괜찮아."
"괜찮아?"
"응."
괜찮다는 나름의 합격점을 준 세하를 보며 유리가 함박 웃음을 띄웠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저 많은 양의 죽을 자신이 도로 가지고 가는 줄 알았다. 은근 입에 당겼는지 세하는 유리와 대화를 하면서도 계속 죽을 야금야금 먹었다.
"근데 이런거 안 가지고 와도 되었는데."
"응?"
"나 열감기 걸린거 아니라고 했잖아. 내 위상력 때문에 가끔 이렇게 과부하가 걸리는 것 뿐이라고. 몇 시간만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그래도 조퇴하기 잘했지? 만약 오늘 임무 도중에 쓰러졌으면 어쨌을 거야~"
"..."
그건 그랬다. 만약 괜찮다고 자기 고집을 피우다가 유리가 말한대로 임무 도중에 쓰러졌다면...폐도 그런 폐가 없었다. 세하는 수긍한다는 의미로 계속 죽을 먹을 뿐이었다. 자신이 가지고 온 죽을 그래도 잘 먹어주니 유리는 뿌듯했다.
"오늘 여러모로 고맙네. 임무도 대신 해주고, 죽도 가지고 와주고..."
"임무는 여럿이서 같이 했어! 그리고 아플 때는 죽이 최고잖아?"
"...아픈거 아니라니까. 그냥 나한테는 흔한 일이라니까..."
"흔한 일이라고 해도, 몸이 아픈거잖아. 그런 걸로 흔하다고 그냥 넘어가지 마~"
충고 잘 새겨두도록! 유리는 비장하게 검지를 내세우며 세하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유리에게 한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흐응~ 잘 알아둘게."
"다음에도 그러면 네가 먼저 알아서 하기야? 알았지?"
"내 몸 간수 잘 하라고?"
"응!"
그러고 보니 아까 자기 직전에 스물스물 피어오르던 고독감 같은 거...이제는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좀 애매하게 잠이 깨어서 남은 시간동안 자신이 저녁거리를 준비했다면...그 자리에서 울어버렸을지도 모른다.
"흠...고마워."
진심이었다. 그리고 상대방은 그런 자신의 진심을 잘 알아주는 사람이었다.
"고맙긴."
그저 빨리 나아서 임무 나가야지~! 어이...마무리가 좀 이상한데? 세하와 유리의 대화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작가의 말]
http://cafe.naver.com/closersunion/243144
썰 중간에 유리가 추가된 이유가...'서지수 이외의 사람이 세하 열 나는거 걱정해주면 좋겠다!' 싶어서 유리를 넣은 거 뿐입니다.
근데 열 날 때 나 혼자 물수건 머리 위에 이고 있으면 정말 서럽던데...
곧 개강이 다가와서 클저 공홈은 잘 못 들어올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