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하 & 서지수] Pieta

루이벨라 2017-08-22 14

※ 볼프강 에픽 스포(?)가 있을수도 있습니다.
※ 뇌피셜 대다수, 설정 날조주의

※ 제목은 마땅히 생각나는게 없어서 지은 것 뿐...큰 의미는 없습니다.






01.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늘 집에만 계셨다. 나와 같이 집앞 놀이터를 가는 것도, 마트에 장보러 가는 것도 하시지 않았다. 그래서 그러한 것들은 늘 내 몫이었다. 장보기 같은 심부름이라던가, 홀로 뛰어놀아**다거나...놀이터에 갈 때마다 엄마와 같이 나온 아이들을 보면 부러웠다. 난 언제나 놀이터에서 겉돌았다.


 어린 마음에는 그 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우리 엄마는, 다른 아이들의 엄마와 같이 평범하지 않을걸까. 왜 늘 집에만 계시는걸까.


 왜?! 이 질문을 가장 많이 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엄마 앞에서는 내 불만을 말하지 못했다. 엄마를 어려워했던 건 아니었는데, 나도 이런 거 하고 싶다고 떼를 써도 이상할 거 없는 나이였는데도 엄마 앞에서만 서면 입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엄마, 라고 부르면 응~ 우리 아들 왜? 라며 밝게 웃으며 나만을 오롯이 바라보는 엄마를 보면...그 어린 나이에도 이런 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풀지 못한 고민은 점점 마음 속에만 쌓여가면서 엄마에 대한 불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내가 엄마 자체를 싫어했던 건 아니었다. 엄마의 그 점만 불만이었다. 그저 엄마의 그런 점만을 이해할 수 없는 것 뿐이었다.


 그 넓은 집안에서 홀로 있는 엄마가 문득 쓸쓸해보인다고 생각한 건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부터였다. 학교에서 돌아온 내가 티브이가 켜진 채 거실 소파에서 주무시는 엄마의 모습을 본 이후부터였다. 또 티브이를 보다 주무신건가...싶어 잠은 침실로 들어가 주무시라는 의도로 엄마를 깨웠다.


 -엄마, 엄마.
 -음...우리 세하 왔어...?


 잠결에 내 이름을 부르며 안기는 엄마의 몸에서는 엄마 냄새가 났다.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하지만 그 냄새에 마음 한구석이 뻐근해졌다. 난 그 날 용기를 내어 늘 묻고 싶었던 질문 하나를 할 수 있었다.


 -엄마...
 -왜, 우리 아들?
 -엄마 티브이 안 재밌죠?
 -응...? 아니, 엄마가 어제 한숨을 못 자서 깜빡 잠들었네~


 거짓말. 엄마는 거짓말을 못한다. 하지만 엄마는 그 날 내게 거짓말을 하셨다. 어린 아들이 알아내서는 안되는 사실을 얼른 숨기려는 듯. 당황을 하면서. 그 후로 우리 아들 반나절 동안 못 보았으니 아들 냄새 좀 맡자! 라면서 본격적으로 안겨들어 그 기억은 잠시 묻고 지냈다.


 엄마가 유니온의 감시 때문에 마음대로 외출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알게 되었다. 처음으로 드는 감정은 분노. 그 밖의 다른 감정들도 들었겠지만 분노가 너무도 큰 비중을 차지해 다른 감정들의 흔적은 희미했다.


 당장에 엄마한테 따졌다.


 -왜 엄마가 이런 취급을 받으면서 살아야하는데요?!
 -글쎄...엄마가 너무 잘나서 그런가?
 -아이 참...이게 그렇게 태평하게 받아드릴 일이에요?! 당장 따지러 갈거에요.
 -세하야.


 엄마가 서지수라는 걸 알면 주변에서 보내는 시선들. 우와, 그 영웅이 세하 네 어머니시라고? 엄마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부러움과 존경을 한눈에 받는 사람이었다. 내가 마음껏 자랑하고 다녀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하지만 그와는 다르게 엄마의 삶은...!


 화가 났다.


 -세하야, 엄마는 괜찮아.
 -괜찮긴 뭐가 괜찮아요! 엄마...항상 티브이를 보다가 주무시곤 했잖아요!
 -그건
 -또 거짓말 하실거에요?


 그리고 이제 거의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나에게 또 거짓말을 한다는 점에서도 화가 났다. 엄마...도대체 왜 바로 들통날 거짓말을 저한테 하시는거에요? 안 그래도 엄마는 거짓말에 서툴러서 거짓말 했다하면 다 표가 난단 말이에요...


 화 다음에는 눈물이 났다. 도대체 왜 계속 끝까지 모르는 척 하시는지. 왜 이리 자신의 이런 불만인 삶에 만족하는 '척' 하시면서 가만히 계시는지. 혹여 나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닌지 싶었다.


 -세하야.
 -...
 -엄마는 괜찮아!
 -...


 괜찮다면서, 걱정하지 말라며 내 앞에서 씩씩하게 괜스레 포즈를 잡는 엄마. 그 날 혹시 있을지도 모를, 엄마의 몫까지 내가 실컷 울었다.


 -엄마는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가 있어요?
 -내가 좀 씩씩해서 말이야.


 농담조로 말하지 말고 진지한 조로 부탁하는 눈빛을 보내니 엄마는 하하 웃으시며 말을 고치셨다. 목소리는 제법 진지했다.


 -엄마라고, 그런거 좋아할 수가 있겠어?
 -...
 -엄마가 우리 세하한테 해주고 싶은게 얼마나 많은지 알아? 보통 가족들이랑 하는 거...나한테는 너무 힘들더라고.


 유니온의 감시 아래에서는. 나를 힐끗 보시던 엄마는 빈틈 발견! 이라는 표정으로 나를 확 끌어안으셨다.


 -하지만 괜찮아! 엄마한테는 우리 세하가 있으니까!
 -수...숨 막혀요...!!


 자식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게 부모라는 걸까. 난 아직도 잘 모르겠다.






02.


 엄마가 보통의 엄마와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부터, 나도 보통 아이들과는 다르다라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내 눈동자를 보면 기겁을 하며 도망치는 아이들. 알 수 없는 아이들의 따돌림. 나를 경멸어린 시선으로 내려다보는 어른들.


 조금 커졌을 때부터는 유니온이라는 곳에서 나를 강제적으로 끌고 갔다. 멋 모르고 따라갔던 초창기에 반해 갈수록 이상해지는 어른들의 태도에 난 점점 기가 질려가기 시작했다. 이곳저곳 상처를 입고 돌아오면 엄마한테는 괜히 숨기고 그랬다. 엄마는 내가 아프다고 할 때 눈물부터 글썽이시는 분이셨기 때문이다.


 그 때도 계기는 비슷했다. 팔이 다 까진 상태로 돌아온 나에게 왜 다쳤니? 라고 묻는 엄마. 넘어졌다는 나의 대답에 엄마의 표정은 잠시 굳어졌다. 엄마는 내게 다시 물었다.


 -세하야, 정말 넘어져서 까진 거니?
 -...네에...
 -이건 넘어져서 까진 상처가 아니야. 이건 마치...


 싸우다가 생긴 상처야, 그것도 고의적으로 그런 거 같이.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이미 모든 걸 다 알아버린 표정이었다. 그 뒤로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엄마의 목소리는 몹시 날카로웠다.


 전화를 요란스럽게 끊은 엄마는 몇 초 정도 아무 말없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그리고 시선이 내 상처 부위로 향하자 그제서야 엄마는 꿈에서 깨어난 표정을 지었다. 서둘러 구급 상자를 가지고 오며 붕대를 감싸주며 엄마는 나를 나지막히 불렀다. 엄마의 목소리는 낮게 깔아져있었다.


 -세하야.
 -...
 -많이 아팠니?
 -...조금요.


 조금이라는 말에 엄마의 입술선이 살짝 떨리는 걸 보았다. 사실은 조금 수준이 아니라 많이 아팠지만...많이 아팠다고 긍정해버리는 순간 엄마가 젠가처럼 무너져버릴수도 있을거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세하야.
 -...응?
 -나중에 이런 일이 또 생기면 엄마한테 바로 말해야 해. 알았지?
 -...네.


 물론, 다시는 이런 일 없을거지만 만약이라는 가정을 안 할수는 없으니까. 그 유니온이라면 그러고도 충분히 남지. 대충 이런 내용의 혼잣말을 뒷부분에서 하신 거 같았다. 마지막 상처를 치료해주고서 엄마는 나를 뼈가 바스러져라, 오래도록 끌어안았다.


 며칠 후, 엄마는 오랜만에 엄마랑 신나는 데이트 하자! 라는 명목으로 나를 이끌고 대공원으로 갔다. 아마 그 때가 내가 최초로 기억하는 엄마와 함께 밖에서 즐겁게 보낸 '첫' 주말이지 않았을까. 대공원은 유치원 소풍으로 몇번이나 온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대충 알고 충분히 즐겼을터였는데, 그날의 대공원은 유독 즐거웠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가까운 놀이터에도 같이 나가지 못하는 엄마와 나온 모처럼 제법 긴 거리의 외출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물론이고 엄마도 즐거워보였다.


 유니온은 그 이후로 더 이상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검은양> 팀에 관한 일이 나오기 전까지는.


 -엄마, <검은양> 프로젝트라는 거...정말 믿어도 돼요?
 -응.
 -엄마, 저 유니온에 넘기는 거 싫어했잖아요.
 -넘기는 거 아니야. 빌려주는 거지. 그리고 걱정 마. <검은양> 높으신 분이 엄마 지인이거든~


 엄마 지인이면 괜찮은건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엄마 지인이 책임자라고는 해도 걱정이 되는 모양이긴 하나 보다. <검은양> 과 관련된 임무로 생채기라도 조금 가지고 오는 날에 난리법석을 떠는 거 보면. 가끔씩은 저녁상이 미리 차려져 있기도 했다.


 -엄마가 세하 힘내라고 한 솜씨 좀 해봤어!
 -엄마...부엌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엄마 음식 맛없다고요.
 -하, 하지만...우리 아들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엄마라는 사람이 그런 아들에게 밥만 얻어먹을 순 없잖아...!


 아니, 그걸 떠나서 엄마 음식은 사람 생명에 있어서 귀중한 문제라고요...






03.


 아빠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하지만 괜찮았다. 아빠의 자리는 처음부터 공백이었기에 허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원래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에 욕심이 없는 법이었다. 그리고 엄마가 여간 씩씩한게 아니라 아빠 몫의 역할까지 다 해주었기에 부족함은 없었다.


 그래도 가끔, 추억에 젖은 눈으로 엄마가 말하는 아빠에 대한 회상이 내가 가지고 있는 아빠에 대한 기억에 전부였다.


 -우리 세하는 어쩜 제 아빠를 쏙 빼닮았을꼬.


 지금도 나한테 가끔씩 하는 소리다.


 -우리 세하...점점 제 아빠를 빼닮아가네.
 -그게 어때서요?
 -아니, 너무 잘생겨져서.


 ...아들보고 잘생겼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엄마는 엄마밖에 없을거에요...에이, 사실인걸 어떡해!


 정작 그렇게 말하고 아들에게 아빠 사진을 보여주지 않는 엄마. 네 아빠는 사진 찍는 걸 싫어했어~ 라는 핑계 같지 않은 핑계를 대지만 난 안다. 사실은 나한테 아빠 사진을 보여주려면 엄마가 우선적으로 먼저 확인을 해야했다. 자칫하면 아들 앞에서 울어버릴 수도 있어서. 아들에게는 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그런다는 건 안다.


 그렇다고 내가 아빠 사진을 ** 않은 건 아니다. 앨범을 잘만 **보면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실제로 몇번이나 보았다. 엄마의 말대로 내가 아빠를 많이 닮기는 했지만, 글쎄...엄마가 하는 말이 무조건적으로 신뢰는 되지 않는다? 라는 정도.


 -세하는, 나도 닮아버려서 아쉽단 말이야. 아빠를 더 닮았으면 더 잘생겨졌을텐데.
 -...그거 엄마 디스인것도 아세요?
 -아, 그렇게 되는구나...!


 내가 나를 디스하다니...이건 좀 아니네.


 -엄마는 아빠의 어디를 보고 반한거에요?


 보통의 아들이라면 묻지 않을 질문이었지만 이쯤되면 정말 궁금하지 않아서 물어볼 수 밖에 없었다.


 -얼굴!
 -...진짜로?
 -응, 얼굴!


 너무도 간단하고 명확한 대답이라 더 이상 물어** 않았다. 그렇구나...정말 얼굴만 보고 결혼했구나...그렇게 납득하려고 하려던 찰나에 엄마는 반문(?)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 시작은 얼굴이었지만, 나중에 가서는 좋아하는 부분이 하나씩 생기더라고~
 -...
 -총 145가지가 있는데, 첫번째는 매우 다정한 사람이었어. 어떤 일이 있었냐면...


 참고로 난 저 145가지의 좋은 점을 어렸을 때부터 몇번이나 듣고 자랐다. 그래서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나도 모르게 그 말을 뱉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엄마는 아빠 보고 싶죠?


 멈칫. 엄마는 하던 말을 멈추었다. 정곡을 찌르는 질문인 모양이다. 그리고 그 정곡을 찌르는 질문인 걸 알면서도 순간(순간이라고 해도 몇시간)의 지겨움을 모면하기 위해 바보 같이 생각나는대로 내뱉은 내가 참 미웠다. 엄마의 저 나사가 하나 풀린 표정은...늘 유(流)하면서 강(强)한 엄마가 저런 표정을 짓는 건 정말 커다란 정곡을 찌렀을 때 뿐이었다. 그때만큼은 엄마는 무방비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렇게 굳센 사람이 그런 무방비 상태가 된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잠시 후 엄마의 잔뜩 볼멘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세하 너...일부러 엄마 골리려는거지?
 -아, 아니에요...
 -말을 더듬는데?! 정말 아니야?!


 제가 무슨 나쁜 의도가 있겠어요. 하지만 엄마는 이상하게도 체념한 표정이었다.


 -그래...근데 이건 세하도 거의 다 커가니 말을 해도 되겠지?
 -...네?
 -사실대로 말하자면 늘 보고 싶어. 1년 365일, 하루종일 24시간 이렇게 표현하면 되려나?
 -...


 진짜, 나라는 자식...도대체 어떤 짓을 저지른거야?! 엄마의 아빠에 대한 그리움은 대충적으로 느끼고 있었지만 이렇게 당사자에게 직접적으로 들으니 그 깊이와 울림이 또 달랐다.


 잔뜩 굳어버린 나를 엄마는 힐끗 흘겨보더니, 피식 웃었다. 저 웃음은...자기가 만든 장난에 내가 걸려들었을 때에 짓는 표정인데...!?


 -...
 -어때? 이제 확실히 알겠지? 세하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
 -이 엄마...엄청 상처받아버렸어.


 상처받았다는 사람 얼굴이 그렇게 장난기가 잔뜩 묻어나오면 도대체 어디를 믿어야하는거죠? 엄마는 나를 뒤에서 확 끌어안았다.


 -그러니! 엄마가 상처받은만큼 껴안아주기~
 -뭐, 뭐에요!
 -역시 우리 아들 품이 최고라니까...힐링하기 좋아~


 -아, 맞아. 우리 아들은 좋은 점이 무려 197가지이다?
 -...그래서요?
 -나중에 우리 아들 와이프 될 사람에게 잔뜩 어필할거야!
 -...


 ...아무래도 우리 엄마는...아들에 대한 사랑이 조금 과한 거 같다...






00.


 우리 아들은 제 아빠, 내 남편을 많이 닮았다.


 나를 안 닮았다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난 그 아이의 엄마였다. 내 유전자가 그 아이에게 스며들어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내 시선에서는 나보다는 그이를 닮은 부분이 더 많이 보일 뿐이었다.


 아이의 이름은 뭘로 할까? 라며 잔뜩 흥분하던 그이의 옆얼굴이 가끔씩 떠오른다. 세하도 가끔씩 그이와 똑같은 그런 표정을 짓는다. 그게 게임에 열중할 때뿐이라는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우리 부부의 첫 아이였다. 누구에게도 뺏길 수 없는, 그리고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은 소중한 보물이었다. 남편은 '세하' 라는 이름이 어떠냐고 내게 물었다. 난 좋다고 했다. 울림이 귀여워, 라는 나의 대답에 그이는 그 부분도 좀 신경썼지, 라면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런 행동 또한 가끔씩 세하에게서 찾아볼 수 있었다.


 역시 그 아빠에 그 아들이라는 걸까.


 그렇게 우리 아이의 이름은 '이세하' 가 되었다. 세하야, 세하야, 하며 내 배를 어루만지며 다정하게 제 아들 이름을 부르는 그이의 모습이 가끔씩 아른거린다.


 남편이 없는 삶에서 나를 지탱해주었던 건 바로 세하였다. 제 아빠를 쏙 닮은 세하. 남편을 닮아가는 세하. 하지만 그걸 제외하고도 내 눈에는 너무도 사랑스러운 내 아들. 그냥 내 아들이라는 것 자체에 너무도 감사한 우리 아들.


 보통의 엄마와 같이 외출이 자유롭지 않아 여러모로 상처받았을 때는 미안했다. 아니, 언제나 세하에게 미안했다. 그래도 기회가 될 때마다 세하를 데리고 놀러나갔다. 봄에는 벚꽃놀이, 여름에는 수영장, 가을에는 단풍놀이, 겨울에는 스키장 등등...아들의 손을 꼭 붙잡으며 내 위치에서 갈 수 있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유니온에서 위상력에 대한 훈련을 해주러 간다는 핑계로 실은 아이를 학대에 가깝게 대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을 때는 속이 뒤집혀졌다. 당장 책임자에게 전화해 따졌다. 전화 너머의 상대방은 매우 당황하는 거 같았다. 그러면서 묻는 말. 아이가 정말 그렇게 말했나요? 더 열불이 났다. 책임 전가를 하려고 해?! 도저히 있을 수 없어서 한바탕 퍼부은 뒤 전화를 끊었다.


 아들의 상처에 붕대를 감겨주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아, 안되었다. 여기서 울면 안되었다. 난 누구에게도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되었다. 최강의 클로저라는, 알파퀸이라는 사람이 이런데에서 무너져버리는 모습을 누군가 보게 된다면 그 즉시 나와 세하의 삶은 지금보다 더 각박할 수도 있었다. 난 나와 세하를 위해서 늘 최강이어야만 했다.


 아이의 마지막 상처를 감겨주고서 나는 세하를 꼭 끌어안았다. 이런다고 상처가 금방 낫는 건 아니지만 그냥 그러고 싶었다. 아직 많이 부족한 엄마는, 아들에게 이런 것밖에 해줄 수 없었다.


 <검은양> 일을 하면서 세하는 많이 바빠졌다. 세하가 힘들까봐 가끔은 내가 저녁상을 차리는데 아들 녀석은 엄마의 음식은 생명의 존귀가 달린 문제라고요! 라며 질색을 한다. 아니, 그래도 한입 정도는 마지못해서 먹어줄 수 있잖아...나도 내가 요리 못한다는 거 안다고...그래도 세하가 남편 요리 솜씨를 닮아서 다행이었다. 만약 나를 닮았으면...끔찍했을거다.


 세하에게는 '아빠' 라는 존재는 어색한 존재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난 내 나름대로 아빠라는 존재에 대해 열심히 알리려고는 하지만...사람은 실감이 나지 않는 건, 직접 겪지 않는 이상 수긍하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세하에게 아빠라는 추억은 공백 뿐이겠지. 그래서 난 내가 힘 닿는데로 아빠 몫의 역할까지 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그이가 아직도 살아있으면 해주었을 '아빠' 보다는 훨씬 못 미치는 몫이겠지만 내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


 아들은 올바르게 자라주었다. 엄마의 눈이 아닌, 객관적인 눈으로 보았을 때 말이다. 그래서 늘 감사하고, 감사해하며 기도를 올린다.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하늘에 있는 어떤 분에게. 어쩌면 그건 '신' 이라고 불리는 존재일지도.


 난 '신' 을 믿지 않는다. '신' 을 믿을 바에는 차라리 '내 자신' 을 믿었다. 남편과 결혼한 이후로는 나와 남편을, 세하가 태어난 후부터는 나와 세하를. 아, 물론 나보다는 세하의 비중이 더 높다. 세하만이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내 안의 신이, 내 아들이 올바르게 자라주어서 늘 감사하다. 사랑해, 우리 아들~






[작가의 말]



http://cafe.naver.com/closersunion/242998


개인적으로 서지수랑 세하는 외형적으로 많이 안 닮은 거 같아서 세하는 아빠를 더 닮았다는 설정으로 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서지수는 남편을 많이 사랑했을 거 같아요.
그래서 남편이 죽은 이후부터 남편을 닮은 세하를 서지수는 아마 하나의 '종교'(다르게 말하면 삶의 이유)로 생각하고 살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서지수가 생각보다도 더 한 아들바보라서 좀 놀랐습니다(...)
참고로 서지수 시점을 쓸 때 좀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서지수 시점에서는 제가 강아지를 보고 드는 감정을 바탕으로 하며 썼습니다.(그것도 일종의 모성애라고 해서...)

2024-10-24 23:16:58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