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세하 - 3 (스포有)
WinterFlower 2017-08-16 1
※ 검은양, 늑대개 스토리 관련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머나~ 이게 누구야?”
백발의 소녀가 소년을 보며 말했다. 황폐한 주변과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그녀의 옷은 깨끗했다.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음에도 요염함이 가득한 웃음소리와 표정을 능숙히 짓던 그녀는
자신이 바라보던 소년에게 몇 걸음 다가갔다.
“…저리 꺼1져, 더스트.”
“못 보던 사이에 되게 까칠해졌네?
더 매력 있어 보이는걸?”
이세하는 언젠가 유명했을 고층빌딩의 옥상 끝에 걸터앉아 있었다.
어느덧
소년을 알아보던 소녀가 그의 옆에 섰다.
“딱히 당황하진 않네? 재미없어.”
더스트는 웃던 얼굴을 그대로 거두었다.
“어차피 네가 마음만 먹는다면 내가 도망치든 뭘 하든 네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잖아? 쓸데없이 힘 빼고 싶지 않아.”
“음~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재미없는걸?”
소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정적이 흘렀다. 대도시임에도 인적은커녕
차의 경적도 들리지 않아 조금 거세다 느낄법한 바람만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이세하의 머리카락이 연한 보라색이 물든
은빛을 내고 있었다. 이세하도 더스트도 그 색을 분명 본 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더스트는 순간 어느 곳을 바라보았다. 이세하는 그녀가 왜 그리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더스트에게서 잠시 적지 않은 양의 위상력이
나왔다 사라졌음을 느꼈다.
이내 바람이 멎었다. 멀리 지상에서 피어오르는 불길과 느닷없이 나타났다
어느새 사라지기 시작하는 먼지가 보였다.
“네가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알아.
이세하.”
“닥1쳐.”
“저기 보일락말락 한 고철 덩어리들 때문이지?”
“닥치라고.”
“유니온도 참 어지간히 더러운 짓을 하는구나. 우리와 다를 게 전혀~없다니까.”
“…”
“클론을 만들다니. 그건 우리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다음에 써먹어
봐야 겠는걸?”
“입 닥치라고!!!”
이세하는 더스트를 돌아보며 위상력을 방출했다. 공기가 끓어오르며
아무것도 없는 곳에 아지랑이를 피웠다. 곧 푸른 불꽃이 일렁임과 동시에
더스트는 뒤로 도약하며 이세하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그녀의 잿빛
장발이 휘날렸고 이내 이세하가 힘을 거둠과 동시에 그녀의 머리카락은
제자리를 찾아갔다.
“후훗. 꽤나 강해졌는걸, 이세하? 그래도 아직 멀었어.”
더스트는 그리 말하며 손끝을 이세하에게 향했다. 이세하는 그녀를 주시했다.
곧 그는 눈을 깜빡였다. 인간의 눈 깜빡임은 0.3초 채 되지 않는다.
겨우 그사이였다. 더스트는 어느새 이세하의 눈앞에 와있었고 그녀의
손가락은 이세하의 이마와 맞대어 있었다. 이세하는 몸을 틀어 그녀의 손 끝에
집중되는 위상력을 피하려 했다.
“느려!!”
이미 늦은 회피의 대가로 이세하는 몸이 공중에 뜨며 날아갔다. 이세하가
갑작스러운 충격에 정신을 차렸을 즈음엔 이미 자신의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때였다. 이세하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분명 자신이 서있었을
고층빌딩이 높아 보였고 그제야 이세하는 자신이 자유낙하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냥… 이대로…’
이세하는 순간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곧 들려온 더스트의 목소리가
그의 단념마저 포기하게 했다.
이세하의 몸은 지상과 가까웠고 그는 자신의 죽음을 확신했었다. 하지만
이세하는 여전히 상처의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눈을 떴다.
그의 머리는 지면을 향하고 있었지만 10센티미터 채 되지 않는 거리를
남기고 그는 공중에
부양하고 있었다.
“너는 아직 죽기엔 아까워.”
더스트의 목소리였다. 그것은 이세하의 등 쪽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이세하는 그제서야 그녀가 위상력으로 자신의 다리를 붙잡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녀가 위상력을 풀자 이세하는 지면에 머리를 박았다.
땅에 大 자로 누운 이세하는 데자뷔를 느꼈다. 더스트가 그런 이세하를
내려다보았다.
“우리는 딱히 너를 해치려 이곳에 온 게 아냐. 그냥 데이비드 녀석이 하는
짓이 재밌어서 구경하러 온 거지. 너를 만난 건 그냥 우연이니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게.”
“…”
“이세하, 예전부터 계속 어필해왔던 거지만 나는 네가 정~말 좋아. 어때?
힘을 줄게. 유니온의 상부에 복수할 힘을. 알파퀸보다 강해진다는 건 네가
직접 네 엄마를 지킬 수 있는 거야.”
“힘을 바래 차원종이 되는 짓은 하지 않을 거야.”
“흐응~ 재밌어진 줄 알았는데
여전히 고리타분하구나?”
더스트는 자신의 뒤에 차원 문을 소환했다. 그 안으로 들어가려던 더스트는
이내 우아하게 몸을 돌렸다. 그녀의 옷에 달린 장식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이세하 그거 알아? 주입된
위상력은 다시 누군가에 의해 빼앗길 수 있어.”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야.”
“후훗. 곧 알게 될거야.”
더스트는 그 말을 끝으로 차원문 너머로 사라졌다.
“**. 머리 식힐 시간도
주질 않는군.”
이세하는 더스트가 사라지고도 그 자리를 뜨지 않았다. 때문에 적들에게
발견된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포위되었다. 하지만 이번엔 테러리스트들이
아니었다. 이세하와 매우 비슷한 위상력을 지닌 클론들이었다.
이세하는 목 끝까지 튀어나온 욕을 애써 참았다. 겨우 붙잡은 이성은 그가
미쳐버리지 않게끔 했다.
전투 끝에 남은 것은 단 하나의 클론이었다. 차례차례 클론들을 쓰러뜨린
끝에 우연히 그녀가 남은 것이 아니었다. 그녀와 싸운 지 이십여 분이
지났지만 이세하는 그녀에게 이렇다 할 상처를 입힐 수 없었다. 하지만
클론은 달랐다. 지친
이세하는 클론에게서 무시 못 할 피해를 입었다.
이세하는 숨을 겨우 몰아쉬고 있었다. 찢어진 이마에서 흐르는 피가 그의
한쪽 눈 시야를 가렸다. 비틀거리며 자신이 어떻게 두 다리로 몸을 지탱하고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그는 지치고 다쳤다. 이세하는 곧 그의 코앞에 선
클론에게 저항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이세하는 누워있었다. 이번이 몇 번째지? 라고 그는 속으로 되뇌었다.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클론에게 복부를 밟힌 채 그는 자신을 향한 살의에 죽음을
예견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이…..이세….ㄻㄴ줗….하….ㄵㅀ뭄ㄴ아…..세하…야…”
“….?!”
이세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처음으로 말을 하는 클론을 보았다. 그것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분명 언제나 자신을 다정히 대해주던 어머니의 것과 같았다.
“어…서…. 나를… 죽여…. 아니면… 내가….너를!!”
클론은 자신을 억제하고 있었다. 이세하에게 향하는 오른손을 자신의 왼손으로
겨우 붙잡은 채 자기 아들을 구해주려 하고 있었다.
“어떻게…내가….엄마를…”
이세하의 입을 떨렸다. 그가 느끼는 감정은 데이비드가 넘볼 수 없는 힘을
취했을 때 들었던 공포심보다 더욱 무서운 것이었다.
클론에게서 전류가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곧 자신마저 방어하지
못하고 있는 세하를 향해 손을 뻗었다.
“….!”
그녀는 왼손으로 오른손을 목 쪽으로 잡아당겼다. 그것은 클론의
짧은 생에 종지부를 찍었다. 클론의 입에서 나는 잡음을 이세하는
더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러다 이내 클론은 작동을 중지했다.
그것이 끝이었다.
“하…..”
폭풍전야만큼이나 거센 싸움이 지난 후엔 정적이 전부였다. 이세하는
힘이 풀린 다리 앞에 푹 쓰러진, 이제는 고철 덩어리가 되어버린 어머니의
클론은 바라보았다.
“하…하핫……”
그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아하하하하하하하!!!!”
그는 웃었다. 이세하는 어머니와의 추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클론임을 알고있었다. 하지만 조종 당하고 있음에도 끝내 이세하를
구해준 클론에게서 어머니의 향수를 느꼈다.
내리던 비가 겨우 멎었다. 이세하는 곧 자신에게 자비를 베푼 클론에게
다가갔다. 그는 적지만 느낄 수 있었다. 클론의 뇌에서 미약하게나마
위상력이 있음을.
이세하는 더스트가 한 말을 떠올렸다.
‘이것 때문이었나…’
그리 속으로 중얼거린 이세하는 클론에게 손을 뻗었다.
“…..!”
머리가 하얗게 센 청년이 텅 빈 거리를 뛰고 있었다. 그의 귀에
달린 통신장치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고 그만큼이나
그 사내의 표정은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 노란색 안경 뒤로
날카로운 눈매엔 근심이 서려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자신의
동료가 말해준 위치에 당도했다. 언제부터인가 통신기에선 잡음만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더이상 어떤 전시상황도 전달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에겐 길잡이가 있었다. 테러리스트들의 시체, 클론의 부서진
잔해가 그것이었다.
위상력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자, 클론의 본체와 같이 영웅이라 불리는 자,
제이는 주변을 둘러보며 자신이 늦게 도착했음을 깨달았다.
길잡이가 가리키는 방향은 올곧았다. 제이의 머릿속엔 이세하가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을 거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세하야….!”
길잡이는 유니온 타워를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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