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념과 함께하는 자. 2

클라인다이나 2017-08-13 0

나에게 위상능력은 없다.


유니온에서 꼼꼼하게 검사하고 나온 결과였기에 국제 법상 나는 민간인이었다.


그런 내가 겁도 없이 더스트를 도발한 이유.


그것이 지금 현재 나의 몸을 빌려 싸우고 있는 차원종 맘바와 박사의 사념 덕분이었다.


아직 태어나기 전, 아버지가 사용하던 검은 책이라는 수수께끼의 도구에 어머니가 노출된 탓에 나에게 일부지만 그 도구와 비슷한 능력을 부여받으면서 태어났다.


물론 알아차린 것은 1년 전, 맘바의 사념이 나에게 들어온 뒤에 일이었다.


덕분에 전도 유망한 소년 프로게이머는 돌연 은퇴.


유니온에서 실험체로 당하기 전에 할아버지께서 손을 써서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 근 1년간 내가 겪은 상황이었다.


"무능력한 인간에게 의태하다니, 꼴사납네. 최후의 용왕."


"상관 없다. 살아만 있다면 겉모습 따위."


맘바는 내 몸으로 열심히 더스트와 싸웠다.


당연한 말이지만 상황은 더스트가 압도적으로 유리하고, 맘바는 그녀를 하피에게 접근 시키지 않는 것이 고작이었다.


무기는 튼튼하지만 그것을 지탱하는 몸은 클로저보다 약한 인간의 몸이니까.


하지만 맘바의 공격은 조금이지만 착실하게 더스트에게 들어갔고, 그 탓에 그녀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왜야? 왜 안 쓰러지냐고? 왜 안죽냐고!"


마치 투정을 부리는 어린애 같았다.


힘이라는 장난감을 갖고 노는 어린이. 저런 애가 근 1년간의 **를 꾸며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 계획 대부분은 더스트가 아닌 애쉬의 머리에서 나왔고, 그녀는 동생의 힘을 갈취했을 뿐, 지혜를 갈취하진 못했으니까.'


그렇군. 설명 고마운데...이제 당신 차례야


이미 내 몸은 눈에 띄게 둔해졌다.


그나마 맘바가 억지로 표정을 유지한체 싸우는 중이라 더스트는 눈치 못 챘지만, 앞으로 수십초 안에 무너질 것이 뻔했다.


그렇게 검을 휘두르는 중, 다리에서 힘이 풀리는 바람에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당연하게도 더스트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고, 맘바는 여전히 무표정을 고수한체 왼쪽눈을 지긋이 감았다.


그리고 오른쪽 눈이 정상으로 돌아와 붉게 물들었고, 그와 동시에 손에 쥔 검이 빛의 알맹이가 되어 산산히 흩어졌다.


황급히 일어나려는 하피, 그리고 뒷늦게 들어온 트레이너가 개입하려고 했지만, 더스트의 주먹이 나에게 격돌하는 것이 더 빨라 보였다.


"이제 죽어!"


"그렇게는 안되지. 나의 주인이여."


손을 천천히 들고, 손가락 끝에서 보라색 벼락이 튀어올랐다.


그리고 그녀의 주먹이 나를 때리는 것보다 먼저 그녀의 머리를 가격했고, 동시에 나타난 고리 속으로 몸을 빼버렸다.


허공을 가는 더스트의 주먹.


내가 나온 곳은 그녀와 두발자국 떨어진 곳이었다.


"너 설마..."


"오래간만이군. 나의 예전 주인이여."


맘바에 비하면 표정이라는 것을 짖는 박사.


더스트는 방금 전 도발한 나보다도, 그리고 검을 휘둘었던 맘바보다도 더 흉흉한 살기서린 시선으로 한쪽눈을 감은 나의 몸을 노려보았다.


"칼바크 턱스! 네놈도 네놈도 날 방해하는 거냐!"


"이제 슬슬 인내라는 것을 배우는 건 어떻겠나? 아, 하긴 어른스러운 애쉬와 다르게 더스트 당신은 힘만 쎈 아이였던 것을 망각했군, 이거 실례."


"너, 영혼까지 갈갈이 찢기고 싶어?"


생각해 보면 나도 그렇지만 내 안에 든 사념들은 하나같이 겁 없는 놈들 투성인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정예 클로저도 두려워하는 차원종을 상대로 겁없이 도발하는 무식한 짓은 안할 태니까.


"오, 이제 끝나가는 군. 당신의 정예 부하들이."


"하? 어차피 저런 애송이들 따위..."


"아닌 척 해도 두려워하고 있지 않나? 인간, 특히 검은 양과 늑대개라는 예측 불허의 희망을."


여전히 중2병 대사를 아무렇지 않게 입에 담는 구나.


박사 역시 용사다. 용사.


"그건 애쉬, 그 겁쟁이 동생이나 그렇지. 난..."


그 순간, 일제히 반에 들어오는 검은 양과 늑대개 팀.


왜 그들이 현 클로저들 중 톱급 실력을 갖었다고 평가하는 지, 이제야 납득이 갔다.


"트레이너씨. 하피씨 이 상황은 대체..."


당황해 하는 세하.


그런 그에게...


"별것 아니다. 그저 무지한 나의 옛 주인에게 복음을 전했을 뿐이지."


박사는 미소를 지으며 평소와는 다른 유쾌한 기분을 만끽했다. 정작 세하는 물론 아이들 전원이 이해 못하는 듯 고개를 갸웃 거렸지만.


어찌 됐던, 이제 더스트는 어떻게 나올까?


석봉이와 정미를 인질로 잡겠다는 것은 이 두팀을 협박해 뭔가를 시킬려고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죽이는 거라면, 여기를 노리지 않고 곧장 운동장을 노렸을 것이니까.


그걸 알기에 나도 맘바도, 그리고 박사도 승산 없는 싸움을 질질 끌었으니까.


아니였다면...죽겠지만.


다행이 그녀의 표정을 보면 우리의 도박이 당첨인 듯 했다.


"두고 봐. 날 방해하고 살아 남을 줄 알아!"


"후후후, 인간계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하더군. 두고보자는 자 중 무서울 자 없다고."


마지막까지 도발하는 것을 보면 박사가 맺힌게 많은 가 보다.


그래도 이쯤에서 그만 뒀으면 하는데...어두운 골목에게 객사하긴 싫으니까.


더스트는 애들을 한번 쓱 훑어본뒤 나를 매섭게 노려보고는 차원문을 열어 유유히 걸어갔다.


물론 나타나 유리가 다가가려고 했지만...


"멈춰라, 일이 더 커질 수 있다."


트레이너가 제제했다.


이윽고 차원 문이 닫히자 방금 전까지의 무거운 공기가 가라앉는 느낌을 받았다.


"후...이만 나는 쉬도록 하지. 뒷처리를 부탁한다. 몸의 주인이여."


하다 못해 설명이라도 해주고 들어가면 좋겠는데...


하지만 박사는 매정하게도 감은 눈을 떳고, 그렇게 몸의 주도권은 나에게로 넘어왔다.


덤으로 뼈 마디마디가 욱신거리는 고통과 함께.


"으...아퍼."


"설명을 요구해도 되겠나? 학생."


"뭘요? 박사? 아님 맘바. 그것도 아님 저?"


트레이너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


원래라면 꼭꼭 숨기라고 할아버지가 신신당부 했지만...어쩌겠는가? 이미 상황은 벌어지고, 물은 업질러 졌는데.


하지만 그보다 먼저...


"구급차부터 시작하면 안될까요?"

이 통증을 완화 해줄 진통제가 시급하다.

2024-10-24 23:16:48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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