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저스 팬픽] 10년 후 Episode. 3 (1)
Contrasto 2017-08-10 4
“...나! 유리 누나!”
익숙한 목소리가 나의 의식을 잠의 바다 속에서 꺼내주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앞을 보니, 교복 차림의 미스틸이 날 반겼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누나? 저 먼저 학교 가니까 식탁에 차려놓은 거 드세요!”
미스틸은 가방을 들고 활기차게 말하며 나섰다. 거실로 나가보니, 간단하게 차려진 아침밥이 모락모락 김을 내며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모닝커피를 마시며 타블렛으로 오늘의 일과를 확인했다. 여전히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였다. 하지만 지겨운 서류작업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대부분은 쇼그가 처리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주된 업무는 국장으로서의 서류결제나 간부 회의와, 관리요원으로서의 현장 감독이었다.
“으~음... 미스틸은 방과 후인 오후 4시부터고... 사부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담당 클로저들의 스케줄을 짜고 있었을 때였다.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이름을 말하기도 전에 쾅 하는 거친 소리와 함께 대문이 열리며 나타가 들어왔다.
“어-이 바보제자! 나 왔다!”
“오 싸부! 마침 잘 왔어! 오늘 지역 순찰 구로역인데 아침에 할래, 아니면 오후에 할래?”
나는 나타를 반기며 오늘의 스케줄 조정에 대해 물었다. 나타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소파에 몸을 던졌다.
“헹, 난 별 상관없어. 그냥 집에 일찍 보내주기만 하면 오케이라고.”
“그래? 그럼 아침에 넣는다~”
“알았어, 알았어.”
스케줄 조정을 맞춘 나는 나타에게 커피를 건네며 옆에 앉았다. 나는 문득 기억난 사실을 나타에게 다시금 확인했다.
“아, 그리고 내일은 내가 모두 스케줄 비워놨으니 꼭 와야 해! 내가 힘들게 비운 거라고!”
“아 알았어! 서영이도 아침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얘기하더라!”
내일이 무슨 날인가 하면, 바로 9월 9일, 세리의 생일이다. 이렇게 우리의 아이들 중 누군가의 생일이 되면 무조건 그 날은 모두가 일차를 내고 생일을 축하해주었다.
“나는 어제부터 서연이랑 같이 생일선물 만들었다고? 오늘 저녁에 마지막으로 조금만 다듬으면 끝나. 애가 누굴 닮았는지 손재주가 좋단 말이야!”
나타는 씨익 웃으며 자랑스레 말했다. 역시나 모두가 한 수 접어주는 팔불출 딸 바보다웠다.
“나는 귀여운 악세서리 하나 선물해줄까 하는데~ 친구들한테 자랑할 수 있게!”
세리는 귀여우니 무엇이든 잘 어울릴 것이다. 특히 해바라기가 잘 어울리는 귀여운 아이니, 해바라기가 있는 머리핀을 선물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세리가 방실방실 웃으며 이리저리 선물들을 자랑하러 다닐 것을 생각하니, 웃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커피를 다 마시고, 우리는 동시에 소파에서 일어나서 짐을 챙겼다.
“아이들하고 같이 놀려면, 오늘 빡세게 굴러야지. 도중까진 바래다줄게”
“고마워. 뭔 일 생기면 연락하고. 알았지?”
나를 가는 길에 내려준 나타는 다시 구로역으로 향했다. 나타도 아이들의 미소를 지키기 위해 오늘도 편할 날 없는 전장으로 싸우러 간다. 오로지 죽이기 위해 싸우던 옛날과는 달리,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나타의 뒷모습은 멋져보였다.
그럼, 나도 나대로 아이들의 미소를 지키기 위해 싸워볼까?
-
오후 4시, 나는 학교를 마친 미스틸을 마중 나가러 신강고 정문 앞에서 기다렸다. 이렇게 모교를 보니, 왠지 느낌이 새로웠다. 차원 전쟁 때도, 티어매트 사태 때도 문제는 많았지만 정작 건물은 멀쩡한 걸 보니 이 학교도 꽤나 질긴 악연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유리 누나 기다렸어요?”
하교한 미스틸이 나에게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주위를 살펴보니, 대부분의 여학생들이 얼굴을 붉히며 미스틸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긴 훤칠한 키에 이국적인 얼굴을 보면 어느 여고생이나 다 한눈에 반할것 같이 생겼다.
나는 미스틸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어쭈? 인기 좀 많나봐? 이거 세하 때보다 인기 더 많은 거 아니야?”
“아하하... 그보다 세하 형이 학교 다닐 때 인기가 많았어요?”
미스틸은 자신이 인기가 많은 것 보다 세하가 인기가 많았다는 사실이 더 흥미로웠나 보다.
“그래, 세하 인기 많았지... 둔탱이였던 주제에...”
-
쉬는 시간, 복도는 언제나 다름없이 학생들로 가득 차 시끌벅적해졌다. 그런 복도를, 세하는 앞도 ** 않고 게임에만 열중했다. 다른 사람들이 먼저 피해서 망정이지, 아니었음 진작에 다른 사람들과 부딪혔을 것이다.
그 순간, 뒤에 따라오던 슬비가 교과서로 세하의 머리를 인정사정없이 내리쳤다.
“이세하 너, 내가 걸어 다닐 때 게임기 꺼내지 말랬지!”
“아 왜 건들지 마! 너 때문에 죽을 뻔했잖아!”
세하는 신경질적인 어조로 말하는 슬비를 무시하고 다시 게임기를 들었다. 그 뒤론 둘의 공방전이 이뤄질 뿐이었다. 하지만 주위에서는 아무리 봐도 두 남녀의 사랑싸움처럼 밖에 보이지 않았다.
결국 게임기를 집어넣게 만드는 것을 포기한 슬비는 세하의 뒷덜미를 잡고 질질 끌며 반으로 데려갔다. 슬비는 질렸다는 표정을 지으며 세하를 끌고 가는 도중에도 잔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점심시간, 급식 대신 매점을 이용하는 세하는 종이 치자마자 매점으로 가려고 일어섰지만, 지갑을 깜빡하고 두고 왔는지, 허탈한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앉아 엎드렸다.
내가 머뭇거리며 일어서려던 찰나, 슬비가 자려고 하던 세하를 깨워서 걱정하는 눈치로 물어보았다.
“너 밥 안 먹어? 점심 안 먹으면 오후에 힘들 텐데?”
“으으... 깜빡하고 지갑을 두고 왔어... 매점에 못가...”
세하는 속상한 말투로 말했다. 슬비는 한심하다는 듯이 한숨을 쉬고 엎드린 세하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빨리 매점 가자. 내가 밥 사줄게. 다음부턴 잘 좀 챙기고 다녀!”
말에는 가시가 돋쳐있었지만, 세하를 걱정하는 마음이 담겨있었다.
“오 진짜?! 고마워~ 다음엔 내가 살게!”
밥을 굶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세하는 환하게 웃으며 몸에 힘을 빼고 슬비에게 끌려가게 두었다.
“어-이 유리야! 너도 같이 매점 가자!”
“어? 으, 응 알았어.”
나는 어색하게 대답하고 일어나 세하와 슬비의 뒤를 쫓아갔다. 앞을 보니 슬비는 세하를 끌고 가면서도 잔소리를 계속 해댔다. 세하는 그저 밥을 굶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기쁜지 슬비한테 뭘 먹을 건지 물었다. 세하는 둔감해서 잘 모르겠지만, 슬비의 저런 잔소리 또한 세하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챙겨주고 싶어서 하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슬비가 그렇게 세하에게 노력하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세하와 관련된 일만 되면 소심해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나를 매사에 밝고 활기찬 사람이라고 했지만, 정작 중요한 때에 소심해지는 내가 싫었다. 세하 앞에서도 당당한 슬비처럼 되고 싶었다.
“정말이지, 너 자꾸 매점 음식만 먹다가는 몸 상해! 나도 오늘은 너 때문에 매점에서 먹지만 다음부턴 매점 음식 좀 줄이고 급식을 먹으란 말이야! 너 집에서도 대충 먹지? 저녁도 라면 같은 걸로 때우면 너 진짜 크게 아플 수도 있어!”
슬비의 걱정 섞인 잔소리를 또 무시하며 매점으로 가던 세하는 뒤를 돌아보더니 나를 보고 말했다.
“야 서유리 빨리 와! 그러다 두고 간다!”
“아... 알았어! 금방 갈게!”
아니, 내가 세하 앞에서 소심해지는 이유는 아마 이 상황에 만족해서였을지도 모른다. 그저, 친구보다 좀 더 가까운 사이로, 서로 구김살 없이 친하게 얘기를 주고받으며 웃을 수 있는, 그런 관계에 순응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기적인 나는, 슬비를 질투했다. 그녀만 없었더라면, 내가 슬비처럼 뒤가 아니라 옆에 설 수 있지 않았을까? 세하 앞에서도 당당해질 수 있지 않았을까?... 이 마음을, 전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그녀를 질투하다보면 어느새 초라하고 이기적인 나의 모습만 보여 나 자신만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슬비가 좋았다. 힘들 때 기댈 수 있고, 매사에 착실하고 똑부러지는 슬비는 그 누구보다도 세하와 잘 어울렸다. 뒤에서 그 둘을 보면, 티격태격하는 모습도 한 폭의 그림처럼 보였다. 감히 내가 거기 있을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렇게 겉으로는 절대로 보여줄 수 없는 이 애증의 감정이, 망설임의 시간이, 결국 쌓이고 쌓여서 10년이란 세월을 만들어냈다.
10년이란 세월동안, 나는 그 둘에 대해 이 추악한 감정을 지우려 ** 듯이 일에 열중했고, 결국 이 자리까지 왔다.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을, 그런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한 폭의 그림 같던 둘은 결국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였고, 둘도 없는 행복한 가족이 되었다. 나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평범하디 평범한 삶을 택하고서 말이다.
아내가 된 슬비를 처음 봤을 땐, 같은 사람인지 헷갈릴 정도로 사람이 변해있었다. 예전의 날선 성격은 다 어디로 가고 부드럽고 잘 웃는, 아름다운 여성이 되어있었다. 곧잘 세하에 대해 푸념을 늘어놓던 예전과는 달리, 세하 얘기만 나오면 얼굴에 웃음이 번지는, 영락없이 사랑에 빠진 여자가 되어있었다.
또 둘의 아이들을 봤을 땐, 너무나도 귀엽고, 무엇보다 세하와 슬비를 똑 닮아서 나도 모르게 꼬옥 껴안았다. 정말 사랑스럽다는 생각과 동시에, 만약 나와 세하의 아이는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이지, 글러먹은 사람이구나, 나는...
-
“...나, 누나!”
“어엇...! 응?”
미스틸이 외친 소리에 정신을 차린 나는, 고개를 들으니 어느새 목적지인 미스틸의 순찰 장소에 도착하였다. 미스틸이 나를 걱정스럽게 쳐다보았지만, 나는 한손을 들어 괜찮다고 했다.
“그보다 내일 꼭 학교 끝나고 바로 와야 한다? 세리 생일파티 해야지. 생일선물 꼭 챙겨라?”
“알고 있어요 누나, 벌써부터 기대되네요! 그럼 이따 밤에 봐요!”
미스틸은 기대된다는 듯이 환하게 웃으며 자신의 순찰 장소로 뛰어갔다.
가을에 접어들며 부쩍 낮이 짧아짐을 느낀다. 초저녁임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주황색을 띄기 시작한 노을을 바라보며 기지개를 폈다.
내일도, 추악한 나의 감정을 바라보기 위해 그들을 찾아간다. 아무도 모를 나를 또다시 속에 감추며...
--------------------------------------------------------------------------------------
오랜만에 다시 돌아온 [10년 후]의 본편입니다! 저번에 예고드렸다시피, 이번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유리가 될 예정입니다. 사실 이 에피소드는 필자가 참 고민을 많이 한 에피소드인데요, 세하슬비도 굉장히 좋아하지만, 기본적으로 세하유리 파인 저는, 커플링은 언제나 왕도를 따라간다는 제 철칙과 어긋나다는 것을 알고 어쩔수 없이 세하 슬비의 이야기를 쓰게 되었고, 많은 독자분들을 만족시킬 수 있었음과 동시에 또 많은 독자분들에게 실망감을 안겨드렸습니다. 그래서 이 에피소드는, 두 커플링을 모두 좋아하는 제가 정한 세하유리와 세하슬비의 가장 이상적인 "종지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에피소드를 구상할 때, 처음으로 떠오른 생각은 [항상 밝게만 보이는 유리에게 만약 아무도 알지 못하는 어두운 면이 있다면?]이었고, 이 생각을 세하슬비 세하유리 커플링과 접목하여 스토리를 만들었습니다. 스토리 구성에 시간을 많이 쏟아부은 만큼, 제가 개인적으로 아주 마음에 들어하는 에피소드입니다. 부디, 재밌게 즐겨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