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브-배신을 거듭한 끝에서(스포일러)

Sehaia 2017-08-04 5

주의! 이 글에는 볼프강 시즌 1스포일러가 담겨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시는 분이라면 조용히 뒤로가기를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였을까요.

인간에게 우리의 계획을 알려준 것?

인간에게 망명을 신청한 것?

카이거 님을 연모하기 시작한 것?

아니면,

제 존재 그 자체입니까.

답을 알고 있는 질문을 혼자서 자문자답하는 것이란, 생각보다 더 비참한 것이네요.


넌 절대 여기서 도망칠 수 없어. 넌 분명 다시 돌아오게 될 거야! 아하하하하!’


분명, 그 말대로 였던가 봅니다. 제가 한 건 분명 그저 쓸데없는 발악에 불과했다는 걸, 이제야 뼈가 저리도록 알겠습니다.


......이봐! 진정해! 진정하......으아아아아아악!”


이젠 제 반신이 되어버린 뱀들이 움직이는 것이 제 의지인지, 더스트 님의 의지인지조차도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저 처음부터 똑같았는지도 모르겠군요. 제가 이 뱀이고, 이 뱀은 저의 반신이었을, 단지 그 뿐이었던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아, 뱀들이 사람들을 물어뜯습니다. 피로 얼룩진 이빨들은 아직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인간의 피로 채우려고 듭니다. 탐욕스런 그 갈증은 바닷물 같은 짜고, 쓴 피로는 영원히 채우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살인을 멈추지 않습니다.


이 뱀들은 저들에게 적의가 없습니다. 그저 제 말에 따라, 더스트 님의 말에 따라, 그저 할 일을 할 뿐입니다. 이 아이들을 절개하기 위해 여기까지 와 준 여러분. 당신들도 이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명령에 따라 여기에 온 것이겠지요. 저에 대한 악의로 제 몸을 잘라내려고 한 것이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일부는 선의로 온 것 일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그러나 미안해요.

저는 이제 더 이상, 당신 인간들을 미워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를 의심하고

저를 계속해서 내치며,

마지막까지 저를 포기하셨던 당신들을,

저는 이젠 증오하는 방법 외엔 남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때도, 너는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있을까?’


죄송합니다, 레드데스. 당신이 내게, 우리에게 하신 말씀은 저에게는 과분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눈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제 눈앞에는 이제 저의 죄만이 남았습니다. 피로 젖어 뒤엉켜있는 시체의 눈들과 뱀들이 오로지 제 반응을 보기 위해 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 눈들을 똑바로 바라보는 끝에, 도대체 무엇이 남는다는 말씀입니까?


아니, 어쩌면 이 발소리의 끝에서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볼프! 오셨군요......!”


그러고 보니, 아직 증오스럽지 않은 분이 단 한 분, 남아계셨던가요. 이 분의 신뢰를 계속해서 배신하는 건 이젠 감정도 사라져가는 제게도 아직 고통스럽네요.

그러니, 하다못해.


이 냄새는.......피 냄새잖아? 어떻게 된 거지, 슈브?”


그렇게 당황하지 말아요. 부디 제가 하는 말에 속아주세요.


“......더스트예요. 그가 나타나서......이곳에 있던 의료진을 잔인하게 살해했어요!”


만일 당신이 그대로 속아 넘어가 준다면,


.......막을 수 없었어요. 제 힘으로 더스트에게 대항하는 건 무리였어요......”


“.......”


어쩌면, 딱 한 번이라도, 다시.......


거짓말이로군.”


? 거짓말이라뇨?”


어찌 그런, 당연한 사실을, 그렇게 당연하다는 듯이.


의료진을 살해한 건......더스트가 아니야. 더스트와는 나도 싸워봤어. 너는 모르겠지만 말이지.”


제가 모르는 곳에서, 그 분을 상대하셨다고요? 말도 안 돼요. 거짓말 하는 건 당신이에요.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도대체, 어떻게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거죠?


시체에 이빨자국이 나있군. 이건 더스트의 싸움법이 아니야. 게다가......”


그만둬주세요. 더 이상 제 죄를 입에 담지 말아주세요.


게다가.......? 또 뭐죠......?


책이, 너에게 반응했다.”


결국에는, 또다시 저 책인가요. 처음 볼 때부터 시커먼 것이 불편하기만 했습니다. 마치 저를 꿰뚫어보는 것 같아서. 그 느낌은 아무래도 거짓이 아니었나봅니다.

정말이지, 불쾌한 책입니다.


이 책이 반응을 보이는 경우는 단 하나. 눈앞에 사악한 사념이 존재할 때뿐이야.”


그렇다는 말씀은.


지금까지는 단 한 번도 너한테 반응하지 않았어. 하지만 이제는 널 보며 자꾸 펼쳐지려 하는군.


아아, 그런 건가요.

결국, 저는 망가진 것이 확실하네요.


그러니 대답해 줘, 슈브. 왜 이런 짓을 벌인 거지?”


그렇다면, 준비한 거짓말도 모두 바닥났고, 통하지도 않겠네요. 조금이나마 즐거운 환상을 꿀 수 있었던 건 제가 어리석기 때문. 정말 어리석다고 밖에 말을 못하겠습니다. 몇 번을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려는 건지.


“.......더스트 님이 그러셨어요. 인간 몇 명이랑 당신을 죽이면, 저를 원래 모습으로 돌려주시겠다고요. 그리고 다시 군단의 일원으로 받아주시겠다고도 하셨고요.”


그래서......네 의지로 사람을 죽였다는 건가?”


, 그랬어요. 하지만 저를 먼저 죽이려고 했던 건 인간들이에요. 제 몸을 반 토막 내는 것도 모자라서, 영원히 감옥 속에 가두려고 했잖아요?”


그 모든 것을 껴안기에는, 제가 너무 약했습니다. 분명 결단은 내렸을 텐데, 전 결국 겁쟁이에 불과했던 겁니다.

더스트에게의 복수?

동족에게의 증오?

아니요. 전 그저 힘이 없었습니다. 온 몸을 바쳐도, 죽어도 좋다고 했을 텐데도, 절망에서 다시 일어날 힘이 없었습니다. 복수를 위해 인간들을 이용하려고 했음에도, 그들의 비정함을 버텨낼 용기가 없었습니다. 이건 단지 그 뿐인 이야기입니다.

전 지금도 그저 무력한 구렁이일 뿐입니다.


“......그 결말에 납득할 수 없었다면, 납득할 수 없다고 내게 한 마디만 했으면 됐어.”


당신 혼자만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어요. 그리고.......이제는 모든 게 늦었죠.”


이제는? 제가 말하고도 어이가 없군요. 처음부터 잘못된 걸, 이제는 이라니. 그 말은 처음에 선택을 잘했으면 좋았을 거라는 것 같잖아요? 어쩜 이렇게 말도 안 돼는 단어선택인지.


더스트 님이 당신을 죽이기 위한 힘을 주셨어요. 하지만 이 힘이 몸에 정착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더군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곧 당신을 죽이러 갈 테니.

사과는.......당신을 죽이는 그 순간에 하겠어요.”


“.......나도 그렇게 하지.”


그래, 이걸로 모든 것이 된 겁니다. 저는 차원종이고, 당신은 클로저. 애초부터 이렇게 될 것이었던 걸, 억지로 비틀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당신의 피와, 다른 인간들의 피와, 동족들의 피를 제물로 바쳐 여기까지 기어왔습니다.

그 모든 것에 의미는 없었는데.

 

 

 

“.......약속대로 사과를 하겠어. 미안해, 슈브. 널 죽여서.”


울지 말아요, 아름다운 머리칼의 클로저.


당신은 비록 그런 쓸쓸한 표정이 어울리는 창백한 사람이지만.

비록 당장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붉은 눈동자는 눈물이 어울리겠지만.


무슨 헛소리야? 이미 받아줬다고. 우리는.......말이지.’


그 때 살짝 감은 눈. 입가에 부드럽게 걸어 올린 그 미소. 그것조차도 수줍게 숨기는 그 반짝이는 머리칼. 그 모든 것이, 아직까지 절 감싸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슬픈 얼굴 하지 말아요. 이런 배신자를 위해서 흘릴 정도로 그 눈물은 값싸지 않습니다. 그 눈물은 부디 다른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서 남겨두시길.


고마워요, 볼프. 절 막아주셔서. 이걸로 겨우 카이거 님을 만나뵐 수 있겠네요.”


카이거 님. 전 당신을 만나러 갑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고결하셨던 당신을, 이런 제가 만나도 되는 걸까요. 전 당신이 마지막까지 주었던 배려를 받아도 되는 건지, 더 이상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도 하다못해, 살아있는 이 사람에게 안식을 빌어주는 것 정도는 이런 저라도 할 수 있겠지요.


안녕, 볼프. 휴가......꼭 가시길 빌게요.”


“......그쪽이야말로 편히 쉬라고. 이제......다 끝났으니까.”


정말, 마지막까지.......남만......생각하는.....................




----------------------------------------------------------------------------


안녕하세요, Closenea입니다. 뷰오스 쓰다가 볼프강 스토리 보고 멘탈이 나가서.....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 글을 다 쓰고 난 뒤였습니다. 게임이라는 한계때문인지, 슈브의 감정묘사가 너무 모자란 것 같아 좀 아쉬워서 쓰게 됐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잘 쓴다는 건 아니구요. 오히려 감정이입하기 어렵게 썼는지도 모르겠습니다.......스크립트를 복붙한 것도 많아서 실망이실 분들도 많으실 듯 하구요.

그럼에도, 재밌게 보셨으면 좋겠네요.


2024-10-24 23:16:41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