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유리/유리세하] 어서 깨어나줘
루이벨라 2017-07-31 10
※ 네틱세하 x 암광유리
※ 애더남매 말투 처음 써요.
"정말 따분하지 않아? 애쉬?"
"그러게 말이야, 더스트. 이렇게 따분한 적은 없었는데 말이지."
"하암...요새는 가지고 놀만한 인형이 없단 말이야. 아, 하나 있긴 하지."
이름 없는 군단의 참모장, 애쉬와 더스트는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 두 남매는 여러모로 많이 심심하던 차였다. 그도 그럴것이 인간계에 내려가 재밌는 일을 치른지도 오래였고, 그렇다고 다른 지역의 군단장들과도 커다란 마찰이 없었다. 한마디로 외부차원과 내부차원이 모두 평화로운 시기였다. 하지만 이 두 남매는 그 평화를 세상에서 제일 싫어했다.
애쉬는 자신의 누나가 말하는 '가지고 놀만한 인형 하나' 가 무엇인지 아는 눈치였다.
"그 하나라면 설마."
"설마가 맞는 대답이야, 애쉬! 하아...정말 가지고 놀면 재밌을 거 같지 않아? 깨어나기만 한다면 영원히 질리지 않을 거 같은 인형이야!"
"...누나라면 그렇겠지만 나는 전혀 그렇지 않을 거 같은데."
"헤헷! 그러면 나 혼자 가지고 놀지 뭐. 독점했다고 나중에 뭐라고 하기 없기야~ 알았지?"
그렇게 두 남매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피우고 있을 때, 제3자가 난입했다. 차가운, 그리고 음산한 목소리를 가진 자였다.
"그 인형이라는 거, 나도 뭔지 궁금한데?"
"...!"
"...!"
그리고 두 남매는 그 제3자의 등장에 매우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언제나 마이페이스인 이 두 남매가 이렇게 놀라워하는 건 굉장히 드물기 때문이었다. 더스트는 최대한 당황한 눈치가 안 보이도록 평소처럼 말을 걸었다.
"어머, 어, 언제 왔었어?!"
"정확히 말하면 '가지고 놀만한 인형' 이라는 부분부터."
"그럼 처음부터 있었다는 거였잖아! 있었으면 말을 하지."
"왜? 내가 들으면 안되는 대화 중이었던 거야?"
정곡이었다. 더스트는 입을 다물었다. 제3자는 더스트를 향해 노려보며 경고 비스무리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참모장, 내가 말했을텐데? 감히 내 것에 손을 대면..."
"아, 안다고! 노, 농담도 못해?!"
"농담도 어느 정도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하는 것이지. 그렇다는 건 평소에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지."
"어머, 제가 감히 군단장님의 인형을 탐하다니요! 그런 당치도 않는 소리를 하시네요!"
인형. 그 단어 한마디에 더스트가 군단장이라고 부른 자의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아주 마음에 안 든다는 뜻이었다. 애쉬는 이제부터 그닥 좋은 일이 일어날 거 같지 않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스윽- 군단장은 바로 더스트의 목에 세검을 가져가댔다. 더스트는 이런 군단장의 태도가 매우 불쾌하다는 투였다. 더스트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더 날카롭게 한옥타브 높아져있었다.
"너, 지금 뭐하는 거야?"
"그리고 네가 감히 인형이라고 함부로 부를 수 있는 사람도 아니야. 애초에 인형이 아니기도 하고."
"인형이 아니라고?! 사람, 인간이라고?! 그런 껍데기인 상황에서, 인형인 게 당연한 게 아니라?!"
"너희들의 한순간의 유희 정도로 생각하지 않아주었으면 좋겠는데?!"
가지고 놀다가 고장나면 망설임 없이 버릴 인형. 군단장은 애쉬와 더스트의 그런 만행을 몇번이나 보았다. 그렇기에 화가 났다.
...어떻게 세하를, 그딴 식에 비유를 할 수가 있는거지? 가지고 놀 생각을 할 수가 있는거지?!
분을 참지 못하는 건 서유리뿐만이 아니었다. 더스트도 오늘은 더 이상 물러나지는 않다는 듯이 비장한 투였다. 더스트는 드디어 자신이 감추고 있었던 비장의 카드를 내기로 했다.
바로, 자신의 분수, 지금 서유리의 처지를 다시금 일깨워주는 거였다.
"서유리, 네 분수를 알아야지? 다 죽어가던 걸 기껏해서 살려주고, 힘도 주고, 권력도 준 게 누군데 그래?!"
콕 집어서 말하면 자기들이 그 모든 걸 가능하게 해주었다는 뜻이었다. 지금 서유리가 이름 없는 군단의 군단장으로 있는 것도, 차원종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도 다 애쉬와 더스트 덕분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서유리는 더스트의 기대와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난 그렇다고 너희의 꼭두각시로 살아가겠다고 말한 적은 없어."
"...이게 감히..."
"그렇게 분하다면 덤벼보시지? 하지만 너도 잘 알거야."
지금의 날 만들어준건 너희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날 너희들이 무찌를 수 있다는 건 아니라는 걸. 더스트는 분하다는 표정으로 '흥!' 하며 저 멀리로 가버렸다. 이 두 여자 사이에서 팽팽한 기싸움을 보고 있었던 애쉬는 오랜만에 흥미로운 걸 보았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서유리를 다시금 보게 되었다.
"군단장 서유리. 제법 성격이 있는데?"
"난 분명히 말했어. 군단장이라는 거, 그냥 이름 뿐이어도 좋다고. 그 밖의 것들은 너희들이 가지고 놀아도 좋다고. 하지만..."
"알고 있어."
이세하는 넘** 말라는 거 말이야. 애쉬는 이세하에게 별 다른 감정이 없었기에 서유리의 비위에 걸려드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더스트는 아니었다. 예전부터 계속 이세하에게 관심이 있었던 더스트는 서유리가 이세하를 데리고 온 날부터 매일 저런 타령을 했다.
이세하를 싫어하기도 하고, 그런 자신의 누나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기도 해서 잠자코 있었지만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 지금 더스트의 행동에 애쉬의 마음 한구석이 언짢아진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군단장, 나도 언제까지 이렇게 중립적인 태도를 보일 수가 없다고. 더스트는 일단 내 누나이기도 하고, 네가 하는 짓은 병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릴 뿐이니까."
"그럼 반역이라도 일어난다는 건가. 그리고 그 때는 너희들이 주동자인거고."
"그럴지도 모르지."
"잘됐네. 그렇게 되면..."
그때는 날 죽여주러 와 줘. 확실하게 죽여줘.
이 당부 한마디는, 서유리가 지금의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똑똑히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애쉬는 그런 그녀의 대답에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부탁을 잘 들어주는 녀석도 아니니 그들이 자신의 말대로 해줄리는 없다고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런 푸념을 한 건...그저 이 상황이 너무 싫은 것 뿐이었다. 오랜 시간을 살아가게 된 이 몸이, 인류의 최대의 적이 되어버린 이 현실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깨어나지 않는 잠꾸러기를 마냥 기다리고 있는 자기 자신이.
혼자 앉아있는 왕좌는 외로웠다. 왜 왕좌는 2인이 아니라 1인일까? 가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잠시 자리를 비웠을 뿐이었는데 자신이 앉아있어야할 왕좌에는 누군가가 앉아있었다. 보통이라면 감히 군단장의 자리를 넘본 죄로 바로 즉각처분이 가능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저 왕좌 위에 앉아있는 자를 그 자리에 앉힌 건 서유리 바로 자신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세하야."
누구라도 들으면 금방이라도 마음이 서글퍼질 거 같은 애잔한 목소리로 서유리는 그 사람을 불렀다. 그렇게 애절하게 부르는데 정작 본인은 반응은 없었다.
그럴 수 밖에. 지금 이세하는 모든 기능이 '멈춘' 상태였다. 곱게 감은 눈은 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서유리는 왕좌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팔 거치대 부분에 걸터앉았다. 자고 있는 이세하의 얼굴이 한눈에 내려다보았다. 괜시리 뺨을 쓸어내렸다. 아까 전에 더스트와 한 기싸움의 불안감을 억지로 떨쳐내리려는 듯이.
"...차가워."
어루만진 이세하의 몸은 인간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차가웠다. 기계의 그 차가운 촉감을 닮아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맞는 말이겠지. 그도 그럴게 지금 이세하의 몸 70% 이상은 안드로이드 부품으로 대체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유리는 물론이고 이세하도 삶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그리고 이 둘이 극적으로 '살아있다' 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건...서유리는 애쉬와 더스트의 도움, 그리고 이세하는 유니온의 기술팀의 도움이 있었다.
그렇게 죽은 줄 알았던 이세하가 살아있다는 소식에 서유리는 유니온으로 한달음 달려갔다. 고위급 차원종이라며 막아서는 유니온의 정예요원들을 물리치고 다시 만난 이세하의 경악하기에 매우 충분했다. 정말 살아있는걸까. 기술팀의 말을 언뜻 들었던 결과 사이버네틱 시술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다만 무슨 문제인지 이세하의 의식은 계속 돌아오지 않는 상태였다. 그리고 서유리는 그에 대해 비쥬얼적인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다시 만난 이세하는 이제 인간이라고는 감히 표현할 수 없는 모습으로 있었기 때문이다. 이세하의 모습이긴 했다. 하지만 자신이 알던 이세하라고는 할 수 없는. 그야말로 더스트의 표현 그대로 '인형' 그 자체.
그런 이세하를 외부차원, 자신이 살고 있는 궁전으로 데리고 온 건 충동적이었다. 그 과정에서 유니온의 클로저들과 대립하기는 했지만, 그리고 피를 보기는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자신은 이미 인류의 적인 차원종의 군단장이 되었으니까. 그런 사사로운 것,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궁전으로 데리고 온 이세하는 그 후로도 요지부동이었다. 이세하의 상태가 전혀 나아지지 않자, 서유리의 마음 속에는 이세하를 이렇게 만든 유니온에 대한 분노가 쌓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죽을 위기였다고는 하지만, 이래가지고는 죽은거나 다름 없는, 아니 더한 상태였다.
적어도 세하 너만은 나와 같지 않기를 바랬는데. 너만은 인간인 상태로 남아주길 바랬는데. 난 내 욕심, 주마등으로 스쳐지나간 너의 얼굴로 인해 이리 된거지만, 넌 너의 의사는 하나도 안 들어간 상태로 이렇게 된 걸텐데.
만약 넌 깨어나면 지금의 네 상태를 보고 뭐라고 할까. 그리고 지금의 내 상태를 보고 뭐라고 할까. 원망을 할까, 아니면 혐오를 할까. 궁금하다.
궁금한 것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았지만 당사자는 말이 없었다. 이런 상태에서도 언제나 수다스러운 건 서유리 자신이었다. 둘 다 '인간' 이라고 부를 수 있었던 시기에도 자신이 더 수다스러운 거 같았는데...그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저릿하다.
그래도 이렇게 만났다. 만날 수 있었다. 그거 하나는 유니온에게 감사를 표해야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이외의 것들은 유니온에게 전혀 고마운 건 아니었다.
"...겨우 만났는데."
그리고 보고 싶었는데. 너는 잠에만 취해있구나.
"...언제 일어날거야."
"..."
"이 잠꾸러기."
예전에는 네가 나를 보고 잠꾸러기라고 그렇게 핀잔을 했는데.
"어서 깨어나줘..."
제발.
날 외롭게 하지 말아줘. 이 이상 고독하게 만들지 말아줘.
날 이 이상 비참하게 만들지 말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