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저스 이세계 이야기 5화
firsteve 2017-07-30 3
그로부터 며칠 후....
세하가 이리저리 주변을 살피며 강남 거리로 들어온다.
"생각보단 피해가 없어보이는데....아니면...'겉'만 그런건가?"
터벅터벅 걷던 세하가 잠깐 멈칫하더니 누군가에게 말을 건다.
"총구 내려주시죠...수상한 사람 아니니까요."
"날 눈치챈 시점에서 이미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누구야, 넌. 어떻게 여길 알고 온 거야? 여긴 민간인 통제 구역이야."
"하나씩 물어보시죠...?답 해드릴테니까 총구 좀 치워주시고요."
세하의 말에도 총기가 내려가지 않자 세하가 한숨을 쉬며 말한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검은 양팀 신입멤버 이세하입니다. 관리요원이라는 분한테서 위치를 전달받았고요. 이 정도면 답이 된 것 같은데요?"
세하의 말에 총을 들고 있던 여자가 총구를 내리고 밝은 곳으로 나오며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아하하....미안미안. 갑자기 뭔가 센 느낌이 오더라고....직업상 그럴 때는 문제가 생겨서 확인 할 수 밖에 없거든. 미안해."
"괜찮습니다. 그럴 수도 있으니까요."
세하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여자가 손을 내밀며 말한다.
"그러고보니 아직 내 소개를 안 했네. 난 송은이 경정이야. 잘 부탁해."
"이세하에요. 잘 부탁드릴게요, 송은이 경정님."
"에이....딱딱하게 안 불러도 돼. 그냥 은이 누나라고 불러. 그게 편하니까."
"그럼 그렇게 부를게요, 누나."
세하가 자연스럽게 누나 호칭으로 부르자 은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아유~넌 바로바로 누나라 불러줘서 좋다. 슬비는 아직도 경정님이라고 부르는데."
'걔는 저한테도 아직 존댓말하는데요....'
세하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웃던 그 때, 세하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한다.
세하가 은이에게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자, 핸드폰에서 예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 세하님. 저 슬비에요. 혹시 지금 오고 계신가요? 혹시 장소를 못 찾으셔서 헤메고 계신거라면 제가 모시러 갈까요?"
"괜찮아. 거의 다 왔고, 또 관계자를 만났거든."
"관계자요?"
"송은이 누나를 만났거든. 경정이라는 걸로 봐선 특경대 쪽인 거 같은데 혹시 알아?"
"송은이 경정님을 만나셨어요? 다행이다....그 분이 좀 별나긴 하신데 그래도 좋은 분이에요. 잘 안내해주실 거에요. 그러면 저는 안전구역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래, 좀 있다보자."
세하가 전화를 끊자 은이가 멀뚱멀뚱 세하를 보며 말한다.
"누구야? 여자친구?"
"슬비에요. 누나한테 안내받아서 안전구역으로 오라는데요?"
"슬비가 전화를 했다고? 너한테?"
"네. 그게 이상한 건가요? 저한테는 잘하는데요?"
"세하의 말에 은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배시시 웃으며 말한다.
"그래? 그럼 나한테만 안 하는가보네, 하하하...이제 가 볼까? 기다리고 있다면서?"
은이가 어색하게 웃으며 걸어가자 세하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별 일 아니겠지 하며 은이를 따라 걸어가기 시작한다.
한참을 걷기만 하던 두사람 앞에 사거리가 나타나자, 은이가 손으로 사거리 한 편을 가리키며 말한다.
"저기 보이지? 저쪽이 너희 팀이 유정씨한테 지시를 받는 곳이야."
은이의 말에 세하가 눈을 돌리자, 이제는 익숙해진 얼굴의 4명과 처음보는 1명의 모습이 보인다.
그 순간...
슬비도 세하를 발견하고는 얼굴 한 가득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세하를 향해 손을 흔든다.
"세하님~!여기에요, 여기~"
슬비가 폴짝폴짝 뛰며 세하를 부르자 세하도 눈치를 챘는지 피식 웃으며 은이에게 말한다.
"그럼 전 가봐야겠네요. 슬비가 절 부르는 것 같으니까요. 안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은이 누나."
"에이~뭘 그런 걸 가지고~앞으로 잘 지내보자, 세하야~"
"잘 부탁드려요, 누나. 그럼 전 이만 실례할게요."
세하가 정중하게 은이에게 인사를 하고 검은 양팀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자 은이가 뒤에서 작게 키득거리며 중얼거린다.
"슬비 취향이 저런 쪽이었구나. 참나....그렇게 어른스러운 척하더니 역시 여고생은 여고생인가....저렇게 반듯한 기사 타입을 좋아하는 걸 보니까."
그러더니 은이가 수첩에 빠르게 무언가를 쓰며 중얼거린다.
"이걸로 슬비 놀릴 거리 하나 획득, 히히...."
한 편 이 시각....
세하는 검은 양팀이 모여있는 장소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헤헤...오셨어요?"
"그래. 왔어. 그나저나 왜 이리 들떠 있어? 저번에 보여준 어른스러움은 어디가고?"
"이....이러는 거 안 좋아하시나요? 그냥 저는 세하님이 보이길래 좋아서 그만.....시...싫으시면 다음에는...!"
슬비의 허둥거리는 말에 세하가 웃음을 터트리며 슬비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안 싫어해. 오히려 보기 좋아서 그런 거니까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헤헤...."
슬비가 헤실헤실 웃으며 계속 쫑알거리다가 문득 자신의 옆에서 헛기침을 하고 있는 유정을 생각해내고는 세하에게 황급히 소개를 한다.
"세하님. 이쪽은 저희 팀 관리요원이신 김유정 언니세요. 유정언니. 이쪽은 이세하님이에요."
"반갑습니다. 전화로 인사나눴던 이세하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그렇게 딱딱하게 안 불러도 돼....그냥 편하게 누나라고 불러..."
"그럼 그렇게 부를게요, 누나."
세하가 인사를 마치고 손을 놓자, 유정이 뒤늦게 무언가가 생각났다는 듯이 뒤에 있던 긴 상자를 이리저리 흩어보더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세하에게 넘겨준다.
"이건....옷인가요?"
"응. 검은 양 유니폼. 네가 원하는 대로 팔을 움직이기 편하게 제작했어. 입고 와봐."
유정의 말에 세하가 뒷건물로 들어가 유니폼으로 갈아입더니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내려온다.
"제가 원했던 것보다 더 좋은 것 같아요. 검 꽂을 곳도 만족스럽고요."
세하의 말에 유정이 다행이라는 듯 미소를 짓더니, 이번엔 상자에서 검 2자루를 꺼낸다.
그 모습에 세하가 미안하다는 듯 유정에게 말한다.
"죄송해요. 괜히 두 자루나 달라고해서...."
"아니야. 맨날 폐차장에서 버스 부르는 애도 있는데."
"예? 그게 누구...."
세하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슬비가 세하의 옷깃을 잡으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저에요, 세하님.....그러는 사람...."
슬비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말하자 세하가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말하기 시작한다.
"그게 너였어?네 능력은 염동력이잖아. 설마 너....소환도 가능한 거야?"
"버...버스를 소환해서 그대로 깔아뭉개 폭파시키는 게 제 기술인데....그걸 멀쩡히 돌아다니는 버스로 할 순 없으니까 그래서.....유니온에서 버리는 버스들이 있는 곳에서 가져다 쓰라고 해서...."
슬비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자 세하가 머리를 벅벅 긁다가 슬비와 눈을 맞추더니 한참을 빤히 그녀를 바라본다.
그러더니 슬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건다.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 놀리려는 의도는 아니었어. 다만, 소환은 힘든 분야 중 하나라고 했는데 할 줄 안다고 해서 놀랐을 뿐이야."
"진짜...요?무식하다고 놀리신 거 아니죠?"
"당연하지. 내가 왜 놀려? 난 놀림 받아봐서 남 안 놀려."
세하의 말에 슬비가 촉촉한 눈으로 세하를 바라보자 세하가 싱긋 웃으며 슬비의 머리를 헝클어트리고 일어나더니 유정을 보며 말한다.
"그나저나 누나. 오는 길에 좀 살펴봤는데....여기 생각보다 피해가 적네요?"
"후우....피해야 우리가 최대한 빨리 대처를 했으니 적었지....문제는 위상변곡률에 이상이 없는데도 나타나는 차원종들이지..."
"해봤자 나오는 곳은 역삼 골목길이나 신논현역 쪽 아니에요? 자료에는 그렇게 써있던데요."
"그랬으면 좋겠는데.....정상적으로, 지금까지 안 나오던 곳에서도 차원종들이 나오니 미치겠다는 거지..."
유정이 한숨을 쉬며 차트를 보다가 갑자기 울리는 전화에 서둘러 전화를 받는다.
"네. 김유정입....네? 역삼 골목길에 또요?!알겠어요. 바로 지원 보낼게요!"
유정이 전화를 끊자 세하가 유정을 보며 말한다.
"역삼 골목길에 차원종 출현인가요..."
"응. 하필이면 말렉으로 인해 전력의 공백이 생긴 이 시점에...."
유정의 말에 세하가 손목에 끼고 있던 시계 모양의 기계를 꾹꾹 누르더니 유정에게 말한다.
"제가 갈게요, 누나. 위치 정보 좀 전송해주세요."
"하...하지만 세하야! 너 오늘이 실전 투입이잖아. 괜찮겠어? 아무리 네가 그 사람의 아들이라고 해도...."
"괜찮아요. 어차피 저, 차원종들이랑 죽어라 싸운 적 있어서 괜찮거든요. 그리고 이건....엄마 아들이기 이전에 제가 원한 거에요. 서포트 부탁드릴게요, 누나."
세하의 말에 유정이 출입증과 인이어를 건네며 말한다.
"이거 가지고 가. 서포트는 이 인이어로 해줄게. 출입증 쓰는 법은 알지?"
유정의 말에 세하가 고개를 끄덕이고 작전 통제기에 자신의 출입증을 찍고 날아가자 슬비가 입술을 꼭 깨물며 중얼거린다.
"다치지 말고 돌아오세요, 세하님..."
잠시후
역삼 골목길로 들어온 세하가 출입증을 위상력 억제기에 찍자 세하의 출입을 거부하던 공간이 그를 받아들인다.
"호오...신기하네....자료로 보던 거랑은 또 느낌이 색다른데...?"
세하가 신기해하며 두리번 거리다가 자신을 보며 으르렁 거리는 트룹들과 스케빈저들의 모습에 검을 뽑으며 담담히 뱉는다.
"그렇게 으르렁 거리지마. 피차, 얼굴 보기 싫은 건 마찬가지니까."
세하의 말에 차원종들이 더욱 사납게 으르렁거리자 인이너를 가볍게 누르며 말한다.
"누나. 차원종과 조우했어요. 이제 한 판 붙어도 되죠?"
"그래. 역삼 골목길을 청소해줘."
"수신 완료."
세하가 인이어에서 손을 떼더니 차원종들을 향해 검을 겨누며 말한다.
"빨리 덤벼. 나 시간 없어."
세하의 도발에 차원종들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자 세하도 앞으로 달리며 검을 휘두른다.
스케빈저들이 괴성을 지르며 연계공격을 하자 세하가 가볍게 응수하며 분석하기 시작한다.
'일격일격의 공격은 약해....하지만 이런 물량공세라면 귀찮아지겠는데....역시....각개격파가 답인가...'
그러더니 검을 강하게 튕겨 틈을 만들더니 가볍게 중얼거린다.
"[질풍염]"
검의 궤적이 스케빈저들의 앞을 스쳐가자 앞 줄에 있던 스케빈저들이 베인 채 사라지고, 그 뒤의 차원종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한다.
그 모습에 세하가 차가운 눈빛을 빛내며 흩어진 스케빈저들을 향해 검을 휘두르며 베기 시작한다.
보는 사람이 무서울 정도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급소를 베며 응수하는 세하의 움직임에, 슬비가 경악한 듯 팔을 부비며 중얼거린다.
"우...와....어...어떻게...저렇게 정확하게 급소만 노리면서 피할 수 있는 거죠? 이 정도면 거의....당장이라도 정식 요원이 되어도 부족함이 없는 실력인데...?"
"그러게....그런데....어째서 세하한테....훈련생이라는 직급을.....?"
두 사람이 세하의 상태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 그 시각, 세하는 역삼 골목길 제 2구역까지 쓸어버린 뒤 숨을 고르고 있다.
"후아....생각보다 많이 나오네....이렇게까지 많이 나올거라고는 예상 못 했는데....진짜....뭔가 있어...이 숫자..."
세하가 뒤를 한번 쓱 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일단은....다 쓸고 나서 고민하자. 아직은 남아있는 녀석들이 있으니까."
세하가 검을 집어넣고 사이킥 무브로 날아오르더니 이내 다음 위치를 확인하고는 곧바로 가볍게 착지한다.
"우오오!!!!"
"오오오오!!!"
도착한 세하가 밑에 있는 트룹 3마리의 모습을 보고는 살짝 한숨을 쉬며 중얼거린다.
"하필이면 트룹들이냐....힘 좋은 녀석들은 튕기기 힘든데 말이지...."
그럼에도 해야 할 일이라는 듯 검을 뽑고 밑을 쓱 보더니 그대로 트룹의 급소를 위에서 내려그어버리며 내려간다.
그 공격에 남은 두 마리의 트룹들이 사태를 인지하고는 위에서 거대한 망치를 휘두른다.
자세도 채 잡지 못한 채 날아온 공격에 세하가 망치를 향해 강하게 검을 휘둘러 거리를 벌리자, 이번엔 부메랑을 든 트룹이 세하를 향해 부메랑을 날리기 시작한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는 부메랑에 세하가 서둘러 튕겨내지만 뒤에 날아온 부메랑이 얼굴을 살짝 스치고 간다.
그 느낌에 세하가 검을 땅에 끌며 달리더니 앞에서 달려오는 트룹들을 향해 그대로 베어올린다.
그러자 베어올린 검격의 뒤로 불꽃이 치솟아오르더니 앞에서 달려오던 트룹들을 태워버린다.
"휴우...일단 해결인가....더 이상 차원종은 없어보이는데...."
세하가 땀으로 축 달라붙은 머리를 쓱 쓸어넘기다가 탐지기에 있는 푸른 점에 인이어를 꾹 누르며 묻는다.
"누나. 탐지기에 푸른 점이 있는데 이건 뭐에요?"
"푸른 점? 그건 민간인 표시인데?"
"민간인이요?"
세하가 탐지기가 나타내는 곳을 확대해 확인하고는, 무너진 건물의 잔해 쪽으로 걸어가며 유정에게 무전을 계속한다.
"뭐지...누나. 푸른 점이 있는 곳에 잔해 밖에 없는데 어떻게 된 거에요? 누나 쪽에도 그렇게 나와요?"
"잠깐만 있어봐......응. 거기인데?"
세하가 갸웃거리며 옥상파편을 보다가 무언가가 떠올랐는 지 다급하게 말한다.
"누나! 점 좌표, x축,y축, z축 다 불러주세요!!"
"에?.....아?!"
유정이 멍하게 있다가 그제서야 이해했는지 서둘러 좌표를 확인하고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한다.
"파편 안이야!! 파편 안에 깔려버린 것 같아!!"
"그럴 줄 알았어요! 일단 구조합니다!"
세하가 위에 있는 파편들을 들어던지며 치우다가 밑에 뾰족 튀어나와있는 작은 손에 황급히 파편을 치우고는 유정에게 보고한다.
"누나!! 어린 아이 한 명 구조했어요. 복귀 할....!"
세하가 돌아가려는 순간, 세하의 눈 앞에 커다란 차원문이 생기더니 그 안에서 붉은 색의 거대한 트룹이 나타난다.
"저건...트룹대장이잖아? 타이밍 한 번 멋지네...."
세하가 황급히 인이어에 대고 보고를 하자 유정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세하야! 지금 그 쪽으로 슬비를 보낼테니까 조금만 버텨!"
유정의 말에 세하가 구조한 어린아이를 안전한 곳에 내려놓더니 이내 검을 뽑아들고는 트룹대장을 향해 검을 겨눈다.
'지금 내 평균적인 실력으로는 잡을 수 있는 한계는 저 녀석일텐데....후우....첫 임무부터 난이도가 너무 높잖아....'
그러면서도 이 상황이 자신에게는 기회라는 듯 세하가 자세를 잡더니 트룹대장을 향해 말한다.
"덤벼, 불고기."
세하의 도발에 트룹대장이 무기를 휘두르며 다가오자 세하가 그에 맞춰 검을 휘둘러 막아낸다.
다른 트룹들과 달리 꽤나 빠르고 무기에 국한되지 않은 다채로운 공격에 세하가 막으면서도 침착하게 틈을 찾기 시작한다.
이윽고 기회를 찾은 세하가 비어있는 옆구리를 향해 검격을 휘두르지만 두꺼운 껍질에 검격이 얕게 스치고 들어간다.
'피부가 두꺼워서 얕게 베였어....칫....절호의 기회였는데...'
그 순간....
트룹대장이 큰 포효를 지르며 세하를 날려버리더니 이내 주변에 작은 차원문을 생성해 스캐빈저 주술사들을 소환한다.
그 모습에 세하가 입술을 꽉 물더니 트룹대장을 버리고 주술사들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트룹대장이든 주술사든 상관없지만 이쪽은.....민간인도 있다고!!!'
세하가 이렇게 생각하며 자신을 향해 적의를 드러내고 있는 주술사들을 향해 달려가 검을 휘두르자 미처 반응하지 못한 몇 마리는 검에 쓰러지지만, 반응한 몇 마리는 사방으로 흩어져 불덩이들을 날리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불덩이들을 이리저리 피하며 주술사들을 제거하던 세하가 자신의 뒤로 향해 날아가는 불덩이를 보고는 황급히 불덩이를 향해 달려간다.
불덩이가 날아가는 곳의 끝에 있는 것은....아까 전에 세하가 구한 어린아이다.
있는 힘껏 어린아이를 향해 뛰어간 세하가 어린아이를 안고 불덩이를 맞자 그 폭발의 여파로 세하의 몸이 붕 떠오른다.
그 순간...
지금껏 눈치를 보고 있던 트룹대장이 떠오른 세하의 몸을 향해 그대로 돌진해온다.
'아차...!이런 **....이 자세에서는...!'
회피불능의 자세에서 박치기에 공격을 허용한 세하가 벽에 부딪히고 땅으로 떨어지자 트룹대장과 주술사들이 포효하기 시작한다.
'아이는 다행히도 무사해....내 몸도 다행히 닿기 직전에 위상력으로 강화를 해서 큰 문제는 없지만....이대로 가다간 아이가 언젠가는 다치고 말아....최대한 아이한테 피해가 안 가게 해야하는데....'
세하가 이렇게 생각하며 아이를 뒤로 옮겨놓자, 주술사가 눈빛을 빛내며 자신의 옆에 스캐빈저들을 소환한다.
그 모습에 세하가 입술을 꽉 물더니 검을 전부 납도하고는 그 중 한 검의 손잡이에 손을 얹으며 생각한다.
' [그걸]....한 번 써볼까....아직 내 몸으로는 불가능할 지도 모르지만....'
세하가 이렇게 생각하며 검을 쥔 손에 힘을 주려는 순간....
"세하님!!!!!!!!!!!!!!!!!!"
하늘에서 누군가가 내려와 세하 앞에 착지한다.
"타이밍 좋네, 너...."
"하아...하아....진짜 빨리 날아온 거에요...괜찮으세요?"
"그렇게 큰 충격은 아니야. 저것들이 문제지...."
세하의 말에 슬비가 앞을 보더니, 작은 주먹을 꼭 쥐며 중얼거린다.
"저것들이...감히 세하님한테 공격을 했다는 거죠? 감히 누구한테....."
슬비가 손에서 염동력 구체를 날리자 스캐빈저처럼 가벼운 차원종들은 떠오르고 트룹들은 살짝씩 끌려오기 시작한다.
그 모습에 슬비가 세하를 향해 말한다.
"세하님. 아까 궁금하다고 하셨죠, 제 결전기인 소환기...지금 보여드릴게요. 제가 만든 저만의 결전기를."
그러더니 둥그렇게 뭉쳐있는 차원종들의 머리 위에 소환진 같은 걸 펼치더니 팔을 위에서 밑으로 휘두르며 말한다.
"버스폭격이다!!!!"
슬비의 외침에 거대한 버스가, 문자 그대로, 차원종들 머리 위로 떨어지더니, 그대로 깔아뭉개버린다.
"쿠오오...."
트룹대장이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깔린 버스 밑에서 나오려하자 슬비가 버스에 걸려있는 위상력을 폭주시켜 폭파시킨다.
엔진의 폭발력과 슬비의 위상력이 더해진 폭발에 트룹대장이 뿔과 무기를 남긴 채 재로 사라지자 세하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며 생각한다.
'외...외견과는 다르게 상당히 터프하네....까불다간 잘못하면 골로 가겠는데....'
세하가 이렇게 생각하며 슬비에게 다가가려하자, 슬비의 몸이 휘청거린다.
그 모습에 세하가 서둘러 달려가 그녀를 받치자, 슬비가 민망하다듯 웃으며 말한다.
"고맙습니다, 세하님...."
"고맙긴....근데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왜...?"
"에헤헤....조금...무리했나봐요.....기술도 기술인데가 오는 동안에 체력을 너무 소모했나봐요...."
슬비의 힘 없는 대답에 세하가 한숨을 쉬며, 그녀를 똑바로 세우지만 보기에도 많이 떨리고 있는 슬비의 몸 상태에, 결국 인이어 무전을 한다.
"누나. 특경대 분들 곧 도착하죠?"
"응. 거의 다 왔을거야. 지금쯤이면 너희 쪽에서도 보일텐데?"
유정의 말에 세하가 밖을 보고는 아는 얼굴이 다가오는 걸 보고는 유정에게 왔다고 보고한 뒤 손을 흔들기 시작한다.
그 손짓에 송은이가 특경대와 함께 후다닥 달려오더니 아이를 들것에 실어보낸 뒤 두 사람에게 다가온다.
"괜찮아, 둘 다?"
"전 괜찮아요. 아이의 상태는요?"
"음....일단 살짝 깔렸던 거라 골절이나 타박상 같은 건 피할 수 없겠지만 생명에 지장은 없을 거래."
은이의 말에 세하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은이에게 차량에 남는 자리가 있냐고 묻는다.
"엥? 남는 자리? 남는 자리 없는데....우리 애들도 꽉꽉 끼어서 왔어...근데 왜?"
"자리 있으면 슬비도 같이 태워 보내려고 했는데 안되겠네요..."
그러더니 트룹맹장의 잔해인 뿔과 도끼를 주워들고 은이에게 넘겨주며 말한다.
"이거 저희 안전구역에 있는 벌처스 사람한테 주시면 되요. 이런 잔해 그 쪽에서 비싸게 팔리니까요."
"그럼 너는?"
"전 슬비 데리고 복귀하려고요. 좀 있다 봐요."
세하가 말을 마치고 얌전히 앉아있는 슬비의 옆으로 가더니, 이내 그녀를 번쩍 들어올리자 슬비가 새빨갛게 얼굴을 물들인 채 버둥거린다.
"세...세하님!내...내려주세요!!저 그 정도로 환자 아니에요!!!"
"시끄러. 가만히 서 있는데도 다리가 떨리는 데 환자가 아니긴 뭐가 아니야."
세하가 살짝 핀잔을 주자 슬비가 뭐라 하려다가 세하의 갑작스러운 출발에 세하의 목을 꽉 끌어안으며 입을 다문다.
생각보다 빠른 속도에 슬비가 감았던 눈을 살짝 뜨며 세하에게 묻는다.
"무...무겁진 않으세요? 요새 근육량을 좀 늘리려고 먹어대서 좀 무거울 수도 있는데...."
"가볍기만 한데, 뭘....더 쪄도 돼. 안쓰럽다."
세하의 말에 슬비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한다.
"거짓말 하지 마세요. 솔직히 무거우시죠?"
"내가 운동할 때 몇 kg까지 드는 지 알면 무겁냐는 말 안 나올걸."
세하의 말에 슬비가 궁금하다는 눈빛을 비치자 세하가 피식 웃으며 답한다.
"연습용 검 무게만 각각 8kg에다가, 근력운동 삼아 하는 데드 리프트가 90kg야. 내 무게 이상도 드는데, 가벼운 널 못 들겠냐...."
"보...보기보단 힘이 세시네요, 세하님....아...아니 그게...나...나쁜 뜻이 아니라....그게....세하님 이미지가 공부만 할 것 처럼 생긴 사람인지라....그래서 보기보다 힘이 세다고 한거에요...그...그러니까 나쁘게 받아들이지 말아주세요."
슬비의 말에 세하가 피식 웃으며 슬비에게 말한다.
"왜 이렇게 쩔쩔매냐, 슬비야? 난 전혀 그런 뜻으로 안 받아들였는데?"
"다....다행이다....점수 잃을 뻔 했...합!!!"
슬비가 자신도 모르게 본심이 튀어나오자 황급히 입을 닫고 세하를 **만, 세하는 도착할 장소 생각에 신경도 안 쓴다.
이윽고, 검은 양팀이 모여있는 강남 cgv 안전구역에 도착한 세하가 슬비를 내려준다.
"걸을 수 있겠어?걷기 힘들면 집까지 데려다주고."
"거...걸을 수 있어요!!!이제 힘도 다 돌아왔어요, 저!!"
슬비가 방방 뛰며 말하자 세하가 슬비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유정에게 다가가 방금 전까지의 상황을 보고한다.
그 보고에 유정이 한숨을 쉬며 차트를 톡톡친다.
"대체 이유가 뭘까...?위상변곡률에 전혀 이상이 없는데, 차원종이, 그것도 트룹대장 같은 B급 차원종들이 나타날 줄이야...대체...왜?"
유정의 말에 세하가 가만히 서서 곰곰히 생각하다가 조용히 중얼거린다.
"....설마...소환 능력자라도 있는 건 아닐까요, 저쪽 편에...."
"소환능력자는 그렇게 흔치 않아요, 세하님. 저도 결전기를 쓸 때 잠깐 부르는 데도 많이 힘드는데 차원종 같은 걸 소환하는 것에는 더 힘들 거에요. 그것도 위상변곡률이나 위상력에 영향을 끼치지 않고는 불가능하고요."
"그리고 설령 소환능력자의 소행이라고해도, 적어도 그 한명의 위상력은 드러나야해. 하지만 그런 위상력 반응은 없어. 마치...갑자기 나타는 것처럼....."
유정의 말에 두 사람이 끙끙거리며 고민을 계속하다가 결국 좀 더 정밀한 결과가 나타나면 고민하기로 한 뒤 유정과 헤어진다.
"세하님, 출출하지 않으세요?저기 포장마차가 있는데 드실래요? 제가 살게요."
"먹는 건 찬성. 네가 사는 건 반대."
"왜요? 절 데리고 여기까지 오신다고 고생하셨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살게요."
"아까 내가 위험할 때, 날 구하러 와 줬으니까 내가 살 거야. 반론은 안 받아."
세하와 슬비가 티격태격하며 포장마차로 들어오자, 후드를 뒤집어 쓴 여자가 두 사람을 반긴다.
"어서오세.....어라? 슬비네? 어서와. 오늘은 왠 남자친구를 데리고 왔어?"
"나...남자친구?!"
슬비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당황한 표정을 짓자, 세하가 슬비를 보며 아는 사람이냐 묻는다.
"아...저희가 처음왔을 때부터 이용했던 가게라서 언니랑 좀 아는 사이랄까요...."
"반가워, 슬비 남자친구. 난 소영이라고 해. 넌 이름이?"
"이세하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세하가 싱긋 웃으며 말하자 소영도 사람 좋은 미소를 짓다가 슬비를 묻는다.
"뭐야~안 그런 척 하더니, 슬비 너도 남자친구를 만들었잖아? 언제부터 사귄 거야?"
"어...언니! 우...우리 그런 사이 아니에요!"
"어머? '우리' 사이라고 하면서 아니라고?"
소영이 짖궃은 미소를 지으며 슬비를 놀려대자 세하가 조용히 말한다.
"솔직히 슬비가 아깝지 않나요?"
".....에?흐에에에?!"
슬비의 머리에서 김이 피어오르더니 이내 이상한 소리를 내며 고개를 숙인다.
그 모습에 소영이 귀엽다는 표정을 지으며 슬비를 바라보다가 세하에게 시선을 돌리며 질문한다.
"갑자기 슬비가 데려온 걸로 봐선 진짜 남자친구는 아닌 것 같고...혹시 네가 슬비가 최근 들어 그렇게 많이 언급하던 왕자님이니?"
"왕자님 소리 들을 만큼 뭘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요...."
"뭐야....슬비한테 아무것도 못 들은 거야?"
소영의 말에 세하가 아무것도 감이 안 잡힌다는 표정을 짓자, 소영이 배시시 웃으며 말한다.
"그럼 말 안 해줘야지~그게 얼마나 슬비한테 소중한 비밀인데~"
"뭐....그런 비밀이라면 굳이 캐물을 필요는 없겠죠."
세하가 피식 미소를 짓더니 떡볶이와 오뎅을 주문하고는 포장마차 앞에 있는 의자에 앉는다.
그 소리에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슬비가 세하 옆에 조심스레 자리하더니 연신 손부채질을 하며 세하를 흘긋흘긋 바라본다.
이윽고, 두 사람 앞에 떡볶이와 오뎅이 놓여지자, 세하가 센스 있게 티슈를 꺼내 슬비 앞에 깔아주고는 그 위에 가지런히 접시와 젓가락을 놓아둔다.
"아....제가 해도 되는데...고맙습니다, 세하님...."
"뭘 이런 걸 가지고....빨리 먹자, 출출하다."
세하가 약간은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떡볶이를 먹기 시작핮, 슬비도 따라서 앞에 놓여진 오뎅을 먹기 시작한다.
'내가 너무 오버했나...그래도 나름 첫 인상이라서 매너있게 하려고 한 건데....'
세하가 이런 생각을 하며 떡볶이를 먹는 그 때, 슬비도 오뎅을 먹으면서 흘긋흘긋 세하를 본다.
'우으....아...아까 전 그 말 때문에 계속 신경쓰이잖아....세...세하님 진심으로 하신 말은....아니시겠지? 나...나 같은 애한테 세하님이 아까운 거지....내가 아까울 리가 없는데....'
슬비가 이런 생각을 하며 세하를 흘긋흘긋 보다가, 문득 세하와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린다.
그 모습에 세하가 피식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한다.
"슬비야. 너 나한테 죄 지은 거 있어? 왜 자꾸 눈을 피해?"
"다...다 세하님 탓이에요!괜히 남 오해할 만한 말이나 하고...."
슬비의 뾰로퉁한 말에 세하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슬비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내가 오해하게 만든 게 있다면 미안해. 하지만 난 오늘 거짓말 한 적 한 번도 없다고."
"그럼 그건 뭔데요? 제가 아깝다는 말은 대체 무슨 의미냐고요!"
"진심으로 한 말이야. 나랑 사귀면 네가 훨씬 아깝다는 거지."
"진심....이세요?"
슬비의 말에 세하가 대답할 필요도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슬비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말 없이 오뎅에 집중한다.
한참을 말없이 오뎅을 먹던 슬비가 문득 무언가 생각 난 게 있는지 고개를 들고 세하에게 묻는다.
"근데요, 세하님. 한 가지 여쭈어 볼 게 있는데요....물어봐도 되죠?"
세하가 물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슬비가 세하 앞에 놓인 세 접시를 보며 말한다.
"떡볶이를 좋아하시는 거에요, 아니면...그 때 말하신 편집증 중 하나인가요?"
"떡볶이를 좋아하는 거야. 원래, 아빠랑 나랑 되게 좋아했어. 둘 다 제대로 화 못 내는 타입이다보니까, 매운 거 먹으면서 스트레스 풀곤 했거든."
"죄...죄송해요....그...그런 말 들으려고 꺼낸 게 아닌데..."
"괜찮아, 이 정도는. 딱히 남에게 못 들려 줄 이야기도 아니고."
세하가 괜찮다듯 말하자 슬비가 다행이라는 듯 숨을 내쉬며 다시 먹기 시작한다.
이윽고, 계산을 끝낸 슬비가 먼저 나오자, 세하가 한숨을 쉬며 뒤따라 나온다.
"내가 산다고 했잖아....왜 네가 사..."
"다음에 사주세요, 다음에."
"하아...너도 진짜 나 못지 않게 고집 세구나, 진짜...."
세하가 한숨을 쉬며 뒷머리를 북북 긁적이다가 슬비의 고집을 꺾기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는지 결국 두 손을 들며 말한다.
"오케이,오케이.항복.대신에 확실히 못 박고 가자고. [다음 번]에는 꼭[내]가 사는 걸로."
"네, 그렇게 해요. 그 땐 진짜 군말 안 하고 얻어 먹을게요, 헤헤..."
슬비가 귀엽게 웃으며 말하자 세하가 슬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귀엽네, 웃으니까."
"우으....그런 말....부끄럽다고요오..."
"사실이니까 익숙해지라고. 앞으로 종종 할 거니까."
세하의 말에 슬비가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세하도 미소를 지으며 슬비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는다. 마치....누군가 자기에게 해줬던 것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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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저녁, 저녁 찬거리 및 기타 찬거리를 사기 위해 세하가 장바구니를 실은 카트를 밀며 마트를 돌아다닌다.
"어디보자....내일 엄마 돌아오실 때 드릴 고기랑 오늘 먹을 고기...그리고....야채류랑 마실 거리....."
꼼꼼히 적어온 장 볼 것을 볼펜으로 하나씩 지우며 물건을 집는 세하의 뒤로 누군가가 세하를 부른다.
고개를 돌린 그를 맞이하는 건 다름 아닌 편안한 사복을 입은 정미다.
"뭐야....난 또 누가 날 부르나 했네...."
"흥....내가 불러서 미안하네요. 실망했나봐? 다른 예쁜 여자가 아니라서?"
"그런 거 아니야. 누가 알아보면 귀찮아져서 그런 거야....근데 넌 어떻게 알아본 거야?이 모습일 때 왠만하면 남들은 나라고 눈치 못 채는데?"
세하의 말에 정미가 세하의 모습을 위아래로 보다가 담담하게 말한다.
"어딜 봐도 넌데? 그리고 기억 안 나? 나는 네가 그 모습일 때 날 구해준 적이 있다고."
"아....그랬지, 참...."
"그건 그렇다고 치고....여긴 왠일이야? 모자야 그렇다쳐도 안경은 또 왜 썼고?"
"하나씩 질문해....여기 온 건 당연히 찬거리 사러 온 거고, 안경이랑 모자는 가리려고 한 거고."
"뭘 가리려고 안경까지 끼는 거야? 딱히 가릴 거 없잖아?"
"그런 게 있어...."
세하가 안경을 고쳐쓰며 말하자, 정미가 한참을 뚫어져라 세하를 관찰하다가 이내 한숨을 쉬며 말한다.
"뭐....굳이 캐물을 이유도 없으니까 이쯤 하자."
"더 안 물으려고?"
"묻는다고 대답해줄 것도 아니잖아? 그러면 처음부터 시간낭비 안하게 안 묻는게 낫지."
정미가 어깨를 으쓱하다가, 세하의 손에 든 수첩을 보고는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으며 세하에게 묻는다.
"이거 네 글씨야? 그리고 이것도 네가 다 쓴 거고?"
"응. 장 보러 다닐 때 장 볼 거 미리 써두고 다니거든. 이러면 충동구매도 줄고 편해서 말이지."
"....어째 하는 말이 집안일 많이 한 아줌마 같다?"
"집안일이랑 가계부 쓰는 건 나거든. 도가 텄어."
세하가 야채들을 이리저리 확인하며 신선해보이는 야채를 집어넣고는 리스트의 마지막을 지운다.
"오케이, 장 보기 끝. 넌 다 샀지?"
"다 샀으니까 말 걸었지. 바보 아니야?"
정미가 퉁명스럽게 대꾸하자 세하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그렇네. 내가 바보 같은 질문을 했네. 미안. 계산하러가자."
세하가 앞서 걸어가자 정미가 종종걸음으로 따라가다가 계산대 줄에 이르러서 세하에게 묻는다.
"....이세하."
"응?"
"...넌 속도 없어?아까 내가 한 말 듣고 화났을 거 아니야?"
정미의 말에 세하가 피식 웃음을 짓더니 정미를 보며 말한다.
"뭐...솔직히 기분 안 좋았긴 했는데, 그래도 네 말투가 그러니까 이해해야지."
세하의 말에 정미가 파닥파닥거리며 화를 내다가 세하가 계속 달래듯 말하자 뾰로퉁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문다.
이윽고 계산한 장바구니를 들고 나온 세하가 정미를 보더니 비어 있는 손을 정미에게 내민다.
"....뭐야, 그 손은?"
"달라고. 들어줄게."
"됬어. 내가 들고 갈거야. 애초에 너랑 나랑 가는 길 다르잖아?"
"나 너 데려다주고 갈 건데? 밤길 위험해."
"되...됬거든? 맨날 혼자 다녔고 이 정도는 나도 들고 갈 수 있어."
정미가 종종걸음으로 먼저 걸어가자 세하가 한숨을 쉬고는 정미의 오른 손에 있는 봉투를 집어들고는 걸어간다.
"뭐...뭐하는 거야?! 빨리 줘!"
"싫어. 아버지가 여자한테 무거운 거 들게 하는 거 아니랬어."
"누...누가 여자야?!"
"너. 그래서 들어주는 거야."
세하의 말에 정미가 윽 하고 입을 다물자 세하가 빙그레 웃으며 앞장선다.
이윽고, 두 사람이 가로수가 늘어진 길에 들어서자, 말 없이 따라가던 정미가 말을 건다.
"....세하야, 안 무거워?"
"응? 별로? 운동하는 느낌도 들어서 괜찮은데?"
"허세 부리지마. 솔직히 무겁지?"
"안 무거워. 내 무게 보다 무거운 것도 드는데, 뭘...."
세하의 말에 정미가 또 다시 말이 없어지다가 다시 말을 이어간다.
"....클로저 일은 어때?"
"응? 클로저 일? 그건 왜?"
"아니....오늘 첫 근무라고 학교에서 말했잖아.....예...예의상 물어보는거야!"
"누가 뭐래?뭐...오늘은 딱히 특별한 건 없었어. 차원종 잡으러 가고, 슬비 데리고 온 게 끝이니까."
"이슬비를 데리고 왔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아, 그거? 슬비가 기술 쓰고 탈진했길래 슬비 안고 안전구역으로 복귀했거든."
"이...이슬비를 안고 돌아왔다고? 여자애를?!"
"어....그렇지?"
세하의 말에 정미의 얼굴이 빨개지더니 자신의 팔로 어깨를 감싸며 외친다.
"벼...변 태!!!이슬비 안고 오면서 너 만졌지? 그치?!"
"무...무슨 소리야?!사람 변 태로 몰지 마! 난 결백해!!"
"그럼 맹새코 이슬비를 데리고 오면서 안 만졌고 딴 생각 추호도 안 했다고 말할 수 있어?!"
"맹세해! 나 진짜 그런 생각 한 적 없어!"
세하가 진심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정미도 그제야 언성을 죽인다.
그 순간...
"어...벌써 왔네.....여긴데...."
정미가 아파트 입구를 가리키며 말하자 세하가 아파트를 보며 말한다.
"이야...아파트 예쁘다....놀이터도 있고."
"뭐야....애도 아니고...."
정미의 퉁명스러운 말에 세하가 뭔가 그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나한테는 놀이터가 꽤나 추억의 장소거든....그래서 볼 때마다 좋아."
세하의 말에 정미가 세하의 환경을 떠올리고는 조심스럽게 묻는다.
"....가볼래?"
"어? 너 시간 없는 거 아니었어?"
"어차피 우리 엄마 회식이라서 늦게 와. 밥이야 천천히 먹어도 되고."
"그럼 뭐....사양않고."
세하가 미소를 지으며 놀이터로 향하더니 이내 놀이터를 천천히 둘러본다.
군데군데 흙이 묻어있고 아이들의 낙서가 즐비한 놀이터지만 세하에겐 그저 한없이 그리운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소재다...
이윽고 놀이터를 쭉 둘러보던 세하가 장바구니를 그네 옆 기둥에 세워놓고는 그네에 털썩 주저앉는다.
"하아....좋다....얼마만의 놀이터야..."
"뭐야...어째 진짜 오랜만에 놀이터에 온 듯한 말투다?"
"뭐...그 사건 이후로는 놀이터에는 얼씬도 안했어.....놀아준 건....아버지 뿐이었으니까..."
"...."
"그래도 네 덕분에 오랜만에 놀이터도 와보고 좋네. 고마워, 정미야."
세하가 자신의 옆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정미에게 말하자 정미가 조심스럽게 대꾸한다.
"...가끔씩은 여기 놀이터 와서 쉬어....너희 집은 주택이라서 이런 거 없잖아...."
"뭐....그것도 나쁘진 않겠네. 혼자 있기에도 좋고."
세하가 이렇게 다꾸하고 일어더니 이내 장바구니를 다시 집어들며 말한다.
"휴식 끝. 이제 너희 집 가자. 마지막까지 들어줄게."
세하의 말에 정미가 기둥에서 몸을 떼더니 앞장서서 걸어간다.
이윽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정미네 집에 도착한 세하가 정미의 집 안에 장바구니를 내려주고는 입을 연다.
"자....여기 장바구니. 고생했어. 나 간다. 푹 쉬어."
세하가 돌아서서 가려고 하자 정미가 세하를 불러세운다.
"왜? 안까지 옮겨줘?"
"아...아니....그게 아니라..."
정미가 한참을 입을 달싹거리다가 이내 입을 떼며 말한다.
"너...돌아가면 뭐해?"
"응? 돌아가면 밥 만들고 그거 먹고 책 보다가 자겠지? 어차피 엄마는 내일 늦게 되서야 오시니까."
세하의 말에 정미가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세하에게 말한다.
"그럼.....우리 집에서 밥 먹고 갈래?"
"...어?"
"아니, 뭐....너 혼자 먹으면 심심하잖아....그래서 구원해주는 거야...!영광인 줄 알아!"
"...진짜 같이 먹어도 돼?"
"어. 대신에....허튼 짓 하면 죽여버릴거야....알았지?"
"허튼짓 안 해. 어쨋든...그럼 들어간다?"
세하의 말에 정미가 자리를 비켜주자 세하가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놓고 거실로 들어간다.
"오...예쁜데?"
"뭐가 예뻐...그냥 되는대로 붙여놓은 건데."
정미가 툭 내뱉고는 장바구니에서 재료를 꺼내자 세하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게 밥이야? 다 야채뿐인데?"
"왜? 불만 있어? 지금으로서는 이것 뿐이야. 사 올 때 너를 계산에 안 넣어서."
"그럼 재료가 있으면 다른 것도 먹을 거야?"
"먹지, 당연히....잠깐만 너 설마....요리 하려고?!"
"뭐....같이 먹게 해 준 보답으로 요리 해주려고. 왜?"
"그게 이유면 안해줘도 되거든?"
"그럼 잃어버렸던 길을 다시 찾아준 댓가라고 치자. 이건 되지?"
세하의 말에 정미가 할 말이 없는지 입을 다물다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보며 묻는다.
"너...요리 잘해?"
"사람 먹을 만한 요리는 할 줄 알아. 뭐 좋아하냐? 아니다...애초에 재료부터 확인해야겠다. 잠깐 냉장고 좀 열게."
세하가 냉장고를 열어보고 장바구니에 담긴 걸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이 정도면 왠만한 요리는 되겠다. 좋아...솜씨 좀 발휘해보실까?"
세하가 스트레칭을 하며 주방으로 향하자, 정미가 따라들어오며 말한다.
"진짜 할 줄 아는거야?걱정 되는데...."
"나 요리 좀 해. 우리 엄마가 극도의 요리치라서 내가 다 했어. 예전부터."
세하가 냄비와 프라이팬을 꺼내며 말하자 정미가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다.
"어쨋든, 있는 재료로 한 상 차려볼 건데....혹시 싫어하는 음식 있어?"
"편식 안 해. 맘대로 해. 맛 없으면 안 먹을 거야."
"그럼 어디 실력 발휘 좀 해보실까?"
세하가 본격적으로 이리저리 다니며 요리를 시작하자 정미는 자신의 방에서 편한 실내복으로 갈아입고 주방으로 다시 들어선다.
"도울 거 없어?"
"응? 없어. 가서 쉬고 있어. 다 되면 부를게."
"....진**?그럼 나 안 돕는다."
"응."
세하가 짧게 대꾸하고 다시 요리에 몰두하자 정미가 세하를 보다가 이내 옆에 서며 말한다.
"나도 몇 개 도울게. 아무리 그래도 손님한테 다 시킬 수는 없으니까."
"진짜 괜찮은데...정 그러면 저 겉절이만 비벼줘. 다른 건 다 되어가니까."
세하의 말에 정미가 비닐장갑을 끼고 겉절이를 비비더니, 접시에 예쁘게 담아 식탁으로 가져간다.
이윽고, 요리가 끝난 세하가 완성된 요리들을 가지고 와, 차례대로 식탁 위에 올리자 정미가 놀란 표정으로 세하에게 묻는다.
"뭐야...이거...진짜 네가 만든 거야? 그 짧은 시간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밥 만들고 엄마 깨우고 옷 입고 갈 준비하는 걸 1시간 내에 다 해봐.....속도랑 실력이 광속으로 늘지...."
세하가 수저를 놔주며 자리에 앉자 정미도 덩달아 자리에 앉는다.
"잘 먹겠습니다."
정미가 밥과 함께 식탁에 놓여진 김치찌개를 떠먹더니 작게 탄성을 지르며 말한다.
"와...뭐야?진짜 맛있어!"
"입맛에 맞아서 다행이네. 다른 것도 먹어."
세하가 말하면서 고기 한 점을 정미의 밥 위에 올려주자 정미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말한다.
"이...이런 거 하지마!네가 내 남자친구야?"
"아....싫은가보네....뭐...알았어. 맛있게 먹어."
세하가 머쓱한 미소를 짓고 밥에 집중을 하자, 정미도 한참을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밥을 먹기 시작한다.
잠시후.
설거지까지 다 해주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세하의 모습에 정미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더 있다가도 되는데, 벌써 가?"
"여자애 혼자 있는 집엔 오래 머무는 거 아니야."
"그래도 조금 정도는 괜찮아. 음료수 한 잔 먹고 갈 시간도 안 줄 만큼 매정하진 않아, 난."
정미의 말에도 세하는 미소를 띈 채 고개를 젓고는 일어선다.
"괜찮아. 그건 다음에 마실게. 달아놔. 나 간다."
세하가 문을 열고 나서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자, 정미가 엘리베이터 문을 잡으며 말한다.
".....이세하."
"어?왜? 할 말 있어?"
정미가 한참동안 말을 고르다가 세하를 보며 말한다.
"다...다음번엔 너희 집에서 먹어도 되지?"
"응?"
"우리 집에서 먹었으니까 다음엔 너희 집에서 먹자고!....안돼?"
정미의 말에 세하가 손을 뻗어 정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그래. 다음엔 우리 집에서 먹자. 그 땐 지금보다 맛있는 거 해줄게."
"....약속한거다...?약속 지켜. 알았지?"
정미의 말에 세하가 손을 흔들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자 정미가 말 없이 집 안으로 돌아와 베란다로 향한다.
베란다로 향한 정미가 밑을 내려다보자 세하가 놀이터에서 무언가를 하는지 잠깐 멈췄다가 가고 있다.
"치이....뒤도 안 돌아보고 가네, 나쁜 놈...."
정미가 뾰로퉁한 표정을 짓다가 지잉 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핸드폰이 깜빡거리며 문자가 온 것을 표시하고 있다.
"뭐야....이 시간에 누구야....?"
정미가 가볍게 패턴을 입력하고 문자를 확인하더니 이내 얼굴을 살짝 붉힌다.
'[벚꽃 봉우리가 맺혔어. 다음에 벚꽃 피면 그 때 같이 벚꽃 구경 가자.]'
"....진짜....이세하...넌 나쁜 놈이야.....사람 이렇게 가지고 놀고....정말....나쁜 놈이야."
그러더니 첨부된 사진에 찍힌 작은 벚꽃 봉우리를 확대하며 미소를 짓는다.
"헤헤....빨리 펴라, 벚꽃아....그래야....내가 세하랑 같이 하루종일 있을 명목이 생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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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
작가 firsteve입니다.
요즘 날씨가 덥네요. 곳곳에 수해입으신 분들 많으시던데 여러분들은 괜찮으신가요?
어쩌다보니 이렇게 늦게 글을 올리게 됬습니다.
연재간격도 불규칙한 저 같은 작가한테 관심 가져주시는 분들한테는 매번 감사드려도 모자라네요.
빨리 써보겠습니다.
좀 더 재미있게 써보겠습니다.
여러분과 좀 더 소통하겠습니다.
그렇게해서 더 재밌는 글을 쓰는 작가로 남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firsteve 였습니다.
p.s 다음 글 뭐 쓸지 고민중입니다.
후보1. 이세계 이야기 6화
후보2. 벚꽃 파티 비바체 4화.
후보3. 월하 소나타 에필로그 1화
여러분의 의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