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유리] 모음집 part 01
루이벨라 2017-07-28 12
※ 혼자 단독으로 올리기에는 너무 '짧은' 세하유리 모음집
※ part 01이니 02나 03도 있겠죠?
1. [세하유리] 바라보기
언제나 내 시선의 끝에는 서유리가 있었다.
이렇게 바라보기 시작한 건 오래전 부터 시작되었다. 언제나 시선 끝을 쫓으면 난 무의식적으로 서유리를 보고 있었다. 내가 쳐다볼 때의 서유리는 언제나 다른 모습이었다. 우정미와 수다를 떨고 있다던가, 맛있어 보이는 케이크를 먹으며 행복해한다던가, 친구들에게 둘러쌓이며 활짝 웃고 있는거라던가.
...그것도 아니면...
"이세하, 뭐해?"
"...그냥."
깜짝 놀랐다. 이렇게 가끔씩 멍하니 보고 있노라면 당사자가 다가와서 말을 걸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난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있었다는 투로 이야기를 한다. 계속 널 바라보고 있었다고 한다면 그걸 이상하게 생각할 게 뻔했다. 그러면 내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가버릴까봐, 그럴까봐 일부러 아닌 척을 한다.
이런 내 감정을 아는 건 나 하나라도 족했다. 어차피 다른 사람이 알아도 웃고, 무시하고, 경멸할 뿐이다. 그걸 어렸을 때부터 겪어왔다.
서유리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다시 자신이 있던 위치로 되돌아갔다. 오늘은 책을 읽고 있다. 열중하고 있는 옆모습이 보기 좋았다.
한 번, 딱 한번. 서유리가 우는 걸 본 적이 있었다. 그 때의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만약 다가가면 내가 계속 서유리를 의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들킬 수도 있었는데...그러면 멀어질 수도 있었는데...하지만 그와 동시에 다가가고 싶었다. 위로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애처롭게 우는 거...도저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 이후에 별반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달라진 것이 딱 하나 있다면 서유리가 내 시선을 어느 정도 의식하게 된거 같은 것. 한참 책을 읽는다고 생각했던 서유리와 눈이 마주치자 심장이 딱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서유리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진지해보였다. 마치 작정하기라도 한 듯...그래, 사냥감을 마주친 사자가 사냥감을 딱 물었을 때의 눈빛? 이라고나 할까.
"이제, 그만."
"..."
"그렇게 멀리서 안 바라보면 좋을텐데."
"..."
상처를 받을 뻔 했다. 그 뒷말을 듣지 않고 동아리방을 나섰더라면.
"왜 굳이 멀리서 바라봐?"
"...?"
"왜 죄 지은 것 같이 그러는 거야?"
세하는 아무 잘못 없는데. 서유리가 총총 내 옆으로 다가왔다. 벙쪄있는 내 손을 꼭 잡더니 자신의 얼굴을 내 얼굴 가까이로 들이밀었다. 시선이 마주쳤다. 그렇게 한동안 있노라니, 서유리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봐봐, 이렇게...!"
"..."
"서로 마주보는 것도 좋잖아?!"
"...그러네."
그러게, 이것도 나름 나쁘진 않네. 오히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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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세하유리] 카페라떼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세요."
"그럼 전...아이스 카페라떼요!"
"그럼 전...아이스 카페라떼요!"
더운 요즘, 차가운 거라도 입에 물고 있지 않으면 도저히 버틸 수 없었다. 시원한 카페 안에 들어간 두 사람은 아이스 음료를 시켰다. 세하는 아메리카노를, 유리는 카페라떼를 시켰다. 항상 아메리카노를 시키는 세하가 신기했던 유리가 말했다.
"세하는 아메리카노 어떤 맛으로 먹는거야?"
"커피 맛."
"너무 쓰잖아!"
"...쓴가?"
의외로 세하는 쓴 커피를 잘 마셨다. 달달한 어린 아이 입맛인 유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래도 세하가 '단 거 많이 먹으면 몸에 안 좋다' 라며 몇번 권유한 끝에 카페라떼까지는 마실 수 있었다. 라떼에는 우유가 들어간다지...! 확실히 보통 커피보다는 덜 쓰다. 역시 난 어린 아이 입맛인걸까. 라떼를 맛나게 마시는 유리를 물끄러미 보던 세하가 말했다.
"그러고보니 이런 거 봤는데."
"뭐?"
"선호하는 커피에 따라 사람들 성향이 다르다고."
"...진짜?"
세하는 빨대로 얼음을 휘저으며 커피의 온도를 낮추며 말했다.
"응. 아메리카노나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사람은...커피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고 했던가?"
"그, 그럼 라떼는...!"
"라떼는..."
세하는 무언가 생각났는지 풉, 하고 웃었다. 그 웃음이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왜, 왜 웃는거야..."
"아냐. 그냥. 라떼도 커피를 즐긴다는 사람이었지, 아마."
"에? 그러면 별 차이 없다는거야?"
"굳이 차이를 두자면 라떼 종류는 초심자로 맛으로 즐기는거고, 아메리카노 종류는 커피 마니아라는 느낌일까."
자신은 커피 초심자였던 것이다. 뭐 대충은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아까 전에 들었던 자신은 어린애 입맛, 이라는 범주에서 그렇게 많이 벗어난 사항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 말 없이 쪼르르 라떼를 마시던 유리가 문득 물었다.
"그럼 세하는 처음부터 아메리카노 마셨어?"
"...응?"
"라떼가 초심자들이 마시는거랬잖아! 세하는 처음부터 상급자 코스였어?"
"...표현이 좀..."
귀엽네. 이 뒷말은 차마 하지는 않았다.
유리는 잠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무슨 의지를 잔뜩 굳은 표정을 지었다. 세하는 알았다. 저 표정을 지으면 유리는 뜬금포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걸 결심한 거라고. 그리고 예상은 맞았다.
"응! 결심했어!"
"뭘?"
"나도 이제부터 아메리카노 마셔볼래."
"쓰다고 하지 않았어?"
"그건 그렇지만..."
시무룩한 대답에 모처럼의 결심을 자신이 짓밟은 거 같아 세하는 약간의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건 기우일 뿐. 다시 유리의 밝은 목소리가 세하의 귀에 들렸다.
"나도 라떼를 졸업하면 세하를 좀 더 알 수 있지 않을까?"
"...그건 또 뭐야."
"나 아직도 세하에 대해 모르는 거 많아. 나 아직 세하를 라떼와 같은 깊이로 밖에 알지 못한단 말이야."
"..."
가끔씩 생각하지만 정말 엉뚱하고 사람 가슴 놀라게 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유리는.
뭐, 네가 말하는 그 표현...나한테도 해당이 되는 거 같다. 너도 아직 나한테는 라떼와 같은 존재지.
"...흠, 그럴지도 모르겠네."
"그치? 좋아, 나도 다음에는 아메리카노 도전이다!"
"시럽 빼고?"
"시럽은...으으...그건 좀 봐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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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세하유리] 충전
'...세하잖아?'
유니온 신서울 지부 건물 안에 있던 유리는 잠을 자고 있는 세하를 발견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충전' 중인 세하를 말이다.
몇달 전에 있었던 사고로 인해 세하는 몸의 70% 이상을 안드로이드 부품으로 채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세하는 이렇게 주기적으로 어떤 캡슐 안에 들어가서 충전을 해야만 했다. 충전을 하는 동안의 세하는 눈을 감고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기에 언뜻 보면 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
"..."
'자는 얼굴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하네.'
잔다고 해야하나? 충전 중이긴 했지만 유리의 눈에는 자는 것으로 보였다. 괜시리 볼을 꾹 눌러본다. 신체의 70% 이상이 안드로이드 기계 부품으로 대체되었다고는 하지만 만져지는 피부는 말랑말랑한 인간의 것이었다.
바로 이렇게. 톡 건드리면 쏙 하고 들어가는 뺨과 같은 부분은 그랬다.
'이상하게 누군가가 자고 있으면 괜시리 찔러보고 싶단 말이야. 이렇게...'
톡- 그렇게 유리는 몇 번이나 세하의 볼을 찔러보았다. 눈을 감은 세하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충전 중에는 모든 기능이 **서 아무런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걸까?
그렇게 유리 나름대로의 정리를 짓고 있는데 딱 눈을 뜬 세하와 눈이 마주쳤다. 금안과 적안이 쌍을 이룬 눈동자와 마주치자 유리는 자신이 지금까지 하고 있던 행동이 무엇인지 자각되기 시작했다. 아, 너무 무례한 행동이었던걸까?!
"...아?"
"뭐하는 거야?"
"아, 그, 그게...! 그냥 갑자기 궁금해서 말이야."
"흐응~"
"싫었다면 미안해."
"별로."
세하 본인은 딱히 신경을 쓰지 않는 거 같았다. 그러고 보니 세하가 사이버네틱 수술을 받은 이후로 달라진 점이 하나 더 있었다. 그건 바로 세하의 감정 표현이었다. 안 그래도 없었던 표정이 더 단순화되었고, 목소리 또한 톤이 더 단조로워졌는데...
"...?"
"..."
"세, 세하야?"
"왜, 서유리."
행동은 그에 맞지 않게 예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변했다. 지금과 같이 유리를 뒤에서 백허그를 하고 있다는 게 대표적인 사례였다.
"너, 너무 달라붙진 마..."
"달라붙으면 안되는 이유라도 있어?"
"그, 그게..."
심장이 떨려...이 말을 어떻게 밖으로 내뱉을 수 있을까! 예전에는 유리가 스킨쉽이나 그런 거에 더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반대가 되었다. 유리는 이제야 알았다. 자신이 갑자기 껴안거나 팔짱을 끼면 세하가 왜 그렇게 당황스러운 얼굴을 했는지.
반대 입장이 되니 그때의 세하의 심정을 절실히 알 수 있었다.
"떨려?"
"그, 그런 거 아니야...!"
"얼굴의 온도가 올라갔는데. 부끄러워하는거 아니야?"
"그, 그런 거 아니라니까..."
아, 참고로. 말도 더 직설적이게 변했다. 표정과 목소리는 무(無)에 가까운데 하는 대사나 행동은...사랑꾼 파워 100%가 제대로 충전이 되었다.
"왜 갑자기 이러는데..."
차마 '백허그' 라는 낯간지러운 단어를 말할 수 없었다.
"뭐 어때. 보는 사람도 없는데."
"내가 보고 있잖아!"
"그렇구나."
"그렇구나는 무슨 그렇구나야! 이제 그만..."
"충전 중이야. 방해하면 안돼."
충전 중? 아까 눈을 뜬 시점부터 충전은 다 끝낸 거 아니었어? 이런 유리의 외침이 세하에게는 들린 모양이었다. 변명하듯이 아주 작게, 요즘 세하답지 않게 작게 속삭였다.
"...서유리 충전 중."
"...응?"
"서유리를 충전하는 중."
"..."
이 말을 하고도 세하도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아마도 지금 세하 얼굴은 붉을 수도 있을 거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럴 때는 그냥...그냥 가만히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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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세하유리] 동화
옛날 옛날에 어느 나라에 훌륭한 여왕님이 있었습니다. 여왕님은 탁월한 능력으로 나라를 안정적으로 이끌어갔습니다. 모든 백성들은 여왕님을 존경하고 사랑했습니다.
여왕님에게는 왕자 한명이 있었습니다. 왕자는 늘 성 밖의 마을이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여왕님은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을 성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무슨 사고가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호기심 충만하고 행동파였던 왕자는 어느 날 여왕님 몰래 성 밖 마을로 나갔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왕자는 감탄을 했습니다. 과일가게에서 싱싱한 사과를 사먹기도 하고 꽃가게에서 꽃을 구경하기도 하고 왕자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 왕자의 눈에 한 가게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로 대장간이었죠. 그 대장간 안에서는 자신의 또래로 보이는 소녀 하나가 쇠를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그 광경에 놀란 왕자는 소녀에게 다가갔습니다.
-와, 정말 대단하구나.
-아, 손님 어서 오세요. 무슨 무기를 드릴까요?
-무기?
-대장간에는 당연히 무기를 사러 오는 거 아닌가요?
그러고 보니 대장간 안에는 여러 종류의 무기가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왕자는 신기하게
-이걸 네가 혼자 다 만든거니?
-아니요. 대부분은 아빠 작품이에요. 전 아직 배울 게 많아요.
-그래도 대단하구나.
왕자와 소녀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의외로 소녀와 자신이 말이 잘 통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왕자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해가 지기 시작하자 왕자는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헤어지면서 왕자는 소녀와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 이후로 왕자는 가끔씩 성을 나와 소녀를 만나러 대장간에 갔습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친구가 되어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왕자가 납치가 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소녀는 자신의 친구인 왕자를 구하러 가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소녀는 여정을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 * *
"그리고 그 대장간 소녀가 자신이 만든 무기를 가지고 마물과 싸워서 왕자를 구한다는 스토리야! 어때?!"
"...별로."
"에에, 난 좋다고 생각했는데 세하는 별로야?"
"...조금 그래."
나한테는 동화적인 감수성은 없다고, 서유리...
아니, 이거 동화이기는...하지? 액션물 같은데 그 부분은 넘어가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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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세하유리] 예쁘다
"가끔 생각해."
"무슨 생각?"
"나 예쁘다는 생각!"
"무슨 생각?"
"나 예쁘다는 생각!"
유리의 충격(?)적인 발언에 세하는 멀뚱히 당사자를 쳐다볼 뿐이었다. 반응이 무덤덤하자 유리의 얼굴이 점점 새빨개지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유리는 부끄럽다는 듯 소리를 질렀다.
"부, 부정할 거면 말을 해! 사람 얼굴 그렇게 빤히 ** 말고..."
"...뭐?"
"방금 빤~히 쳐다보았잖아...농담으로 한 말을 그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보면 어떡해...!"
자신이 예쁘다는 말이 농담이었다는 말에 세하는 오히려 유리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그게 왜 농담이야?"
"어?"
"예쁘긴 하지."
몇초간의 침묵.
"..."
"..."
"...?"
"...!!"
그제서야 세하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그리고 유리는 자신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 깨닫기 시작했다. 자각하자마자 둘은 약속이라도 한듯이 일제히 고개를 반대 방향으로 돌렸다. 그런 두 사람의 얼굴은 홍당무처럼 새빨개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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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세하유리] 염색
'염색할 때가 되었나...'
삐죽 나온 원래의 제색의 머리카락을 보며 세하는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눈에 잘 띄는 머리색을 가지고 태어난 게 참 불행인지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위상력의 영향 때문인지 자신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염색물이 빨리 빠지는 편이었다.
'오랜만에 미용실에서 염색을 할까.'
자신이 염색을 해도 되기는 하지만 이상하게 자신이 염색을 하게 되면 염색이 더 빨리 빠졌다. 몇 년동안 염색을 해왔는데도 아직은 서툰 걸로 보아 자신은 이런 쪽으로는 영 소질이 없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세하는 곧장 그 결심을 지웠다. 이 꼴로 미용실에 갔다가는...눈에 띌 게 분명했다. 그건 싫었다.
그냥 근처 가게에서 염색약을 사와서 자신이 직접 염색하는 게 낫겠지...후드를 뒤집어 쓰고 나가며 세하는 자신이 아는 사람을 만나지 않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그 기도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어, 세하다!"
"..."
유리와 마주치고 말았다. 가장 마주치고 싶지 않은, 하지만 그래도 마주치게 된 사람 중에서 그마나 괜찮은 사람과 마주쳤다. 세하는 얼른 후드티로 손을 가져갔다. 유리는 총총, 그야말로 토끼 뛰듯한 걸음으로 세하 앞에 다가왔다.
"별일이네! 이런데서 세하를 보고!"
"그러게."
"그보다 안 더워? 후드는 왜 그렇게 뒤집어 쓰고 있어?"
"...어?"
미처 알지 못했다. 지금 섭씨 30도를 넘어가는 한여름의 대낮이라는 걸. 숨기는 것에만 급급해서 대충 입고 나왔더니 오히려 눈에 뜨이는 꼴이 되었다. 차라리 스포츠 모자를 쓰고 왔던 게 더 나을 뻔했다.
"난 더워서 이렇게 아이스크림까지 먹고 있는데 세하는 안 더운가 보네~"
"...어."
"부럽다. 더위도 안 타고. 난 더위 많이 타거든."
더위를 많이 탄다는 본인의 말처럼 유리는 시원해보이는 옷차림이었다. 그와 반대로 세하는 보기만 해도 쪄죽을 거 같은 옷차림이었다.
"어디 가?"
"...잠깐 가게에."
"왜? 뭐 사러 가?"
"...응."
차마 염색약이라는 말을 하지는 못했다. 염색을 한다는 사실, 아직 팀원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눈색도 원래는 금색이었다는 걸 밝힌 것도 비교적 최근이었다. 여기서 또 염색 이야기까지 하면...
"근데 세하 오늘따라 머리색이 유독 밝아보인다?"
"...그, 그래?"
후드 틈으로 머리카락이 비죽 튀어나온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뿐. 유리는 딱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잘 가고~ 라는 다음에 또 만나자라는 형식의 인사를 하고 제 갈길을 갈 뿐. 세하는 한숨을 쉬었다.
아직 원래 머리색은 보여줄 단계는 아닌 거 같았다. 예전부터 유리를 보아온 세하는 안다. 자신의 머리색과 눈색이 얼마나 튀는지. 그리고 그로 인한 거부감이 들 수 있다는 사실.
'아, 빨리 염색약 사고 돌아가야지...내일 임무 있으니까 그전에는 염색 다 끝내야지.'
한편, 세하와 헤어진 유리는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세하를 만난 건 뜻밖이었다. 그리고 그 세하가 더워보이는 후드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는 것도. 말은 더위를 안 탄다고는 했지만 후드 너머로 보이는 얼굴에는 땀이 흥건했다. 더위 잘 안 탄다는 거 거짓말이겠지?
'그보다 세하 원래 머리색...정말 이쁘다.'
게다가 눈도 토파즈 같은 금안이라니...머리색도 그렇게 이쁘다니 좀 반칙적인 느낌인데? 유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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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세하유리] 웃어봐
"세하는 좀 웃어주면 좋겠는데."
"잘 웃는 편인데."
"잘 웃는 편인데."
세하의 주장은 그랬다. 하지만 반론하는 유리의 주장은 정반대였다.
"그 뚱~한 표정도 웃는거라고 하면 인정해줄게."
"...내가 그렇게 잘 안 웃어?"
"응."
단호한 유리의 대답. 세하는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다. 유리 앞에만 있으면 너무 좋아서 미소가 저절로 나오는데. 저절로 웃게 된다고 생각했는데 유리의 눈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니.
...상당히 쇼크야.
"...쇼크네."
"마치 처음 알았다는 듯이 말하네?"
"당연하지, 난..."
네가 너무 좋아서 저절로 웃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라는 말을 할까 하다가 멈추었다. 이걸 가지고 유리가 '그게 웃는 거였어요?' 라고 명백한 놀림조로 말을 걸거 같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 충격받기는 싫어.
세하는 괜시리 헛기침을 하고서 유리에게 물었다.
"그럼 유리 너는 웃는 게 좋아?"
"응?"
"내가 웃는 게 더 좋냐고."
웃는 게 좋다고 하면 앞으로 자주 웃어줄 의향이 있어. 세하의 말뜻은 그것이었다. 유리는 그런 세하가 너무도 귀여워서 저도 모르게 작은 웃음소리가 새어나갔다.
"아, 아니, 그게 아니야. 꼭 웃어달라는 게 아니라..."
"..."
"한번쯤은 웃어보는 게 좋지 않을까? 라는 의향이었어."
그게 그거 아니야?! 세하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좀 더 보충적인 설명이 필요했다.
"날 위해서 웃어달라는 게 아니라 세하 너 자신을 위해서 웃어보라는 거였어."
"나 자신?"
"난 세하가 웃는 얼굴이든, 화난 얼굴이든, 슬픈 얼굴이든...어떤 얼굴이든 세하를 무척 좋아하는 걸?!"
"..."
갑작스럽게, 물 밀려오듯이 들어오는 일종의 고백.
"세하는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거 같아. 그래서..."
가끔은 자기 자신을 위해 웃어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유리의 말은, 진심 어린 말이었다. 유리의 따뜻함이 그대로 전해져서 세하는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어, 방금 웃었다...!"
"...잘못 본 걸거야."
그러는 서유리 너도 너 자신을 위해 웃어주면 좋겠어. 너도 나와 같은 주제에. 오늘부로 기도할 것이 하나 더 생겼다.
서로가 서로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해 웃어주는 날이 많아지길 바란다는 내용의 기도문이었다.
공백포함 : 1,169자/공백미포함 : 840자
8. [세하유리] 싫진 않아
"가끔씩 세하의 마음을 모르겠다니까."
"내 마음?"
"나 정말 좋아하는 거 맞지?!"
"...당연한 걸."
"그 몇초간의 침묵은 뭐야?"
"...아직 내 마음을 제대로 밝히는 건 익숙하지 않아서."
"내 마음?"
"나 정말 좋아하는 거 맞지?!"
"...당연한 걸."
"그 몇초간의 침묵은 뭐야?"
"...아직 내 마음을 제대로 밝히는 건 익숙하지 않아서."
정말 좋은 변명이다. 유리는 자그맣게 세하를 타박했다. 유리의 입이 오리마냥 삐죽 나온 걸로 봐서는 단단히 삐진 모양이었다.
늘 감정 표현이 풍부한 유리와는 달리 세하는 그런 표현에 인색했다. 그런 서운함 유리는 이때까지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오늘에서야 드디어 쌓이고 쌓이던 것이 풀린, 아니 폭발한 모양이었다.
나름대로 노력을 한다는 게 아직은 부족한 걸까. 세하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자신이 불안할 때마다 나오는 버릇이었다.
"서유리."
"왜 불러!"
"할 말이 있어."
"듣고 있으니까 말해."
전혀 듣는다는 태도는 아닌데? 얼굴은 이미 세하의 얼굴과 정반대편을 보고 있고. 하지만 대꾸를 하는 걸 보아하니 듣기는 하는 모양이다. 세하는 혀로 입술을 축였다.
"...서유리."
"왜!"
"...싫진 않아."
"..."
뭐야, 싫지 않다는 말 그거 하나면 화 다 풀릴 줄 알았어? 나 쉬운 여자 아니라고. 게다가 '좋아한다' 라고 직접적으로 말한 것도 아니잖아! 세하 나름의 고백을 했음에도 유리의 태도는 방금 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역시...이 정도는 세하도 이미 각오하고 있었다. 그래서 세하는 다음 말을 꺼냈다.
"서유리."
"왜!"
"싫어하지 않고, 좋아해..."
"..."
여기서 유리는 자신의 마음이 약간 흔들리는 걸 느꼈다. 안다. 다 안다. 세하가 표현이 서툴 뿐이지 자신을 좋아한다는 걸. 오히려 자신이 그 좋아한다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거 뿐이라고.
다 아는데, 왜 행동은 정반대로 나갈까.
"서유리, 듣고 있어?"
"...듣고 있어."
"좋아해."
"...들었어."
아까보다는 확실하게 누그러진 말투. 세하는 유리의 손을 꼭 잡았다. 백번의 말보다는 이런 행동 하나가 더 마음에 와닿는 법이었다. 때에 따라서 달라지긴 하지만...
자신의 손을 타고 느끼는 세하의 체온은 따뜻했다. 세하는 차갑게는 보여도 이렇게 따스한 체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유리 자신도 대답을 주어야할거 같긴 한데...세하의 말을 인용해보기로 했다.
"...나도 세하 싫진 않아."
"고마워."
"이번엔 바로 대답하네?"
"당연하지. 싫지 않다는데, 그만큼 고마운 표현이 어디 있겠어?"
싫진 않아. 싫지도 않고, 좋아하지. 아주 많이.
누가 더 서로를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내가 유리 널 더 많이 좋아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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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세하유리] (속) Coucha(紅茶)
"..."
"..."
"..."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너무도 오랜만에 만났는데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입을 차마 못 여는 게 아니었다. 차라리 그랬더라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너무도 어색한 이 사이. 사귀다가, 헤어지고서 다시 만난 사이.
...차라리 모르는 척 할걸. 아무것도 못 본 척 그냥 집안으로 들어갈걸. 집앞에서 만난 세하를 이끌고 예전에 기억이 서려있는 이 카페로 온 걸 유리는 후회했다. 충동적인 감정이었고,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앞에 놓인 찻잔 속의 찻물이 식어가는 게 보였다. 그냥 앞에 놓여있는 차만 마시기에도 뭔가 뻘줌한 이런 관계. 예전에는 무척이나 가까웠는데 지금은 너무도 멀어진 기분이 들었다.
"...웬일이야?"
"다시 돌아왔어."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게 물어보려고 노력하는 자신과는 달리 세하는 담담했다. 순간 세하도 자신처럼 잘 못 지냈다는 거라는 건 착각이었던 것처럼 담담해보였다. 다시...돌아왔다? 이제는 뉴욕 본부가 아닌 신서울 본부 소속 클로저로 일을 다시 한다는 뜻이었다.
"뉴욕은 어땠어?"
"컸어."
안 보는 사이에 우리 둘다 말주변이 너무 없어진 거 같아. 세하는 원래부터 무뚝뚝했지만 자신은 확실히 말수가 급격히 적어진 거고.
"또?"
"사람 사는데가 아닌 거 같았어."
"굉장히 특이한 감상평이네."
"넌 어땠어? 서유리."
서유리. 저 말이 이렇게 차갑게 들렸던 적이 있었던가. 아니었던 거 같은데.
세하는 자신의 이름을 늘 정성을 쏟으면서 불렀다. 서유리? 서유리. 유리야.
모든 게 너무도 변했다. 자신도, 세하도.
"난 뭐...잘 지냈지."
"지금도?"
"응."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고 암시를 걸었던 거 같은데...이제는 장담할 수가 없네. 널 만나기도 했고 앞으로 여기서 산다는 말도 했으니까. 언제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없었기에 이렇게라도 살 수 있었는데.
세하를 보면 무너져버릴지도 몰라서.
"잘 지냈구나."
잘 지냈다는 유리의 대답에 세하는 착잡한 듯이 말했다. 잘 안 지냈냐는 대답을 원하기라도 한 것처럼.
"세하도 잘 지냈으면서."
"그렇게 보였어?"
"응."
나보다 잘 지냈잖아. 뒷말은 하지 않았다. 세하의 표정이 그후로 급격히 어두워지는 거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또 한번의 침묵. 유리는 차를 들어 홀짝 마셨다. 식은 차는 맛이 없었다.
"그보다 잘 돌아왔어요. 이세하 요원님."
"...고마워."
"이제 클로저는 아니라 환영식은 못 갈 거 같아서 미리 말할게."
"응, 이슬비한테 들었어."
그만두었다고. 그 글귀를 읽었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았다. 읽고 또 읽어보았지만 편지 속에 적힌 글씨는 변하지 않았다. 유리가 클로저를 그만두었다. 그것도 자신이 뉴욕으로 떠난지 일주일 만에.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아쉬워하는 것도 없이.
그리고 그 이야기는 자신이 이제 유리를 적잖은 핑계를 대지 않는 한은 이제 마주칠 수 없다는 걸 뜻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귀국하자마자 이 곳으로 찾아오는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찾아가는 것도 어려웠지만 다시 떠나는 것도 어려웠다. 그러던 와중에 유리와 다시 만나게 되었다. 원하던 재회 방식과는 전혀 다르게.
"환영식...그래도 와 주면 좋을거 같은데."
"..."
"옛날...동료로써."
옛날...동료. 그 발언에 세하는 물론 듣는 유리도 가슴 한구석이 찌릿했다. 옛날 동료이기도 했고, 옛날 연인이기도 했어.
이제 이곳에 더는 있어야할 필요성은 없는 거 같았다.
"...갈게."
"벌써...?"
"동생들 저녁 차려주어야 해."
거짓말이다. 동생들은 학교에서 저녁을 먹고 야자를 할 시간이었다. 어떻게든 빨리 이 자리를 떠야할 명분이 절실히 필요했다.
"...어."
"환영식...못 갈 거 같아."
그리고 다시는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 말을 하는 순간 아슬한 젠가탑처럼 무너져버릴까봐 유리는 세하가 자신의 속마음을 알아주기 바랐다. 아니, 알아주는 건 무리려나? 너무 오랫동안 떨어졌고, 이제는 생판 모르는 남보다 더 못한 사이가 되었고.
"...응."
"그럼...갈게."
"...그럼 또..."
또 보자, 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유리는 이미 카페를 나선 뒤였다. 결국 세하는 이 편지를 전해주지 못했다.
자신이 너무 이기적이었던걸까. 그냥 다시 만나고 싶었을 뿐인데. 저렇게 애써 괜찮은 척 하는 사람에게 괜한 피해를 준 게 아닐까.
세하는 자신의 손에서 겨우 벗어난 편지 봉투를 보았다. 군데군데 꾸겨진 봉투는 자신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거 같았다.
'많이 이기적인건 알지만...'
또 보고 싶었다. 또 만나고 싶었다. 우연을 가장한 만남이 아니더라도 마주치고 싶었다.
그래서 이 말을 하고 싶었다.
보고 싶었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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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세하유리] 문스톤
"어? 이쁜 돌이네!"
"...아, 문스톤?"
"...아, 문스톤?"
세하가 유독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는 듯한 주머니 속에서 반투명한 돌을 발견한 유리가 세하에게 돌을 보이며 한 말이었다. 세하는 그 돌을 문스톤이라고 말해주었다. 문스톤...직역하자면 달의 돌이라는 건가? 너무도 예쁜 이름이었다.
"세하한테 보석을 모으는 취미가 있는 줄 몰랐네."
"그런 취미 없어. 그거 그리고 소중한 사람한테 마지막으로 받은거야."
"소중한 사람?"
"우리 아빠."
우리 아빠, 라는 대답에 유리는 납득이 갔다. 유리가 듣기로는 세하의 아빠는 세하가 어렸을 적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세하는 이제는 얼굴도 희미하다고 지나가듯이, 웃으면서 말했지만 그게 얼마나 뼈 아픈지는 유리도 알 수 있었다.
"그 보석을 주면서 당부하셨었어."
"당부?"
"미래를 보여주는 보석이니까, 신중하게 사용하라고."
"미래를 보여준다고?!"
"언제나 미래를 보여준다는 건 아니야."
세하의 말로는 보름달이 뜬 날, 달빛 아래에서 문스톤을 입에 머금고 있으면 단편적인 미래가 보인다고 했다. 유리는 문스톤을 유심히 보았다. 미래가 어떻게 보이는 걸까? 유리의 그런 골똘한 표정이 귀여워 세하는 피식 웃었다.
"빌려줄까? 곧 보름인데."
"빌려준다고?"
"미래 궁금한 모양인데."
그것도 엄청나게. 세하의 제안에 유리는 잠시 흔들리는 거 같았다. 그러더니 곧 고개를 휘젓더니 문스톤을 세하의 손에 돌려주며 말했다.
"안 빌려줘도 돼."
"...? 난 괜찮은데."
"세하 아빠가 세하한테 준 소중한 보석이잖아. 그걸 내가 막 사용할 수는 없다고."
그리고 미래를 미리 알아버리면 재미 없기도 하고. 유리는 혀를 빼꼼 내밀었다. 그런 유리를 멍하니 보며 세하는 풉, 웃었다.
진짜...이래서 내가 너를 좋아할 수 밖에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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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짤막하게 10개 정도의 글이니, 만약 소감을 말씀하시고 싶으시다면 앞에 번호를 붙이신 후에 말씀해주세요...(헷갈릴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