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 - 序章

튜르y 2017-07-25 0

이 이야기는 클로저스 공식 스토리와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답답하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고, 발 끝까지 내쉬어진다. 입에서는 이미 역한 단내가 난다. 그럼에도 움직임을 멈출 수는 없다.


언제부터 움직였는지도 모른다. 그저 달리고, 달리다가 앞에 적이 있으면 그저 무감각하게 베어버릴 뿐.


문득 잠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변은 이미 시체 투성이이고, 내 몸에는 짐승들의 피비린내로 가득하다. 이게 그냥 피였다면 모르겠지만, 이 피 또한 내 체력을 갉아먹는데 투자를 하고 있다.


이대로 또 도망가야 하는 것일까? 언제 이 추격전이 끝나는 것일까?


하지만 지금 멈췄다간, 나중에 더 힘들어질 것이 뻔하므로 어쩔 수 없이 뛰어간다.


심장이 터질듯 해도, 더 이상 숨을 쉬지 못하더라도. 그저 달릴 뿐이다.


이 이후로는 그저 무아지경이었다. 나는 그저 적이 나타나면 베고, 적을 다 베면 또 도망가고, 도망가다 또 적이 나타나면 베었다.


그렇게 베는 감각이 전혀 없어졌을 무렵, 등 바로 뒤에서 날카로운 기세가 점으로 뭉치더니 등 쪽으로 직선을 향하여 찔러온다.


그것을 느꼇을 때에는 이미 거대한 클레이모어로 적의 머리를 날려버리는 중이어서, 도망치지도 못한다.


어쩌면 이제야 이 모든 일에서 해방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으로부터 말이다.


적을 앞에두고 눈을 감는 행위는 절대 해선 안되는 행위지만, 나는 그냥 클레이모어를 손에 든 채 눈을 감았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니 오히려 힘이 난다. 이것이 죽음 직전에 오는 회광반조라는 것일까?


문득 내 등에서 고통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챘다. 알아채고 나서 등 뒤로 돌아보니, 적의 날붙이가 고작 한 치에 이른 채, 머리통이 무언가에 궤뚫린 채로 죽어있는 적이 보였다.


하지만 내가 무언가라고 했지만, 그 무언가는 보이지 않았다. 단지, 적의 머리통이 궤뚫린 흔적이 있어서 그렇게 생각한 것일 뿐.


비록 죽음이 엄습해 오자 포기했지만, 다시 얻은 기회를 그냥 발로 찰 순 없었다. 그렇게 얻은 기회로 다시 무기를 들어 적을 끝없이 벤다.


그렇게 적을 끝까지 베다 보니, 한 10m 앞에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한 구멍이 보였다. 다행히 주변에 적은 이미 클레이모어로 썰어버린 지 오래다. 즉 저 구멍의 존재에 대해 눈치챌 적은 지금 당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멍으로 들어가 버린 뒤, 나는 주먹으로 벽 윗부분을 쳐 입구를 무너뜨려버렸다.


안전해졌다는 생각이 들자, 억지로 휘어잡고 있던 긴장이 와그르르 풀리면서 쓰러지고 말았다. 어두운 동굴이나마 약간 보였던 광경은 이내 어둠으로 가득 차며, 정신을 잃겠다라는 생각이 들자, 그나마 잡고 있던 자신의 의지마저 놓아버렸다.


쓰러지고 나서 며칠 후. 동굴의 차가운 바람과 천장의 기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얼굴에 떨어지는 느낌에 눈이 서서히 뜨인다. 이 질긴 목숨이 여기까지 죽지 않고 살아온 것에 대해 정말 감탄스럽다. 평소의 나라면 절대로 살지 못했을 것이다.


이상한 것이 무아지경으로 적을 베었다는 느낌만 있을 뿐인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적을 벨 당시에는 그냥 앞에 무언가 보인다 싶으면 그냥 베고, 안보인다 싶으면 달린 기억밖에 없는 듯한데, 지금은 적 하나하나를 벨 때의 동작과, 그 동작을 취할 때 어디에, 얼마나 힘을 줘야 하는지까지도 기억이 난다.


처음에는 '내가 어떻게 이 많은 적들을 벨 수 있었을까?' 란 생각밖에 들지 않았지만, 그것을 계속 떠올리고 또 떠올리자, 내가 그 당시에 정말 최적의 힘과 최소한의 동작으로 적을 베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생각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동굴 안쪽으로 걷다가, 자연적으로 형성된 샘을 발견하였다. 마침, 피부에 묻은 적들의 핏자국이 내 체력을 지금도 서서히 깎아먹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을 때, 옷을 다 벗고 손에 물을 묻혀가며 몸 구석구석을 닦았다. 물을 어디서 구할지도 모르는데 그대로 샘으로 뛰어들었다간, 귀중한 물을 낭비하는 꼴밖에 안되니까.


어느 정도 몸을 다 씻었을 무렵, 두 손에 물을 퍼서 벗은 옷에다가 골고루 묻혔다. 세제를 넣고, 빨래를 하는 것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핏자국이 없어질 때까지 물을 묻혀가며 옷을 세탁했다. 어느정도 핏자국이 사라지자, 위상력, 즉 기를 손에 모은 뒤 손목스냅을 줘서 옷을 쳤다. 몇번 치니 옷에 있던 물기가 쫙 빠지면서 입기 좋은 상태가 되었다.


생존에 가장 필요한 물이 해결되었으니, 두번째로 필요한 것은 음식이다. 하지만 이런 빈 동굴에 먹기 좋은 음식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그래도 기왕 연장된 목숨, 포기하기에는 이르단 생각이 들어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3시간 정도 동굴을 둘러보았더니 의외로 동굴의 입구가 작아서 그렇지, 동굴의 깊이와 크기는 엄청 크고 넓었다. '마치 개미집을 거대화시켜놓으면 이런 형태가 될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여하튼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표식을 남기며 움직이길 5시간 째, 동굴에는 정말로 어울리지 않는 이끼가 무더기로 피어있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아껴서 먹는다 해도 6개월이면 다 없어질 정도의 양이다.


웃긴건, 여기까지 오는 시간이 많이 걸려서 그렇지 정작 내가 옷을 세탁했던 샘과의 거리는 고작 15분거리밖에 안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처음부터 반대쪽 길을 걸었다면 이끼는 쉽게 발견했을지도 모르지만, 동굴의 구조는 거의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이제 물과 식량을 얻었으니, 남은 것은 힘을 키우는 것 뿐이다. 솔직히 냉정하게 평가하면 지금도 이 실력으로 어떻게 그 수라장을 헤쳐 나왔는지 의문이 든다. 아무리 최소한의 힘과 최소한의 동작으로 적을 쓰러뜨렸다 해도 체력이란 것은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뭐 어떠랴. 지금 나는 살아있고 적은 죽었다는게 중요할 뿐. 그렇다면 나는 살기 위해 더더욱 발버둥치는 수밖엔 없는 거다. 다시는 그런 꼴을 당하지 않도록, 누구보다도 더 강한 힘을 얻는 거다.





그리고 2년이 지났다.

2024-10-24 23:16:33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