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나락

갓하피 2017-07-25 1

슈브이야기입니다.

 


---




“끼이익-”
 
두꺼운 철문이 열리는 굉음에 슈브는 천천히 눈을 떴다. 열린 철문 사이로 새어 나오는 빛이 어두운 수용시설 격리실의 한가운데 쓰러져있던 그녀의 얼굴과 흉물스러운 하반신을 비추었다. 하반신에서 전해져오는 통증과 눈 부신 빛에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곧 격리실 안으로 두 명의 유니온 보안요원과 의사가운을 입은 남자가 들어왔다. 그들은 격리실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멀찍이 떨어져서 경계하는 표정과 몸짓으로 그녀를 훑어보았고, 그녀에게 적의가 없음을 판단하고 난 뒤에서야 천천히 격리실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차원종 슈브. 앞으로 1시간 후에 예정대로 하반신 절단 수술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이것은 수술의 상세한 내역이 적힌 서류입니다. 참고하세요.”
 
의사가운을 입은 남자가 그녀에게 수술내용이 적힌 서류를 건네주며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슈브가 힘없이 그가 건네주는 서류에 손을 내밀었다. 순간 가운을 입은 의사가 흠칫하고 놀라며 몸을 뒤로 빼었고, 동시에 두 명의 보안요원이 허리춤에 달린 권총집에 손을 올렸다. 그러나 슈브의 행동이 서류를 받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알아챈 그들은 아주 천천히 경계 자세를 풀었다. 그녀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적의가 없음을 드러내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손을 내민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크흠… 여기다 두고 가겠습니다.”
 
의사는 몇 번 헛기침하더니 그녀에게 서류를 주기위해 다가가는 것 대신에, 한 발치 떨어진 곳에서 서류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 후, 흉물스러운 머리가 달려있던, 그리고 지금은 피가 묻어나오는 붕대로 감겨있는 그녀의 하반신을 힐끗 흘겨본 뒤 도망치듯 격리실을 빠져나갔다.


보안요원들까지 나가고 철문이 다시 닫히자, 격리실은 다시 고요함과 어두운 붉은 조명으로 가득 찼다. 그녀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손을 내민 채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비로소 실감하고 말았다. 방금 의사의 행동에서. 그녀는 이제 인간에게도, 차원종에게도, 받아들여질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유니온의 간부들 앞에서 애쉬와 더스트의 정체를 말하려던 순간부터? 인간의 편에 서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그녀의 주인을 버리고 카이거와 함께 일을 하기로 한 제안을 받아들인 순간부터? 아니면 애쉬와 더스트를 만난 순간부터? 그것도 아니면… 그녀의 주인이 탐을 낸 이 저주받을 눈동자를 가지고 태어난 순간부터…?
 
어쩌면 그녀는 애초에 잘못 태어난 것이 아닐까. 돌이켜보면 그녀의 생은 좌절의 연속이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발버둥 칠수록, 그녀의 삶은 더욱 나락으로 떨어졌다. 나약한 몸으로 태어나 군단 내에서 늘 멸시를 받다가, 그녀의 주인에게 거두어지지만, 사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녀의 눈동자뿐이었다. 그렇게 그들의 더러운 공작에 이용당하는 나날 속에서 카이거를 만나고 마침내 사랑에 빠지게 되었지만, 결국 그것이 그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그 후, 군단을 도망쳐 나와 인간 측으로 망명하고자 하고, 마침내 망명이 받아들여지는 듯했으나, 그마저도 이런 초라한 결과가 되었다. 결국 그녀는 차원종도, 인간도 되지 못했다. 두 세계에서 모두 버림받은 그녀에게 있을 곳이라고는 이 어둡고 차가운 격리실뿐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평생 동안.


좌절감과 비참함에 그녀의 깊숙한 곳에서 눈물이 복받쳐 올랐다. 그녀는 내밀고 있던 손을 천천히 떨구고는, 양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리고 차가운 격리실 바닥에 몸을 뉘었다. 냉기가 바닥에서부터 몸을 타고 들어와 그녀의 피를 차갑게 식혔다.
 
“그러게~ 처음부터 못된 짓을 하지 않았으면 이럴 일도 없었잖아.”
 
낯익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재빨리 몸을 일으켜 소리가 난 곳을 향해 몸을 돌렸다. 격리실 한켠의 어둠속에서, 그녀의 주인 더스트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당신이… 어떻게 여길!”
“이런 어설픈 격리실 벽이 날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야? 너도 알고 있었겠지만 내가 진심으로 마음을 먹었다면 넌 이미 목이 달아난 지 오래였을 거라구.”
 
더스트는 격리실 벽을 주먹으로 콩콩하고 두드리며 말했다. 그녀의 주변에서 불길한 어둠이 먼지처럼 피어올랐다.
 
“우리 슈브가 못 본 새에 아주 많이 야위었네? 하반신은 좀… 커졌지만 말이야. 꺄하핫!”
“…….”
 
슈브는 그녀를 노려보았지만, 몸은 공포로 후들거리고 있었다. 그런 슈브를 보며, 더스트는 씨익 웃음을 지어 보이며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왔다.
 
“아, 인간들은 참 너무하기도 하지. 안 그래? 섬까지 들고 망명해왔더니, 그깟 간부 몇 명 죽었다고 이 예쁜 몸도 반 토막 내고 이런 어둡고 칙칙한 곳에서 평생을 가두어 놓는다니… 뭐, 사실 난 여기도 나쁘지 않지만.”
“이런 결말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어요. 당신을 떠난 순간부터.”
“이런 결말이라고?”
 
그녀는 코웃음 치며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숙였다.
 
“너가 각오했던 결말이 인간도, 군단의 일원도 되지 못하고, 카이거의 복수도 하지 못한 채, 평생을 이곳에서 언제 나에게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 채로 벌벌 떨면서 살아가는 그런 결말이었니? 정말로?”
 
물론 아니었다. 그녀는 군단을 떠나온 순간부터 ‘죽음’이라는 결말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최대한 희망을 품고자 했다. 인간들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그들을 도와 종국에는 그녀의 복수까지 완성하는 최선의 미래를 얻고자 했다. 그러나 지금의 결과는… 그녀에겐 죽음보다 못한 절망이었다.
 
“그래. 맞아. 넌 너가 원했던 것을 아무것도 손에 넣지 못했어. 넌 이제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는 구렁텅이에 빠진 거야. 평생을 이 진흙 같은 어둠속에서 가라앉겠지. 나를 배신한 죄 때문에.”
 
더스트는 어느새 그녀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슈브는 양팔로 자신의 몸을 감싼 채 벌벌 떨며 힘겹게 그녀의 눈을 마주 보았다. 그 여린 눈동자에는 그녀의 주인에 대한 공포가 가득했다. 더스트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서 황홀경에 찬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얼굴에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슈브의 턱에 닿자, 슈브는 작은 포유동물처럼 움츠러들면서 고개를 푹 숙이고 눈을 질근 감았다. 더스트는 스산한 웃음과 함께, 작은 손으로 슈브의 턱을 어루만졌다. 시체처럼 차가운 그 손이 턱에 맺힌 눈물방울을 지워냈다.
 
“하지만… 알고 있어? 난 너가 정말 좋단다. 아직도 말이야. 그러니… 인간도, 군단의 일원도 되지 못한 너에게… 마지막 기회를 줄게.”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피 웅덩이 한가운데 서 있었다. 주변에는 아까 그녀에게 서류를 건네준 의사와 보안요원들을 포함한 수명의 사람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그녀는 양손을 들어 보았다. 시뻘건 선혈이 가득했다. 손바닥에 고인 핏물은 그녀의 팔뚝을 타고 내려가 팔꿈치에 맺힌 핏방울이 되어 피 웅덩이 속으로 떨어졌다. 똑똑 떨어지는 그 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한 시간 전 더스트의 말을 떠올렸다.
 
”내가 한 말은 반드시 지킨다는 것, 너는 잘 알고 있겠지? 그러니 내 말대로만 하면 돼. 우선, 수술이 시작되면 너의 몸을 반 토막 내려 온 인간들을 모조리 죽여.”
 
유니온타워에서 처음 인간들을 죽였을 때와는 다르게, 그녀는 지금 별로 고통스럽지 않았다. 그들은 어차피 그녀를 인간의 편으로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를 반 토막 내고 남은 반 토막을 상어 먹이처럼 어두운 격리실에 던져놨겠지. 그런 그들을 해치우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게 정상적인, 차원종과 인간의 관계일 것이다.
 
“그러고 나면, 볼프강. 그 녀석이 올 거야. 그 녀석까지 죽이면 너는 다시 옛날의 사랑스러운 슈브로 돌아오는 거야.”
 

그러나 더스트의 다음 한마디가 떠오르자 그녀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눈앞이 아른거렸다. 이제는 볼프강, 그를 죽여야 한다. 그녀의 목숨을 몇 번이고 구해준 은인을. 끝까지 그녀를 받아들여준 유일한 사람을. 그녀가 이 모든 일이 있기 전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그녀가 손에 묻은 선혈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때 멀리서 수술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황급히 뒤돌아보았다. 멀리서 검은 코트를 입은 금발의 남자가 뛰어오고 있었다. 심장이 더욱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모든 것을 고백할까? 더스트가 인간들과 당신을 죽이라고 지시했다고… 그렇게 하면 다시 자신을 받아주겠다는 그 말에 넘어가서 살인을 저지르고 말았다고… 미안하다고…
 
“아… 볼프…!”
 
……. 아니, 그렇게 한다고 변하는 것은 없다. 여전히 그녀는 인간과 차원종 모두에게 버림받은 존재일 뿐. 그녀를 죽음으로부터 지켜준 그도, 그녀를 이 영원한 두려움에서 구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이 냄새는… 피 냄새잖아? 어떻게 된 거지 슈브?”
 
이미… 모든 것이 늦어버렸다.






---



주로 클갤에서 쓰지만, 여기서만 보시는 분들도 몇분 계셔서 팬소설게시판에도 올립니다.



슈브의 배신 장면을 너무 납득이 안가게 만들어서

직접 배신 장면을 좀더 납득이 가는 방향으로 각색해보았습니다.




이전에 쓴 다른글들


하피VS티나


메인홈피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1&emsearchtype=WriterName&strsearch=%eb%84%a4%ed%81%ac%eb%a1%9c%ed%8c%90%ed%83%80%ec%a7%80&n4articlesn=9807

클갤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closers&no=2299263&page=3&exception_mode=recommend




지옥의 여자 -홍시영편


메인홈피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1&emsearchtype=Title&strsearch=%ec%a7%80%ec%98%a5%ec%9d%98+%ec%97%ac%ec%9e%90&n4articlesn=10624

클갤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closers&no=3100407&page=1&exception_mode=recommend



지옥의 여자 -하피편


메인홈피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1&emsearchtype=Title&strsearch=%ec%a7%80%ec%98%a5%ec%9d%98+%ec%97%ac%ec%9e%90&n4articlesn=10818

클갤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closers&no=3279873
  
 

2024-10-24 23:16:33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