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of Striker-이세하 Ep-4 늑대의 부러진 엄니 끝
Sehaia 2017-07-24 6
“이세하, 학교가 끝나면 교문 앞에서 만나.”
“저기, 여기 다른 반인데.”
다른 반이면 교실 앞에서 부르는 게 일반적인 거 아니냐.
“그런 건가? 그건 내가 처신을 잘못했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가 말을 돌려도 되는 건 아니야. 중요하게 갈 곳이 있어. 종례 후 기다릴게.”
할 말을 끝낸 후 유유히 사라지는 뒷모습이 책상 위에 있는 지우개를 던지고 싶을 정도로 얄밉다. 거기에 고등학생답지 않은 분홍색 머리와 푸른 눈이 눈에 띄는 지라, 이런 식으로 찾아오면 상당히 난감하기까지 하다. 요즘 세상에 저런 머리를 하는 사람은 일부 취향이 독특한 사람이거나, 중2병이거나,
위상능력자라는 의미니까.
물론 이슬비가 위상 능력자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이 학교엔 없다. 교내에 얼마 되지도 않는 위상 능력자일뿐더러, 내가 소속한 검은양 팀의 리더라는 사실까지 이미 학교에 좌악 퍼진 상태다.
그런데 남의 반에 와서, 거기에 나한테 찾아와선 방과 후에 만나자고 하다니. 이건 이미 남의 눈을 신경 쓰지 않는 정도가 아니다. 하다못해 학교에서만큼은 그 귀찮은 일 안 떠올리면서 살 수 없나 했더니, 왠 전학이냐, 전학은.
날 찾아온 이유라고 해 봐야 클로저 관련 업무겠지만. 지끈거리는 두통에 한숨을 쉬던 도중, 옆에 있던 석봉이가 말을 건다.
“세하야, 쟤가 슬비야? 되게 귀엽게 생겼다.”
“귀엽긴 무슨. 그냥 시끄러운 잔소리꾼이지.”
“너 쟤랑 같은 팀이라면서? 클로저 일하는 거 즐겁지 않아?”
너무 진지하게 물어봐서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만, 만약 조금이라도 농담이 섞여있었다면 머리를 한 대 때렸을 것 같다. 위상 능력자는 폭력 금지지만 말이지.
“네가 쟤랑 같이 임무 수행 해봐. 게임기는 뺏기지, 잔소리는 얻어먹지, 매일 싸울 일이 한 가득이다.”
“그건 세하 네가 조금 잘못하고 있는 것도 같은데.......”
흥 하고 고개를 휙 돌려버리는 내 자신이 어쩐지 좀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게임기 뺏어가는 건 전적으로 쟤 잘못이 아니냐! 양심이요? 그런 건 집에 두고 다니는 것.
기억 어렴풋이 ‘하기 싫어진다면 언제든 관둬도 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어째서 내가 아직도 이 일을 관두지 않는지는 나에게 있어서도 미스터리다. 그건 그렇고, 이번엔 어디로 끌고 가려는 거지?
여느 때와 다름없는 담임 선생님의 종례를 한 귀로 흘려버리고 가방을 들고 일어선다. 몇몇 애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의식의 장벽을 뛰어넘어 귀로 들려온다.
“클로저 님 가신다, 야.”
“이번엔 두 명이서 무슨 일이래?”
그 쪽이 신경 쓸 일 아니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미 일상이 되어버린 말들에 돌을 던져봐야 파문도 일지 않는다. 얌전히 무시하기로 하자. 내가 브레이크 댄스를 추면 그것대로, 교문을 뛰어나가면 그것대로 가십거리로 만들어 버리는 무리들이다.
교문 앞에는 이미 먼저 온 이슬비가 있었다.
“어서와. 그럼 출발하자.”
잠깐, 뭔가 한 명이 부족한 거 같은데. 주위를 둘러보아도 긴 흑장발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내 눈치를 알아차렸는지, 이슬비가 설명을 단다.
“유리라면 위상력 트레이닝하러 갔어. 이번엔 사람이 많이 필요한 임무도 아니고, 그 앤 전력이 되어주려면 아직 교정이 좀 더 필요하니까.”
그럼 진짜 나랑 얘 둘이서만 가는 건가. 제대로 일이 풀릴 것 같지 않은 답답함을 느끼며 정보를 요구한다.
“그래서, 이번에 할 일은 뭔데?”
“팀원으로 설득하러 가는 건데. 그 분의 집 주소는 받았어. 여기.”
메모지에 적혀있던 주소는 나를 약간 의문스럽게 만들었다. 땅값이 그리 싸지 않은 신서울에서는 보기 드물게 상당히 싸게 살 수 있지만, 그 대가로 편의 시설이나 주택 환경 같은 요소는 바닥을 치는 동네다. 굳이 이런 곳에서 살 정도라면 지방으로 내려가는 걸 택하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빈곤한 사람들이 몰려 있다.
도대체 이런 곳에 누가 있다는 거지. 팀원으로 설득 중이라던 사람이 있다면, 분명 변변치 못한 사람일거라는 생각이 엄습한다. 도대체 이 팀, 팀원을 무슨 기준으로 뽑는 거람.
내 경우에는 의욕도 없는 사람을 강제로 끌어다 놓고, 언제 나갈 지도 모르는 시한부 팀원이나 다름없다.
서유리의 경우에는 이제 막 각성한 사람을 데려오다니, 실전반이라는 타이틀이 아까울 지경이다. 검도 쪽에서야 달인이지만 위상력 부문에서는 완전히 초심자 아닌가.
그나마 정상적인 케이스는 이슬비지만, 리더까지 비정상이라면 이미 팀으로서 기능도 못할 테고. 잔소리가 많은 건 마음에는 안 들지만 팀을 제대로 운영하기 위함이라는 측면에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이제는 뭐, 누구를 데려온다고?
그런 내 감정을 읽기라도 한 듯, 이슬비가 상대방에 대한 프로필을 읊는다.
“예전에도 이미 클로저로서 활동한 경력이 있으신 분이네. 상세한 프로필은 비공개 정**만, 예전 차원전쟁에도 참가하셨고, 소부대 전투, 전술지휘 경험도 있으신 노련하신 분이야. 우리 팀에서는 일단 교관으로 합류하도록 부탁드리고 있는데, 계속해서 거부하고 계셔.”
‘차원전쟁에 참가한 경력이 있다’라. 그럼 우리 엄마하고도 아는 사이려나. 아니, 생각이 지나쳤다. 엄마는 그렇게까지 지인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 물론 엄마를 모르는 사람이 있냐고 한다면 그건 아니지만, 엄마가 직접 알고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주로 일 때문에 차원종 상대하는 게 일상이셨으니 지인은 기껏해야 전우들 정도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영웅님께서 왜 이런 곳에서 혼자 사시는 거냐?”
“차원 전쟁 때 큰 부상을 당하고 퇴역했다고는 나와 있지만, 그 이후의 행적은 전혀 적혀있지 않은걸?”
프로필을 들으면 들을수록 애매모호해진다. 첫 약력 프로필을 들었을 땐 얼굴에 흉터가 있는 역전의 용사라는 느낌이 들었는가 하면, 후반부를 들어보면 은둔자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 도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나서 도착한 곳은 그 평판 안 좋은 동네 중에서도 가장 허름해 보이는 주택가였다. 해당 아파트를 찾아 난간이 반쯤 부서진 계단을 타고 올라가 인터폰을 누른다. 그러나 살짝 ‘퍼억’ 거리는 소리만 날 뿐, 안에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인터폰을 세 번을 더 누른 끝에야 ‘누구세요.’라는 대답이 들려온다.
“제이 님, 계세요?”
“네네. 있습니다. 빚이라면 아직 시간 좀 남았으니 돌아가 주시고, 건강식품 택배라면 그 앞에 놔두고 가 주세요.”
예상을 크게 상회하는 글러먹은 반응에 어안이 벙벙해져 이슬비를 쳐다본다. 그 쪽도 마찬가지였는지 얼굴이 마주치고,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다.
이 인간, 뭔가 이상해.
그럼에도 꿋꿋하게 말을 거는 이슬비의 끈기에는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그러고 보니, 내 때도 변변찮은 이유를 대기 전까지는 성실한 태도였지, 이 녀석.
“아닙니다. 저희는 유니온 소속 검은양 팀인데, 합류를 요청 드리고자......”
“아아, 알았어. 잠깐 기다려 봐. 나간다고.”
말허리를 뚝 자르고 철컥 하는 소리가 나더니 끼이익 하는 소리를 내며 녹슨 문이 열렸다. 소리만 듣자면 귀신의 집을 열어도 이상하지 않을 소리 끝에, 우리 눈앞에 서 있는 건.......
이것이 좀비입니까?
저물어가는 석양에 붉게 물든 새하얀 머리카락. 그 밑에 조금씩 어두워져 가고 있는데도 눈 위에 걸쳐놓은 노란색 선글라스가 존재감을 과시한다. 그 너머로 보이는 눈에는 석봉이도 저리가라 할 정도의 다크서클이 버젓이 눈 밑을 잡아당기고 있고, 대충 걸친 트레이닝복 사이로 언뜻 언뜻 파스가 보인다. 손에는 무슨 상처라도 났는지 붕대가 잔뜩 감겨있다.
거기에 어깨는 결린지 계속해서 문을 짚지 않은 손으로 두들기고 있는 폼이 망가진 장난감을 보는 것 같다. 문을 짚은 손에는 자그마한 약통이 세 개는 들려있는데 조금씩 파르르 떨리는 게 매미가 죽어가는 것 같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입에서 나오는 저거, 제발 누가 케첩이라고 좀 말해줘.
이 다른 의미로 압도적인 모습에 기가 질린 나는 이슬비에게 모든 상황 판단과 언행을 일임하기로 했다. 난 이 사람을 감당해 낼 용기가 없어.
그건 이슬비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으나, 어떻게든 용기를 쥐어짜내 대화를 시도한다.
“아......안녕하세요. 검은양 팀 리더 이슬비라고 합니다. 저희 팀원으로 합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만.......”
“그러고 보니 그런 얘기도 있었지. 다만 할 생각은 없어. 나로서는 더 이상 유니온과 관련되고 싶지 않아.”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말을 하며 쿨럭 거린다. 손끝에 불그스름한 얼룩이 갱신된 걸로 보아, 아무래도 이 사람은 우리와는 종족이 다른 것 같다. 입에서 케첩을 뱉어내다니, 볶음밥이라도 드시고 계셨나.
“하지만 저희도 인력이 상당히 부족합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셨으면......”
“미안하지만 내가 도울 만한 일은 별로 없을 거 같군. 오히려 짐이 안 되면 다행일 거야.”
그 말과 함께 자세를 취하더니 위상력을 방출한다. 그러나 방출한다기보다는 새어나온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은연중에 신체를 강화하는 정도보다 조금 더 강한 정도다. 이게 최대치라고 한다면 차원종과 전투를 하기엔 턱없이 모자라다.
자세를 풀고 다시 한 번 쿨럭 거리더니 고개를 휘휘 젓는다. 이만 돌아가라는 뜻이겠지. 그러나 여기서 가볍게 물러날 정도로 이 팀의 리더는 끈기가 부족한 녀석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모처럼 여기까지 왔는데 얘기라도 좀 더 부탁드리겠습니다.”
한숨을 푹 쉬더니 문을 여신다. 들어오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들어선 집 안에서는 술 냄새가 코를 쿡쿡 찔렀다. 벽에는 예전에 운동을 하던 잔재인지 너클이 걸려있고, 아령이 베란다에서 굴러다닌다. 바닥에는 각종 배달형 건강식품과 건강 드링크, 건강 잡지, 움푹 파인 샌드백 등 온갖 것들이 난잡하게 널려있는데, 이것이 또 술병과 부조화를 일으킨다.
단칸방에 널려있는 술병들을 적당히 밀어놓고 방석을 까신다. 그러나 손에 감긴 붕대를 풀고 냉장고를 열더니 술 밖에 없는 걸 확인하고 다시 문을 닫는다. ‘봤지?’라는 투로 어깨를 으쓱거리시는 게 이걸 안쓰럽다고 해야 하나, 글러먹었다고 해야 하나, 착잡한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도대체 무슨 생활을 하시는 거요.
이윽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시더니 곁에 있는 맥주병 하나를 따시고는 천천히 입을 여셨다.
“그래서, 할 말이라는 게 뭐냐?”
“저희는 이제 신생 실전팀 입니다만, 아직은 불안한 점이 많습니다. 인원이 그리 충분한 것도,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조언을 좀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콧방귀를 뀐다.
“아가씨, 난 이미 한참 전에 전역한 몸이야. 그런데 이제 와서 갑자기 팀원이 되어달라고 하질 않나, 조언을 해달라고 하질 않나. 이건 좀 아니지 않아?”
“무례를 감수하고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아니 저희는 아직 더 강해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 부탁드립니다.”
강직하고 꿋꿋하게 말을 잇는 모습에 아저씨가 처음으로 우리의 눈을 보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무언가가 모자란지, 하품을 하며 술을 다시 마시며 말했다.
“이봐 이봐, 넌 아직 신생 팀의 리더에 불과해, 아가씨. 그런데 왜 그렇게 향상심에 불타는 거지? 뭐가 널 그렇게 채찍질을 하는 거야?”
이슬비는 입을 잠시 다물었다. 그리고 눈을 감더니 숨을 고르기 시작한다. 침묵을 지키면서도 가끔씩 얼굴을 찡그리며, 마지막까지 선별 작업을 거친 말 한 줄을 풀어놓는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그 말에 잠시 마시던 술을 내려놓고 찬찬히 이슬비의 얼굴을 뜯어보더니, 이윽고 경직된 얼굴을 산산조각 낸다.
“크, 큭. 크하하하하. 뭐, 전쟁이 안 끝나? 그래, 뭘 좀 아는구나? 맞는 말이군. 멋대로 전쟁을 끝내다니,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저 더러운 유니온과 차원종이 남아있는 한, 절대로 전쟁은 끝나지 않아! 절대로!”
고양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셨는지 손이 부들부들 떤다. 빈 방안에서 광기까지 느껴지는 아저씨의 찢어지는 웃음소리가 계속 빙빙 돌며 우리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정신을 다 잡은 아저씨가 방금 전까지의 한량 같은 기색을 다 버리고 진지하게 우리를 보기 시작했다. 선글라스 너머로 본 눈이 늑대의 그것 같아서 한순간 오한이 끼친다.
“후, 그래. 맞는 말이야. 전쟁은 끝나지 않았지. 그러나 유니온은 썩었어. 너희들처럼 어린 애들이 벌써부터 들어가서 고생할 만한 곳은 아니야. 보답을 바란다면 더더욱.
내가 조언할 만한 건 별로 없어. 네 성격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원하는 바를 이뤄낼 거야. 굳이 조언한다면 유니온에서 일찍 나오라는 것 정도?
그리고 네 옆에 있는 남자애, 그래, 너. 너 위상력은 상당하군. 그리고 몸을 보니 전투도 수준급으로는 하겠다. 이 여자애, 잘 도와줘라.
팀이라는 건 운명 공동체야. 믿을 거 없는 전장에서는 팀이라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나중에 알게 될 거다. 딱 봐도 만사를 귀찮아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런 아가씨 같은 성격일수록 무너지기 쉬워. 그럴 때는 곁에서 잘 도와주는 사람 하나만 있어도 세상이 바뀌지. 그러니 열심히 도와줘.”
내 자신을 꿰뚫어보는 듯한 말에 얼굴이 살짝 달아오른다. ‘아니, 뭐, 굳이 내가 잘 돕지 않아도’라는 말을 하려던 그 때, 무너지듯 웃은 아저씨의 얼굴은 허망해 보였다.
모든 걸 잃어버린 것처럼.
모든 걸 놓아버린 것처럼.
모든 걸 쥐려고 했던 것처럼.
“뭐, 너무 열심히 활동하면 나처럼 된다. 그러니 너희들도 너무 무리하지 마라. 건강이 제일이야.”
그 말을 끝으로 턱으로 문을 가리킨다. 이번에야말로 나가야 할 때라는 걸 인지한 것인지, 이슬비 또한 머리를 깊게 숙이고 인사한다. 내 뒤를 따라 나오는 녀석의 얼굴이 어째선지 살짝 슬퍼보였다.
영입이 실패한 게 그렇게 아쉬웠던 건가? 위로하는 건 잘하는 편도 아니라, 이럴 때 뭐라 말해야 하는지 난처하기만 하다. 물이라도 끼얹으면 정신을 차리려나?
“야, 안 됐네. 이번에는 포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어쩌다가 들어와 주기를 바라는 건 오만한 것이라고 말하려던 순간, 난 이슬비의 눈에서 확신과 연민을 보았다.
“아니, 그 분은 돌아오실 거야.”
“무슨 근거로?”
“뭐? 넌 도대체 그 방에서 뭘 본거니?”
글쎄. 글러먹은 사람의 표본을 보고 온 것 같다만. 반면교사라고 하던가, 이런 걸? 그러니 나도 저렇게 되지 않게 당장이라도 이 팀을 그만두는 것이 현명할 것 같아.
내 표정이 충분한 답이 되었는지, 이슬비가 이마에 손을 얹고 한숨을 쉰다. 아니, 그럼 다른 뭐가 있었던가.
“방에 걸려있던 너클, 그거에서 아무것도 못 느꼈어? 그리고 그 드링크는?”
“그게 뭐 어쨌는데.”
그야 보긴 했지만, 그냥 평범한 너클과 건강 드링크 아닌가. 그 몸으로는 그런 걸로 운동도 좀 하고, 몸도 좀 챙겨줘야 할 것 같은데. 술을 그렇게 마셔대는 건 아무래도 그 모든 걸 무의미하게 바꿔놓는 것 같지만.
그러나 이슬비의 이어지는 말은 그 방안에서 내가 본 모든 풍경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았다.
“그 너클, 위상력이 남아있었어. 아직까지 위상력이 남아있는 걸로 봐선 최근에도 무기에 위상력을 흘려 넣은 거야. 그리고 그 드링크, 일반적으론 건강 드링크로 통하지만, 위상 능력자의 경우엔 위상력의 흐름을 보조해주는 효능이 있어. 샌드백도 위상력에 대응할 수 있게 특수 제작되어 있었고.”
뭐야, 그거. 말로만 들어보면 그 미약한 위상력을 커버할 방법이 충분하진 않아도 어느 정도 마련되었다. 위상력은 방출하는 양도 중요하지만 그 응집 정도에 따라 위력이 갈린다. 결정적인 양은 모자라더라도 타점에 위상력을 응축해서 타격할 수 있을 정도로 위상력 조절이 능숙하다면.......
자신의 몸을 버려가면서 싸우는 ‘전투’가 가능하다.
“결정적으로 손에 붕대를 감고 있었는데, 손에는 물집 외엔 아무런 상처가 없어. 너클을 낄 때에는 일반적으로 손을 보호하기 위해 붕대를 감거든? 이게 무슨 소리인지 알지?”
그 말인즉슨, 우리가 오기 직전까지 그 샌드백을 패고 있었단 건가? 너클을 끼고서? 그 몸으로?
한숨을 쉬면서 계속해서 말을 잇는 이슬비의 눈에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아저씨에 대한 동정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저 분은 아직까지도 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하셨어. 안타깝게도,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셨는지 짐작도 가지 않아. 차원전쟁 얘기를 할 땐 손이 살짝 떨리시는 걸 보니, 겉으로는 웃고 계셔도 속에서는 지옥을 경험하고 계시는 걸 거야. 상처를 후벼 판 것 같아 죄송하기도 하고.
하지만 결국엔 돌아오실 거야. 저 분 안에서 일이 매듭지어지지 않았으니까.”
그러는 너는 무얼 경험했길래 그렇게 떨었냐. 굳이 묻지는 않았다. 그것이 얘의 상처를 후벼파는 일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 눈치도 없는 나지만, 사서 일을 벌일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미 뒤로 멀어져가는 아저씨의 집이 새삼 더 허름하게 보인다. 이슬비가 추측한 것이 거짓일 수도 있고, 아저씨는 그냥 재활하는 환자였을 수도 있다. 얘가 꼭 옳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순간, 그 허름한 집이 이가 부러지면서도 다시금 이를 바위에 갈고 있는 늑대의 동굴로 보인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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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Closenea입니다. 유리 영입에 이어 제이 영입 '시도' 편 이었습니다. 세하는 보기만 하고 아무것도 한 게 없고, 제저씨는 상당히 어두침침하게 나왔네요;; 그래도 제저씨가 인게임에서 보이는 가벼운 모습은 감정을 숨기기 위한 때가 많다라는 해석하에 이렇게 쓰게 되었습니다.
재미있으셨으면 좋겠네요. 언제나 그렇듯 피드백 환영합니다.
Ep-3 진흙 속에 맑은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2&n4articlesn=12280
Ep-5 위화감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articlesn=12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