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세하 슬비] 바다, 추억, 사랑

Contrasto 2017-07-06 4

“...뭐? 여행?”


나는 슬하와 게임을 하다 의외의 얘기를 들어 열심히 콘솔을 놀리던 손가락을 멈추고 슬비를 쳐다봤다.


“그치만 당신, 회사에선 당분간 일거리는 없고, 학교는 방학해서 수업도 없고, 시간은 많잖아?”


확실히 내가 맡은 대학 반은 저번 주 금요일부터 여름 방학이 시작되었고, 회사에선 어제 길고 긴 외주가 끝나 프로젝트에 참여한 인원 모두가 보너스와 함께 3주라는 장기 휴가를 받았다. 정말이지 바이올렛 회장님 만만세다.


“그래도... 갑자기 여행이라니...”


내가 약간 질색하며 말하자, 슬비의 얼굴이 확 어두워졌다. 양심에 찔리긴 하지만, 어떻게 얻은 휴가인데, 최대한 체력을 회복하고 싶었다. 그도 그럴게, 저번 외주 때 무려 일주일 동안 한숨도 못 잤단 말이다...! 4일 차부터는 위상력으로 버텼다고...!


하지만 슬비가 뭔가 어두운 오오라를 뿜어내며 나한테 성큼성큼 다가왔다.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쉬고 싶다는 마음을 굳혔지만, 무서운 건 무서운 거다. 슬비 무서워…….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슬비는 내 앞에 앉아 두 팔로 내 목을 감쌌다. 내 예상과는 백만 광년 먼 반응이 나왔길래 당황한 나는 앞을 바라보았고,


“슬비 바다가구 싶은데. 안 돼?”

“내일 당장 가자. 아니 오늘 갈까?”


귀엽게 한쪽 볼을 살짝 부풀린 슬비가 낸 혀짧은 소리에, 굳게 먹었던 마음은 한 순간에 날라갔다.


그 모습을 본 세리가 방긋 웃으며 나한테 말했다.


“엄마 귀엽다! 그지?”


세리야, 네 말엔 아빠가 천번 만번 동의한단다!






-






“이야~ 오랜만이야 슬비야! 아니 이젠 슬비 씨라고 불러야 하나? 하하하!!”


다음날 아침, 온가족이 다 같이 바다에 갈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오자, 커다란 벤에 몸을 기댄 제이가 넉살 좋게 말했다.


“...아저씨? 여기 웬일이세요?”


내가 아저씨의 존재를 의아하게 여기며 묻자 슬비가 답해주었다.


“이번엔 유정 언니네 가족하고도 같이 갈라고. 슬하도 정훈이랑 놀고 싶어하는 것 같았고.”

“흐~음 그렇구나...”


별 걱정 없이 받아들인 나는 짐을 트렁크에 싣고 아이들을 차 안에 들여보냈다. 차 안에서 정훈이를 발견한 아이들은 서로 좋다고 달려들었다.


“정훈이 형!”

“오빠다아아!!”


마치 원래부터 친 남매였다는 듯이, 그들은 스스럼없이 서로를 아주 좋아했다. 처음 만난 그날 이후, 이젠 아이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서로의 집에 들러 자고 갈 정도로 친해졌다. 그 자리를 마련해줬던 유리한테 고마워해야겠지.


차를 타고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신 서울역에 도착하여 KTX로 갈아탔다. 아이들은 오래간만의 기차여행이여서인지 굉장히 들떠서 창문 밖을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헤에~ 호오~ 흐아~”


기차여행이 처음인 세리는 한시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결국 슬비가 무릎에 앉히고 좋아하는 초콜릿을 입안에 넣어주니 열심히 입에서 굴려가며 녹여먹는것에 열중했다. 그 모습이 마치 조그마한 햄스터 같아서 너무나도 귀여웠다.


유정 누나는 자신에게도 딸과 같은 존재인 세리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누나도 세리가 많이 귀여웠나 보다.


“이구. 우리 세리, 그렇게 맛있어?”


“응 마이쪄! 초코가 최고야!”


햇살 같은 웃음을 지으며 쾌활하게 말하는 세리는 그 무엇보다도 사랑스럽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유정 누나는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이 세리를 꽉 껴안으며 부비부비했다.


“정말이지~! 누굴 닮아서 이렇게 귀여울까~!”


그 말에 대한 대답은 슬비가 대신 했다. 슬비는 쿡쿡 웃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야 그이를 닮아서 저렇게 귀여운 것 아니겠어요? 부전여전이려나?”


예상외의 대답이 돌아왔길래 놀란 나는 슬비를 쳐다보았다. 슬비는 나를 보고 살짝 웃어보였다.


“뭐야 그게... 그러면 내가 생각하기엔 슬하는 널 더 많이 닮은것 같던데? 애가 잘생기고 똑부러진게 말이야.”

“뭐야 그게.”


내가 멋쩍은 듯이 말하자, 슬비는 그저 웃기만 했다. 하지만 그녀도 내심 자신을 돌려 칭찬한 게 마음에 들은 모양이었다.


“자자, 이제 거의 도착한 것 같으니 짐 챙기자고.”


기차에 있는 내내 아이들과 놀아줬던 아저씨가 돌아오면서 말했다. 그는 정말로 아이들을 좋아해서, 지금은 약간 얼굴에 지친 기색이 보였지만 많이 재밌어하는것 같았다.


내가 아저씨의 말을 듣고 지도를 펼쳐서 살펴보니, 곧 이 터널을 지나기만 하면 철로가 해안선을 따라 놓아져있다고 나와 있었다. 아직 본적은 없지만, 꽤나 장관이라고 하니, 아이들한테도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제 곧 터널을 지나면 해안선을 따라 역으로 간다더라. 꽤나 멋진 풍경일 것 같아.”


그 순간, 기차는 어두웠던 터널을 빠져나와 기차 안을 빛으로 물들였다. 창문 밖을 보니 은은한 코발트블루 색 바다가 펼쳐져있어서 굉장한 장관이었다.


“드디어 도착이구만... 뭐 그래도 이뻐보이긴 하네. 이번 휴가는 작정하고 놀아주마...!”


아저씨는 바다를 보면서 웬지 모르게 비장감이 느껴질 정도로 굳게 쉴 마음을 먹었다. 역시 쉬는 것 앞에서는 몇 년이 지나도 아저씨다웠다.


슬비는 문득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나의 손을 살며시 잡고 말했다.


“... 그러고 보니, 당신이 나한테 프러포즈하고 나서 처음으로 같이 찾았던 곳이, 바다였지.”

“아아, 그랬지... 그때도 그때대로 재밌었지...”






-






8년 전,


전쟁이 끝나고 세상이 다시평화를 되찾았을 때, 나는 줄곧 사랑해왔던 그녀에게 고백을 하였고, 그녀는 기쁘게 받아들였다. 내 어색하기 짝이 없는 프러포즈에도 불구하고, 왼손 약지에 끼워진 반지를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던 슬비가 처음으로 꺼낸 말은,


“나, 바다가 가보고 싶어. 너랑 단 둘이서.”

“그러면 그게 신혼여행이 되는 건가?”

“후후, 아마 그럴지도? 기대된다.”

“그래... 나도 기대돼.”


그리고, 바다에 갔었던 날, 마치 이 세상의 풍경이 아닌 것만 같이, 무수히 수놓아져 있는 별빛 아래서, 우리는 우리들만의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을 축복해주는 하객이 없어도, 아름다운 웨딩드레스가 없어도, 감미롭게 연주하는 축가가 없어도, 우리는 행복했다.


하객 대신 별들과 은하수가 우리를 축복하여 주였고, 아름다운 웨딩드레스 대신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엮은 화관이 그녀를 무엇보다 아름답게 꾸며주었고, 감미로운 축가 대신 조용하게 울려 퍼지는 파도 소리가, 우리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바다는 우리한테 있어서, 무엇보다도 아름답고 애절한, 그런 공간이었다. 그녀가 새삼스럽게 바다가 가고 싶어졌단 뜻은, 아마 나와의 사랑을 재확인 하고 싶어져서 그랬을 것이다.


8년이 지나도, 앞으로 10년, 20년, 30년이 지나도, 나는 그녀를 사랑할 것이고, 그녀는 나를 사랑할 것이다.


단지, 가끔씩 이렇게 그녀와 같이 바다에 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






“무슨 생각했어?”

“응? 아아, 조금 옛날 생각이 났어.”

“그래? 어땠어?”

“그냥, 행복했어.”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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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난잡했던 시험 기간을 끝내고 오랜만에 달달한 세슬 팬픽과 함께 돌아온 필자입니다... 그동안 제 작품을 기다려주신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밖에 드릴 수 없겠습니다... 죄송합니다ㅠㅠ


마지막에 썼던 본편의 레비아 스토리는 아직 후편을 쓰다 말았습니다. 본편을 기다려주신 독자분들께는 정말로 죄송하지만, 피자가 레비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제대로 감정을 이입해서 쓰기가 많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특히나 본편의 스토리인만큼 절대로 애매하게 끝맺고 싶지 않아서, 기다리시는 동안 심심하시지 않도록 부득이하게 세슬의 외전을 준비해왔습니다... 이제 곧 본편의 스토리를 다시 진행해서, 레비아의 스토리를 멋지게 끝마치고자 합니다. 여러분, 모두 기대해주세요!


이번 세슬 외전은, 옛날부터 제 작품 세계관에서 줄곧 다뤄보고 싶었던, '과연 세하와 슬비는 어떻게 결혼을 했을까?' 에 대한 필자의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세하와 슬비의 풋풋하면서도 애절한 사랑을 나타내기 위해서 최대한 전반부는 명랑하게, 후반부는 여운이 남도록 서정적이게 썼던거 같습니다. (자칭) 세슬 팬클럽 명회 회장으로써 자부합니다! 모쪼록 세슬의 달달한 이야기를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필자는 이만 실례하도록 하겠습니다!











2024-10-24 23:16:17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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