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유리] 좋아한다?

루이벨라 2017-07-03 10






 "그러고 보니 요새 세하를 통 ** 못했네."

 -바쁘니까 어쩔 수 없지.


 바쁘니까 어쩔 수 없다, 라는 세하의 말에 나도 모르게 입술이 삐죽 나와버렸다. 내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일까. 세하와 '연인' 관계, 혹은  '사귀는' 것도 아닌데...괜히 좀 서운했다.


 "...아직도 많이 바빠?"

 -응, 많이.


 그래서 이렇게 목소리를 듣고 싶을 때는 '잘 지냈니?' 라는 식의 핑계를 만들어내서 세하에게 전화를 건다. 너무 자주 전화를 걸면 세하가 혹시 내 마음이라도 눈치를 챌까봐 전화를 하는 날마다 일정한 간격을 벌려놓는다. 이런 나의 노력 덕에 세하는 아직 내 마음을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아니, 그걸 따지기도 전에 세하는 이런 쪽에 눈이 어두웠다.


 "언제쯤 세하가 푹 쉬려나?"

 -아마 휴가를 곧 받지 않을까? 그리고 슬슬 소강 상태이기도 하고.


 이럴 때는 세하와 어쩔 수 없이 떨어져있는 이 처지가 싫어졌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세하는 유니온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력 중 한 명이었다. 그런 세하가 이리저리 많이 불려다니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 세하에 비해 난 신서울에 주로 머물러 있었다.


 ...갑자기 내 자신이 초라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마음이 들었다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일부러 밝은 목소리를 꾸며냈다.


 "그렇구나...!!"

 -휴가 받으면 신서울 들릴까? 같이 와플이나 먹게.


 솔깃한 제안이었다. 세하가 신서울로 돌아와준다니...!


 "며칠 정도 있을 수 있는데?"

 -하루? 아니다. 한 12시간?

 "...그러면 뭐하러 신서울로 와. 그냥 거기서 푹 쉬어."


 이 말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수화기를 그러쥐었다. 거짓말. 세하가 그렇게 말하며 오겠다고 하니까 기쁘잖아. 만나고 싶잖아. 이렇게 목소리로만 듣는 걸로는 성이 안 차잖아. 지구 반대편에 있는 세하가 이런 내 속마음을 알 턱이 없지만.


 그렇게 몇 분 정도 시시한 주제로 세하와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화를 끊기 싫었다. 세하가 '아, 이제 가봐야할거 같다.' 라는 말을 하고 나서야 겨우 대화가 종료되었다. 뚜- 뚜- 전화가 끊긴 음을 몇 초동안 멍하니 듣다 나도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뭐일까...요새 들어 세하와의 전화 통화를 끊으면 그 뒤에 몰려오는 이 허전함. 그리고 다시 수화기를 들어 아직 못한 말이 있다며 말을 걸고 싶었다. 이렇게 목소리로만 듣는 것도 이제는 한계가 오고 있었다. 직접 보고 싶다. 여기에서의 내 임무를 팽개치고 갈까 싶기도 하다. 이렇게 나만의 생각에 잠겨있어서 바로 등 뒤에서 나를 부르는 슬비의 말에 무심코 놀라버리고 말았다.


 "유리야?"

 "흐익! 슬...슬비야?!"

 "오늘도 세하랑 전화했어?"

 "오, 오늘도라니! 일주일만에 한거라고..."


 인연도 아니고,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그냥 같은 팀에 있었던 '동료' 였을 뿐인데...일주일 간격으로 전화를 하는 것도 이상하려나?!


 끙끙 앓고 있는 나를 보며 슬비는 빙긋이 웃었다.


 "고백 아직 안 했지?"

 "고, 고백이라니...!!"


 당치도 않는 소리를 슬비는 자연스럽게 한단 말이야...슬비의 그 말을 듣고 보니 빙긋이 웃은 슬비가 아니라 날 골탕먹이려고 짓는 미소로 보여졌다. 그리고 그런 슬비의 말에 내 얼굴은 지금 아주 새빨갛게 되었을 것이다. 얼굴에 열이 올라서 달구어진 게 느껴질 정도니 확실했다.


 슬비의 말대로 요새 남자가 먼저 고백을 해줄 때까지 기다리는 세상은 아니니, 내가 직접 고백을 해도 괜찮겠지만...난 연애 경험이 거의 없다. 그래서 이런 감정에 대해 대하는 것이 매우 서툰 편이었다. 그 서투름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금방 내가 '세하를 좋아한다' 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 마음이 것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을 때 세하가 뉴욕으로 파견된 것이었다. 그렇게 세하와 반년 정도 떨어져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나의 반응에 슬비는 다시 반응을 하나 툭 던졌다.


 "유리라면 고백해도 괜찮을거 같은데."

 "엑?! 어, 어째서...?"

 "그거야, 세하도 유리 널..."

 "좋, 좋아할리가 없잖아!"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반응. 세하도 나를 좋아할리가...없겠지? 아니, 있으려나? 내가 세하 본인도 아닌데 어떻게 알까.


 사실 내가 세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자각했을 때에 든 생각은 이거 하나였다.


 '만약 거절 당하면 어쩌지?' 라는.


 그 이후부터 세하를 예전처럼 편하게 대할 수가 없게 되었다. 세하가 내 마음을 알아채면 어쩔까, 싶었다. 그리고 알아낸다고 해도 세하가 나와 같은 마음일거라는 보장도 없고...이렇게 누군가를 강렬하게 좋아해본 적도 없었기에, 만약 실연이라도 당한다면 그 이후의 파장이 어떻게 될지 내 나름대로 생각해보았지만...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최악이라고밖에 되지 않는 시나리오가 완성되어졌다.


 슬비를 비롯한 주변인들은 세하한테 고백을 하라고 하는데...이유는 세하도 나와 같은 마음이라는 것이었다. 어떻게 알았을까. 세하의 그 무표정한 얼굴,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는 얼굴을 보고서도 알 수 있다는 걸까?! 나처럼 막 눈에 사로잡히지도 않는데? 내 주변인들은 다 사람 감정 꿰뚫어보는 고수인가?


 주변에서 막 응원을 하기는 하는데 나 자신만 아직 확신이 없어서 맹렬히 삽질을 하는 중이었다.


 '...으으.'


 ...그냥 확 고백해버릴까.




* * *




 "아, 이제 가봐야할거 같다."

 -으응...! 많이 바쁘겠지?! 그럼 세하 잘 지내!

 "응, 유리 너도."


 먼저 전화 연결을 끊는 건 힘든 일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정기적으로 오는 전화를 기다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사귀는 사이도 아니었다. 그리고 더더욱 썸이라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서로가 서로를 향해 삽질을 한다는 느낌이었다. 아, 참고로 삽질을 더 많이 하는 쪽은 내가 아니라 유리.


 "...하아."

 "이세하 요원, 얼굴이 밝아보이네? 오늘도 그 걸한테서 전화가 왔나 **?"

 "네? 아, 네..."

 "정말 부럽단 말이야."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뉴욕 본부 안에서는 정말 풋풋한 사랑을 한다며 부러움을 한몸에 받고 있었다. 근데 당사자인 나는 내가 하는 게 정말 저들이 말하는 그 풋풋한 사랑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엄청 들지만...


 ...그냥 확 좋아한다고 먼저 고백해볼까. 그러기 위해서 일부러 휴가 시간에 신서울에 간다고 하는거였는데 시작하기도 전에 거절 당해버렸다.


 유리가 날 좋아하는 건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만으로도 금방 알아낼 수 있었다. 뭐, 유리는 감정 표현이 솔직한 아이니까. 그 점을 보고 반하기도 한거니까 딱히 나무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확신을 가지고도 먼저 고백을 하지 않는 내가 한심할 뿐. 누군가에게 내 감정을 밝힌 것이 그닥 좋은 경험으로 남은 적이 없었기에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보니 나도 정말 나 혼자서 삽질 많이 하고 있구나, 싶었다.


 이번에 꼭 돌아가면 고백을 해보기로 다짐했다.






[작가의 말]


http://cafe.naver.com/closersunion/238567


세하는 좋아한다고 해도 표정을 잘 숨길거 같은데 유리는 그렇지 못하고 얼굴 밖으로 다 표시될 거 같아서...써 본 간단한 글입니다.

랄까 요새 왜 이리 달달물 많이 쓰죠. 찌통물, 애쿼머린물 쓰고 싶은데...

2024-10-24 23:16:14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