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아] 마녀는 물레를 잣는다
루이벨라 2017-06-20 1
※ 중세유럽기반물
※ 중세유럽에도 혹시 위상능력자(혹은 차원종)가 있었다면 '마녀' 로 몰리지 않았을까 하는 망상에서 시작한 글
※ 여기서 나오는 '마녀' 는 일단 레비아가 아닙니다. 레비아를 모티브로 해서 만든 인물이라 레비아와 외모는 많이 유사하지만 전혀 다른 인물입니다.
어느 한적한 숲 속 깊은 곳에는 아름다운 마녀가 산다는 소문이 있었다.
마녀는 물레를 잣는다
-야야, 그 소문 들었어?
-무슨 소문?
-숲 속 깊숙한 곳에 마녀가 살고 있대!
-에에, 거짓말...
-진짜야...!! 게다가 마녀는 엄청난 보물도 가지고 있대...!!
3명이 모인 소년들의 대화를 언뜻 듣고 있던 여자는 사과를 집던 손을 잠시 멈추었다. 소년의 대화를 엿듣는 여자의 고운 입술이 살짝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최근 이 마을 내에서 그런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마녀가 이번에는 마을 변방에 있는 숲에 정착을 했다더라, 마녀가 나타나자마 숲 속의 모든 생물들이 죽기 시작했다더라, 밤에 숲속으로 들어가면 기분 나쁜 물레 잣는 소리를 듣게 된다더라, 그리고 그 소리를 따라 가는 곳에는 아름다운 마녀가 있다더라, 그 후로 살아돌아온 사람은 없다더라 등등...
뭐 그렇게 대수를 떨 정도로 대단한 건 아닌데 말이다. 여자는 새빨간 사과 두어개를 바구니에 더 담아 값을 치루었다. 가게 주인은 마을에서 처음 보는 듯한 여자에게 관심을 가졌다.
-아가씨, 혹시 요즘 마을에 왔나?
-네에, 맞아요.
이런 질문을 받는 건 한두번이 아니라 이제는 익숙하게 넘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따라오는 이상한 추덕거림은 도저히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자신의 미모에 반해 허접하게 접근하는 '인간' 들은 한 둘이 아니었다. 이 과일 가게 남자도 그런 축이었고.
-아가씨 혼자 말이야?
-네, 혼자서. 부모님과는 어렸을 때부터 헤어졌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혼자 살아왔죠.
혼자 왔다는 말에 남자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그 마녀에 대한 소문인가. 하긴...그럴 만도 하다. 마녀에 대한 공포는 이유없는 마녀사냥으로 내몰아졌고 죄없는 여자들을 계속해서 희생되었다.
이 남자도 딱 그거네. 미모로 보고 일단 접근했다가, '마녀' 일지도 모른다는 그것 때문에 한순간에 거리를 두는 거. 뭐...이 마을도 조만간 떠나야할 거 같았다. 매번 이런 식이었다. 조용하게 살려고 해도 '인간' 들이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하지만 이게 '마녀사냥' 으로까지 이어진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다. 몇백년 동안은 그래도 조용하게 살았는데.
-...그런데 아가씨는 왜 이렇게 사과를 많이 사가나?
-에에...
여자의 예리한 눈초리에 남자는 자신이 생각한 바를 들킨 거 같은지 잽싸게 다른 화제로 돌렸다. 여자는 자신이 들고 있는 새빨간 사과를 보며 말했다.
-제가 사과로 요리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사과잼이라던지, 애플파이라던지...
-흠...
이 남자와 에너지 낭비적인 이야기는 여기서 그만두어도 되었다. 여자는 다음에 또 오겠다는 뉘앙스를 취하며 가게를 나섰다. 남자는 여자의 뒷모습이 사라지자마자, 근처에 있던 마을 청년들에게 넌지시 말을 꺼냈다.
-저 여자 말이야...'마녀' 가 맞는 거 같아...
* * *
혼자 사는 건 익숙하다.
집은 일부러 크게 짓지 않는다. 어차피 혼자 사는데 관리하기 귀찮을만큼 큰 건 사양이었다. 그저 자신의 취미인 물레를 돌릴 정도의 공간만 있으면 되었다.
터무니없이 긴 시간을 보내왔다. 그만큼 시간에 대한 개념은 적어도 자신에게 있어서는 흘러넘치는 것이었다. 인간들이 자신의 집에는 무수한 황금이 쌓여있다는 소문도 퍼뜨린거 같은데 바보들 같으니...그들에게 있어서는 '시간' 이 그 황금이라는 사실을 모르겠지.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사람들 같으니.
그 긴 시간 중 유독 시간을 잘 보내는 데에는 물레를 잣는 것이 최고였다. 일정한 소리를 내며 자신의 손에서 완성되어지는 하나의 창조물. '파괴' 만을 모토로 해온 자신들의 가족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일이었다.
장을 봐온 것을 테이블 위에 정리를 하자니 뒤에서 매우 긴 뱀 두마리가 여자를 감싸기 시작했다. 해치려는 의도가 아닌, 반가움의 표시였다.
-그래그래, 오늘은 너희들이 좋아하는 애플파이를 만들거야.
뱀들은 기분이 좋다는 듯, 더더욱 여자의 몸을 휘감았다. 뱀들의 부드러운 피부가 살갗에 닿자, 여자는 간지럽다는 듯 작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너희들...곧 있으면 겨울이구나. 춥겠구나.
저번 겨울에 유독 추워서 이 아이들이 고생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조만간 너희들이 겨울나기를 할 수 있게 따뜻한 옷을 만들어주어야겠구나.
실의 양은 충분했다. 자신의 손재주만 있으면 거뜬히 두 벌정도는 만들 수 있었다. 뱀들은 이제는 아예 얼굴을 부비기 시작했다. 유일하게 있는 말동무 상대들에게는 여자는 많이 관대했다.
-너희들, 여기 마음에 드니?
끄덕끄덕.
-너희들이 마음에 들어서 다행이야. 하지만...
접시를 정리하는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가, 하마터면 접시를 깰 뻔했다.
-곧 이곳도 떠나야할 거 같아.
뱀들이 이리저리 고개를 갸우뚱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이유냐는 것이다. 그런 뱀들의 반응에 여자는 살짝 아프게 웃었다.
-곧 들통날거 같아. '마녀' 라고 내몰리기 전에 도망가는 것이 더 좋잖아?
* * *
조용히 사는 것이 좋다.
날 '마녀' 라고 부르지도 않고, 나에게 비난의 화살을 퍼붓지도 않고, 그저 애플파이를 만드는 걸 좋아하고 물레 잣는 걸 좋아하는 하나의 '사람' 으로 봐주는 건 바라지 않는다. 그냥 조용하게...
'나' 를 더 이상 '마녀' 라고 부르며 따돌리지만 않으면 좋겠는데...
...왜 항상 끝은 이 모양일까.
피가 똑똑 떨어지는 낫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마당이 지저분하게 되었잖아. 치우기 힘들게. 아...곧 여길 떠나려고 했으니 딱히 뒷정리는 안 하고 가도 되겠네.
무심히 아까까지 날 죽이려고 했던, 화형시키자고 주장했던 이들이었던 것들을 쳐다보았다. 그 중에는 아까 마을에서 내가 사과를 샀던 과일가게의 그 남자도 있었다. 역시, 저 남자가 발화점이었겠지.
항상 이런 식이었다. 조용히 살려다가도 언젠가는 들켜버리고, 그리고 이렇게 끝을 맺어지고. 그리고 난 또 다시 다른 마을로 가고...언제나 이렇게 끝이 폭력적인건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이렇게까지 안 하는 이상은 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 수가 없었다. 목격자가 된 이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사라지게 하는 주의는 아니었다. 다만 그 목격자들은 대부분 내 '보물' 을 탐하며 쳐들어온다. 내 입장에서 그들은 침입자였다. 그러니 난 내 몸을 방어하기 위해 낫을 휘두르는 것 뿐. 별 다른 건 없다.
오늘도 숲 속 깊은 곳에서 아름다운 마녀가 물레를 잣는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 * *
"...정말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던건가요?"
"상상은 레비아 양에게 맡길게요."
신서울의 어느 공원. <늑대개> 소속 대원인 '레비아' 는 어느 신비한 힘을 가진 여자와 만나게 되었다. 익숙한, 그리고 왠지 모르게 그리움까지 느껴지는 내를 가진 여자였다. 대화를 한두번 나누다보니 의외로 재밌어서 시간은 저녁 때에 가까워졌다.
여자는 레비아에게 재밌는 동화 이야기를 해주겠다며 방금 그 이야기를 해주었다. 레비아는 그 '동화' 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건 전혀 동화가 아닌, 실제로 있었던 일 즉, 자신의 옆에 앉아있는 여자가 실제로 겪었던 일이었던 거 같았다. 그래서 여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레비아는 그런 질문을 하고 말았다. 레비아의 반응에 여자는 오히려 익숙하다는 듯 맞받아들였다.
"동화 같지 않은 동화였나요? 하지만 그거 아세요? 우리가 알고 있는 평화로운 동화들도, 사실은 다 잔혹동화 그 자체였다는 거요."
"...그런데 어째서 제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신건가요?"
"그러게요...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여자는 앉아있던 벤치에서 발딱 일어나 몇발짝 거닐었다. 여자의 뒷모습은 왠지 모르게 쓸쓸해 보였다.
"당신이 나와 같은 군단 출신이라서? 아니면 나와 같은 용의 피가 흐르기 때문에?"
"...아, 알고 계셨다는건가요?"
"모르는 게 이상할 정도죠. 전 적어도 레비아 양보다는 훨씬 오래 살았답니다."
석양을 등지고 보여지는 여자의 얼굴은 레비아와 많이 닮아있었다. 레비아는 옆에 있던 지팡이를 꽉 잡았다. 여자는 그런 레비아의 태도에 웃을 뿐이었다.
"그렇게 경계하지 않으셔도 되요. 전 평화주의자여서요. 그렇기에 군단을 나와 이렇게 인간계에 있게 된 거고요. 그런데..."
"...?"
"인간계에 있는 것도 그렇게 평화롭지만은 않더군요."
난 평화주의자에요. 하지만 방금 전 그 이야기에서 내가 도대체 몇 명이나 되는 인간들의 생명을 무참히 빼앗았을까요? 적어도 레비아 양보다는 많겠죠. 레비아 양보다는 훨씬 오래 살았으니까.
여자의 미소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거 같았다.
"괜히 말이 많아졌네요. 나도 나이가 들은 모양이에요. 주마등이라도 스쳐지나가나. 괜찮아요. 어차피 이제 절 ** 않을테니 기억에서 지워버려도 되요."
"자, 잠깐만요...!!"
가려는 여자를 레비아가 필사적으로 잡았다. 뭘까...드는 이 감정은 도대체 뭘까.
"간다고 해도...이름은 알려주시지 않으실래요?"
"이름...이라..."
이름을 물어보는 레비아에게 여자는 갸우뚱거렸다. 이름? 딱히 필요없는데요? 라는 분위기.
"'이름' 이라는 건 나와 제3자의 관계를 구속하기 위해서 있는 인간들의 겉치레잖아요. 난 필요 없었어요. 앞으로도 필요 없을거고. 난,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인간들이랑 엮이지 않을테니까."
레비아, 당신과는 다르게 말이죠.
"그래도 이름을 알고 싶다면 이렇게 알아주세요."
"무슨 이름인데요?"
"'마녀'."
라고 말이죠. 그 말을 끝으로 여자는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 후로 더 이상 레비아의 앞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정말 그 여자는 '마녀' 였던걸까? 자신이 주장한대로, 아니면 사람들이 불러진 그대로. 레비아에게는 영원히 수수께끼로 남은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