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유리] 유리야, 결혼하자

루이벨라 2017-06-05 5

※ 업화님 감사합니다.

※ 유성이와 세라(작가의 2세 팬픽에서 등장하는 캐릭터) 깜짝 출연






 "엄마, 엄마!"


 예쁜 푸른색의 벽안을 가진 여자 아이가 한창 동화책을 읽다가 제 엄마를 불렀다. 여자 아이의 옆에서는 또래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었다. 여자 아이의 다급한 부름에 부엌에 있던 여자 아이와 똑 닮은 여자가 앞치마에 물을 묻히며 다가왔다.


 "무슨 일이야, 세라야?"

 "이거, 이거!"


 세라가 가리킨 동화책 속 안에는 왕자와 공주의 결혼식 장면이 있었다. 요새 아이들 동화책 작화는 너무 예쁘네, 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딸인 세라는 그 결혼식 장면을 가리키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여자에게 물었다.


 "엄마도 결혼했어?"

 "...으응?"


 갑작스러운 세라의 파고드는 질문에 여자는 당황했다. 분명 '드레스 예쁘다!' 라는 말을 할줄 알았는데, 딸의 질문은 제법 현실적이기까지 한 기습 질문이었다.


 "다, 당연히 결혼했지...!"

 "아빠랑?"


 다, 당연하지...!! 그럼 세라 아빠랑 결혼하지, 누구랑 결혼하겠니! 괜한 너스레를 피우는 여자를 빤히 보던 세라의 두번째 기습 질문이 펼쳐졌다.


 "엄마는 왜, 아빠랑, 결혼했어?"

 "..."


 여자는 이마를 짚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걸까. 얼굴은 왜 이리 화끈거릴까.


 -유리야...결혼하자.


 ...그리고 그 때의 말이 왜 생생하게 귓가에서 들린걸까. 벌써 몇년 전의 일인데도 아직도 그 때를 생각하면 얼굴이 저절로 홍당무가 되었다. 세라는 여자의 대답을 얼른 듣고 싶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빤히 바라보았다. 그런 딸의 모습에서 자기 얼굴을 찾은 여자의 얼굴에는 저절로 미소가 퍼졌다.


 "...사랑하니까."

 "...사랑?"


 정말 단순하면서도 확실한 이유였다. 세라는 끔뻑끔뻑 눈을 깜빡였다. 그 이유가 구체적으로 잘 다가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긴, 4살짜리 아이에게 조금은 어렵고 추상적인 대답이었으려나. 여자는 세라를 보며 다시 차분히 말했다.


 "세라는, 엄마 좋지?"

 "응!"

 "아빠도 좋지?"

 "유성이도 좋아."


 세라는 옆에서 자고 있는 제 동생도 포함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여자는 푸흡, 웃어버렸다.


 "그런거야."

 "그런거야?"

 "응."

 "...그렇구나."


 세라가 납득이 되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표정을 지은걸 보니 이제는 더는 질문을 하지 않을 거 같았다. 세라는 다시 자기가 읽던 동화책으로 열중하는 걸 여자는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옆에서 자고 있던 유성의 머리도 살짝 쓰다듬었다. 결이 좋은 머리칼이 꼭 자신의 남편의 머리칼과 감촉이 비슷했다.


 평화로운 어느 오후의 풍경이다. 여자는 턱을 괸 채로 잠시 그 때를 떠올렸다.


 미리 말하자면 정말 갑작스러웠다.




* * *




 -유리야...

 -왜 그래?


 몇년 전의 어느 날. 한창 임무로 바쁘던 나날들이었다. 사귀기는 하지만 임무가 배정이 된 곳이 달라 요즘 들어 자주 만나지 못했다. 겨우겨우 만나서 작은 찻시간이라도 가지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세하의 진지한 목소리가 들렸다.


 세하가 이렇게 낮게 저음으로 말을 하면 유리는 묘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세하의 목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설레게 하는 뭐라 말할 수 없는 매력이 있는 거 같았다.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연 세하는 한숨을 쉬더니 말고 자신의 손에 들린 캔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켜마셨다.


 -뭐야, 싱겁게...

 -...아니, 그냥...

 -뭐 사고라도 쳤어? 시말서 엄청 써야하는 사고야?!

 -그, 그런 거 아니야...!!


 세하는 다 마셨는지 캔을 찌그리더니 저 멀리 보이는 쓰레기통을 향해 휙, 던졌다. 캔은 우아한 곡선을 그리더니 쓰레기통으로 쏙 들어갔다. 유리는 그 행동에 불이 붙었는지 자신도 쓰레기통을 향해 빈 캔을 던졌다. 결과는 세하와 똑같았다.


 -그럼, 무슨 일인데?

 -...

 -속 시원히 말해. 설마 나한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라도 되는거야?

 -그, 그런 거 아니야...!!

 -그럼 뭔데 그래~


 흥흥, 하며 콧노래를 부르는 유리를 빤히 보던 세하는 갑작스럽게, 정말 갑작스럽게 입을 열었다. 정말 자연스럽게, '봄 다음에는 여름이다' 라는 투로 세하는 유리에게 말했다.


 -유리야, 결혼하자...




* * *




 -...

 -...

 -...

 -...뭐, 뭐라고 말 좀 해봐! 언제까지 이렇게 멍하게 있을 건데?!


 옆에서 짜증난다는 투에 세하의 목소리에 유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잘못...들은 건 아니겠지?! 하지만 잘못 들은 거라고 하기에는 옆에서 본 세하의 옆얼굴이 너무도 붉었다. 아마 자신의 뺨에도 그런 홍조가 피었을 것이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할까.


 -어...라?


 지금 이렇게 벤치에 앉아서 이야기를 들어서 다행이었다. 만약 지금 서서 이 말을 들었으면 100%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아버렸을 것이다.


 -나...왜 이러지...?

 -...!!


 왜 이러냐는 유리의 목소리에 소금기가 묻어나와서 세하는 황급히 유리를 바라보았다. 유리는...


 ...울고 있었다.


 -으...좀 방심해 버렸네.


 정말, 정말로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어.


 -울면...안 되는데...

 -유리야...? 서유리...?

 -울면...안 되는데...


 자꾸만 그 말만 반복하는 유리를 보며 세하는 어쩔 줄을 몰라했다. 왜, 왜 우는거야...? 설마 내가 이 말을 한게 마음에 안 들었던거야? 세하는 잠시 절망했다.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세하를 올려다보는 유리의 얼굴에는 미소가 피어올라있었다. 그 미소를 보자 세하는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아, 된거구나. 괜찮은 거구나.


 보통은 프로포즈를 정장을 입고 꽃다발을 주며 해야하는데, 꽃다발은 있지만 정장은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 둘 다 요원복 차림이었다. 세하가 벤치 뒤에 준비해둔 꽃다발을 꺼내자 유리는 알 수 없는 환호성을 질렀다. 꽃다발이 갑자기 나온 것도 그렇고 거기에 정말 프로포즈에는 항상 나오는 작은 보석 상자가 껴있었다. 큼큼...잔기침을 하는 세하를 유리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말없이 바라보았다. 아니,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입만 열면 나오는 환호성은 지금 유리의 심정을 충분히 설명해주고 있었다.


 -다시 한번 말할게.


 끄덕끄덕-


 -유리야...


 그 때의 세하 얼굴이 같이 들고 있던 붉은 장미꽃같이 어찌나 붉었는지...


 -우리...결혼하자.




* * *




 "세라가 정말 그런 말을 했어?"

 "그렇다니까!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저녁, 세하가 돌아오자 유리는 오늘 오후에 있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유리에게 상황을 다 들은 세하는 하하, 웃었다. 유리는 그게 웃을 일이냐며 얼굴을 부풀렸다. 내 딴에는 심각한 일이었단 말이야!


 "그 때 말이야, 나도 모르게 왜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난 조금 당황스러웠다? 내 딴에는 그래도 용기를 내고 한 말이었는데,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고..."

 "좋아서, 그랬던거 같아."


 아마도 그럴거야. 그 말을, 세하 네 입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거든. 그리고 그 직후 갑자기 나타난 꽃다발과 반지. 그 뒤에 다시 들었던 잊을 수 없는 그 말. 세하의 질문에 대한 유리의 대답은 당연히 'Yes' 였다.


 "여하튼, 세라는 방심을 할 수가 없다니까."

 "하하, 그러네. 유리를 닮았어."

 "엑?! 내가 그렇다는거야?!"

 "...그렇다는 게 무슨 의미야, 도대체."


 이 평범한 나날들이 정말 행복하다.


 그러고 보니 그때의 세하의 말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유리가 프로포즈를 수락한 다음에서 했던 말이었다. 너무 기뻐하며 아까전의 유리와 같이 손을 얼굴로 감싸며 말을 잇지 못하는 세하가 겨우겨우 했던 이 말.


 -꾸...꿈은 아니겠지? 꿈이면 이렇게 행복할리가 없는데.


 꿈이 아니다. 현실이었다. 그리고 행복해도 되었다. 봐라, 지금 이렇게 행복하지 않은가.


 계속 행복해도 되었다. 이렇게 네 명이서.






[작가의 말]


http://cafe.naver.com/closersunion/236311


작가가 한 5 ~ 6살때 어머니한테 비슷한 질문을 한적이 있는데 그때 어머니가 하셨던 대답이 너무 쿨내나셨더라죠.

'사랑했으니까 결혼했지.'

여담으로 '세라와 유성' 이라는 부분에서 눈치채실 분들도 있을거 같네요. 이 소설이 끝난 이후의 이야기가 얼마나 절망(?)적인지...

2024-10-24 23:15:45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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