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심란함

웨스커 2017-06-04 2




그리 기쁘지 않은 날이었다. 아니, 최근에 기쁜 날이 있었을까?
기분이 나쁜 날과 기분이 역겨워서 가끔 구석에 나홀로 부둥켜 앉고 울고 싶은 날. 요즘은 둘중 하나였던 것 같다.
여느 때와 같은 훈련과 실전의 나날 속에서 나는 차원종의 피가 튀기는 것에
차원종이 기분 나쁜 비명을 지르는 것에 점점 무감각해져갔다.
내가 분명 수습요원이 되는 것만으로도 기뻐했던 것이 엊그제같은데 과연 그게 기쁜 일이었을까?
시커매진 하늘을 바라보았다. 한시 바삐 움직이는 날 비춰주던 태양이 사라진 하늘은 평소와 달리
유독 별빛이 빛나는 하늘을 나에게 비춰 주는 느낌이었다.

" 후우.. "

깊게 숨을 들이쉬어 한숨을 내뱉어보았다. 가끔은 내 어깨가 무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짊어진 자존심, 내가 짊어져야 했던 복수심, 그리고 내가 해내야만 했던 바램들까지.
해낼 수 있을거라 나를 속이며 걸어왔던 삶 속에서 오늘따라 사무치게 무거운 것들.

" 무슨 일이야, 대장. 그렇게 고개를 푹 숙이고 말이야. "
" 아, 제이씨. "

언제나처럼 그는 살갑게 나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다가왔다. 하지만 그 가벼운 미소 속에서
날 걱정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는 내 어깨에 손을 가벼이 올려놓았다. 
서로 눈을 마주쳤다. 그러나 그의 눈을 쉽사리 오래 바라보진 못했다. 

" 별거 아니에요. 그냥.. 오늘 기운이 좀 없나봐요. "

그저 기분이 잠시 혼란스러운 날이라는 것마냥 둘러대어보았다. 
하지만 이미 다 안다는 듯 그는 잠시 내가 바라보던 하늘을 같이 바라보며 말했다.

" 흐음. 우리 대장님께서 이러시는 분이 아닌데 말이야. 적어도.. 남 앞에서 이렇게 약해지는 사람은 말이야. "

과장스럽게 다가오며 나에게 미소짓는, 얼른 말해보라는 그의 얼굴을 뿌리치기 어려웠다.
그는 언제나 말한 적 있었다.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 자신에게 찾아와서 털어놓아도 된다고.
자신이 자는 때나 식사를 할 때, 그 어느 때에도 자신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면 내 편이 되어주겠다고.
짐이 무거웠다. 어느 때와 같은 짐이었지만 어느 때와 같은 자신이 아니었기에 
조금은 털어놓아도 될 것 같다고 잠시 마음을 먹었던 것 같다.

" 사실.. 제가 하는 일에 대해서 좀 생각을 해봤어요. "
" 음. 클로저의 일 말이야? "
" 네, 사람을 지키는 일이라는 건 굉장히 멋지고 사명감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

그는 알겠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도 그런 고민을 해봤던 것일까? 말을 잇지도 않았건만.
그는 자신의 선글라스를 빼어 닦으며 말했다.

" 말하는 차원종.. 때문이지? "
" ...네. "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다. 말하는 차원종과 마주해 직접 그를 죽여야만 했다. 인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비명을 억누르는 모습으로 죽어갔다. 여느 인간이 그렇듯 우리를 저주하며 죽어나갔다.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소름이 끼쳤다. 그를 죽인 뒤 튄 피를 바라보며 잠시 넋을 잃었다.
내가 바랬던 게 이것이었을까. 어른보다 잘할 수 있다고 자신을 채찍질하며 내몬 곳이 바로 이곳일까.

" 그 녀석을 죽인 게 옳은 일이었을까요? 제가 잘 해낸 걸까요? "

내 질문에 그는 바로 말을 하기 어렵다는 듯 고개를 잠시 저었다.

" 당연히 혼란스러울 수 있어. 차원종들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아주 많이 인간과 닮았거든. "

그도 옆에서 자신의 일인 것인 양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생각한 말하는 차원종은 그저 악의가 가득한 괴물에 가까웠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내가 마주한 차원종은 인간과 흡사한 '의지'를 가진 지성체였다. 그의 죽는 순간까지도
내가 평소 마주했던 괴물로 보이지 않았다.
 
" 제가 죽였던 차원종도 가족이란 게 있을까요..? "

부모님이 차원종에게 죽은 뒤로 복수를 각오했다. 
만약 내가 죽여나갔던 차원종 중에서도 그런 자들이 있을까. 그들을 그리워하며 기다리는 자들이.
내가 그저 악순환의 굴레에 빠져 복수를 끝없이 행한다면 나 역시 같은 최후를 맞이하지 않을까.
머리가 아플 정도로 수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내가 하는 행동이 선이 아니라는 것 또한.

" 후우, 나도 한때 그런 고민을 하던 때가 있었지. 하지만 그땐 말야. 내 전우들 역시 죽어나가던 상황이었지.
  그래서 난 한가지 결단을 내렸었어. "
" 그게.. "

조심스레 그에게 물어보자 그는 생기있는 눈빛으로 말했다. 평소에 칼바크란 자가 말했던 의지를 가진 눈빛은
아마 이런 것을 두고 말한 것일거라 생각했다. 그는 선글라스를 가볍게 다시 썼다. 그리고 하늘의 별을 보며 말했다.

" 날 위해서가 아니고 내 전우들을 위해 싸우자고. 선량한 사람들을 위해 싸우자고 말이야. 
 우린 정의가 아닐수도 있어. 하지만 꼭 정의로울 필요도 없지. 선량한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건 우리뿐이니까. "
" 그걸로.. 충분하셨던 건가요? "

나의 질문에 그는 고민할 것도 없다며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확신에 찬 목소리.

" 물론이지. 큰 힘엔 큰 책임이 따르니까. 만약 내가 한 일로 내가 지옥에 간다면
  난 콧노래를 부르면서 염라대왕을 만날거야. 왜냐면 내가 구해낸 다른 사람들은 천국에 갔을 테니까. "

그러자 웃음이 터져나왔다. 아마도 가장 전장을 헤맸던 그는 내 생각보다 강인하게 살아남은 자였다.
평소에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실수를 내보이고 웃음을 주는 그 답지 않았다.
하지만 그 편이 좋았다. 평소에 허리가 아프다며 울상을 짓는 그의 모습과는 다른 강인한 느낌.
가끔은 몸을 기댈 수 있는 자였다. 
내가 미소를 지어보이자 그도 실실 웃으며 드디어 웃었다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마치 부모님과도 같은.. 따뜻한 손이었다.

" 고마워요. 조금 나아졌어요. "
" 좋아, 이제야 우리 대장님다워. "

만족스럽다는 듯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겐 고마웠지만 무안한 느낌이 앞서버렸다.  
하지만 머리를 쓰다듬는 것이 꽤 많은 시간이 흘러도 멈추지 않자 머뭇거리며 말했다.

" 제이씨는 대장에게 머리를 쓰다듬나요? "
" 아핫, 대장님 머릿결이 생각보다 기분 좋아서. "

평소때와 같은 장난기넘치는 목소리. 그래, 그것 또한 듬직한 그의 모습이었다.

" 뭐에요. 그게! "
" 악,악! 아파! 그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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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신이 준 세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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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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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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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자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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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번째 소설에 해당합니다.



2024-10-24 23:15:43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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