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하/세하 생일 축전] 미래를 보는 보석(feat. 170603)

루이벨라 2017-06-03 4

※ 문스톤의 인도 전설을 토대로 썼습니다.(문스톤의 인도 전설은 아래를 참고)

※ 문스톤이 6월의 탄생석이기도 해서 6월이 생일인 세하한테 어울리겠다 싶었습니다.

※ 설정 날조주의(?)







 아빠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희미했다. 얼굴조차도 희미한 아빠에 대한 기억은 당연스럽게도 없었다. 하지만 딱 하나 기억나는 것이 있었다.


 내 손에 푸른 보석을 지어주던 아빠의 손. 그 보석을 내 손에 쥐어주면서 아빠가 뭐라고 말을 했었다. 나에게 말을 거는 아빠의 목소리는 정확하게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빠가 나에게 했던 말이 어떤 말이었는지 대강은 기억하고 있었다.


 -소중히 다루렴.

 -왜요?


 아빠는 보석을 내 손에 주먹에 들어가게 쥐어주며 이렇게 말했던 거 같았다.


 -이 보석은...




* * *




 "...아."


 또, 또 꿈이다. 요새 이맘때면 아빠 꿈을 꾼다. 평생 내 기억 속에 남아있을 거 같지도 않으신 아빠가 이럴 때마다 자주 내 꿈 속에서 나타난다는 점이 이상하다. 부스스한 머리를 대충 정리하는데 선탁 쪽에 작은 주머니가 있었다. 그 주머니 안에는 꿈에서 아빠가 나한테 주었던 보석이 있었다. 주머니를 털자, 아담한 크기의 보석들이 내 손바닥 위로 떨어진다. 푸른색의 보석이 2개, 하얀색의 보석이 1개. 총 3개의 보석이었다.


 아빠가 '보석' 이라고 말을 해서 이 돌이 '보석' 인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보석의 정확한 이름 따위는 알지 못했다. 영롱하게 생긴, 주변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보석이긴 했다. 엄마는 내가 이 보석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듯 했다. 아니,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시는 걸수도 있었다. 아빠와 나의 추억은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내가 엄마에게 꺼내는 유일한 아빠와의 경험은 이 보석과 관련된 것뿐. 엄마도 일부러 내 앞에서 아빠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엄마에게도 아빠와의 기억은 행복했던 한편 슬픈 일이어서 그럴 것이다. 어쩌면 엄마는 아빠라는 존재를 접하지도 못한 아들에게 미안함을 가지고 있는 거 같았다. 그러니 내 추측상 엄마는 이 보석에 대해 대강은 알고 있다.


 부엌으로 내려가보니 웬일인지 엄마가 아침을 준비하고 계셨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엄마는 내 쪽으로 뒤를 돌아보셨다. 일어났냐며 나에게 다가와 가볍게 포옹하는 엄마의 몸에서는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희미하게 났다.


 "...뭐하시는거에요?"

 "오늘 우리 세하 생일이잖아! 그래서 엄마가 미역국 끓여주려고..."


 ...아. 오늘 달력을 보니 2018년 6월 3일이었다. 내 생일. 그러고 보니 아빠와의 짧은 기억이 꿈으로 나타나 보이는 시기도 이맘때였다. 흔히 말하면 내 생일이 가까울수록 아빠는 내 꿈 안에서만 나타나셨다.


 엄마의 요리 솜씨가 영 못미더웠지만 일단 식탁에 앉았다. 겉으로 보이는 미역국은 제법 괜찮게 보였다. 한술 뜨는 날 엄마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보셨다.


 "...어때?"

 "...작년보단 낫네."


 괜찮다는 평에 엄마의 얼굴에는 드디어 미소가 펴졌다. 엄마는 항상 적어도 아들의 생일에는 미역국을 끓여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고 말했다. 난 그런 엄마의 강박증이 가끔은 안쓰럽기도 했다. 엄마는 나한테 해주지 못한게 많다고, 그로 인해 나와 엄마의 사이가 어색한거라고 생각하신다.


 물론 어렸을 때는 엄마를 보는 날보다 안 보는 날이 더 많았다. 그렇다고 엄마한테 서운해하지 않았다.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알고 엄마가 원해서 나와 떨어진게 아니라는 것도 알았으니까. 어린 나이에 생각보다 많은 걸 알아버렸다. 그 점에 대해서는 장점도 있었지만 단점도 있었다.


 이건 우연히 엄마의 통화를 들었을 때였다.


 -세하는 나에게 바라는 게 없는 거 같아. 가끔은 어리광도 부려주면 좋을텐데.


 엄마와 전화를 나누고 있던 전화 건너편의 상대방이 누군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보다 엄마가 나한테 가지고 있었던 조금의 죄책감을 알 수 있었다. 아닌데. 엄마, 그게 아니에요. 바라는 게 없는 게 아니에요. 난 그냥 엄마랑 같이 있는 것만도 너무도 만족해요.


 거짓말. 바라는 거 사실은 많았잖아. 네 안의 어린 이세하는 울고 있잖아. 왜 억지로 묻어버리려고, 어른인 척하는거야?


 ...바보 같다. 솔직하지 못한 나와, 솔직하면 안되는 내가 둘 다 바보 같다.


 엄마와의 관계에서도 이 정도니, 제3자와의 관계에서는 난 더더욱 고립되었다. 애초에 엄마는 그래도 날 '아들' 로 봐주지, 다른 사람들은 날 '괴물' 아니면 '알파퀸의 아들' 로만 본다. 그 시각에 맞춰주기 싫었다. 아, 그러고보니 나 째째했구나. 이거 나름대로 엄마에 대해서 반항하는 거였네. 어린 시절 엄마가 없는 것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반항. 그 반항 방식은 지금까지도 쭉 똑같다.


 그래도 난 옛날에 비해 지금의 내 생활이 마음에 들어했다. 적당한 생활. 누구와도 섞이지 않은 적절한 선을 그으며 사는 이 생활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원했던 건 이거였다. 정작 필요한 사람의 관심의 부재와 너무도 지나친 기대가 빚어낸 일이었다. 그래서 옛날에 비하면...옛날에 비하면 지금은 아주 좋은 생활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애를 썼는데...


 내 안의 어린 이세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 * *




 그날은 잠이 오지 않았다. 이미 내 생일은 며칠 전에 지났고, 그로 인해 아빠가 나오는 꿈을 꿀 시기도 지났다. 하지만 그 때쯤에는 아빠 꿈을 자꾸 꾸었다. 아빠가 나한테 했던 말. 뭐라고 했더라?


 나에게 보석을 쥐어주는 아빠의 온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소중히 다루렴.


 지금과는 달리 그때의 나는 뭐든지 궁금하면 바로 물어보는 아이였다.


 -왜요?


 아빠는 아마도 나를 보고 웃으신 거 같았다.


 -이 보석은...


 그 다음에는 항상 노이즈가 껴서 들리지 않고, 그날에서의 꿈은 선명하게 들렸다.


 -이 보석은 미래를 보여준단다.

 -미래?


 미래라면...내일, 모레 그런건가? 나의 질문에 아빠는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셨다. 아빠는 이렇게 부드러운 사람이었구나...처음 알았다.


 -언젠가의 미래일지는 모르지만 세하 네 미래를 보여줄거야.

 -미래를 볼 수 있어요?

 -그래.


 이때까지만 해도 난 내 미래에는 좋은 날만 있었을거라고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보석이 미래를 본다고 해도 나한테 딱히 필요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의 시큰둥한 반응에 아빠는 또다시 웃으셨다. 부드럽게.


 -우리 세하한테는 너무 어려운 말이었나? 미래를 보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단다. 우선 만월이 뜬 날 밤에...

 "보석을 입 안에 넣으면..."

 -된단다.

 "...!!"


 기억, 났다. 잠을 자던 중이었지만, 아빠의 '된단다' 라는 말을 신호탄으로 나는 벌떡 일어났다. 아주 조금, 희미하게 기억이 났지만 그래도 기억이 났다. 난 다시 선탁을 보았다. 아빠가 소중히 다루라고 했던 보석. 왜 소중히 다루라고 했는지. 난 주머니끈을 풀어 보석 하나를 내 손바닥에 떨어트렸다.


 "...정말이지..."


 난 아직도 그런 환상적인 동화를 믿을 나이는 아닌거 같은데. 내 동화는 이미 오래전에 깨졌다. 언제 깨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생각엔 아빠의 장례식날 깨졌던 거 같았다. 그렇게 부드럽게 웃어주던 아빠가 이제는 없다는 사실을 직감하며 난 내 동화를 버렸다.


 나 참...아빠, 지금 다 큰 아들에게 동화를 찾아주러왔다, 라는 유치한 내용으로 자꾸만 내 꿈에 나타났던 건 아니죠? 피식, 웃어본다. 누구한테 보내는 냉소일까. 아빠? 아니면 나?


 마침 공교롭게도 오늘은 보름날이었다. 만월(滿月)의 밤이다. 달은 은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무심코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지금 내가 손에 쥔 이 보석도...만월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달빛이 창문을 통과했다.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했다. 보석을 입안에 머금고 그 달빛 아래로 들어갔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져서인가. 은은한 달빛도 매우 눈부시게 느껴졌다. 그렇게 1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역시...난 왜 어떤걸 한걸까. 한숨을 쉬며 보석을 다시 손바닥에 올려놓는데...


 "...?"


 무언가가...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내가 있었다. 설마...그 이야기 진짜였어? 아빠가 나에게 했던 말은 진짜였던거야?! 믿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게 내 미래라고 제일 믿을 수 없었던 이유는 그 일행들로 보이는 속에 있는 내가...


 '진심으로' 행복하게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다녀올게요."

 "잠깐, 세하야!"


 그 꿈으로부터, 그리고 보석을 입에 머금던 날로부터 몇년 뒤의 나는...


 "오늘 일찍 들어올거지?"

 "최대한 빨리 돌아올게요."


 정말 그 보석이 나한테 보여준 삶을 살고 있었다. 그 보석이 보여준 건 아주 단편적인 부분이었고 세부적인 상황은 없었다. 그 세부적인 상황에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세하다!"

 "이세하, 뭐하다가 늦은거야?!"

 "이런이런...생일의 주인공이 늦으면 쓰나."


 오늘의 날짜도 6월 3일. 내 생일이다. 예전에는 내 생일이어도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사람이 엄마와 석봉이뿐이었는데, 지금은...


 축하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배로 늘어났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전부 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었다. 축하를 받고, 축하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건 정말 행복한 일이었다.


 빨리 파티장으로 가자고 서유리와 미스틸이 손을 잡아끌었다. 이번에도 잔뜩 준비해서 내가 놀라는 반응이 적지않게 궁금한 모양이었다. 그 이끌림이 마냥 싫지 않아 일부러 끌려가는 중이었다.


 처음 보석으로 미래를 보았을 때 믿어지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구나. 아니, 내가 이렇게 행복해져도 되는걸까. 그리고 그 일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어나기 시작하자 더 믿을 수 없게 되었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내가 먼저 다가갈 수 없었다. 난 이때까지 방관자로, 한걸음 멀어져있던게 익숙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맞잡은 동료들의 두 손의 온기가 따뜻했다. 그때 아빠가 내 손을 잡아주셨을 때의 온기 또한 이렇게 따뜻했겠지.


 ...이 행복이 마냥 싫지 않았다.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작가의 말]



http://cafe.naver.com/closersunion/236114


음...문스톤이 6월의 탄생석이기도 해서 세하로 쓰면 딱 맞겠다고 생각한거에요.

여기서 세하의 아빠에 대해서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아마도 자신이 곧 죽을거라는 걸 직감하지 않았을까요. 그렇기에 세하에게 문스톤을 맡긴거고. 그리고 그 문스톤에서 보여질 세하의 미래는 행복하기를 바라지 않았을까요.

세하의 엄마, 알파퀸은 남편을 잃은 슬픔과 아빠도 없는 아들에게 자신마저도 함께 있어주지 못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하는 자기 표현으로는 '철이 일찍 들었다' 라고 표현은 하지만 그건 아니죠. 세하 안에 있는 어린 시절의 세하는 울고 있죠. 그냥 묻어버리는 겁니다. 어느 책의 표현이죠. 나무의 상처가 난 부위가 햇볕도 맞고 바람도 쐬야, 단단한 옹이가 된다고. 무조건 덮어버리면 안되죠. 하지만 어린 시절의 세하는 자신이 지금 엄마에게 기대거나 어리광을 부리면 안그래도 힘든 엄마(남편을 잃은)를 더 힘들게 한다고 생각하여 일부러 숨긴거죠.

그래서 문스톤을 이용해 자신의 미래를 보았을 때 믿어지지 않았을거에요. 자기가 저렇게 웃는 날이 오는구나, 저렇게 많은 동료들(추측)앞에서 웃는 날이 오는구나. 너무 현실감이 없는 이야기면 더 거리가 멀어지죠. 하지만 몇년 후 세하는 문스톤이 알려준대로의 삶을 살죠. 참고로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2018년에서도 몇년 후, 2020년에서도 3~4년 후의 이야기입니다.

세하의 생일이라고 축전을 쓰는데 좀 행복? 이라고 하기에는 아리송한 글을 써왔네요. 제가 이 글에서 표현해보고 싶었던 부분은 '세하가 자신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였습니다. 정말 행복해져라, 세하야 ㅠㅠ...

어쨌든 세하야, 생일 축하해~

2024-10-24 23:15:42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