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나 생일] 170528
루이벨라 2017-05-28 3
똑똑-
냉장고 안에서 안전 모드로 휴식을 취하고 있던 티나는 이런 소리를 들었다. 소리의 근원은 아마도 누군가가 자신이 쉬고 있는 냉장고의 문을 노크하는 데에서 나온 소리 같았다. 안전 모드를 종료한 티나가 냉장고의 문을 열었다. 노크를 한 이는 레비아였다. 레비아는 옅게 웃어보였다.
"티나님, 혹시 시간 괜찮으세요?"
"무슨 일이지, 레비아?"
"하피님께서 같이 쇼핑을 가자고 하시는데, 저 혼자 가는 건 두려워서...티나님도 같이 가셨으면 해서요...!!"
레비아는 두 손을 모으며 티나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레비아의 부탁에 티나는 잠시 의문을 가졌다. 하피가 레비아를 데리고, 정확히 말하면 끌고 쇼핑을 하러 간 적은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레비아는 그래도 잔뜩 즐기고 왔다는 표정을 짓고 왔는데, 갑자기 그 쇼핑이 두렵다니...앞뒤가 맞지 않았다.
하지만 레비아의 저 간절한 눈빛을 보니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좋다. 가도록 하지."
"티나님...!! 정말 고맙습니다."
고맙다는 표정을 짓던 레비아는 의아한 듯이 갑자기 티나의 냉장고 안으로 손을 가져다댔다. 그 행동에 의아한 표정을 짓던 티나에게 레비아가 말했다.
"티나님, 티나님의 냉장고 혹시 고장난 건 아닐까요? 시원하지가 않아서요."
"...아아."
요새 들어서 냉장고의 냉기가 줄어든 기분이 들었는데 드디어 고장이 난 모양이었다. 트레이너에게 말해서 새 냉장고를 보급해달라고 해도 되지만 티나는 이따가 나중에 돌아와서 냉장고를 고치기로 마음 먹었다. 레비아를 따라 가니 하피 뿐 아니라 바이올렛도 같이 있었다. 저거였나. 레비아가 하피와의 쇼핑이 두렵다는 이유가. 확실히 레비아는 하피하고는 쇼핑을 간 적은 있었지만 바이올렛과는 간 적이 없었다.
"어서 오세요, 레비아 씨, 그리고 티나 씨."
"그러고보니 티나하고 쇼핑을 가는 건 처음이네요. 레비아하고는 많이 가보았지만."
"난 쇼핑을 해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평범한 인간들처럼 영양분을 섭취할 필요성도 없고, 성장하거나 노화하지도 않는다. 자신만 시간이 멈춰있는 기분을 티나는 가끔씩 느꼈다.
"그럼, 가볼까요?"
* * *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이상하게 긴장이 되었다. 세 사람이 옷 구경에 한창인 것에 반해 티나만 뻣뻣한 상태로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자신은 저격수라는 포인트 때문에 혼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작전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일까. 사람 속에 섞이는 것이 그닥 익숙하지 않았다.
"티나, 여기서 뭐하는거에요?"
"나는 따라와달라는 부탁만 했지, 같이 옷을 고른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까지 모처럼 왔으니 옷 하나라도 사보는게 좋을 거 같아요."
"맞아요! 곧 여름이기도 하니까요!"
티나님은 더위에 약하시잖아요. 레비아의 환한 웃음과 정곡을 찌르는 말에 티나는 말이 없었다. 벌써 5월밖에 안되었는데도 올해 날씨는 너무도 더웠다. 마지못해 세 여자의 손에 이끌려 옷가게로 들어간 티나는 곧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바이올렛, 이건 어떨까요!"
"흠...티나 씨한테는 좀더 화사한게 어울려요. 예를 들어 이런 원피스라던가!"
"바, 바이올렛님...그건 너무 화려한 거 아닌가요?"
3명은 자신에게 무엇을 입힐지 열띤 토론을 해댔다. 그리고 살짝 훔쳐본 3명이 고르는 옷은 '더위에 대비할만한 옷' 과는 거리가 먼 옷들 뿐이었다. 레이스가 달리고 치렁치렁한 느낌의 옷. 사실 저 3명이 오늘따라 좀 이상하다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피와 바이올렛은 딱히 표가 안 났지만, 레비아는 너무도 많이 표시가 났다. 저 3명은 지금 자신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였다. 대체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3명만 아는 은연 중의 뭐가 있는 게 분명했다.
티나는 앉아있던 의자에서 일어나 자신과 가장 가까이 있던 민소매 옷을 꺼냈다. 시원해보이는 하늘색이 티나의 마음에 무척 마음에 들었다.
"난 이걸로 하지."
"네?! 하, 하지만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조금만 더 생각해보고 사는게..."
"괜찮다. 애초에 난 여름 대비용 옷을 사러 온 거다."
망설임 없이 계산대로 향하는 티나를 보며 세 사람은 한숨을 쉬었다. 1차 선물 작전은 실패였다.
* * *
"오늘 늑대개 팀원들이 이상하다."
"그런가요?"
여기는 아이스크림 가게. 티나는 지금 슬비와 만나고 있었다. 앞에 담긴 자그만 아이스크림을 한입 먹은 티나의 얼굴로 행복한 미소가 퍼졌다.
"나한테 뭔가를 해주려고 하는 게 눈에 보인다."
"티나 씨한테 무슨 감사의 표현을 하고 싶어서 그런게 아닐까요?"
티나는 잠시 회상에 빠졌다. 쇼핑을 마친 하피가 먼저 모처럼의 외출이니 만큼 외식을 하자고 제안을 했다. 그에 대해 레비아와 바이올렛은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이라며 조금 과하다할 정도로 찬성을 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티나에게 물었다. 무엇이 먹고 싶냐고.
티나는 더운 날씨로 인해 몸이 더운 상태여서 '아이스크림' 이라고 간단히 대답했다. 마침 이 백화점 안에는 맛있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고 하니 그걸로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3명은 겨우 그거 뿐이에요?! 라는 반응을 보였다.
-왜 그러지. 아이스크림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다.
-그렇긴 하지만...
아, 그러고보니 이 3명은 아이스크림으로 한 끼 식사가 해결되지 않을게 뻔했다. 그에 대해 티나는 미안함을 표했다.
-미안하다. 내가 너무 내 기준으로만 생각했군.
-티나, 사과할 정도는 아니에요.
하지만 티나는 지금 아이스크림이 너무도 먹고 싶었다. 그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한입 삼키면 지금까지 올려온 열기가 모두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에 대해 티나는 가볍게 손을 쳤다.
-좋은 생각이 났다.
-뭔데요?
-난 아이스크림 가게로 가서 아이스크림을 먹겠다. 너희 셋은 다른 걸 먹고 2시간 후, 여기서 다시 만나도록 하지.
티나는 합리적으로 생각했지만 3명의 표정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얼핏 들으니 2차 선물 작전도 실패다, 라는 이야기를 들은 거 같았다.
-왜 그러지? 무슨 일 있나?
-아, 아니에요. 그럼 2시간 후, 여기서 다시 봐요!
무언가 그 세 사람의 표정이 적지 않게 신경이 쓰였지만 티나는 아이스크림 가게로 향했다. 그리고 그 가게 안에서 우연히 슬비를 만났다. 웬일이냐는 티나의 물음에 슬비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패밀리 사이즈로 아이스크림을 사면 사은품으로 펭귄 인형을 준다기에 온 거라고 조그맣게 말했다. 그러고보니 슬비는 펭귄을 좋아했더랬다. 아이스크림을 산 슬비가 패밀리 사이즈의 아이스크림은 다 못 먹을 거 같다며 티나와 함께 먹어줄 것을 권했다. 티나는 당연히 승낙했다.
티나의 말을 다 들은 슬비는 살짝 웃었다. 이에 대해 티나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이슬비는 알고 있다는 말인가.
"이슬비, 너는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말인가."
"저도 지나가듯이 들은거라 모르지만..."
슬비의 입에서는 뜻밖의 단어가 나왔다.
"오늘이 티나 씨 생일이라서 그런게 아닐까요?"
생일? 생전 처음 들어보는 단어. 생전 처음 들어본다는 건 과장된 표현이고, 자신과 관련되어서 '생일' 이라는 단어가 나올 줄은 몰랐다.
슬비의 예상치 못한 반격에 티나가 재차 물었다.
"생일...이라니."
"5월 28일. 티나 씨 생일이 아닌가요?"
"그 날은 내 생일이 아니다. 그 날은 내 제조일자이다."
"제조일도 생일이 아닌가요? 티나 씨가 이 세상에서 살기 시작한 날이니까요."
5월 28일을 기점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많은 사람을 만나 인연으로 이어졌다. 그 중에는 좋은 인연들도 있었지만 나쁜 인연들도 있었다. 자신이 지금의 '교관' 과 만나게 된 것도, 자신이 살아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군. 의미 있는 날이군."
"그래서 다들 티나 씨한테 감사함을 표하고 싶은 걸거에요."
슬비의 말을 듣던 티나는 고개를 도리질했다. 혹시 자신은 '생일' 이라고 하는 축복받은 일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까봐 슬비는 살짝 두려웠다. 이에 대해서는 레비아와 하피, 바이올렛한테도 살짝 들었다. 하지만 티나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다른 말이었다.
"오히려 내가 감사함을 표해야 한다."
"네?"
"물론 5월 28일은 내 제조일이다. 나의 생일이라고 해도 되겠지. 하지만 지금의 '티나' 를 있게 한 건 '나' 혼자가 아니다. 모두다. 교관, <늑대개>, 그리고 <검은양>."
"...티나 씨."
티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체의 열을 식혀내리기도 했고, 약속 시간도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가려는 티나를 향해 슬비가 작게 말했다.
"생일 축하해요, 티나 씨."
"고맙다, 이슬비. 그리고 나도 너한테 고맙다."
멀어져 가는 티나를 보며 슬비는 괜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 * *
티나는 지금 자신의 냉장고를 수리하는 중이였다. 쓴지 오래되어서 그런지 이곳저곳 손 볼 곳이 많아 수리하는 시간은 점점 늘어났다. 하지만 티나의 얼굴에는 조금의 지친 기색 하나 없었다. 아까 전에 얻은 따뜻한 기운 때문일까.
점심을 먹고 돌아온 약속 장소에 돌아간 티나를 레비아가 먼저 발견했다. 바이올렛이 그럼 이제 가볼까요? 라는 말을 하자 티나가 먼저 제안했다.
-모처럼만의 외출이니, 좀 더 즐기고 싶군.
아까까지만 해도 불편한 기색이 만연했던 티나가 먼저 그런 제안을 하다니...모두들 놀랐다. 그리고 실제로 티나는 '즐기고 싶다' 라는 말처럼 모처럼의 외출을 즐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티나의 방어적인 태도에 지치던 그 3명도 나중에 가서는 정말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숙소로 돌아가면서 티나가 넌지시 물었다.
-혹시, 오늘이 나의 생일이라서 일부러 그런 것인가.
정곡을 찔리는 기분이었다. 변명을 하는 하피와 바이올렛, 레비아를 보며 티나는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보기 드문 티나의 미소였다. 그리고 티나는 이 말을 했다.
-모두들, 고맙다.
이 작은 울림. 이 작은 울림에도 그렇게 마음이 따뜻해졌다. 심지어 레비아는 눈물을 훌쩍이기까지 했다. 하피와 바이올렛은 '저희도요.' 라며 작게 호응해주었다.
"티나, 뭘 하고 있는거지?"
"트레이너군. 냉장고를 고치고 있었다."
한창 냉장고를 고치는데 트레이너가 뒤에서 나타났다. 냉장고를 고친다는 티나의 물음에 트레이너는 의아한 듯 물었다.
"그럼 새 것을 보급해달라고 하지, 왜 직접 고치고 있는거지?"
"기억 안 나나, 트레이너. 이 냉장고는 당신이 나한테 처음으로 준 냉장고이다."
"..."
"그래서 오래도록 쓰고 싶다."
그러고보니 티나는 이 냉장고를 애용했다. 오래된 냉장고이니만큼 요 근래 들어 고장도 잘 났다. 하지만 그때마다 티나는 손수 수리를 해 다시 썼다. 그럴 바에는 그냥 새 것을 사달라고 하면 되지 않나, 싶었고 오늘이 티나 생일이라며 막 <늑대개> 팀원들이 너스레를 떠는 걸 보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티나의 딱딱하지만 진심이 담긴 대답을 들으니 트레이너는 말문이 막혔다.
"..."
"사실 새로 사달라고 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내가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티나."
"하지만 이제 이 고집도 오늘로 끝인거 같군. 도저히 내 손으로 고칠 수 없는 지경까지 왔다."
불행하게도, 티나의 냉장고는 이제 다시는 살아날 수 없게 된 거 같았다. 티나가 풀이 죽어보이자 트레이너는 헛기침을 괜시리 했다. 이번이 아주 좋은 기회인거 같았다.
"이 참에 새 냉장고를 보급해주지."
"정말인가, 트레이너?"
"그래...네..."
생일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라는 말은 차마 꺼낼 수 없었다. 하지만 티나는 그건 개의치 않는 듯 했다. 이번에 새로 생기는 냉장고 또한 트레이너가 주는 거라는 것에 더 의미를 두는 모양이었다.
"고맙다, 트레이너."
"그래...생일 축하한다, 티나."
갑자기 쑥 들고 오는 트레이너의 말에 티나는 적잖이 놀란듯 했다. 이 남자의 성격을 알고 있다. 이 작은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큰 결심이 있었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꼭 이 말을 해줘**다는 걸 알았다.
"나도 다시 한번 고맙다, 트레이너."
진심이었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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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나야, 생일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