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유리] 유성우(流星雨)

루이벨라 2017-04-13 14

※ 지인분 리퀘입니다.

※ 유리 특수요원 퀘스트 이야기가 살짝 날조되어있습니다.






 -나랑 별똥비 보러 가자!

 -...이런 늦은 밤에...?

 -가.자.니.까!


 어느 초여름 밤에, 내 고집으로 세하와 단둘이 별똥비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한적한 곳에서 보고 싶다는 나의 말에 세하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하늘이 탁 트인 언덕으로 데려가주었다. 그리고 거기서 우리는 별똥비를 구경했다.


 -그러고보니, 별똥별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했잖아!

 -...넌 아직도 그런걸 믿는거야?!

 -우리, 소원 빌자!


 내가 막무가내로 밀어붙이자, 세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두 눈을 꼭 감고 손을 모아 소원을 비는 자세를 취했다. 나도 똑같이 그러했다. 잠깐의 침묵, 그 침묵 동안에도 우리 위로는 별이 두세개 더 떨어졌다.


 -이야, 별이 참 예쁘다.

 -...그러게.

 -세하는 무슨 소원 빌었어?


  나는 참 짓궂었다. 무슨 소원을 빌었냐, 는 나의 물음에 세하의 얼굴은 급속도로 빨개지기 시작했다. 귀까지 말이다. 세하가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자, 난 괜한 심술이 더 생겨 세하에게 재차 물었다.


 -응? 뭔데뭔데! 알려줘...!

 -...그보다 서유리, 너 그 이야기 알아?


 세하는 자신의 소원 내용에서 대화 주제를 환기시키려는 듯, 다른 말을 꺼냈다. 내가 고집스럽게 소원 말해줘! 라고 하자, 세하는 알았다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말해주겠다라는 미끼를 던졌다. 그리고 세하가 무어라고 말을 했는데...


 그런데...


 그 뒤로 세하가 무슨 말을 했...더라...?




* * *




 -승급...심사요? 제가 말이에요??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는 기쁘기도 하면서 놀라웠다. 데이비드의 추적을 계속하고 있던 이런 바쁜 와중에 내가 승급 심사의 테스트 요원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당연히 보여야할 태도였다. 심지어 테스트 요원이라도 승급 심사를 통과를 한다면 특수 요원이 된다니...이 달콤한 제안을 처음 들은 나는 기뻤다. 조금씩, 내가 실력을 키워나가는구나, 그래서 <검은양> 팀원들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구나...그러는 한편 놀라웠던 이유는, 아직은 부족하기만 한 나에게 승급 심사 제의가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유정이 언니에게서 바로 들을 수 있었다.


 -이번에 새로 개발한 승급 심사 프로그램인데, 안정성에 매우 의심이 간다고 해.


 유정이 언니의 만류에 난 이번 심사는 접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세린 선배의 무전을 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네?! 클로저 한명이 허락도 없이 프로그램에 들어갔다고요?!

 -네...! 그런데, 몇시간이 지나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있어요!


 방법은 하나. 다른 클로저가 한명 들어가서 구출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구출 작전에 가담하겠다고 한 건 나였다. 유정이 언니와 세린 선배 모두 위험하다며, 다른 이에게 맡기자고 했는데 난 단번에 거절했다.


 -클로저는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리고 전 위험에 빠진 사람은 그냥 지나치는 성격은 아니어서요.


 승급 심사를 하겠다는 욕심은 없었다. 내가 설명한 것처럼 난 위험에 빠진 사람은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그 사람을 구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프로그램 안에서 만난 메피스토의 제안도 당연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내 힘을 주면, 그 사람을 구할 수 있잖아?


 그러면 된거야.


 위상력이 없는 삶은 위상력이 있는 삶보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살았다. 그럼 검도 대회를 다시 참가할 수 있다는거네. 그러면 이번에는 우승을 목표로 달려볼까나...


 클로저를 그만둔다는 게 서운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위상력이 생긴 이후로 내 힘으로 좀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었다. 힘을 잃는다면 이제까지 구해주었던 이들을 다시는 못 구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내 힘이 닿는 데까지 구할거라고 생각하니까. 위상력이 없다고해서,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을 잃어버리는 건 아니였다.


 그렇게 결심을 다했던 그 순간이었다. 세하의 목소리가 들린 건.


 -...바보.


 바보? 가끔씩 세하가 내게 하던 말이었다. 그렇게 말하는 세하도 바보였다. 사실 무슨 사건이 생기면 귀찮아하는 거 같으면서도 먼저 나서고 화를 내는 건 세하였다. 어떨 때보면 세하는, 너무도 바보같이 한곳에만 집중을 하는 경향이 있었다. 게임에서든, 강남 사태에서든.


 ...바보는 오히려 너지. 아니, 우리 둘다 바보인가.


 상황에 맞지 않게 웃음까지 나와버렸다. 세하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바로 뭐라고 핀잔을 주었을 거 같다.


 메피스토가 내 쪽을 향해 - 아마도 힘을 뺏는다는 행동 같다 - 손을 뻗는 찰나, 내 눈앞에 환한 빛이 강하게 번쩍었다. 무슨 일이지, 갑자기 일어난 일이고 눈이 너무도 부셔서 자동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눈꺼풀 뒤로 빛이 약해지는 걸 느끼자 서서히 눈을 뜨자 내 눈에 들어온 풍경은 메피스토와 같이 있던 붉은색의 암석으로 이루어진 장소가 아니었다. 물음표와 느낌표가 오가는 티어매트 대책실의 천장이었다.


 -...여기는?

 -유리야! 정신이 드니?!

 -유리야...!!


 눈이 빛에 적응하자, 나는 내 옆에 서서 걱정스럽게 나를 내려다보는 유정이 언니와 세린 선배의 얼굴이 보였다. 내가 두리번거리자 둘은 안도의 빛을 띄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유리야...


 왜 다행이라는 걸까. 그제서야 유정이 언니 뒤로 사용 중인 기기 하나가 보였다. 갑자기 머리에 무언가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아까 들었던 기억 속의 보이스라고 느껴지지 않게 생생한 세하의 '바보' 그 한마디도.


 나는 결국 물어보았다.


 -무슨 일...있었어요?


 머뭇거리던 세린 선배는, 내가 몇시간을 지났는데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는 동안 유정이 언니와 세하가 티어매트 대책실로 찾아왔고, 세하가 내가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막무가내로 프로그램에 들어갔다는 말도 했다.


 옆에서 내가 구출하려고 했던 클로저가 깨어난 - 의료진들 사이가 요란해졌다 - 듯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세하가 있는 쪽만은 고요했다. 몇시간이 지나도 그대로였다. 결국 구출팀이 투입되었지만 그들은 세하를 찾을 수 없었다는 말을 할 뿐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멍하니 세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평온한 얼굴로 잠든 세하의 얼굴이 보였다. 눈앞이 뿌얘졌다. 아, 눈물이라도 나오나보구나...


 왜인지는 몰랐다. 그때서야 문득, 생각났다. 별똥비가 떨어지던 그날 밤, 동산 위에서 세하가 나에게 했던 말이. 지금, 바로 옆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광경인마냥 세하의 목소리는 또렷했다.




* * *




 -...그보다 서유리, 너 그 이야기 알아?


 세하는 자신의 손가락 안에 달을 가두며, 다른쪽 손가락으로 반원을 그리며 말했다.


 -별이 하나 떨어지면, 다른 하나도 사라지는거야.


 이 말을 한 너는 너무도 멋있어서, 그리고 이 세상에 있는 존재같지 않아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네가 별똥비에 빈 소원이 무엇이었는지라는 말조차도. 그 말을 입밖으로 꺼내는 순간, 내 앞에 있는 이세하라는 존재는 금방이라도 물거품처럼, 아까 떨어졌던 무수한 별들처럼 사라져버릴 거 같았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세하가 빌었던 소원의 내용을 듣지 못했다.




* * *




 "별이 하나 떨어지면..."

 -다른 하나도 사라지는거야...


 무심코 중얼거리는 말에 뒷부분은 환청인지 세하가 한 말 그대로가 들렸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는다. 창문 밖으로는 조금 잦아들은 매미가 우는 소리가 들린다.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연한 주홍빛을 띄우는 것으로 보아 저녁인듯 했다. 멍하니 보고 있다가 그 주홍색 빛 속으로 손가락을 넣어보았다. 따뜻하다.


 "...언제쯤 깨어나는걸까."


 그렇게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눈꺼풀 뒤로는 언제나 창백한 안색으로 잠들어 있는 세하의 모습이 보인다. 승급 심사 프로그램 사건 이후로, 세하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세하가 그렇게 된 뒤로 나는 매일 토요일 아침에 세하가 있는 병실로 병문안을 간다. 꽃다발을 한아름 들고 말이다. 병실이 너무 삭막하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 생긴 습관이었다. 지난 주에는 노란색 프리지아를 사갔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세하가 영영 눈을 안 뜰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말을 꺼내셨다. 그 말을 들은 직후에 몇몇은 울음을 터트리기도 하고, 다른 몇몇은 벽에 주먹을 내리꽂는 등의 분노를 표했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 침착했다. 옆에 있던 세하의 표정은 평온했으니까. 그저, 기분 좋은 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세하는 보기와는 달리 성실하고 부지런한 아이니까 일찍 일어나줄거라고 믿었다.


 그 믿음은 2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지고 있었다.


 "...순 거짓말이잖아."


 애꿎은 뜬소문 - 별똥별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 - 에 불만을 표한다. 별똥비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것...순 거짓말이야. 내 소원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세하와 같이 있고 싶다는 소원의 내용에는 세하가 저렇게 누워있는 조항은 포함되지 않았다. 세하와 눈을 마주하면서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고...그런 식으로 계속 세하와 같이 있고 싶다고 소원을 빌었다.


 ...이런 건 원하지 않는다고.


 -별이 하나 떨어지면 다른 하나도 사라지는거야.


 세하는 왜 그런 말을 나에게 했을까.


 괜히 심술이 나서 애꿎은 침대 시트를 꾸기며 분풀이를 했다. 내일은 토요일. 세하의 병문안을 가는 날이다. 처음에는 신나는 마음으로 골랐던 꽃다발도 이제는 쓸쓸하기만 하다.


 내일은 무슨 꽃을 들고 갈까나...




* * *




 내 품에는 작은 과꽃 꽃다발이 안겨져 있었다. 이제는 단골이 된 꽃집 주인에게 물어서 과꽃과 장미가 섞인 작은 꽃다발을 사왔다. 화려한 색상의 장미와 하얀색의 과꽃이 예쁘게 어울러져 있었다. 초여름, 장마철이라 그런지 아침에 집을 나올 때부터 흐렸던 하늘은 이내 비를 한두방울 내려뜨렸다. 요새 장마철이라고는 하지만 비가 유독 안와서 가물었다는 뉴스를 보았으니 이 비는 단비겠지.


 미리 우산을 가지고 오기 잘한 거 같아. 물방울 무늬가 박힌 투명우산을 보면 든 생각이었다.


 요즘 가물었던지라 내리는 비가 싫지 않았다. 그렇게 몇분 걸어서 도착한 병원. 익숙한 병원 정문, 프론터, 간호사들과 눈인사를 하고 엘리베이터로 향해 6층을 누른다. 601호. 세하가 있는 1인 병실이다.


 비가 내려서인지 병원 복도는 평소보다 더 어두웠다. 그렇다고 601호를 못찾을 정도로 어둡지는 않았다. 달칵, 병실 문을 열자 익숙한 소독약 냄새가 피어올랐다.


 선탁 쪽의 꽃병은 비어있는 상태였다. 1주일 전에 가지고 온거니 프리지아는 말랐을 게 분명했다. 간호사분이 치워주신거겠지. 오늘 가지고 온 꽃다발을 꽃병으로 옮기려는데...


 "...?!"


 ...난 그만 꽃다발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꽃다발이 떨어지면서 꽃잎들이 바닥으로 우수수 흩어졌다. 꽃다발이 망그러지든, 그건 상관 없었다. 그걸 신경 쓸 타이밍이 아니었다.


 "...말도...안돼..."


 더듬더듬. 난 처음 말을 배우는 아이처럼 한음절씩 내뱉었다. 그도 그럴 것이 늘 누워있던 세하가 침대에 앉아서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세하가 이렇게 앉으면서 나를 반기니 이질감마저 들었다.


 "..."

 "..."

 "..."

 "...안녕?"


 세하가 먼저 나에게 인사를 했다. 상냥했던 목소리는, 기억 속 그대로였다. 나는 천천히 세하 쪽으로 걸어갔다.


 별님은, 결국 내 소원을 이루어주셨어...


 다가간 나는 세하의 품에 안겼다. 세하는 자신의 품에 안긴 나를 말없이 토닥여주었다. 눈물이 나왔다. 그토록 바라던 소원이 드디어 이루어져서.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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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하가 말한 "별이 떨어지면 다른 하나도 사라지는거야." 라는 말은 어떤 책에서 본 문구였는데 한번 사용해보았습니다.

흔히들 별똥별이 떨어지면 소원을 이루어준다고 하지만, 별이 떨어지는 건 누군가가 죽는다는 의미도 있어서 중의적으로 한번 써보았습니다.

세하가 자는 걸 옆에서 턱 괴고 누워서 언제 일어나냐, 하는 식의 구경하는 유리의 구도를 참 좋아합니다.

유리의 소원 내용은 밝혀졌는데, 세하의 소원 내용은 무엇이었을까요? 한번 유추해보는 것도 재밌을거 같습니다.

랄까, 요새 글을 쓰면 배경이 다 초여름날이 되는 거 같다...

2024-10-24 23:14:56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