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하] Plan Alpha(플랜 알파)

루이벨라 2017-04-04 6

※ 츠별(@cheubyeol)썰을 바탕으로 써보았습니다.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다. 정신을 잃었는지, 내가 정신을 차린 곳은, 익숙하고 그리운 곳이지만 이제는 더이상 못 볼, 평화로운 신서울의 한복판이었다.


 그리고 난 그곳에서...


 -저기...괜찮으세요?


 '너' 를 만났다.




* * *




 "몸은 좀 어때?"


 방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어서 네가 들어온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모르는 척, 멍하니 창밖만 보고 있었다.


 이곳의 하늘은 아직도 맑구나. 재와 먼지로 덮인 '그곳' 의 하늘과는 전혀 다른 색채감이다.


 방 안에만 있는 나를 네가 찾아오는 경우는 삼시 **를 전달하기 위해 올 때뿐이었다. 옆에서 희미하게 나는 수프 냄새가 그걸 증명했다. 차라리 이런 태도가 나았다. 이런 몰골의 미래의 자신을 꼴도 보기 싫을 게 분명하니까. 좀 마음 약한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난 '나' 한테 미움 받는 걸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옆 선반에 쟁반을 내려놓은 너는, 할일이 끝났음에도 한동안 그 자리에 있었다.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대화보다는 침묵이 편한 우리들이었다.


 "...아직도 기억 안나?"

 "..."


 한참 후에야 겨우 너의 입에서 나온 질문에 고개를 저으지도, 끄덕이지도 않았지만 내 의사가 긍정이라는 건 저쪽도 눈치챘을 게 뻔했다. 같은 '이세하' 니까. 비록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한 미래의 이세하이기는 해도, 우리는 '이세하' 였다.


 처음 이곳으로 떨어졌을 때, 난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었다. 여긴...어디지? 신서울. 이렇게 높은 빌딩의 숲으로 둘러쌓인 신서울을 보는 건 오랜만이었다. 지금의 내가 있는 신서울은 다 무너진, 폐허라고 표현하는 게 더 걸맞는 곳이었다. 그렇게 멍하니 누워있는데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나한테 다가왔다. 빗방울과 함께 리듬을 맞추는 그 발자국 소리가 기분 좋게까지 느껴졌다. 이렇게 평화로운 기분인건, 너무도 오랜만이었다.


 ...그러니 이 작은 평화를 만끽하는 것이 끝나는 게 싫었다. 누군가가 오든, 그 사람은 나를 적대할 민간인이나 클로저일 게 분명했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뜻밖의 조우를 하게 된다.


 -저기...괜찮으세요?


 익숙한 목소리와 말투. 설마...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뛰었다. 그리고 올려다본 시선의 끝에는...


 -...

 -...


 '네' 가 있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애초에 가지고 오지 않은 나와, 우산을 쓸 겨를도 없이 온 너는 계속 그렇게 비를 맞는 가운데 우두커니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너를 보고 나서야 마침내 실감이 왔다. 아, 나 과거에 왔구나. 내가 이 끔찍한 용의 위광을 얻기 직전의 시간대로.


 너의 금안에서 당혹감과 혼란스러움이 스쳐지나가는 게 한눈에 보였다. 매일 아침 거울을 통해 보는 자신의 이목구비가 똑같은 상대가 눈앞에 나타났다면 자연스럽게 보일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 상대가, 위협적인 제3위상력, 용의 위광을 내뿜고 있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무전에서 무슨 잡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슬비겠지. 아마 신서울 한복판에 강력한 위상력 반응이 나타나니 확인차, 네가 여기에 파견된 것이겠지. 그리고 이슬비는 그뒤로도 연락이 없는 너에게 걱정이 되어 무전을 한 거겠지. 너는 뭐라고 말을 할까.


 너는 손을 위로 올리더니 한창 잔소리를 펼치고 있는 이슬비의 무전을 끊었다. 그 행동에 나는 적잖이 놀라며 동공이 약간 커졌다. 넌 손에 있던 건블레이드를 옆에 떨어뜨리고 내 얼굴과 시선을 맞추더니 이렇게 물었다.


 -...넌 누구야?

 -...


 차분한 목소리. 아, 내 목소리에도 이런 온기가 묻어나온 적이 있구나. 너와 비교해보니 지금의 내 처지가 너무도 처량하다. 아무 말 없는 나에게 너는 재차 물었다.


 넌 누구야...?


 글쎄, 지금의 나는 무엇일까. 잘 모르겠다. 지금 네가 원하는 답을 대충 유추해보면 '이세하다.' 라고 대답해야하는 게 맞았다. 그러나 입이 굳어버린 듯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좀 더 차분한, 그리고 따뜻한 목소리가 다시 나에게 물었다.


 -기억이 안 나?

 -...


 이때다. 난 고개를 까닥였다. 내 리액션에 너는 희미하지만 웃어주었다. 그런 나에게 너는 달콤한 제안을 했다.


 -그럼 우리 집으로 갈래...?




* * *




 "이세하, 너 언제까지 고집만 피울거야?"

 "내가 무슨 고집을 피운다고?"


 현관에서 작은 말다툼이 들렸다. 들키지 않게끔 거리를 최대한 좁혀서 대화를 엿듣기로 했다. 언뜻 벚꽃색 장발을 본거 같으니 상대는 이슬비인 모양이었다.


 "내가 모를 줄 알아?! 이세하, 그만 고집 좀 피워."

 "내가 무슨 고집을 피운다..."

 "지금! 네가 집에 데리고 있는 사람 말이야!"


 그날, 같이 집에 가자고 했던 날, 너와의 통신을 이슬비는 계속 하고 있겠지. 그리고 중간의 네 행동이 이상해서 조사를 따로 했겠지. 그리고 그 결과로...


 "...이슬비."

 "이세하, 지금 네 행동이 어떤 일을 벌일 수 있는지 알고나 있어?!"

 "내가 다 책임질거야. 그러니 걱정하지 마."

 "그 상대가, 용의 위광을 가진 제3위상력을 가진 존재라고 해도 말이야?"


 드디어,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을 이슬비가 집어냈다. 그에 대한 너의 대답은 상당히 박자가 맞지 않았다.


 "기억이 없잖아...! 그럼 괜찮을거야."

 "기억이 없어도, 위험하다는 건 사실이야. 그러니 유니온 격리소로..."

 "...안돼."


 왜일까. 넌 내가 이 집에서 나가는 거 자체를 굉장히 꺼려하고 있었다. 이유가 뭘까. 너는, 내가 고위험 차원종으로 분류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내 기억이 맞다면 넌 차원종이 될 나를 본다면 감정이 거세질텐데...그런데도 왜?


 "세하야...!"

 "미안. 이기적인거 미안해. 하지만, 나 이번 한번만 이기적으로 굴자."

 "왜 그렇게 필사적인데?"


 필사적. 그만큼 지금 상황에서 적절한 단어는 없어보였다.


 "...몰라."

 "...세하야."

 "..."

 "...네가 다칠 수도 있어."


 하긴, 내가 현재의 이세하에게 어떤 위해를 가할 지 모를 상황이었다. S급 차원종인 나를 막아줄만한 실력의 클로저는, 지금 이 집에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넌...


 "괜찮아."

 "..."

 "괜찮을거야."


 끈질기게, 고집스러웠다.


 이제는 더는 들을 필요가 없어서 방으로 돌아갔다. 현재의 이세하도 이해가 안되지만, 미래의 이세하도 이해를 할 수 없었다. 한동안 피와 광(狂)에 미쳐 살아서 내 마음에 이런 여유가 있었다라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계속 되는 파괴 충동에 지금은 자유로운 상태였다.


 이슬비의 말 그대로였다. 지금의 난 언제 폭주할지 가늠도 안되는 존재다. 이런 나를 아무런 대책 없이 평범한 주택가에 데리고 있다는 거 자체가 크나큰 용기였다. 난 무모했지만, 이렇게까지 무모하지는 않았다.


 옆을 보니 특수요원복이 옷걸이에 걸려 있었다. 지금 내가 지내는 방은 현재의 이세하의 방이다. 너는 지금 거실 소파에서 쪽잠을 잔다. 너는 왜 그런걸까.


 그리고 너의 말도 이해되지 않았다.


 이기적으로 굴어서 미안하다, 라니.


 ...지금 여기서 제일 이기적인 건 바로 나다.




* * *




 "...안 자고 있었어?"


 늦은 밤중에, 네가 나를 찾아왔다. 이슬비와 다툰 날의 밤이었다.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너는 알아서 침대 맡에 걸터앉았다. 매트리스가 한차례 출렁거렸다.


 "..."

 "..."


 우리들은 너무도 조용했다. 나 같은 경우는 입이 열개라도 모자라는 경우였고, 너의 경우는 무슨 말부터 꺼내야할지 모르는 경우지만.


 "...그 모습."

 "..."

 "...미래의 '나' 는 그렇게 되는거야?"

 "...!"


 순간적으로 놀랐다. 정말로. 난 너에게 '나의 기억이 돌아왔다' 라는 말을 꺼낸 적이 없었다. 아니, 너와의 대화는 늘 일방적이었다. 너는 말하고, 나는 듣는. 내가 모르는 척을 하자 너는 가볍게 웃었다.


 "알아."

 "...?"

 "너, 기억 안 잃어버린 거."

 "...!"


 다, 알고 있었던건가. 그래서, 이슬비에게 막연하게 무작정적으로 괜찮을거라고 밀어붙인거라던가, 이기적으로 굴어서 미안하다라던가.


 아, 너는 다 알고 있었구나.


 아, 알고 있는 게 당연한건가. 너와 난 '이세하' 인데. 모르는 게 이상한걸까.


 "..."

 "...말 안하고 싶으면 안해도 돼."

 "...너."

 "응?"


 오랜만에 듣는 내 목소리였다. 톤은 분명 같은데 어떻게 그 안에 담겨진 온기는 이렇게 다를까.


 "...언제부터 안거냐."

 "일주일 전부터."


 사건의 전개는 이러했다. 요 근래 자주 등장하는 고위험 차원종. 그 때문에 이슬비는 내가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을거라 생각하며 현재의 이세하를 설득한 것이었다고 한다. 어쨌든 요 근래 자주 차원종이 자주 출몰하는데 A지역에 나타나 한창 처리하고 있으면 B지역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B지역으로 출동을 하면, 이미 상황은 종료.


 몇번이나 이런 일이 일어났고, 그리고 그 장소에서 넌 푸른 불꽃의 그을음을 발견했고, 곧장 내 짓이라는 걸 알았다는 것이다.


 이제야 이슬비가 그렇게 강력하게 주장하는데 막무가내로 버티고 있던 게 이해가 되었다.


 네가 한 말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도 왜 그 일을 시작했는지는 모르겠다. 어느덧 정신을 차리고 있으면 내 검은 차원종을 베고 있었다. S급인 나한테는 간단한 일이어서 검은양 팀이 나타나기 전에 사라지는 건 쉬웠다. 하지만 다 알았다는 너의 말에 나는 피식, 거렸다.


 "...꼬리가 길었군."

 "길어서 잡혔지."


 그 그을음은, 똑같은 그을음을 남기는 자신밖에 알아챌 수 없었다고 말했다.


 "...도대체 왜일까."

 "..."

 "클로저인 이세하와, 차원종 군단장인 이세하가 만난 이유가 말이야."

 "..."


 무슨 뜻일까. 간절임? 바람? 소원? 난 그런 거, 근래에 들어 빌어본 적도 없다. 참 아이러니하다. 우리 둘이 이렇게 나란히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보장도 없는데. 난 이 기회를 빌어, 오래도록 묻고 싶었지만 차마 물어볼 수 없었던 것을, 드디어 입밖으로 꺼냈다.


 "넌 날 경멸하는가."

 "...잘 모르겠어."

 "..."


 너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잘 모르겠다. 나도, 너도,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른다. 확실한 건 너와 내가 '이세하' 라는 것, 그리고 이렇게 서로 마주보며 있다는 것.


 난 도대체 왜, 용의 위광을 받아들이기 직전의 시간대로 널 만나러 온걸까. 그리고, 나도 놀란 이 평화로움을 즐기는 여유는 뭘까. 난 왜 계속 널 도와주고 있는걸까. 그리고 그런 너도 날 왜 감싸주는걸까.


 이 물음표에 대한 대답은 머지않아 깨닫게 되었다.


 타임, 리미트.




* * *




 "......!!"

 "......!!"


 뭐야,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아. 그리고 몸이 전체적으로 솜이 물에 젖은듯 무겁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거야...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반투명해지고 그마저도 점점 사라지고 있는 중이었다. 아, 그랬다. 타임...리미트다.


 오늘은, 내가 겪었던 '그대로' 흘러갔다면, 내가 더이상 '클로저 이세하' 로 살 수 없는 날이었다.


 그때의 우리는 수적으로 밀려있었고, 단 하나의 방법이 있다면 누군가가 계약을 통해 반인반차원종이 되는 것이었다.


 난 망설임 없이 내가 하겠다고 말했다. 인류를 지키는 것이, 클로저의 의무라고 말이다. 팀원들은 당연히 날 말렸다. 하지만 난 고집스럽게도 밀고 갔고, 지금 현재의 '나' 로 변하였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는데...난 아무래도 그 결정을 후회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그 때 당시에는 그게 최우선의 플랜 A인줄 알았다. 그런데...지금 이 시간대에서 흘러가는 상황으로 보면 내가 선택했던 건 '플랜 B' 였나보다. 지금 것이 플랜 A일지도.


 미래가 바뀌었다. 그 뜻은, 내가 존재할 의미가 없다. 차원종이 된 이세하는, 이제 미래에는 존재하지 않다는 의미였다.


 끝(End)이라고 생각이 뇌리에 박혀있는데도, 지금의 난 차분한 기분이었다. 주마등...이라고 할까. 이곳의 이세하처럼 나한테도 <검은양> 이라는 팀원들이 있었는데...지금은, 그리고 이제도 ** 못하겠지만.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변한 나의 모습을 본 팀원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는 장면. 이슬비는 오열까지했다. 그런 이슬비가 나한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제멋대로 그런 거...막...정하지 말라고...이세하...


 그래, 그 말대로 난 끝까지 제멋대로다.


 난 정말 이기적이다. 끝까지.






[작가의 말]




나름 제정신 유지하는 광휘세하를 써보았습니다.

2024-10-24 23:14:48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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