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존

엔세이테 2017-03-05 2

 우리는 세상을 지키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희생해버렸다. 지킬 수 있었으니 다행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어쩔 수 없는 희생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기엔 너무 어렸고, 또 어중간하게 강했으며, 마지막으로 애매하게 약했다.

 그리고 그 결과, 세계가 전쟁의 끝에서 수많은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는만큼, 우리도 수많은 혹은 세계가 겪고 있는 것보다 더한 후유증 속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세하야…….

 누군가 내 옆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에 놀라 곧바로 깨어나 머릿맡을 뒤진다. 그리고 곧바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전쟁 속에서 들어버린 버릇은 지금까지 쓸데없이 남아있었고,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

 세하야……? 어딨어?

 익숙한 목소리, 익숙한 상황. 깜깜한 새벽에 누군가가 깨운다는 것은 불평해도 무어라 할 사람이 없겠지만, 나는 아무 말 없이 내 옆의 그녀, 슬비를 끌어안았다. 잠결임에도 ** 사슴마냥 바들바들 떨고 있던 그녀의 숨소리가 천천히 진정되었다. 이젠 익숙한 그녀의 잠꼬대였다.

 어렴풋한 시야, 이불에 싸여있는 모습임에도 비쩍 마른 그녀의 몸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한 섭식장애, 그녀가 가지고 있는 후유증 중 하나였다. 조금만 맛이 진한 걸 먹거나 조금만 급하게 먹어도 곧바로 화장실에서 음식을 토해버리는 것은 이미 식사 후의 일상 중 하나였다.

 한껏 몸을 움츠린 채 내 품으로 파고드는 그녀의 등을 살살 쓰다듬는다. 그제야 그녀의 숨소리가 조금씩 잦아들어 고르게 변했다. 악몽을 꾸고 있는 모양인지 그 와중에도 이따금씩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내용은 그리 상상하기 어렵지 않았다. 눈 앞에서 사라져가는 동료들의 모습이겠지. 나도 이따금씩 꾸곤 하는, 익숙해지고 싶지 않지만 익숙해져버린 꿈이었다.

 그녀를 끌어안은 채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본다. 내가 보는 흑백의 세상 속에서 그녀의 머리칼은 이미 밝은 분홍빛을 잃은지 오래였다. 후유증을 끌어안은 건 그녀만이 아니었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모든 위상력을 쏟아부은 나는 위상력과 함께 일부 감각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흑백으로 보이는 이 시야도,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 혀도 이젠 익숙해져버렸지만.

 촉각이 남아있는 걸 다행일까, 다시 나를 부르며 내 옷깃을 부여잡는 그녀를 어르고 달래며 그리 생각하곤 피식 웃었다. 이젠 나없이 살 수 없는 그녀보단, 정신이 부서져버린 그녀보단 적어도 나을 것이라 생각하며.




 그녀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 아침 식사 준비를 시작한다. 어차피 난 맛을 느끼지 못하지만, 아니, 그래서 더욱 더 식사 준비가 조심스러워진다. 색감도 이상한 상황에서 까딱해서 조미료 하나를 잘못 썼다간 그녀가 식사를 죄다 게워낼게 분명하기에. 그래도 요즈음은 그런 내 노력 덕택인지 조금씩 살이 붙어가고 있는 그녀였지만,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는 요원해보였다.

 세하야!

 아뿔사. 벌컥 문이 열리며 흐트러진 옷차림 그대로 그녀가 방에서 튀어나왔다. 본래라면 식사 준비가 끝난 후 내가 그녀를 깨우는데 오늘은 일찍 일어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게 상관없는 일이냐 하면, 절대 아니었다.

 가지 마, 가지 마…….

 비틀거리며 내게 다가온 그녀가 내 품에 얼굴을 묻었다. 유리도, 제이 형도, 테인이도, 트레이너 씨도, 나타도, 레비아도, 티나 씨도, 바이올렛 씨도, 하피 씨도. 모두가 그녀와 내 눈 앞에서 사라졌댔다. 나는 굳은 마음을 먹고 이미 떠난 그들을 내 마음 속에서 떠나보냈지만, 그녀에게는 그게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그녀는, 리더였으니까.

 내가 시야에 없으면 어미를 잃은 ** 동물처럼 나를 찾는다. 그게 그와 같은 것이면 나도 차라리 안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그녀의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제발 날 버리지 마…….

 당장이라도 내가 어디론가 사라질 것 마냥 나를 붙잡고 떨어지질 않는 그녀를 끌어안곤 머리를 쓰다듬었다. 가느다란 그녀의 몸은 내가 조금만 힘을 줘도 내 품 속에서 바스라질 것 같았기에 살며시, 조심스레. 새벽 중에 그랬던 것처럼 등을 살며시 쓸어주며 천천히 말한다.

 괜찮아, 다 끝났어, 난 여기에 있어.

 그 여린 몸 속에 있는 수분이 모두 마를까 두려워질 정도로 그녀는 내 품 안에서 한참을 울었다. 앞치마에 얼룩이 질 무렵에야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파란, 아니 파랄 눈동자 안에는 희미한 두려움이 비쳤다. 그녀는 조심성이 많았다. 그리고 전쟁은 우리를 비관적으로 만들었다. 나는 다시 그녀를 끌어안고 속삭였다.

 괜찮아,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 난 널 버리지 않아.

 그녀는 정말이지, 하고는 되물었다. 절박한 목소리였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내가 돌봐줘야만 했다.

 자, 늦었다. 아침 먹어야지.

 천천히 그녀를 품에서 떼고 그리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서있는 그대로 발걸음을 떼지 않았다. 나도 그걸 말리지 않았다.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내내 그녀는 내가 움직이는 대로 나를 따라다녔다. 연인 사이의 애정 표현이나 부모 자식 간의 신뢰가 아니었다. 그건 내가 어디론가 떠나면 붙잡으려 하기 위한, 그녀의 안타까운 심정의 표현이었다.

 아침 식사가 준비되고 나서야 그녀는 나와 함께 식탁에 앉았다. 거의 무미(無味)에 가깝거나 매우 연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마저 나머지 것들도 그녀가 간신히 먹는 몇몇 가지 반찬이었다. 내가 맛을 모르기에 더더욱 신중할 수 밖에 없었다. 내 옆에 앉은 그녀에게 나는 그렇게 준비된 음식을 조심스레 떠먹였다. 조금씩, 천천히. 우리의 식사는 한 시간 이상 계속되곤 했다. 작은 밥 공기 하나, 연한 맛의 반찬 하나 하나를 그녀는 한참을 오물오물 씹어야만 게워내지 않았으므로.

 한참을 밥을 먹다가 그녀가 갑자기 입가를 부여잡았다. 놀라서 곧바로 그녀를 화장실로 데려갔다. 그리고 그녀는 그간 먹은 그 모든 걸 토해냈다. 자그만 몸뚱이가 속을 게워낼 때마다 격하게 떨렸다. 구토하는 것마저 그녀에겐 체력이 달렸다.

 내 도움을 받아 입을 헹궈내고 나서 그녀는 발갛게 된 눈으로 나에게 사과했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며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다. 예전엔 두 번 중에 한 번은 게워냈으나, 지금은 이따금씩 한 번 게워낼 뿐이었다. 오히려 나는 그녀가 대견했다. 피골이 상접한 그녀가 병원 침대에 누워서 그 조그만 목소리로 내 이름을 계속 부르는 모습은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식사가 끝난 후에 그녀와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았다. 그녀가 유일하게 즐기는 것 중 하나가 TV시청이었다. 그녀는 그저 멍하니 TV를 볼 뿐이었고, 나는 무언가 잘못 될까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예전엔 웃지 조차 않았던 그녀의 얼굴에 이따금씩 자그마한 미소가 나타나는 것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조그맣게 내쉴 때도 있었다. 조금씩 그 때의 그녀로 돌아가는 것 같았기에.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다시 식사 시간이 다가왔다. 그녀는 나를 따라 종종걸음으로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절대로 나와 떨어지려하지 않았다.

 냉장고를 열어보고, 나는 실수 했다는 걸 깨달았다. 아침을 먹고 장을 봐왔어야 했는데. 아침에 그녀를 달래고 그녀가 식사를 게워내는 것에 정신이 팔리다보니 깜빡했던 모양이었다. 우리에게 외출은 힘들었다. 정확히는 그녀에게 외출은 힘들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바라볼 때 항상 책망하는 것처럼 느끼더랬다. 모자를 푹 눌러써야만 간신히 외출할 수 있었다.

 나는 내 뒤에서 서성거리는 그녀를 돌아봤다. 잠시간 고민했다. 평생 이렇게 살 수는 없었다. 내 욕심이겠지만, 나는 그녀가 당당했던 그 때로 돌아오길 바랐다. 가끔은 내가 그녀를 망친다는 생각도 들었다.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마음을 먹고 그녀에게 상처가 되지 않게끔 말했다.

 슬비야, 지금 찬거리가 없어서 그러는데 심부름 좀 갔다 와 줄 수 있어?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잠깐 이해하지 못한 듯 했다. 잠시 지나자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격하게 내저었다. 나는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배고프잖아, 밥 준비하고 있을테니까 갔다와주면 금방 점심 먹을 수 있어. 마트도 바로 앞이잖아. 알지? 항상 같이 갔는 걸.

 그녀는 고민하는 듯 했다. 아침을 게워냈으니 배고플만도 했다. 나는 다시 한번 그녀에게 부탁했다. 그녀도 큰 마음을 먹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속으로 환호를 했다. 큰 한 걸음이었다.

 옷을 갈아입히고 모자를 푹 뒤집어 씌웠다. 주변의 시선이 모두 사라지고 나서야 그녀는 조그맣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배웅했다. 어린 아이를 물가에 내놓는 심정이 이러할까, 라고 고민하면서 나는 집 계단을 내려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곤 집으로 들어왔다. 정말 식사준비를 해야했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밖에서 높은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목소리였다. 나는 재빨리 슬리퍼에 발을 꿰차고 달려나갔다. 그녀는 집 앞에서 한껏 몸을 움츠린 채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지나가던 아주머니 때문인 듯 했다. 아주머니도 놀라 우리에게 다가왔다. 나는 죄송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이고 아주머니를 돌려보냈다. 아주머니가 더 다가왔다면 그녀가 더 심한 패닉에 빠질 게 분명했다.

 그녀를 안고서 집으로 들어왔다. 품 안의 너무나도 가벼웠지만 팔은 한없이 무겁게 느껴졌다. 그녀를 침대에 뉘이고 머리를 한참 쓰다듬어주고 나서야 그녀는 울음을 그쳤다. 그리고 내게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버리지 말아달라고. 나는 아무 말도 없이 그녀를 끌어 안아 주었다. 내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또 다시 며칠이 지났다. 그 이후 몇 번 더 그녀가 혼자 무언가를 할 수 있게끔 자리를 마련해보았지만, 그때마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패닉을 일으켰다. 그때마다 그녀를 어르고 달랬다. 그리고 말했다, 넌 할 수 있다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가 옛날의 당당했던 리더로 돌아갈 수 있을거라 믿었다.

 하지만 실패는 계속됐다. 그쯤 가니 내가 문제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 내가 문제였다.

 그녀는 항상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존재였다. 잠깐 지쳐서 그랬을 지도 몰랐다. 어쩌면 잠시 후에 그녀는 툴툴 털어내고 또다시 굳게 살아갈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녀의 옆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나의 옆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내가 그녀를 망가트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뜬 눈으로 밤을 새우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눈물이 배어나왔다. 너는 그렇지 않았는데. 내가 잘못했던거니. 새근새근 자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그리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독하게 마음 먹었다. 어쩌면 그녀는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아니,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임이 분명하다. 세상 모른 채 곤히 자는 그녀의 머리칼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이제 나는 그게 분홍빛임을 알아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녀의 머리카락만은 아직 아름다웠다.

 그녀가 잠든 사이에 나는 내 모든 흔적을 없앴다. 애초에 얼마 있지도 않은 짐이었고, 철저하게 그녀를 위해 모든걸 마련했던 집이었다. 밤마다 조금씩 흔적을 지워나갔다. 그리고 마지막날, 집에서 내 흔적이 모두 사라졌다. 나는 모든 것을 없었던 채로 하려했다. 남은 흔적은 그녀 혼자 자기에는 큰, 더블 사이즈의 침대 뿐이었다. 나는 그녀가 혼자서 일어날 거라 믿었다.

 발소리조차 내지 않고 집을 나섰다. 이제 어디에 머물러야할까, 싶었지만 어떻게든 되리라 마음 먹었다. 마지막 의무라는 듯이 유니온은 우리에게 보상금은 넉넉히 줬으니까. 대부분은 그녀의 통장으로 들어가 있었지만, 내게도 몇개월 간은 살아갈 수 있는 금액은 있었다. 많지는 않지만 똑부러지는 그녀라면 그 보상금으로 충분히 살***라. 난 위상력도 사라져 이젠 클로저도 할 수 없는 몸이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다. 내겐 아직 몸뚱아리가 남아있었다.

 빠르면 며칠, 늦어도 몇 주 뒤. 나는 그녀가 그 기간 후에 일어설 것이라 믿었다. 혹시나 몰라 유정 누나에게 연락을 넣었다. 유정 누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알았다고 말했다. 찬성하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반대하지도 않았다. 너 나름대로 슬비를 위한 것일테니까, 라며 그녀는 전화기 너머로 중얼거렸다.

 어쩌면 내가 지쳤을지도 모른다. 내 사랑이, 그녀를 떠받들기엔 너무 작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날은 밤새 술을 마셨다. 이상하게 그 날따라 취하지 않았다.

 그렇게 방황한지 사흘째였다. 작은 여관 방 안에서 몸을 뉘이고 있을 무렵이었다. 밤 늦게 전화기가 거칠게 울었다. 비척거리며 일어나 전화를 받았다. 슬비의 목소리가 들려 휴대폰을 놓쳤다. 슬비 모르게 그녀의 휴대폰에서 내 번호를 삭제했고, 나와서 가장 먼저 한 것이 전화번호를 바꾸는 일이었다. 그녀가 이 전화번호를 알리가 없었다. 놀라서 휴대폰을 바라보니 유정 누나의 번호가 떠있었다. 다시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대자 유정 누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세하니?
 네.
 미안해. 빨리 와줄 수 있겠니.

 그녀는 그리 말했다. 전화기 너머에선 슬비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음이 약해졌다.

 안될 것 같아.

 유정 누나는 그리 말했다. 아무 말 없이 전화를 끊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이 늦었다. 비가 오고 있었다. 택시를 잡고는 기사를 독촉했다. 기사는 목적지를 말하자 이해한다는 듯이 가속 페달을 밟았다. 도착한 곳은 병원이었다.

 무슨 일로 오셨죠?
 1072호 환자 보호자인데요.

 간호사가 내 얼굴을 보며 순간 측은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직감했다. 나는 틀렸던 모양이었다.

 병실 앞에 도착하자 들리는 건 흐느껴우는 소리였다. 목소리마저 지쳐있었다. 손잡이를 잡으려다가 멈칫했다. 마음을 붙잡고 문을 열었다. 유정 누나가 지친 듯 벽에 기대있었다. 그리고 침대 위에는 슬비가 한껏 몸을 웅크린 채 울고 있었다. 그녀의 머리칼은 들쭉날쭉했고, 손은 붕대로 감겨있었다. 미처 닦지 못한 바닥의 자그만 둥근 자국들이, 그녀가 무슨 짓을 했는지 여실히 나타내주고 있었다.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었다. 발소리가 울리고 슬비가 고개를 들었다. 상처투성이가 된 얼굴로 나를 잠깐 바라본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그대로 침대에서 떨어졌다. 쿠당탕, 하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놀라서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를 붙잡았다. 그녀는 아랑곳 않고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버리지 마, 버리지 마, 버리지 마.

 그녀는 무릎 꿇은 채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은 채 그리 중얼거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눈에는 광기가 서려있었지만, 그건 처절했다.

 제발, 하라는 대로 할테니까, 심부름도 잘할게, 밥도 잘먹을게, 밤에 잠꼬대도 안할게. 응? 노, 노예처럼 하라면 할테니까. 봐, 신발도 핥을 수 있어.

 그녀는 정말로 얼굴을 처박고 내 신발을 핥았다. 그녀의 입가가 진흙투성이가 됐다. 그녀는 그 상태로 웃었다. 그러지 않으면 내게 버림받을 것처럼.

 그저 그대로 무릎 꿇고서 그녀를 마주 안았다. 그리고 울었다. 그저 하염없이 울었다. 그리고 계속 사과했다. 그녀에게 사과했다. 입가가 진흙투성이가 된 그녀는 웃고 있었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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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4 23:14:21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