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필연 - 15

비랄 2017-03-0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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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환에게 심상치 않은 위상력 반응을 보고 받은 검은양 팀. 그 수치가 비정상이기에 비상시라 판단하여 그들 전원은 진원지인 유니온 타워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악마가 있었다.


"…너희로군. 그 녀석은 어디있지?"


다시 만난 이리나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힘을 품고 있었다. 예전과 달라진 칠흑에 날개와 검은 전신 슈트는 그녀를 타천사. 아니, 악마로 보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형용할 수 없는 살의가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살의는 검은양에게 향한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그 녀석이라니. 누굴 말하는거지?"


"너희와 같이 있는 위상력을 쓰지 않는 자를 말하는 거다. 그 녀석에겐 빚이 있지."


짐작하고 질문한 것이지만 역시 그녀가 말하는 자는 노운이다. 그는 그녀를 격퇴시켰다고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검은양이 의문을 가져야만 하는 것은 노운이 아니라 그녀의 강함이다. 그녀가 어떻게 이런 힘을 가질 수 있었냐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뭐, 좋다. 먼저 이 힘을 너희에게 시험해보마."


하지만 더 이상의 이야기는 할 수 없다. 그녀는 적이며 자신들은 클로저다. 살기 위해선 상대를 죽여야하는 운명인 것이다.



***




물질 세계의 법칙. 그것은 곧 힘의 법칙이다.


이른바 약육강식. 아무리 이성으로 그 본질을 부정해도 물질 세계의 진리는 힘이다. 약자는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으며, 강자는 그들의 것을 빼앗을 수 있으니까. 더군다나 이것은 언제나 우리와 함깨하고, 편리하다. 거기다가 효율적이다. 고대에서 대화가 아니라 전쟁을 택하는 이유도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하지만 누구나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진리이건만, 이해하지 않는 자들이 많다. 무조건 죽음을 각오해야만 하는 진리이고, 죽음은 누구나 두려워한다. 그렇기에 문명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저 진리에서 도피한다. 절대 벗어나지 못함을 알면서도 말이다.


현재까지 도덕부터 시작해서 수 없이 많은 문명의 산물들은 도피가 매우 왕성하게 이루어진 증거이리라. 그런데 그래도 인류는 그 법칙에서 도망치지 못했다. 그렇기에 인간들은 싸운다. 모든 것을 그들의 손에 넣기 전까지 말이다.




***

 



-피융. 피융.


검붉은 빛이 날아들어 잔상들을 갈라버렸다. 흐트러진 잔상들은 빛이 일으키는 힘으로 흔적도 없이 지워졌고, 잔상의 주인들은 그런 죽음을 상기하고 각오를 다지며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이 하늘의 징벌자에게 닿기에는 부족했다. 그렇기에 그들의 속은 점점 타들어갔다.


그에 비해서 이리나는 냉정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새로 얻은 힘은 그들과 비교가 되지 않았고, 지금 하는 전투는 힘에 적응해가며 저들을 교묘하게 사냥하는 것이니 말이다. 단지 확실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냥감이라서 시간이 걸리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목적을 위해서라도 확실히 죽여야하는 사냥감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사냥의 결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힘도 슬슬 적응되고 있고, 지금까지의 전투로 사냥감들은 매우 지쳐있다. 이제 확실한 일격만 날린다면 사냥은 끝난다. 그렇게 생각한 이리나는 시위를 매겼다. 훌륭히 싸운 사냥감들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지금 쏘는 화살은 남은 여력을 전부 끌어올린 검은양 팀에게 막힐 것이다. 그들은 현명하게 그녀와 그들의 차이를 파악하고 마지막 여력을 남겼으니까. 그리고 그 일격을 막는다면 막 적응한 힘을 끌어올린 이리나는 후유증으로 잠시 물러날 것이다. 동시에 검은양도 물러나서 태세를 정비하리라.


그것이 운과 실력이 따라주는 그들의 운명이었다.


-시간 정지.


하지만 세상을 기만하는 힘이 그 운명을 멈췄다. 


"운명이란 무엇인가?"


침묵만이 지배하는 곳의 지배자의 말. 하지만 이를 듣는 이는 없었다. 물론 그도 알고있다.


"가능성의 모음이지."


그렇지만 그 의미없는 행위는 멈추지 않는다. 그가 원하는 것은 대화가 아니라 지금부터 자기가 하는 일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 하늘의 징벌자에게 다가간다. 그리고는 그녀를 관찰했다.


공중에 멈춘 징벌자는 아름다운 조각상과 같았다. 하지만 그의 관찰에는 어딘가 만족스럽지 못했다. 인간이 보기에는 누구보다 고고하고 완벽한 모습과 구도인데도 말이다. 관찰을 끝낸 그는 갑자기 징벌자에게 훈계를 두기 시작했다.


"끌어올린 힘의 상태에 비해서 생각이 물렀어. 게다가 너의 공격은 화살. 일점 집중이 좋은 방식이지. 그렇다면 너는 뭘 노리는게 가장 좋을까?"


사격 교관과도 같이 훈계를 하면서 징벌자의 자세와 화살의 형태를 바꾼다. 그녀에게 있어서 두번은 없을 일격을 선사한 것이다. 어쩔 수 없는 흠이 있다면 그녀의 바뀐 자세와 시선이 맞지 않는 정도이다. 시선까지 수정하면 다시 자세가 흐트러질 수 있으니 하지 않은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이 침묵한 세계에서 공간을 기만하며 이루어졌다. 그에게 있어서 이것은 그런 수고를 덜어도 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 자세를 잊지 말거라."


무언가 보람있는 것을 가르친 선생처럼 말한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세상의 침묵은 깨졌다.


그렇게 시간을 되찾은 세상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일은 검붉은 화살이 푸른 붉꽃을 피로 덮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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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력이 하도 딸리니 원..


2024-10-24 23:14:17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