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슬비] 용서해주세요 - 完. 우리의 약속 -

Articulus 2017-02-28 6


국제공항부터의 스토리의 스포일러가 포함됩니다. 국제공항 에피소드까지 클리어하지 않으신 분들 중 스포일러를 보기 원하지 않으시는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 이 내용은 기본적으로 클로저스의 기존 설정에 기반하지만, 작가의 상상력이 매우 많이 가미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이와 마찬가지로 국제공항 이후의 스토리는 완전히 작가의 상상력에 근거하므로, 본작의 에피소드와는 차이가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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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두 가지의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가진 힘을 사용하여 앞장 서서 전선에 나서는 이들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며 뒤에 빠진채 첫째 부류를 이용하는 이들.


  불만은 없다.

  탱커가 있다면 서포터도 있는게 당연하다.
  내가 겪었던 수많은 경험들을 종합해보았을 때, 탱커와 서포터의 조합은 가장 뛰어난 조합이고 완벽한 조합인 것은 틀림없다. 서포터는 언제나 탱커의 뒤에서 전체적인 전황을 뒤흔드는 존재이니까.


  하지만 불합리한 구조적 모순은 언제나 최전선에 서는 이들을 알아주지 않는다. 승리의 달콤한 영광은 언제나 지휘관들의 몫. 

  내가 태어나기 전인 18년 전에도 그러했고.
  이곳 대한민국 곳곳에서 다시 벌어지고 있는 또다른 전쟁에서도 그러했다.

  수많은 차원종을 쓰러뜨리고, 심지어 나와 같은 사람을 수없이 베어넘겨도,
  돌아오는 것은 '수고했어'라는 단 한 마디.


  그렇다.
  이것이 클로저이다.

  보이지 않게 목숨을 걸고 싸워도 누구하나 인정해주지 않지만, 그것은 위상능력자로 태어난 나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이 불합리해보이는 사명을 깨닫는 데에 2주라는 시간이 걸렸다.


  결코 나 혼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이 사명, 이 꿈, 그리고 우리에게 의지하는 이들의 희망을 알려준 건, 약 2주 전 내가 사랑을 고백했던 그녀였다. 데이비드를 향한 복수심에 미쳐 날뛰던 나를 찾아와 끝까지 손을 잡아준 것도 그녀였다.


  이슬비, 나와 나이는 같을지 몰라도 그녀는 이미 나를 충분히 내 위에 있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녀는 이미 어른이 되어 있었다. 어른을 향한 불신이 극에 달해있던 나에게 그녀의 존재는 신비 그 자체였다.

  그리고 나도 절대로 되기 싫었던 어른이 되어간다. 정말로 우리의 몸과 정신은 날로날로 성숙해가고 있다. 


***


  지난 두 주 동안 참으로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
  2주라는 시간은 참으로 짧은 시간이지만, 나와 슬비 그리고 검은양과 늑대개 모두에게 잊혀지지 않을 경험을 준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 일을 겪었던 우리 모두에게도 마찬가지로.

  슬비와 나는 이차원의 끝에서 조우하는데 성공했지만,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건 또 다른 비극이었다. 마침 그 때 나타난 제3의 구원자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꼼짝없이 애쉬와 더스트라는 악마에게 붙잡혀 지옥에 떨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구원자는 우리를 구해주어 우리가 있어야 할 곳으로 데려다 주었고, 우리는 다시 일상을 누리게 되었다.

  재회의 입맞춤을 나눈 우리는 다시 일 주일이라는 긴 시간을 헤어져야만 했다. 슬비는 회복을 위한 쉼이 필요했고, 나는 감찰국에 조사를 받기 위해 출두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서로 원하지 않게 구속된 생활을 한 주동안 하는 동안, 우리는 다시 만나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그리고 만나서 무엇을 할지 리스트를 적어가며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감찰국에서의 조사라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나는 1주일 동안 수감생활을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조사받는데 할애해야했는데, 조사과정에서 뉴욕 총본부로부터 파견되었다는 특수요원들이 집요하게 내 죄를 캐묻곤 했다. 꼼짝없이 위상능력자 수용소로 보내지나 생각했는데, 감찰국 사람들 말로는 위에 계신 높으신 분이 적극적으로 변호를 나서준 덕분에 경징계로 끝날 거라고 했다. 그리고 정말로 나는 결국 1개월 감봉이라는 약한 수준의 징계를 받는 것으로 끝을 맺을 수 있었다.
  높으신 분은 높은 직급에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 이런데서 어른의 도움을 받게 되리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이런 어른들의 세계를 무척이나 싫어했는데, 바로 내 옆까지 어른들의 세계는 다가와 있었던 것이다.


  "수고하세요."

   돌아오는 인사 없이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철문이 닫힌다. 신서울지부 청사의 동쪽의 별관은 감찰국이 사용하는 건물인데, 이곳은 다른 건물들과 달리 음침한 기운이 감돈다. 그 기운만으로도 이곳이 감찰국 건물이라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이다. 문을 나서자 따스한 햇살이 눈을 간지럽혔다.

  "날씨 좋네."

  그렇게 말하며 청사 정문을 향해 타박타박 걷는다.
  조사기간동안 압수당했다가 이제서야 돌려받은 휴대폰의 전원을 켜자, 그동안 걸려온 부재중 전화들의 목록이 잔뜩 나타났다. 100통 가까이 전화가 온 것을 보니, 내가 잡혀있는 것을 걱정해준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인생을 헛살지 않았구나.

  안부전화는 나중에 돌리기로 하고, 제일 먼저 통화 메뉴로 들어가 1번을 꾹 눌렀다. 1번 단축키로 연결되는건 당연히 엄마이다. 오랜만에 엄마의 목소리도 듣고 싶고 집에 돌아가면서 사갈 것은 없는지 물어보기도 할 겸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수화음이 지나가고 곧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들, 잘 끝냈어?"
  "네, 엄마. 1개월 감봉 정도로 끝났어요."
  "다행이네. 유정 씨가 손을 많이 써준 것 같던데, 나중에 집에 초청이라도 해야겠다 얘."
 
  그 높으신 분이라는 사람은 아마도 유정 누나였나보다. 유니온을 적으로 돌리기 이전에는 유정 누나를 마냥 미워하였는데, 지금 와보니 미안한 마음 뿐이다. 누나도 나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겠지. 내가 너무 생각이 짧았으니까…

  "그나저나 슬비는 만났니?"
 
  슬비? 난 이제서야 나왔는데?
  무슨 말씀일까?

  "슬비요? 아뇨, 못 만났는데요?"
  "그래? 슬비가 말이야, 어제부터 전화해서는 오늘 세하가 감찰국에서 출소하는 날이냐고 묻더라. 세하 널 빨리 만나고 싶다고 하면서 그러는거 있지? 어쩜어쩜, 그렇게 세하를 지극히 생각해주나몰라. 엄마인 내가 더 분발해야겠더라."
  "슬비는 슬비고, 엄마는 엄마예요. 엄마 아니었으면 이렇게 여유롭게 전화할 수도 없었을걸요."
  "호호호, 부끄럽게 왜그러니. 여튼 슬비 만나면 백 번이라도 절해, 고맙다고. 그 정도로 널 생각해주는 사람은 엄마 말고는 슬비밖에 없을테니까."
  "알았어요. 집에 돌아갈 때 사갈 건 있어요? 오랫동안 제가 장도 안봤는데."
  "엄마가 다 봐왔으니까 집에나 돌아오세요, 아드님~?"
  "네네, 알겠습니다."

  일상, 이렇게나 행복하다.
  평범하게 가족과 통화를 하고, 평범한 대화 속에서 미소지을 수 있고, 평범한 날씨의 하늘 아래에서 평범한 거리를 걷는 것, 이 모든 것이 너무나도 소중한 자유이다. 일상에 대한 감사는 비일상의 경험에서 주어진다는 말이 정말인가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행복한 것은,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을 지금 만나러 간다는 것이다. 왠지 심장이 더 빠르게 뛰는 것 같다. 아마도 슬비를 만나러 간다는 사실 때문이겠지.
 
  청사의 정문 앞에서 몸을 꺾어 신서울의 거리로 나서려고 하던 나는 잠시 자리에 멈추어 앞을 바라보았다. 그녀를 찾을 필요가 없었다, 이미 그녀가 나를 만나러 이 앞까지 와주었기에.
  흰색의 자켓이 눈에 띠는 특수요원복을 입은 분홍머리의 소녀가 활짝 웃으며 나를 바라봐주고 있다. 그래, 나는 이 소녀를 만나고 싶었다. 심장이 더욱 두근거린다.

  "감봉 1개월이라면서? 그동안 저지른 일에 비하면 꽤나 약한 징계같은데?"

  쿡쿡 웃으며 슬비는 얼굴 한 가득 미소를 지어보였다. 비꼬는 말처럼 들리지만, 사실 이 아이의 감정은 얼굴에 드러난다. 내가 약한 징계 처분을 받는 것으로 끝난 것에 대해 기뻐하는 그녀는 정말로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나도 미소를 지어보인다.

  "상처는 다 나았어? 무리해서 여기까지 나온거 아니야?"
  "아니야. 상처는 이틀 전에 다 나았고, 어제부터 정식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는걸. 걱정하지 않아도 돼."
  "정말이야?"
  "어머, 상처입힌 사람이 누구인데 이제 와서 걱정이셔?"
  "에이, 또 왜 그래?"

  당당히 그녀의 팔에 팔짱을 낀다. 우리 두 사람의 거리는 빠르게 좁혀졌고, 맞닿은 우리의 팔은 온기를 공유한다.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나도 행복하다. 이렇게 행복에 찬 가까운 거리를 버리고 이걸 다시 되찾기까지 2주라는 시간을 허비했던 나는 도대체 얼마나 한심한 사람일까. 그리고 강제로 이 옆을 떠난 나는 얼마나 어리석은 남자일까. 연인으로서 최악이다.

  "클로저로 다시 돌아와줘서 기뻐, 세하야."
 
  슬비는 살짝 홍조를 띄우며 말했다. 그 말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나는 곧바로 그녀를 안아버리고 말았다. 정문의 초소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클로저 한 명이 흠칫 놀라며 애써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지만, 나는 전혀 그런 것에 상관하지 않는다.
  이제 다시 너의 옆에 설 수 있다. 당당히 클로저 이세하로서, 그리고 연인 이세하로서. 같은 팀의 리더이자 나의 사랑인 너에게 이렇게 다정히 다가갈 수 있어. 더이상 싸워야할 적으로서의 관계는 완벽히 청산하고, 동료이자 연인으로서 너에게 다시 되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한참이나 포옹하던 우리는 콩닥이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떨어져 손을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신서울의 거리로 걸어나갔다.

  "유니온에서 이렇게 공식발표를 내놓았어, 세하 네가 차원종들에게 정신지배를 당했다가 나 덕분에 풀려났다고. 그래서 너에 대한 모든 적대적인 조치는 해제한다고 했어."
  "그렇구나."

  차원종에 의한 정신지배라… 얼핏 들으면 참 그럴싸하다. 그리고 정말로 정신지배를 한 때나마 당하기도 했고. 하지만 유니온의 적극적이지 않은 태도에 반대하여 차원종과 손을 잡은 건 순수하게 내 의지였다. 내 짧은 생각이 낳은 착오였는데, 그것을 이렇게 짧은 이야기로 둘러댈 수 있다니... 역시 유니온의 말 둘러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내가 차원종과 손을 잡던 그 때에도 그리고 지금도.
  아까보다 비교적 심각해진 내 얼굴을 보던 슬비가 나를 위로하려는듯 말한다.

  "불만이 많을거야. 그렇지?"
 
  불만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유니온이라는 조직은 사람이 정 떨어지게 만드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는 곳이니까. 유니온에 불만을 가지지 않는 클로저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불만이 없다는 것은 절대 거짓말일테고, 그저 그런 불만과 상황에 적응을 해버린 것이겠지. 나는 그 불만을 못참고 한 때나마 유니온에 반기를 들었던 것이고.

  "불만이야 많지. 하지만,"
  "하지만?"
  "이런 조직에도 희망은 있으니까, 안 그래?"
  "세하야…"
 
  마치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리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는 표정을 짓던 슬비는 곧 밝게 웃음을 보여주었다.
   "응! 희망은 있으니까!"

  물은 땅을 비집고 뚫어서 길을 만들고, 그 길을 따라 물이 흘러 강을 이룬다.
  제 아무리 단단한 돌도 그 위로 계속 물방울이 떨어져서 구멍을 내고, 마침내 동굴을 만들어낸다.
  그러니 아무리 상황이 암울하다고 하더라도 바꿔나갈 수 있다,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데이비드는 상황에 절망하여 힘을 갈망했지만, 힘으로 굴복시키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나는 그것을 절실히 느꼈고, 더 이상 힘에 호소하여 바꿔나가길 소망하지 않는다.
  작은 희망이 나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그 행동이 다른 사람을 변화시킨다. 그렇게 아주 조금씩 조금씩 보이지 않게 변화는 이루어진다. 이것이 슬비가 나에게 가르쳐준 진실이다.

  "저기 세하야."
  "응?"
  "이번 주 토요일 저녁에, 시간 있어?"
  "시간이야 있지. 왜?"

***
 
  봄이지만 여전히 저녁의 공기는 쌀쌀하다.
  내가 감찰국에서 풀려나던 날, 강남으로 복귀하던 중 슬비는 나에게 데이트를 제안했다. 내 쪽에서 먼저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을 슬비에게 선수를 빼앗긴건 살짝 억울하지만, 이렇게 되나 저렇게 되나 그녀와 단 둘이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만들어졌음에는 감사해야겠지.

  슬비는 먼저 할 일이 있어서 약속장소까지는 같이 못 갈 것 같고, 대신 나에게 먼저 약속장소로 가 있으라는 말을 그녀는 남겼다. 신서울을 생각보다 많이 돌아다녀보 지 못한 우리 두 사람의 머리에 박힌 추억의 장소는 단연 남산타워였고, 이번에도 우리는 그곳을 가기로 했다.

  사실 나나 슬비나 그곳에서 좋은 만남을 가진 건 단 한 번 뿐이다. 사실 그것도 내가 고백하기 전이라 연인으로서 올라간게 아니라 흔히 말하는 썸타고 있는 시점에서 간 거라, 이렇다할 추억을 만들지도 못했다. 그 다음에 우리 두 사람이 찾아갔을 때에는 내가 애쉬와 더스트와 손을 잡아버린 후라 그녀와 이별을 했어야 했지. 이번이 세 번째, 이번에는 반드시 추억을 남기겠다는 생각으로 사둔 것이 있다.

  남산타워에는 연인들이 자물쇠를 거는 곳이 있다고 한다. 한 번 잠긴 자물쇠가 영원히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연인들의 사랑도 그렇게 되기를 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사실 이곳에서는 자물쇠의 처리로 인해 꽤나 골치를 썩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요즘에는 자물쇠 대신 메시지를 남길 수 있는 플라스틱 재질의 플레이트도 파는 모양이다.
  나도 그것을 하나 샀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전망대에서 내려오면서 상점에 들러서 산 것이긴 한데, 그 때는 나와 슬비가 연인 사이로 발전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사놓기만 하고 사용하지 못하고 방에다 모셔두기만 했었다. 이제야말로 이것을 쓸 기회이기에 방에서 가져오긴 했는데,

  "으으, 배고파. 빨리 표를 사지 않으면 사람들이 계속 와서 한참을 기다려야 할 텐데…"
  "세하야!"

  약간 떨어진 곳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귀에 익은 달콤한 목소리, 분명히 슬비다.
  소리가 들려온 곳을 보니, 그곳에서 슬비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베이지색 니트에 다소 짧아보이는 검은 스커트, 그리고 갈색부츠 차림의 그녀는 간만에 하는 데이트임을 의식해서일까 꽤 예쁘게 차려 입었다. 나도 스타일에 신경을 써서 차려입고 나오긴 했지만, 슬비의 아름다움 앞에서는 이름도 못내밀 정도이니. 저렇게 예쁘게 코디를 할 줄 아는걸 보면 역시 슬비도 여자이긴 여자구나.
   예쁘게 차려입은 그녀를 보니 불만이 일순간에 사라지고 대신 가슴이 미칠듯이 뛰기 시작했다. 사뿐사뿐 걸어온 슬비는 어느덧 내 앞에 섰다.

  "많이 기다렸어?"
  "아냐, 나도 방금 전에 왔어. 그런데 왜 위에서 내려오는거야?"
 
  왜 슬비가 위에서 내려온 것일까? 남산타워를 올라가는 언덕에서 우리는 만났고, 나는 슬비가 버스를 타고 올라올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아래 쪽의 정류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슬비의 목소리가 들려온 곳은 언덕 쪽이었고, 그 말은 슬비가 이미 남산타워에 갔다가 다시 내려왔다는 말이 된다.
  내 물음에 슬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서 웃음만 지었고, 내 왼 팔을 껴안는다. 그리고 나를 향해 물어온다.

  "올라갈까?"
  "응. 빨리 가야 표를 살 수 있을거야."
  "표는 걱정 하지마. 이미 사뒀어."
  "… 잠깐. 너, 설마 표 사려고 먼저 여기에 온 거야?"
  "저번에는 세하가 샀잖아. 그러니 이번에는 내가 살거야."

  저번이라는 것은 아마도 내가 차원종의 힘을 받아들이고 난 직후에 이별하기 위해 이곳에서 만났던 그 때를 말하는 것이겠지.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걸까, 슬비는.

  "가만히 놔두면 어련히 내가 살까봐…"
  "월급도 감봉된 주제에 말이 많아. 빨리 가자, 배고프니까."

  슬비와 나는 발을 맞추어 천천히 언덕을 올라간다. 정류장에서 타워 앞 광장까지 이어진 언덕은 약간 경사가 가파르지만 그다지 길지 않기 때문에 올라가는 것은 금방이다. 우리는 팔짱을 끼고서 이 길을 올랐다. 따로 올라가야했던 저번의 기억을 잊어버리고 싶어서일까, 우리는 절대 놓아주지 않겠다는듯 서로의 팔을 부드럽지만 억세게 붙잡은채 걸었다. 우리는 그것을 서로 알고 있다.


  타워 앞 광장에 들어서자 매우 많은 인파가 우리를 맞는다.

  매표소 앞에는 외국인과 내국인 할 것 없이 매우 많은 수의 사람들이 쭉 줄을 서 있었다. 역시나 슬비가 미리 표를 구해놓지 않았으면 큰일날 뻔 했었다. 그러고보면 우리가 두 번째 이곳에 왔던 때, 그 때는 내가 미리 표를 구했었지. 그 때는 왠지 슬비라면 이곳으로 찾아올 것 같다는 직감이 있어서 미리 사놓고 그녀를 기다렸는데, 정말로 마법같이 이곳까지 찾아왔었지.

  다시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오는 기억이다. 아마 슬비도 이 인파를 보면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매표소 앞에 줄을 서지 않고 바로 레스토랑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을 향해 들어갔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전망대로 향하기 때문에 우리가 향하는 곳으로는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올라가기 위해선 엘리베이터를 타야하기 때문에 그 앞에서 기다리는 것은 똑같다.


  표를 검수하는 직원이 웃으며 우리를 맞는다. 저번에 우리가 찾아왔을 때의 그 사람이다.

  우리를 보자마자 반갑게 그녀는 인사를 건네왔다.


  "어머, 또 오셨네요! 반가워요, 이세하 씨, 이슬비 씨.

  오늘 아침 뉴스에서 두 분이 또 커다란 일을 치르셨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괜찮으신가요?"

  "네, 지금은 멀쩡해요. 저도 세하도."

  "다행이에요. 이세하 씨가 유니온에 등을 돌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제가 얼마나 놀랐는데요. 설마 그게 차원종의 정신조작이었을줄이야… 잠시나마 의심했던거 여기서 사과드려요, 이세하 씨."

  "아… 네, 그럴 수도, 있죠 뭐. 하하…"

 

  멋쩍은 웃음을 지어주며 나는 엘리베이터가 어서 오기를 기다렸다.

  이제 막 내려오는 중이어서일까, 이곳에 다시 도착하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만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두 분, 제 기억으론 벌써 여기에 세 번째 오신 것 같은데…

  정말 두 분, 사귀시는 거 아니에요?"

 

  상당히 수상한 눈치로 우리 두 사람을 바라보는 직원.

  우리 둘이 꽤나 밀착해서 팔짱까지 끼고 있는 것을 보면서 더욱 수상하다는 눈초리로 우리를 훑는다. 게다가 요원복 차림이 아니라 사복 차림으로 이곳을 찾은 우리의 모습은 열이면 열 누구에게나 데이트하러 온 연인처럼 보일 것이다.

  우리가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에는 아직 연인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부정해야했지만, 지금에서야 굳이 부정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 사귀어요."

  "조금 됬어요."


  우리의 말을 들은 직원의 얼굴이 갑자기 빨갛게 달아오른다. 그리고 무척이나 흥분에 고조된 목소리로 손뼉까지 쳐가며 말했다.

  "어머어머! 역시, 역시! 두 사람, 정말 잘 어울린다니까요! 제 예감은 역시나 틀리지 않아요!"


  직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먼저 올라갔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온다. 곧 엘리베이터 안이 비워지자 우리의 앞에 줄 서있는 사람들이 천천히 안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우리도 이만 안으로 들어가야할 때이다.

  우리와 헤어져야할 시간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직원은 매우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작별인사 했다.


  "아쉽네요. 그럼 두 분, 좋은 관람하시면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셔요."


  ***

 

  남산타워에서 바라보는 신서울의 야경은 정말 아름답다.

  사진으로 담고 싶어도 미처 모두 담을 수 없는 그 황홀한 모습은 수많은 사람들은 이곳으로 불러모으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벌써 세 번째나 이곳에 찾아온 우리지만 전혀 질리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전망대로 온 우리는 어느 커피숍 앞의 테이블에 앉아 야경을 바라보았다. 커피를 주문하고 난 후 자리에 앉은 우리는 저절로 창 밖의 야경으로 시선이 향했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는 성수대교 너머의 강남이 보인다. 여전히 재해복구 중인 강남은 아스타로트의 침공의 상처를 그대로 보여주는듯 어둠에 잠겨 있었지만, 이전에 찾아왔을 때와는 달리 강남대로를 포함한 이곳저곳에 다시 불빛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만큼 재해복구도 진척되고 있다는 뜻이겠지.


  우리가 시킨 커피가 나오자, 나는 잽싸게 가서 커피를 챙겨가지고 자리로 돌아와 슬비와 내 앞에 각각 놔둔다. 월급 감봉으로 인해 재정적 걱정을 겪게될 거라며 슬비가 자신이 사겠다고 하는 커피를 겨우 내가 사겠다고 한참이나 우겨서 겨우 살 수 있게 되었는데, 슬비는 나에게 맛좀 보라는 듯 꽤나 비싼 커피를 주문했다. 휘핑크림이 올라가 있는 꽤나 달콤한 카페모카인데, 그녀는 달콤한 것을 좋아하는 모양인지 커피가 담긴 용기의 뚜껑을 열고 연신 크림을 핥아 먹으면서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달콤한 거, 좋아하나봐?"

  "달콤한 걸 안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글쎄, 찾아보면 있을지도."


  달콤한 맛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반대로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실 나는 달콤한 것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기 때문에 그다지 상관은 없다. 이번에 슬비가 달콤한 것을 좋아한다는 정보를 알아냈으니, 다음에는 강남에서 유명한 베이커리에서 케이크라도 사서 생일파티를 열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 때, 우리 옆을 왠 사람 두 명이 지나가며 저마다 재잘댄다.

  "자물쇠 아래서 팔까?"

  "판다니까? 이런데서 안 팔면 어디서 판다구?"

 

  자물쇠 이야기이다. 아마도 사랑의 자물쇠를 이야기하는 것이겠지.

  실제로 이 아래의 상점에서는 이곳 특제 자물쇠를 팔기도 한다. 물론 자물쇠로서의 용도는 망각된 채 만들어졌기 때문에 튼튼함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곳에서 추억을 만드는데 만큼은 충분히 사용될 정도의 내구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고보니 자물쇠처럼 우리도 할게 있었지.


  나는 옆으로 차고 있는 포켓가방에서 하트 플레이트와 네임펜 두 자루를 꺼냈다. 마음 모양으로 되어있는 플라스틱 재질의 빨간 플레이트인데, 옆에 고리가 있어서 자물쇠를 거는 곳에 달 수 있다. 판 위에는 쓰고 싶은 말을 남길 수 있다. 우리도 무언가를 이곳에 쓸 것이다.


  "이건 또 언제 산거야?"

  "우리가 여기에 처음 왔을 때에 샀어."

  "상점 들어가서 볼게 있다더니, 그 때 샀구나?"

  "응. 슬비 너와 추억을 만들고 싶으니까."


  슬비는 흥미로운듯 하트 플레이트를 바라보았다. 이곳에 무언가를 쓰긴 써야하는데, 뭘 써야할까? 평범한 사랑해라든지 우리 사랑 영원하길 같은 흔한 문구는 사절이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하나를 나는 입 밖으로 꺼내었다.


  "약속."

  "약속?"

  "그래! 우리 여기에 약속을 적자."

  "그럼 각자 약속을 적자. 우선 세하 넌, 더 이상 상처 안 주기로 약속해."

  "윽…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거야?"

  "응. 평생 갈걸?"


  사실 슬비한테 평생 구박받아도 할 말 없다. 나 때문에 슬비가 고생한 걸 생각하면, 오히려 내가 이렇게 묻는 것이 더 어이없을 지경이니까. 당연히 약속해야 한다.


  "약속할게. 다시는 서로에게 상처주지 않기로."

  "좋아. 그러면 나도 약속할게, 언제까지고 늘 사랑하기로."


  우리는 서로의 약속을 천천히 적어내려갔다.

  먼저 맨 위에는 오늘의 날짜인 5월 2일을 적는다. 그리고 아래에 우리의 이름을 각자 적고서, 각자의 약속을 한 줄씩 적어내려간다. 다 써내려가자 곧 근사한 약속의 증표가 완성되었다.

  전망대의 약한 조명에 의지하여 그것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문득 깨달은 것이 있었다.


  "우리, 글씨체가 생각보다 닮았네?"

  "야, 닮기는 어딜 닮았냐? 내가 훨씬 더 잘 쓰는데."

  "어쭈, 이세하. 누가 더 잘 쓰나 내기 할래?"

  "야, 이런 거에 내기를 거는게 어디있냐!"

  "어머, 질까봐 무섭나보네?"

  "하나도 안 무섭거든요!"


***


  자물쇠를 거는 곳으로 내려온 우리는 어느 걸이에 증표를 걸었다.

  수많은 자물쇠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히 우리의 것이 더 잘 보였다. 눈에 튀는 빨간색이라는 것과 가장 앞에 걸려있다는 것 때문일까.


  자물쇠를 거는 틀 주위로는 조명이 환하게 비추고 있어서 우리가 남긴 약속이 가장 잘 보인다.

  나와 슬비는 걸고 나서 약간 거리를 두자마자 휴대폰을 들었다. 약속을 찍기 위해서이다. 휴대폰 카메라가 조명을 터뜨리며 몇 번 찰칵거린다. 저장된 사진을 보니 꽤나 잘 나왔는지, 우리 두 사람은 저마다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어기면 어떻게 할거야?"

  "어기긴 누가 어긴다고."

  "그럼 어떻게 보증해줄건데?"

  "이렇게 보증해주면 되지!"

  "꺅! 흡…"


  10초 정도 우리는 입술을 맞대고 있다가 떨어졌다.

  나나 슬비나 엄청 얼굴이 달아올라 있을 것이다. 나는 흥분으로 가빠진 숨을 겨우 고르면서 이야기했다.


  "하아, 제대로 찍었어, 보증 도장."

  "그래, 하아. 제대로 받았어, 네 도장…"


  서로 무안한지 우리 두 사람은 그대로 껴안았고, 한밤 중의 차가운 바람이 스쳐지나가지만 그 추위도 모르고 우리는 서로의 따스함에 녹아들어간다.

  5월 2일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

.

.


  "모두 모였나. 주어진 시간이 많이 없으므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겠다."


  검은양 팀과 늑대개 팀 전원은 유정 누나와 트레이너 씨의 지시로 속속들이 국제공항에 머무르고 있는 램스키퍼로 모여들었다. 모두의 집합이 끝나자마자 트레이너 씨의 브리핑이 시작된 참이다.


  "검은양 팀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지난 데이비드와의 전투에서 베로니카라는 한 클로저를 구해내는 데 성공하였다. 데이비드는 그녀의 몸에서 무언가를 빼내어 도주했고, 그 이후로 행방이 묘연해졌지.

  하지만 몇 시간 전 회복중이던 베로니카가 잠시 의식을 되찾아 유하나에게 알려준 모양이다. 그녀는 나에게 그 좌표를 알려주었고.

  나는 분명히 베로니카가 그 좌표를 그저 이야기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분명히 그 좌표에 데이비드가 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트레이너 씨는 말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 곧바로 드는 의문점을 바이올렛 씨가 묻는다.

  "그 좌표가 어디죠?"

 

  대답은 트레이너 씨가 아닌 유정 누나에게서 나왔다.

  "분석 결과, 그 좌표의 위치는 시베리아. 그중에서도 서시베리아 근방의 옛 탄광이라고 해요."

  "시베리아라… 머나먼 러시아까지 데이비드가 향했다는 말인가요?"

  "믿기지는 않겠지만, 베로니카 씨가 말해주신 좌표에 의하면 그곳이 맞아요."

  "쉽게 믿기가 힘들군요."


  바이올렛 씨는 고개를 저으며 쉽게 납득하기 힘들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건넸다.

  하지만 그 베로니카라고 하는 분의 이야기는 분명히 사실이다. 내가 데이비드를 찾아낸 곳은 분명히 서시베리아의 버려진 군수공장 일대였으니까.


  "그분의 말씀이 맞을 거예요."

 

  나의 말에 트레이너 씨가 곧바로 반응을 보여왔다.

  "어째서지, 이세하?"

  "제가 차원종의 힘을 쓸 수 있을 무렵, 데이비드와 쓰러뜨리기 위해 그가 있는 곳으로 향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 때 애쉬와 더스트가 알려준 장소는 분명히 서시베리아의 어느 버려진 군수공장이었죠."

  "그게, 사실인가?"


  살짝 희색을 보이며 트레이너 씨는 다시 내게 물어오자, 유정 누나가 나 대신 회답했다.

  "실제로 그 탄광 일대에는 버려진 군수공장이 있어요. 세하가 말한 곳에, 정말로 데이비드가 있는 모양이에요."

  "좋아. 그렇다면 이것으로 확실해졌군. 우리는 데이비드를 쫓아 그곳으로 향한다. 이미 러시아 지부와의 교섭은 끝난 상황이다. 이대로 우리는 국경을 넘어 러시아로 향한다.

  상대는 알 수 없는 힘까지 소유한데다가 교활하기까지 하다. 어려운 싸움이 될테니, 만반의 준비를 하도록."


  그의 말에는 무척이나 진지함이 서려있어 듣는 모두로 하여금 긴장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알 것이다, 우리 모두가 상대해야할 진정한 적이 바로 눈 앞에 나타날 것이라고.

  정의를 위한 진정한 싸움이 벌어질 것임을 누구 하나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바로 출발하도록 하겠다. 이의있는 사람, 있나?"


  아무도 이의를 표하지 않았다.

  데이비드 리, 그를 체포하고 말겠다는 생각은 모두 동일하기에.


  이제 곧바로 출발할 것이다. 그리고 출발하면 각자 개인정비를 하며 곧 벌어질 전투를 준비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겠지. 그리고 이렇게 모두가 함께 모이는 시간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는 모두에게 해야 할 말이 있다. 그것을 말하는 것은 모두가 흩어지기 전 모여있는 이 자리가 가장 적당할 것이다.


  "저기 트레이너 씨, 출발하기 전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좋다. 발언권을 넘기겠다. 말하도록."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잠깐이나마 적으로 싸웠던 이들, 그리고 지금은 동료인 이들 모두가 나를 향해서 제각기의 다른 시선을 보내오고 있다. 검은양 팀은 나를 부드럽게 바라보고 있었지만, 나와 여러 번 전투를 치른 늑대개 팀의 경우에는 아직까지는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오며 애써 감추고 있다.

  나는 이들에게 죄를 지었다. 그것을 사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저 이세하는, 지난 몇 주 동안 검은양 팀과 늑대개 팀 모두에게 폐를 끼쳤어요.

  저 때문에 모두가 위험해졌는데도 저는 지금껏 이렇다할 사과를 하지 않았죠. 그래서 이 자리를 빌어, 모두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어요."


  고개를 숙인다.

  모두가 용서해주기를 간절히 빌며,


  "용서해주세요."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수군대는 목소리도 없었다.

  두려웠다, 모두에게 용서를 받지 못할까봐. 하지만 용서를 받지 못한다고 해서, 내가 함께 싸우지 않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모두에게 속죄를 해야만 하니까.

  한참이나 고개를 숙이고 있을 무렵, 트레이너 씨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들어라, 이세하."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들었고, 눈 앞의 모두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숙이기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눈빛으로 모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 늑대개 팀 모두가 나에게 보내오던 싸늘한 시선을 완전히 거둔채 웃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는 한 팀이다. 서로 먼저 배신하지 않는 한 말이지.

  우리는 너의 사과는 받아들이겠다. 한 팀으로서 우리의 적과 열심히 싸워주길 바란다."


  트레이너 씨의 말을 듣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모두에게 지은 죄를 용서받았다. 고작 용서해주세요 한 마디로 용서받을 수 있는 죄가 아닌데도, 모두는 나를 용서해주었다.

  결국 나는 눈물을 보이고 말았고, 재빨리 소매로 닦아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 솔직한 점은 네 어머니를 쏙 빼닮았군.

  너의 모습을 분명히 네 어머니도 자랑스러워 할거다, 이세하."

  "…"

  "훗. 어울리지 않는 말을 해버렸군. 그럼 곧바로 움직이겠다.

  램스키퍼… 발진!"

 


  붕 몸이 뜨는 느낌과 함께 램스키퍼가 빠른 속도로 순항하기 시작했다.

  곧 몸이 전함의 속도에 익숙해질 무렵, 우리 모두는 함교의 유리창 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 아래로 펼쳐진 드넓은 바다, 그리고 고르게 퍼져있는 구름들은 분명히 우리가 어디론가 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목적지는 러시아의 시베리아, 그곳에 데이비드가 있다.


  혼자의 힘만으로가 아니라, 이번에는 모두가 힘을 합쳐 그 남자를 쓰러뜨릴 것이다.

  그리고 그를 준엄한 법의 심판대 앞에 세우겠지. 그것으로 그가 우리 모두에게 진 빚은 갚아진다.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체포하여, 모두의 복수를 하고 말 것이다.

  데이비드 리. 






본편 이후의 이야기는 '7지역 - 군수공장 상공'으로 이어집니다.






※ 본 소설 엔드크레딧은
https://youtu.be/W4S6H4yZJw4 에 들어가셔서 보실 수 있습니다.










- FIN -







  드디어 "완결"입니다...!


  완결낸 작품으로는 단편들을 제외하고 과거 소설까지 모두 포함하여 이번이 12번째이네요.

  완결내지 못하고 도중에 접어버린 소설도 5개 가량 됩니다. 이 소설이 끝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재미있게 읽어주신 모든 독자님들의 사랑과 격려 덕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여기까지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릴 뿐입니다.

  느린 연재 때문에 독자분들의 마음을 만족시켜드리지 못했음을 다시 한 번 자책하면서, 연재속도를 올려야겠다고 계속 생각해봅니다만 쉬운게 아니네요 ㅋㅋ... 제 글쓰는 스타일이 한 번 글을 쓰면 긴 시간동안 놓아두는지라.. 고쳐야하긴 하겠지만요 ㅎㅎ


  이번 화에 보배로운 세하슬비 그림으로 도움을 주신 'hemo' 님, 그리고 엔드크레딧에 음악 사용을 허락해주신 '루디사라' 님께 특별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팬아트를 보내주신 카제로스 님과 푸딩쥬스 님께도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조만간 다음 소설로 찾아뵙겠습니다.

  저는 세하슬비 지지자이지만 다음 소설은 안타깝게도 세하슬비 소설이 아닙니다.

  애초에 커플링이 존재하지 않는 소설입니다.


  중편 분량인 3-4편 정도로 예상되며, 소설의 주인공은 아시는 분들은 아시다싶이 미스틸테인입니다.

  제 취향따라 재미있게 써볼 소설입니다. 부디 모두의 입맛에 맞으셨으면 하는군요.


  물론 세하슬비 소설도 또 다시 구상중이니 너무 걱정은 마시고요!!!

  장편 연재는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단편으로 여러분들께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장편 구상이 끝나면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 트위터를 통해서 더욱 빠른 소식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으로 저 별빛은 잠시동안 펜을 내려놓고자 합니다.

  다시 한 번 모든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P.S. 번외편 글쓴이 잡담 편을 보고 싶으신 분은 아래의 주소를 따라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http://blog.naver.com/rmsgh1648/220947138784

          http://cafe.naver.com/closersunion/227520


2024-10-24 23:14:14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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