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필연 - 13

비랄 2017-02-2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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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단 것은 그냥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어떤 형태로든 말이다.


김유정에게 있어서 나는 예측 할 수 없는 존재지만 그들에게 악은 아니란 인식이 있다. 그렇기에 신뢰는 하지 않고, 적대하지는 않는다. 그게 사람들을 이끄는 그녀가 선택한 나를 대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당연히 이는 지극히 현명하고 말이다. 


하지만 사실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그들의 앞에 갑작스레 나타나선 극히 짧은 시간에 신뢰도 적대도 아닌 중간 지점의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당연히 내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첫 조우는 저들이 먼저 마음을 양보할 수 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의도치 않았지만 나는 그걸 활용했고 말이다. 이미 그들의 정보는 이미 철저하게 조사했기에 내가 취할 태도도 정해져 있었으니 고민조차 필요치 않은 것은 덤이리라. 


미지의 존재이지만 자신들과 비슷한 모습에 대화도 할 수 있는 지성체. 이런 존재는 그들 사이에도 하나 있었다. 그런 상황에사 나 하나 추가되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하지만 그들의 성정을 생각하면 이런 나에게 적대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나에게 신뢰를 보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로 선을 그었다.


램스키퍼의 보안으로 감시를 받도록 배의 인공지능이 느끼는 경각심을 부추겼다. 당연히 지휘관 등급의 인물들은 그걸로 인해서 나에게 주의를 기울였고 말이다. 그와 동시에 나는 힘을 써서 그들에게 전혀 통제되지 않음을 증명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곁에 있었고 말이다.


그들은 정말이지 심란하리라. 나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 폭탄이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다. 그렇기에 지금은 불확실한 나에게 신경쓰는게 아니라 확실한 적에게 신경쓰는 것을 택했다. 나는 당연히 자유로웠고 말이다.


그렇게 편한 상황을 유지하다가 막판에 준비한 것을 터뜨리는 것이 내가 생각한 플랜이다.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자만한게 문제가 되어서 일이 약간 틀어졌다.


'망할 날개 자식!'


내가 실수한 것이지만 그 여자는 내 흥을 깨뜨렸다. 지금 생각하면 머리를 갈아버리고, 뼈를 잿더미로 만드는 것도 모자르다. 당장 지옥에 던져서 악마들에게 던져주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연극에는 그녀가 필요하다. 나중에 쓸모가 없어지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닌 것이다.


'끝나고 나면 보자..!'


이리나에겐 지옥이 아니라 다른 곳이 기다릴지도 모르겠다.



***





"으음.."


"이리나. 왜 그러지?"


뉴욕을 침공한 테러리스트의 본거지. 그곳의 중심부엔 고작 두명만 있었다. 그들의 규모에 비하면 매우 적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지금 병력의 반 이상이 순수한 기계 장비에다가 인력의 대부분은 그것들의 관리에 투입되는 실정이다. 게다가 절대적인 이 둘은 그런 테러리스트들의 위에서 투톱으로 군림하는 존재들. 그들의 비밀이 간직되는 곳에 이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들어올 수 없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거 다행이군. 그래.. 새로운 힘은 어떤가?"


"최고입니다.. 이번에야 말로 그자를 쓰러뜨릴 수 있을 겁니다."


"그래.. 위상력을 가지지 않은 자라고 했지? 나중에 우리 계획에 방해가 될거야. 반드시 처리하게."


"당연히..!"


이들의 대화는 길지 않다. 간결하게 이러는 것에 족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들이 과거부터 이은 모습이니까.


"이번엔 실망시키지 말게나."


그렇기에 더욱 철저히 다짐할 수 있을테니까.



***





슬슬 때가 다가온다. 무대의 막이 열리는 것이다. 하지만 무대가 시작하려면 모든 것이 완벽해야 한다. 하지만 가끔은 휴식은 필요한 법. 인간의 정신이란 그런 것이다.


"어… 노운 씨? 표정이 좀 이상하네요?"


"어? 아아.. 그 이리나라는 여자 생각을 해서 말이야."


"어라? 그분에게 관심이라도 있으셨어요?"


"그랬으면 내가 반쯤 곤죽으로 만들었겠어?"


"이야.. 너무한거 아니세요? 그런 미인한테 그러시다니. 그래서야 여자나 사귀시겠어요? 쿠후훗..."


이 녀석은 여우이다. 호기심 많은 여우이자 냉정하고 발빠른 여우. 동시에 입이 무지 가벼운 여우. 연극의 진행에 바로 필요한 녀석이기도 하다. 그의 관심을 끌어서 내가 유도하는데 필요한 것은 단순한 이야기. 그가 흥미를 가질 이야기였다.


"네가 내 인생을 몰라서 그래. 예전에 엘프나 드래곤한테 고백받고는 내가 차버렸거든?"


"네? 그런게 진짜 있나요?"


"못 믿어도 상관없지만 말이야... 여기 걔들 사진이다."


나는 증명하기 위해서 옆에 있는 프린터를 조작하여 내 기억에 있는 그녀들의 얼굴을 뽑아냈다. 그걸 의심 많은 여우, 김시환이 보자마자 눈을 크게 뜨고는 나를 바라봤다. 평소에 잘 뜨지도 않던 실눈인데 저렇게 크게 뜨니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자기도 미남인 주제에 여자는 밝히나 보다.


"우와... 이거...."


"동작 그만. 눈 떨어지겠다." 


나는 말을 잇지를 못하는 시환의 손에서 사진을 빼앗고는 그대로 태워버렸다. 아무리 그래도 멋대로 뇌리에 넣게 만들 생각따위는 추호도 없는 것이다. 그녀들을 사랑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마음을 완전히 져버리진 않았다. 적어도 지켜줄 예의는 있다는 말이다.


"끙.. 성질 고약하시네요.."


"얘쁜거만 알면 돼."


"치사하시네요.."


나의 인간 정신을 확인하는 작업은 그걸로 끝나지 않고 계속 진행됐다.



***







노운이 말하는 엘프나 드래곤은 마도 세계 인물입니다.


2024-10-24 23:14:11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