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knights 6화 (부제:추락하는 창성)
firsteve 2017-02-25 3
유니온의 이차원 연구소인 플레인게이트 안, 슬비와 유리가 누워있는 정미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위상력에 뒤덮힌 검에 찔린데다가, 심각했던 출혈까지 일반인으로서는 위험한 수준에, 의료진인 케롤리엘 마저도 의식을 회복할 수 있을지 확답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니, 도울 수 없는 두 사람은 그저 이렇게 바라보며 의식이 돌아오길 기도하는 게 고작이다.
"정미...괜찮겠지?별 문제 없이...일어나겠지?"
".....그랬으면 좋겠어, 나도...."
슬비의 힘없는 말에 유리가 쏘아보며 따지자 슬비도 유리를 쏘아보며 말한다.
"나라고....나라고 정미가 안 일어나길 바라는 줄 알아?! 나도 정미가 일어났으면 좋겠어! 근데!근데....케롤리엘 언니도....그 똑똑한 언니마저도 일어날지 못 일어날 지 장담 못한다 잖아. 일어날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은데...계속 못 일어날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걸 나보고 어떡하라고!!"
유리가 뭐라고 말하려다, 슬비의 눈에 맺힌 눈물에 말을 삼키고 입을 다문다.
그 때....
똑똑 하고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케롤리엘이 안으로 들어온다.
"미안해요. 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본의 아니게 들어버렸네요."
슬비와 유리가 당황한 나머지 어쩔 줄 모르고 있자 케롤리엘이 빙그레 웃으며 정미의 몸에 부착된 기계를 체크한다.
"후훗...그런 표정 지을 필요 없어요, 둘 다. 그런 생각, 저라도 했을테니까요."
"죄송해요.....언니도 그런 말 하기 힘들었을텐데...."
슬비의 말에 케롤리엘이 살짝 미소를 짓더니 두 사람을 보며 말한다.
"힘들긴 했어요. 제 조수이기도 하고 참 성실한 아이였으니까요. 그래서....뭐라도 제대로 된 정보가 나오면 그 때는 꼭 말해주려고 했어요. 정미 양은 여러분한테도 소중한 친구이니까요."
"그 말은.....뭔가 나온 부분이 있다는 건가요?"
"그래요. 나왔어요. 지금부터 확실히 나온 결과들을 알려줄게요."
케롤리엘이 차트를 넘기더니 밝은 목소리를 내며 말한다.
"우선 정미 양의 몸 상태는 전망이 좋은 편이에요. 위상력은 지금도 꾸준히 밖으로 빼내고 있고, 그로 인한 악영향은 점차 줄어들고 있는 편이에요. 바이탈도, 점차 안정되는 단계에 이르렀고요....다만.....의식쪽은 확답이 안 나오네요. 워낙 오는 동안에 받은 부담이 심해서인지 의식부분은 장담이 안되네요. 한 달일 지 1년일지...아니면 그 이상일 지..."
케롤리엘의 말에 유리가 결국 울음을 터트리며 주저앉자 슬비가 유리를 토닥이기 시작한다.
그 모습에 지켜보던 케롤리엘의 눈시울도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한 편....
방안으로 들어오려다가 안의 분위기에 들어가지 못한 채 문 앞에 서성이던 제이가 이내 돌아서더니 병동에서 멀어진다.
이윽고 플레인 게이트의 입구부분까지 온 제이가 요원복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더니 길게 한숨을 쉰다.
"**....미치겠군....애들도 이제 한계가 왔나.....후우....."
제이가 라이터를 찾기 위해 주머니를 뒤지다가, 자신의 옆으로 쓱 내밀어 진 라이터에 고개를 돌린다.
그 곳에 있는 사람은.....그가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이다.
"불 찾았죠, 아저씨? 여기 있어요."
"동...생? 동생이 왜 라이터를 들고 있는 거야? 동생은 담배 안 피잖아."
"안 피죠. 그냥....석봉이 짐 정리하다가 담배랑 라이터가 있길래 가져왔죠....유품 같아서요. 그나저나.....아저씨야말로 담배 피시는 거 한 번도 못 봤는데 왜 들고 계신 거에요?"
"오늘은 안 피고는 못 배길 거 같아서.....예전엔 잠깐 폈어. 너희 앞에서 피는 모습 보이는 건 어른스러워 보이지 않아서 끊은 거지만...."
제이의 말에 세하가 제이가 물고 있는 담배에 불을 붙여주며 말한다.
"한 개비만 피고 가세요. 유정이 누나, 담배 냄새 싫어해요."
"잘 알지. 동생은 필 거야?"
"답답해서 피고는 싶은데...정미가 담배 피면 헤어지겠다고 협박을 해서 말이죠..."
세하가 씁쓸한 미소를 짓다가 제이를 올려다보며 말한다.
"아저씨. 정미는 좀 어때요?깨어나자마자 아저씨 따라와서 아직 정미한테는 못 가봤는데."
세하의 말에 제이가 말 없이 담배를 피자 세하가 씁쓸한 목소리로 말한다.
"안 좋나보네요. 아저씨 모습을 보니까."
"...그래도 몸 상태는 좋은가봐. 의식은 아직 불명이지만...."
"그건....불행중 다행이네요..."
말과 다르게 어둡기만 한 세하의 얼굴에 제이가 피던 담배를 바닥에 밟아 끈 후, 세하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한다.
"동생. 너무 그렇게 상심하지 말라고. 정미는 곧 일어날 거야."
"그렇겠죠...?정미는....강하니까요."
세하의 말에 제이가 어깨를 두드려주고 플레인게이트 안쪽으로 들어가자 세하가 제이가 간 곳을 한참을 바라보더니 이내 밖을 보며 깊은 한숨을 쉰다.
어떻게든 마음을 쓰지 않을려고 노력하지만 세하의 마음 안에는 정미에 대한 미안함이 계속해서 생겨난다.
자신과 엮이지 않았다면 이렇게 도망 칠 필요도, 의식불명이 될 일도 없을텐데 라는 생각에 머리 속이 복잡해지는 그 때....
"뭘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 거야, 이세하?"
익숙하지만 들려서는 안되는 목소리에 세하가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하고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경계태세를 갖춘다.
"너 뭐야....어째서....'내 모습'을 하고 있는 거야?!애쉬와 더스트가 보냈어?! 아니면 데이비드의 잔당이야?! 아니면 유니온이냐?!"
세하의 날 선 반응에 세하의 모습을 한 보라색 눈의 세하가 키득거리며 말한다.
"네가 생각하는 그 어느 쪽의 사람도 아니야. 아니, 애초에 사람이 아니지 크큭.....난 너야. 네 마음 속에 있는 너의 '또 다른 면'"
"'또 다른 면'...이라고?"
세하의 눈에 의문이 떠오르자 보라색 눈의 세하가 장난기 섞인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정확히는 '또 다른 이세하'랄까? 착한 척, 정의로운 척 한다고 억누르고 있는 복수에 대한 갈망이 바로 나야."
"거짓말 하지마!네가 '또 다른 나'라면 이렇게 내 눈 앞에 선명하게 나타날리가 없잖아!"
세하의 말에 보라색 눈의 세하가 떨어져 있는 돌을 향해 손을 뻗어 집으려 하지만 손이 돌을 통과해버린다.
"봐봐. 이게 잡히지도 않고 오히려 뚫렸지? 이게 증거야. 내가 환상이라는 증거. 그리고, 네가 미쳐간다는 증거."
"내가....미쳐간다고?"
"정확히 말해주자면 너 스스로 너를 통제하기 힘들어지고 있다는 뜻이지. 네 안에 쌓인 분노와 복수심, 원망과 배신감을 누르고 있던 사슬들도 이제는 없어져버렸으니까."
보라색 눈의 세하가 세하에게 직설적으로 말하다가 한 발짝 다가와 은밀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솔직히 말해서 이젠 참을 필요없잖아?정미는 의식불명이고, 석봉이는 죽었고, 유리네 부모님은 살해당했어. 널, 아니, 우리를 영웅처럼 생각하던 사람들은 그저 날조된 증거에 우우 몰려들어서 이제는 우리를 반역자라고 생각하고 있고. 이러면 더 이상 그들을 지킬 필요가 없잖아? 내가 소중히 여기는 걸 다 부숴버린 게 그들인데 왜 나는 이렇게 정의의 사도인 척 하면서 사람들을 지켜야 하냐고!!!!"
"입...**!!!!!!!!!!!!!!!!!!"
세하가 옆에 굴러다니는 쇠지렛대를 휘두르자 보라색 눈의 세하가 반으로 갈라지며 서서히 옅어진다.
"크큭....거봐.....지금도 분노에 못 이겨서 휘두르잖아....너도 사실은 부수고 싶은 거잖아!!!"
"아니야...난!!!"
세하의 말에 보라색 눈의 세하가 서서히 사라지며 목소리를 남긴다.
"언제까지 부정 할 수 있을까....'나'를.....크큭.....궁금해지네....네가 내가 되는 그 때.....어떤 표정을 지을지....또....얼마나 미움받게 될 지.....기대하면서 기다리도록 하지......유니온의 특수요원 이세하님.....크큭...."
보라색 눈의 세하의 목소리가 사라지자 세하가 쇠지렛대를 떨어뜨리며 중얼거린다.
"절대.....절대 난....너처럼 그렇게 되지 않을 거야....그래야....사람들이....우리를 다시.....그들의 편이라고 생각할테니까....이게....정의니까...."
세하가 중얼거리는 그 때, 뒤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세하에게 말한다.
"선배님이 옳으십니다."
"김가면 씨....언제부터....."
"조금 전 혼자서 '무언가'와 대화하는 부분에서부터 봤습니다."
"아.....그건 잊어주세요....미치광이로 보인다는 건 아는데...잊어주세요, 제발....잠깐.....지쳐서 헛것을 본 거니까요."
세하의 어설픈 변명에 김가면이 세하를 보며 말한다.
"알겠습니다. 뭐....선배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선배님. 후배가 선배님에게 감히 한 말씀 올리자면 정의는 언젠가 꼭 옳은 것이 됩니다. 그러니까, 선배님. 선배님께서는 부디 본인이 걸으려는 길에서 다른 길로 가려고 하지 말아주십시오. 선배님은 바른 분이니까요."
"....충고 감사해요, 김가면씨. 최대한.....지키려고 노력해볼게요."
세하가 애써 평온한 목소리로 김가면에게 말하고는 정미가 누워있는 병동으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머리가 복잡한 탓이었을까 생각보다 빨리 정미의 병동에 도착한 세하가 병동 안으로 들어가려다 안에서 울고있는 유리와 슬비의 모습에 차마 문을 열지 못한 채 머뭇거린다.
그 순간....
슬비가 고개를 들다가 살짝 열린 문틈으로 보인 세하의 눈을 보고는 황급히 눈물을 닦으며 들어오라는 손짓을 한다.
그녀의 손짓에 세하가 안으로 들어오자 유리도 세하를 발견하고는 잠긴 목소리로 말한다.
"세하야....왔어?"
".....얼마나 운 거야, 너희?"
".....좀 됬어....갑자기 눈물이 나서.....아무도 없길래...."
유리가 잠긴 목소리로 두서없이 말하자 세하가 유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미안하다, 유리야.....정미 다치지 않게 한다는 약속 못 지켜서...."
세하의 말에 유리가 고개를 젓더니 세하를 올려다보며 묻는다.
"......괜찮아?"
많은 의미를 함축한 세 글자에 세하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괜찮아. 나보단 너희들이...."
세하가 영혼없는 대답을 꺼내자 유리가 세하의 어깨를 잡으며 말한다.
"그런 틀에 박힌 말 말고 진짜 네 마음을 말해달란 말이야! 너도 힘들잖아! 울고 싶잖아! 그런데 왜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구는 건데? 우리가 그렇게 못 미더운 거야?우리에겐 네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다 이 말이야?"
유리의 말에 세하가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입을 뗀다.
"미안해.....못 미더운 게 아니야....그래도....."
세하의 말에 결국 유리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세하를 보다가 나가버리자 슬비가 세하를 보며 말한다.
"...우리 걱정 해주는 건 알겠는데....그래도....유리는 네가 조금이라도 자기에게 기대주길 바랬던거야.....나도....그렇고...."
"....미안해....유리....좀 달래줘....."
"괜찮아. 쉬고 있어....유리 좀 달래고 올테니까..."
슬비가 문을 닫고 나가자 세하가 정미의 침대 옆 의자에 털썩 주저 앉으며 중얼거린다.
".....잘 자네....안 아파 보이고.....무슨 꿈 꾸냐.....정미야....나 심심한데....."
세하가 정미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슬픈 미소를 짓는다.
들었던 심각한 상태들과 달리 너무나도 평온해 보이는 정미의 모습에 세하가 상황을 잊고 정미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한 편....
회의실에 모여있는 5명은 회의실 정면의 모니터들에 떠 있는 화면에 한숨을 쉰다.
"....환장하겠군....이제 거의 악의 축인데 우리.... "
"유니온이 썩었다는 건 전부터 조금씩 인지하긴 했지만.....이렇게까지 썩었을 줄이야....."
제이와 유정의 말에 정도연 박사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간다.
"문제는....그것뿐만이 아니에요. 중앙의 화면을 봐주세요."
"뭐지....이건? 왜 점들이.....일정한 방향으로 흩어지는 거지?"
"이동하는 파란 점들은 저희가 개발한 디코이에요. 여러분들의 위상력 파장을 흉내내는 것이기 때문에 아마 저쪽의 기계들은 이 점들을 여러분으로 인식할 거에요....그런데....."
정도연 박사가 말끝을 흐리자 제이가 선글라스를 지긋이 누르며 말한다.
"그 쪽을 인식하고도 우리를 찾아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무리가 있나보군."
"맞아요. 그래서 대략적으로 오는 사람들의 규모와 도착시간을 계산해보았는데.....규모는 크지 않지만 속도가 너무 빨라요. 이대로 가면....."
정도연 박사의 말이 끝나려는 그 순간, 제이가 조용히 말한다.
"우리를....찾아내겠지."
"네....어떻게든 그들의 시선을 분산시켜서 시간을 벌어보려고 하지만 효율이 그렇게 좋지 않아요...."
정도연의 말에 제이가 의자에서 일어나며 말한다.
"그럼 지금 수준의 교란만 유지해줘. 소용이 없다면 붙을 준비를 해야하니까."
"제이씨...설마....이 사람들이랑 싸울려고요?!안돼요!절대 허락 못해요!"
"...유정씨.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야. 그 역할에는....어른인 내가 맞는거고."
"그래서 안된다는 거에요!왜 혼자 짊어지려는 건데요?!제이씨도, 유리도, 슬비도, 테인이도, 세하도!왜 전부 혼자 짊어지려는 건데요?우리는 팀이에요, 팀! 혼자 희생하고 그러는 건 절대 용납 못해요!"
유정의 단호한 말에 보나가 제이를 보며 말한다.
"유정씨의 말이 맞아요. 제이 씨. 저 보고는 혼자 짊어지지 말라고 하셔놓고는 본인은 혼자 짊어지시려는 건가요?"
"보나야..."
"희생은 자기가 하겠다,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마세요. 전 모두가 이곳에서 살아나갈 수 있는 그런 방법을 반드시 찾아낼거니까. 제이 씨는 혹시나 모르는 싸움에서 꼭 살아남고, 아이들을 지켜 주세요. 제가 세우려는 계획은....검은 양팀 모두가 있어야만 성공이니까요."
"명심하지....절대....아이들도....나도....우리 모두 살아나갈 수 있게 노력할게."
"저도 최선을 다해서 도와드리겠습니다. 벌처스에....최대한의 지원을 요청해보겠습니다. 적어도....도주 수단쯤은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마워, 가면이. 덕분에 한 시름 놨어."
"아닙니다. 더 적극적으로 못 도와드려서 죄송할 따름입니다.그럼 전 다시 계획 검토를 해보겠습니다..."
김가면이 제이에게 말하고는 두 박사와 함께 도주계획을 짜기 시작한다.
그 모습에 제이가 터벅터벅 회의실에서 걸어나오다가 복도 벽에 기대더니 콜록거리기 시작한다.
이윽고 입에서 손을 뗀 제이의 손에는 검붉은 피가 한 가득 묻어있다.
검붉은 피를 본 제이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생각한다.
'생각보다 몸 상태가 심각하군.....약을 더 늘려야겠어......가뜩이나 힘든 우리 애들이랑 유정씨한테 짐이 될 순 없으니까...'
제이가 입가를 쓱 닦고 고개를 드는 순간, 누군가의 모습을 보고는 얼어붙는다.
"유정...씨?"
"제이 씨.....지금.....피 토한 거...맞죠?"
유정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제이가 애써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내가 피 토하는 거 한 두번 보는 것도 아니면서....."
"그래요....당신이 그렇게 피 토하는 거 한 두번 보는 게 아니죠.....당신이랑 내가 같이 있던 시간이 얼마인데...."
유정이 제이를 보며 한숨을 쉬다가 제이의 손을 덥썩 잡아 피가 덜 닦인 손바닥을 펴며 말한다.
"근데 당신이 이렇게까지 검붉은 피를 토하는 건 본 적이 없었어요!이렇게까지 당신 몸이 망가졌을 줄은 몰랐다고요!"
유정의 말에 제이가 유정의 어깨를 잡으며 유정을 달래려하자, 유정이 제이의 손을 뿌리치며 말한다.
"맨날 자기가 힘든 건 다하려고 하고, 그러면서 힘든 건 티 안내려고 하고! 당신은 당신의 몸 걱정 안 하는 지 모르겠지만, 난 걱정돼. 걱정된다고! 당신도 내 곁에서 사라질까봐,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사라질까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 곁에서 떠난다는 게 난 싫고 무섭단 말이야!!!!"
유정이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말하자 제이가 선글라스를 벗고 무릎을 꿇더니 유정과 눈높이를 맞추며 말한다.
"유정씨...아니...유정아. 나 안 죽어. 널 두고 먼저 안 갈 거야. 이렇게 날 위해 울어주고 걱정해주는, 내가 좋아하는 여자를 두고 절대 안 죽을 거야."
"거짓말...그렇게 말해놓고는 또 위험한 일 있으면 또 먼저 나가서 잔뜩 다쳐올 거면서...."
"응....아마도 그렇겠지....동료들과 약속한 것 때문에....또 그들에게 배웠던 것들 때문에, 그들에게 빚졌던 목숨의 댓가 때문에, 누구보다 먼저 뛰어가겠지만....약속할게, 유정아. 절대....너만 놔두고 죽지 않을게. 네 옆에 계속 있을테니까...그러니까....너도.....내 옆에서 떠나지마..."
제이의 부드러운 말투에 유정이 울며 제이에게 안기자 제이가 유정의 등을 토닥거리며 생각한다.
'누님....형.....베로니카....그리고....내 전우들.....이제 나한테도 그 때의 당신들처럼 지키고 싶은 사람들이 생겼어....당신들이 날 지켜주기 위해 싸웠던 것처럼, 나도 당신들을 다시 만났을 때 부끄럽지 않게 싸우고 싶어졌어. 그러니까....내 숨이 다 할 때까지, 내 주먹이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내 몸이 움직이지 않는 그 순간까지....날 지켜줬던 그 때의 당신들처럼....내가 지키고 싶은 이 여자를....내 사람들을 지킬 수 있게....내게 꺾이지 않을 의지를....내가 지키려는 사람들에게 축복이 있기를.....빌어달라고....'
----------------------------------------
몇 시간 뒤....
눈을 뜨지 않는 정미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세하는 어느새 그녀의 침대 옆 좁은 책상에 이마를 댄 채 꿈을 꾸고 있다.
'....여긴 어디지....?왜 이렇게 ....깜깜한 거야?'
세하가 칠흑같이 어두운 공간을 향해 이리저리 팔을 휘두르며 한 발을 내딛자, 발 밑에서 찰박하고 액체를 밟은 듯한 소리가 난다.
'물....인가?도대체 여기가 어디길래.....물이 바닥에....?'
세하가 확인을 위해 위상력을 사용해 빛을 밝히려 하나.....위상력이 나오질 않는다.
'뭐야....?왜....위상력이 안 나와? 서....설마....나....위상력 상실증이라도 걸린거야?!'
세하가 당황하며 계속 위상력을 발동시키려는 순간, 세하의 눈 앞이 갑자기 환해진다.
이윽고, 빛이 가시자 보이는 것은....특수요원복을 입은 검은 양팀 인원들이 자신의 앞에서 싸우는 모습이다.
'뭐...뭐야...지금...어떻게 된 상황이야?'
상황을 이해 못한 세하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앞으로 이동하는 그 때...
푸욱 하는 들려서는 안되는 소리와 함께 제이의 몸이 바닥으로 쓰러진다.
'아저씨!!!!!'
세하가 소리치려고 하지만 나오는 건 숨뿐....목소리는 속에서 울려퍼질 뿐이다.
'**....!왜 목소리도 위상력도 다 안 나오는 건데!!!!제발 나와! 나오라고!!!!'
세하가 계속 위상력을 짜내려고 시도하는 그 순간....두 번째 불길한 소리가 세하의 귀에 연이어 들려온다.
'테....테인아!!테인아!!!!'
이번엔 테인이의 작은 몸이 종이인형처럼 힘없이 바닥에 쓰러지자 세하가 절망과 분노가 섞인 표정을 지으며 팀원들을 공격하고 있는 요원들에게 달려든다.
그러나....상대는 요원. 위상력이 나오지 않는 평범한 그의 몸으로는....
'커억...!'
처참하게 짓뭉개질 뿐이다.
요원들의 공격에 만신창이가 된 세하가 몸에 힘을 모아 일어나려고 하자, 위에서 요원 하나가 그를 찍어 누르며 말한다.
"뭐야, 이거 벙어리에 위상력 상실증이야?이것 참.....알파퀸의 아들이라고 해서 재미 좀 보나 했는데 재미없게 됬네."
'이...자식들....'
자신을 노려보는 세하의 눈빛을 본 요원이 무언가 재밌는 게 떠올랐는지 세하처럼 제압 당한 유리와 슬비 그리고 유정을 세하가 잘 보이는 장소로 데리고 오더니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칼을 꺼내든다.
"거기서 지켜봐. 네 친구들이, 네 관리요원이 우리들에 의해서 망가지는 모습을."
'그...그만둬!!!!그만두라고!!!!!!!'
"뭐....우리끼리 재미보다가 재미없어지면 그 땐 너한테 돌려주지. 그때까지....이것들이 제정신일지는 모르겠지만."
요원이 세 사람의 옷을 찢어버리고, 자신의 허리춤을 만지작거리자 세하가 그 후에 일어날 상황을 알았는지 요원들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친다.
"세...세하야!!!살려줘!!!!"
"세하야!!!"
"이세하!!!!!"
'유리야!!!유정이누나!!!!슬비야!!!!"
세하가 힘겹게 그들을 향해 손을 뻗어**만.....
"꺄아아악!!!!"
"아...아파!!!!사...살려줘, 세하야!!!!"
그 손은...닿지 못한다.
들려오는 비명소리와 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세하가 눈을 질끈 감고 자신의 귀를 막으며 소리친다.
'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
그러나....귀를 막아도....그녀들의 비명은 끝없이 그의 귀로 들려온다.
'제발...제발 그만해.....그만하란 말이야!!!!!!'
세하가 속으로 그만하라는 말을 수도 없이 외치자 갑자기 귀에 들려오던 그녀들의 비명소리가 멈추고, 위에서 누르던 무게가 사라진다.
'뭐...야?갑자기....왜...아무것도 안 들리지?'
세하가 몸을 일으키자 보이는 것은 또다시 어두컴컴한 어둠이다...
그 때....
어둠속에서 저벅저벅 걸어나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한 형체가 세하의 눈 앞에 나타난다.
'슬비....야?'
".....왜 날 안 도와준 거야?왜 내가 이 꼴이 되게 놔 둔거야?난 널 좋아했는데...난 네가 구해줄 거라고 믿고 버텼는데....!!!"
'슬...비야....'
"미워...미워미워미워미워!!!!!!!!!!"
이리저리 찢긴 옷을 입은 슬비가 세하에게 달려들어 목을 조르자 그 반동에 세하가 그대로 바닥으로 넘어진다.
그러나 세하의 생각과 다르게 바닥에 그의 몸이 닿는 그 순간, 풍덩 하는 소리와 함께 세하의 몸이 밑으로 가라앉기 시작한다.
세하가 놀란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자 주변에서 기포들이 뭉치더니 유리와 유정, 그리고 자신이 아는 모든 사람들이 나타나 세하에게 몰려든다.
"죽어....죽어죽어죽어!!!난 널 믿었는데!!!넌 내가 이런 꼴이 될 때까지....!!!"
"죽어....이런 꼴이 될 때까지 도와주지 않았던 너 같은 건...!!!!"
"죽어...!!!"
주변에서 들여오는 목소리와 자신의 목을 조르는 사람들의 악력에 세하가 눈물을 흘리며 버둥거린다.
'아니야....!!안 도와 주고 싶어서 안 도와준 게 아니라고....내가 원해서 그런 게 아니란 말이야...!!'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원망하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세하의 옆에 익숙하면서도 이질적인 목소리의 세하가 세하에게 말을 건다.
'원망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들리지? 느껴지지?이게 바로 현실이야. 힘이 없어지고, 힘이 약한 네가 맞이하게 될 현실. 이런데도 날 거부할 생각이야?네가 지키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지키려면 내가 필요하지 않겠냐고!!!!'
보라색눈의 세하가 말을 하며 세하에게 나가오다가 수면 위를 돌아보더니 중얼거린다.
'흐음....밖이 시끄럽네....아무래도 우리의 대화는 다음으로 미뤄야겠어...'
'뭐?그게...무슨...?'
세하가 말하려는 순간, 세하 주변에 거품이 끓어오르더니 세하의 몸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수면 위로 세하의 몸이 떠오르는 순간, 현실의 세하가 눈을 뜬다.
"도....돌아온 거야?"
세하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멀지 않은 곳에서 느껴지는 위상력과 충격파에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한다.
'이 정도로 위상력의 충돌이 있다는 건.....누군가가 싸우고 있다는 건데...?!**....들켰나?!빨리 도우러 가야...!'
세하가 의자에서 일어나 자신의 장비가 있는 자신의 병실로 가려는 그 때, 병실 문이 열리면서 요원들이 들어온다.
"찾았다. 여기 있었군. 세트로."
"빨리 잡고 합류하자고. 슬슬 끝나가는 모양이니까."
요원이 장비를 꺼내며 다가오자 세하가 요원들의 움직임을 보다가 주먹을 꽉 쥐며 조용히 중얼거린다.
"[신기루]"
세하가 읆조리자 세하의 다리와 팔이 푸른 빛에 물들기 시작하더니 이내 세하의 몸이 사라진다.
그 순간, 세하의 앞에 있던 요원들의 몸이 끈 떨어진 인형처럼 앞으로 고꾸라지더니 그 뒤로 세하가 나타난다.
'역시...이건 힘 조절이 안돼......게다가....너무 힘들어.'
숨을 몰아쉬던 세하가 쓰러진 요원들을 질질 끌어 복도에 던져놓고는, 자신의 방으로 뛰어가 건블레이드를 집어들고 밖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제발....아무 일도 없어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