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필연 - 12

비랄 2017-02-25 1


***



바보같다.


이건 그냥 자업자득이다. 산책하는데 사전 조사를 까먹다니. 역시 방심은 위험하다고 생각된다.


-퍼억


"크흑...!"


"그래서 뭐? 다시 말해봐라."


이런 귀찮은 일을 예방하고, 피하지 못했다면 어쩔 수 없지만 대응하는 것. 그게 나의 기본 취지다. 하지만 나는 그걸 바보같이 부정했다.


-퍼억


"커헉...!"


지금은 나의 바보같음에 정말 화가난다. 나중에 누가 비난해도 상관 없다. 지금은 날 귀찮게 만든 이것에 화풀이를 하지 않으면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다. 


"산책을 왔더니 정말로 별게 다 꼬이네!"


-퍼억


"끄으윽...!"


나를 막아선 이 건방진 여자를 떨어뜨려 화풀이를 한지 어언 10분. 그녀가 굴러다니는 꼴을 누가 본다면 나를 악마라고 부르리라. 하지만 지금 이게 정말이지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폭력이라도 상관없다. 감정으로 머리가 굳은 자는 그런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그렇다.


"흠.. 내장 파열에 갈비뼈 골절, 안쪽에 뼈가 박히진 않았으니 좀더 버티겠지?"


"X 자식...!!!"


"정답이다."


질량 증대, 중력 무시, 초음속, 공간 고정, 신경을 대신한 통각과 정신을 연결. 욕을 했다면 이렇게 친다.


-퍼억


"크헉..!!!!"


원래 날개를 잃은 새는 가냘프다. 하지만 이 녀석은 새가 아니라 그리폰이었다. 날개를 잃어도 그 폭력성은 그대로인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사냥을 했다. 사냥감의 피를 말리다가 마지막에 절망을 선사해준다.


사냥감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는 울부짖으며 발광하는 사냥감은 절망의 우리에서 나오지 못하고 그렇게 죽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했다.


힘의 차이를 모르고 쏘던 활과 화살을 가루로 만들었다. 자랑스럽게 빛나던 날개를 뜯고는 밟아서 떨어뜨렸다. 떨어지고도 끈질기게 저항하는 기세는 존엄성과 같이 꺾어버린다. 그때도 눈빛이 살아있다면 마음까지 부숴서 굴복시킬 뿐이다.


몰론 거기까지 할 생각은 없기에 적당히 고통만 주기로 했다. 나는 화풀이만 하면 되는 것이다.


"…쯧. 겨우 이거 한방에 기절하네. 돌아가라."


마지막 한방으로 목적을 달성한 나는 피를 토하고 굴러간 녀석을 공간 기술로 송환시켰다. **가 당하면 어미가 수습해야하니 말이다.




***





"이런.. 나도 제법 머리가 굳었구만."


화풀이를 한 다음에 나는 바로 본부에 귀환했다. 나와 이리나의 전투를 감지했을 것이니 나한테 질문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지사. 오자마자 질문을 받았고, 나는 대응했다.


"노운 씨. 여기 계셨네요. 혹시 이리나랑 교전하고 오셨나요?"


"날개 달린 여자 궁수? 패다가 돌려 보냈어. 그렇게 성질 고약한 녀석은 제압하기 힘들어서 말이야."


사실 패는 정도를 넘어서서 말 못할 꼴로 바닥에 굴리고 곤죽으로 만들었지만.


"그렇군요.. 이리나는 저희 애들하고 교전을 하다가 도망쳤어요. 그 과정에서 당신을 만났겠죠. 그런데 왜 이리나는 당신에게 덤빈거죠? 부상을 당해서 그러지 못할텐데."


"산책하려고 힘을 조절하고 나가서 그럴거야. 게다가 나를 보면 제거하라고 데이비드인지 뭔지가 그랬다나?"


"그렇군요.. 데이비드에게 있어서 위상력을 쓰지 않는 당신은 미지의 위협이니 말이에요."


"미리 말하지만 당신들 일에 끼어들 생각 없어. 지금도 상당히 귀찮으니까. 물자의 이동도 끝났으니 나는 값만 받으면 돼."


나는 호의로 물자를 적재하지 않았다. 그녀가 관광에 도움을 약속했기에 거래로 그런 것일 뿐. 초반과는 다르게 적당히 안정되는 상황이 되자마자 나는 내가 적재한 물자를 전부 이들에게 돌려줬다. 아무리 호의적이라도 나는 외부인이니까.


"…도데체 당신의 진짜 목적은 뭐죠?"


이곳의 사람들을 통괄하는 우수한 여자다. 당연히 내 태도에서 저 의문을 짐작하리라. 하지만 이렇게 직설적이든 간접적이든 나는 한마디만 할 뿐이다.


"변덕."


내 대답을 들은 그녀의 표정은 그냥 평범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





빠암~



2024-10-24 23:14:09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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