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세상을 보다.
비랄 2017-02-23 0
***
다시 눈을 떴을 때. 하늘은 미쳐 날뛰던 차원종의 붉은 하늘이 아니라 인간의 파란 하늘이었다. 하얀 구름과 따스한 태양이 있는 하늘이 말이다.
"…?"
이상하다. 그렇게나 망가졌던 하늘이 이렇게 멀쩡할리 없다. 세상이 지옥으로 변하고 부터는 푸른 하늘은 보이지도 않았단 말이다.
"이게 어떻게..."
상황을 알 수 없다. 알기 위해선 일어나야만 한다. 다행히 위험한 것은 느껴지지 않으니 망설일 이유는 없다. 하지만 몸이 누운 상태로 움직이질 않는다.
"안.. 움직여.."
살갖이 벗겨지고, 살점이 뜯겨나가고, 불에 그을려도 필사적으로 움직이던 몸이다. 게다가 그의 행동에 의해서 나는 있었던 적이 없을 만큼 건강한데다가 힘도 충만한 몸이다. 그런데도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보통이라면 욕을 했겠지만 지금은 냉정해야만 한다. 이런 위험에도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만 한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머리에 떠올리고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들을 우선적으로 도출해야만 한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
'나는 살아야만 해.'
그가 희생할 때. 나는 그의 이름을 들었다. 그의 생명과 함깨 힘과 기억도 받았다. 죽음만 생각하던 나에게 그가 건네준 것들은 이제 삶의 목적이다. 그렇기에 이렇게 누워서 죽을 때를 기다릴 수 없단 말이다.
일단 상황을 파악한다. 일단 주변에 위협 요소는 전무하다. 그렇기에 나는 멀쩡히 살아있다. 그것도 전에 없을 정도로 건강하게. 하지만 사지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눈과 입은 움직인다. 심장 박동부터 온몸의 감각은 전부 느껴진다.
하지만 지금 위험하지 않다고 나중에도 그런 것은 아니다. 나중에 위험이 닥치기 전에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서 주변을 제대로 파악하고 행동을 결정해야만 한다. 그게 지금 나에게 있어서 최우선의 목표로 생각되니까.
'움직여..! 움직여!'
감각이 느껴진다면 움직이지 못할 이유는 없다. 감각만 있으면 어떻게든 움직이던 팔다리가 지금 움직이지 않는 것이 말이 되냐는 말이다. 어디 잘려나간 것도 아닌데 멀쩡히 붙었으면 움직이는게 피와 살을 가진 육체의 역할이란 말이다.
-꿈틀.
미묘하지만 근육이 움직인다.
-꿈틀.
미묘하지만 관절이 움직인다.
-스스스스...
그리고 그에 따라서 몸속에서 엄청난 힘이 흘러나온다.
'어라?'
위험하다. 이렇게나 힘이 흘러나오면 주변에서 위험 요소가 다가올 가능성이 있다. 지금처럼 몸도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런다면 순식간에 죽는다. 지금까지의 노력이 무색하게 죽는단 말이다.
'움직여라! 움직여!'
재촉한다. 재촉해야만 한다. 지금 움직이지 않는 이 몸뚱아리를 재촉해야 내가 살 수 있다. 그래야만 그의 말을 생각할 수 있단 말이다.
-드드드드....
하지만 재촉하면 재촉할수록 엄청난 힘이 흘러나온다. 슬슬 공기를 울릴 수준인게 바보가 아니라면 바로 달려올 수준이다.
-쿠구구구구........
…아니. 바보가 아니라면 도망칠 수준이라고 하자. 이 정도면 전에 봤던 거대한 괴물과 비슷할 정도의 박력이 있는 힘이다. 이제는 땅까지 흔드는게 느껴질 정도니 말이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힘이 나한테 있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인 건 말할 필요도 없다. 차원종한테 도망치며 숨어지낸 내가 이런 힘을 가졌다면 몸이 피떡이 되는 일이 없었을 것 아닌가.
'뭐야 이거? 나한테 이런 힘은 없는데? 기껏해야 도망치는게 고작인 힘일텐데?'
언제 각성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녀에게는 위상력이 있었다. 비록 차원종에게 숨고, 도망치는게 전부인 힘이지만 그게 없었다면 그 지옥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에 비해서 지금 그녀가 내는 힘은 그녀의 범주를 넘어섰다. 그녀가 통제하지 못했기에 몸은 움직이지 못했고, 힘은 마구잡이로 날뛰고 있다.
'**... 힘이 계속 빠져나가.. 이러다간 의식이..'
통제가 되지 않는 힘이 계속 흘러나온다. 그에 따라서 그녀는 피폐하고, 의식은 다시 잠들어간다. 이대로는 힘을 느끼고 다가올 수 있는 위험에 잡아먹힐게 뻔하다.
'정신 차려야.......'
그녀의 정신은 어쩔 수 없이 스스로를 다시 잠재웠다. 원래 정신적으로 극한까지 몰린 그녀였다. 비록 몸이 건강하다고 한들 지옥을 살던 정신은 이미 한계에 직면한 것이다.
그렇기에 시간은 그녀에게 휴식을 내렸다.
***
"화려하군. 내가 막지 않았으면 시끄러웠겠지."
땅이 분쇄되고 초토화된 곳에서 정적만을 자아낸 남자가 자기 앞에 누워있는 소녀를 보고있다.
이곳의 파괴는 눈앞의 소녀가 일으켰다. 아직 힘을 통제하기 힘들었던 것이리라. 하지만 저 작은 몸에 이런 수준의 힘이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옷은 피에 얼룩진 누더기지만 피부는 깨끗하다. 감긴 눈은 예전의 피와 같은 것이 아니라 루비와 같은 것이 되었다. 중간 길이의 머리는 검은색이다. 이렇게 살펴보니 나중에 미인이라 불릴 녀석이라 생각할 수 있을 정도다. 살펴본 그가 그렇다면 그렇게 되는 것은 확정이리라.
"지옥에서의 희망이 알량하게도 절망. 그리고는 이젠 완벽한 희망이라? 정말 돌아가는 꼴이 재미있군. 선택을 제대로 했어."
따악-
소녀를 살펴보고는 그는 손을 튕겼다. 단지 그것 뿐이다. 그렇지만 바로 다음 순간에 파괴는 없던 것이 되었다. 오직 정적 속에서 일어난 현상이기에 그를 제외한 어떤 존재도 이 일을 알지 못하리라.
"너의 삶은 이제 제대로 시작이다. 다시 만난다면 대화나 한번 하기를 바라지."
그 파극을 벌인 존재는 그런 말을 남기고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 다음은 정적이 아니라 작은 바람이 소녀에게 살짝 스쳐간게 전부였다.
***
쓰ㅂ.... 부실해.. 내용이 부실해.. 어차피 언제나 대충쓰고 뒷일은 생각 안하지만 전부 부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