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의 광휘가 찾아왔다 -1
츤츤데레데레나타데레 2017-02-17 0
검은양 팀의 소집 및 앞으로의 방책에 대한 브리핑 겸 회의가 있는 날이다.
이미 모든 구성원들이 임시본부에 모여서 관리요원 김유정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당사자인 김유정은 잔뜩 껴안은 서류와 씨름하며 힘겨운 발걸음을 내딛으며 임시본부로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걷기를 몇 분, 수 미터 앞에 보이는 허름한 건물을 보며 김유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서류 더미를 고쳐안았다.
"언제까지 이런 외진 곳에 있는 임시본부를 써야하는 건지."
여름은 한참 전에 지났는데도 이마와 목덜미에 땀이 방울졌다. 그 정도로 고된 상태였음에도 그런 식의 신세한탄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눈앞에 있는 건물은 대충 보아도 낡아보였고 검은양 임시본부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있는 철문의 구석은 칠이 벗겨지고 누렇게 녹슬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상부에 항의하고 싶어지는 김유정이었지만 현 유니온이 얼마나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오랫동안 몸담았던 그녀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유리나 미스틸은 임시본부에 정들었다며 떠나기를 꺼려하는 모습이고, 매일 작은 의자를 끌어다가 구석에서 신문을 펼치고 있는 제이도 그리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 아이들의 기분을 최대한 맞춰주는 게 관리요원의 소양이라고는 하지만....."
수시로 유니온과 임시본부를 왕복하는 자신의 입장도 생각해 달라며 김유정은 오늘도 목구멍 앞까지 올라온 소소한 불만을 도로 삼켰다.
"어라?"
상념이 머릿속에서 떠났을 무렵엔 이미 익숙한 철문이 코앞에 있었다. 하지만 문 옆에 조금 이질적인 물건이 놓여있었다. 문에 겨우 들어갈 정도로 큰 골판지 박스가 바로 그것이었다. 분명 택배를 시킨 기억도 없었고 설령 시킬 일이 있다고 해도 임시본부로 배송시키진 않을 것이다. 검은양 팀의 누군가가 주문했으리란 생각도 하기 힘들었다. 그나마 가장 유력한 것은 정체불명의 건강식품들을 상시 구비하고 있는 제이와 전자제품을 몸에 달고 사는 세하였지만 그 둘이라고 해도 임시본부로 택배를 배송시키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박스 위에는 정확히 임시본부의 주소가 적혀있었으며 보낸 사람의 이름에는 A&D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니셜이 적혀있었다.
"일단 들고 들어가야겠지."
양손이 서류더미에 묶인 김유정은 어쩔 수 없이 구두의 코로 문을 가볍게 걷어차며 노크했다. 곧 문이 열리며 가장 먼저 모습을 보인 것은 검은양 팀의 리더 이슬비였다.
"유정 언니, 기다리고 있었어요."
"늦어서 미안해 슬비야. 일단 여기 옆에 있는 택배 좀 안쪽으로 들여줄래?"
택배라는 말에 잠시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면서도 슬비는 문 앞으로 나와 옆쪽에 위치한 박스를 안쪽으로 끌고 들어갔다. 문에 등을 기대어 고정시키고 있던 김유정도 슬비의 뒤를 이어 안쪽으로 들어갔다.
"후우...."
몸을 혹사시켰던 서류더미를 방 중앙에 위치한 테이블에 내려놓고 어깨를 두드른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테이블에 앉아있던 모두는 슬비가 끌고들어온 상자에 관심이 팔려있었고, 가만히 신문을 읽던 제이도 일어나 아이들 너머로 박스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유정언니 이건 뭐에요?"
어깨의 뻐근함이 어느정도 가시자 유정은 아이들의 나이에 맞는 모습에 흐뭇해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자신을 향한 질문에 조금 당황하며 얼버무리듯이 답했다.
"으음,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열어봐도 되지 않을까? 유니온의 보급품일지도...."
"야호! 열어봐도 된데! 세하야 얼른 거기 테이프 뜯어봐."
유정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리는 신나하며 박스를 밀봉하고 있던 테이프의 한쪽 끝을 손톱을 떼어내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쓴웃음과 함께 바라보는 유정의 곁에 조용히 다가온 제이가 살며시 어깨에 손을 올렸다.
"저런 애들다운 모습, 보기 좋지 않아? 요즘은 통 바빠서 저 애들한테도 여유가 없었을테니 말이야."
"제이 씨? 하아, 알고 있다고요, 그런 것 쯤은. 오히려 어떻게든 휴가라도 챙겨주고 싶은 심정인데..... 내부사정도 외부사정도 전부 녹록지 않네요."
"유정 씨의 노력은 나도 잘 알고 있다고. 하지만 여기서 이렇게 진지한 이야기를 꺼내봤자 변하는 건 없지. 저 아이들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할 수 밖에. 일단은 함께 즐겨주자고."
유정은 옅은 미소와 함께 제이를 바라봤다. 어느세 그의 시선은 아이들을 향해 있었다. 선글라스에 가려져 그 시선에 담긴 감정마저 알 수는 없었지만 누구보다 아이들을 위하는 자상한 눈빛이었으리라고 유정은 추측하며 마찬가지로 아이들을 바라봤다.
어느세 전부 뜯어진 테이프는 박스 옆에 나뒹굴었고, 모두는 잔뜩 기대한 표정으로 상자를 열고 있었다.
"아, 근데 유정 씨 안엔 뭐가 들어있는 거야?"
"네? 저야 당연히 모르죠."
"뭐? 난 철석같이 유정 씨의 깜짝 선물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네에?! 저는 제이 씨의 건강식품 아니면 유니온의 보급품일 거라고...."
제이와 유정이 서로의 상반된 의견에 경악하던 찰나 신경쓰이는 목소리가 아이들의 방향에서 들려왔다.
"뭐야 이건?"
"검붉은 바위?"
그 말에 조용히 서로를 응시하던 유정과 제이는 끄덕이며 아이들에게 향했다. 제이는 아이들 뒤에 선 채로 큰 신장을 이용하여 세하 너머로 박스 안 내용물을 바라봤다. 슬비의 말대로 그 안에 들어있는 물체는 검붉은 바위라고 밖엔 말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정확힌 검은색 베이스에 붉은 색이 조금씩 섞에 들어간 바위였지만 어느쪽이든 전혀 용도를 짐작할 수 없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흠?"
바위의 이질적인 면을 발견한 적은 자세히 관찰하기 수 초가 지났을 무렵. 어두운 색이라 제대로 들어나지 않았지만 바위의 표면에는 손바닥 모양의 홈이 5개 존재했다.
"형, 누나! 여기에 손바닥을 갖다대는 게 아닐까요?"
가장 먼저 미스틸이 관심을 보이며 바위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우웅, 여긴 너무 큰데요...."
하지만 곧 자신의 손에 두 배는 될법한 크기에 이상해하며 가장 우측에 있는 홈에 자신의 손을 넣었다.
"여긴 딱 맞아요!"
어딘가 들떠보이는 듯한 목소리로 미스틸이 그리 외치자 세하도 자신의 손바닥과 바위의 그것을 번갈아 비교하며 중얼거렸다.
"저건 좀 작은데, 유리야 저게 네 손 같은데?
"어, 정말? 어디어디....."
세하가 자리를 비키자 그 사이로 들어온 유리는 세하가 가리킨 곳에 자신의 손바닥을 가져갔다. 차례차례 채워져가는 바위 위의 홈을 바라보며 제이는 작게 중얼거렸다.
"벡터맨?"
"도대체 언제적 얘기를 하시는 거에요. 것보다 뭔지도 모르는 것을 저렇게 막 만져도 되는 거에요?"
"음, 확실히 그렇군. 동시에 5칸 전부 채우지만 않으면 상관 없겠지. 그 특촬물에서도 그랬고 말이야."
그리 답하면서 제이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손을 바위 위로 옮겼다. 아까 미스틸이 가장 먼저 확인했던 곳이었다.
"근데 A&D라니 도대체 누구지? 요즘 시대에 누가 이런 장난 같은 택배를....."
제이의 돌발행동을 ** 못한 채 유정은 홀로 고민에 빠졌고 마지막으로 주저하던 슬비가 유리와 미스틸에게 등떠밀려 바위에 손을 올리자 이변이 일어났다.
"A, D..... 애쉬, 더스트?!"
동시에 유정이 충격적인 답을 내놓고, 그 직후 바위로부터 뿜어져나온 검은 광채가 임시본부를 뒤덮었고 그에 당황한 모두가 바위로부터 손을 떼자 이번엔 사방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바위가 폭발하며 사방에 먼지와 서류를 흩날렸다. 모두가 비명을 지르며 폭발에 휘말려 나가떨어지고, 그나마 조금 멀리있었던 유정만이 제자리에서 엉덩방아를 찧으며 작게 신음했다.
"콜록콜록! 대체 무슨 일이....."
자욱하게 낀 먼지에 기침을 연발하며 유정은 팔을 휘저어 자신의 앞에 있는 먼지를 날려보냈다. 그러던 때에 무언가 흔들던 손에 걸렸다. 크기와 촉감으로 보건데 작은 쪽지라고 생각되었다.
"뭐지 이건?"
곧장 손에 잡힌 그것을 얼굴 앞으로 가져와 눈을 가늘게 뜨며 쪽지의 내용을 살폈다. 마치 어린아이 혹은 외국인이 쓴 것처럼 어눌하면서도 필자의 성격을 보여주듯이 휘갈겨진 서체.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한글이었고 해석을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면 어느정도 읽는 것은 가능한 글씨였다.
"친애하는 검은양 팀에게..... 택배라는 매체는 처음 사용해보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이 쪽지를 확인한 것을 보니 다행히 제대로 도착한 모양이군. 이쯤에서 전부 눈치챘을 거라 생각하지만 너희들이 받은 그 바위는 나와 누나가 보내는 선물이야. 슬비 양과 이세하 군을 복제해서 우리의 인형으로 쓰겠다는 야심찬 생각에서 시작한 계획이지. 물론 원본에 미치지는 못했으니 나의 사랑이 변할 일은 없어, 그러니 걱정말라고 슬비 양. 아, 물론 누나가 말하길 자신도 마찬가지라고 하더군. 각설하고 우리가 보낸 건 그 계획의 부산물이야.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너희를 재창조하고자 했거든. 근데 생각보다 마음에 들어서 말이지. 차라리 너희 검은양 전부를 만들어서 반응을 보는 것도 꽤나 즐거울 거라 생각했어. 우리 이름없는 군단의 기술력이 총집결한 걸작이야.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으면 하는군. 아, 참고로 무언가 에너지를 외부에서 공급해줄 필요는 없어. 대기중의 위상력을 흡수해서 자력으로 생존할 수 있거든."
조용히 한 문장 한 문장 읽어나갈 때마다 유정의 머릿속엔 의문만이 늘어갔다. 복제품? 걸작? 에너지를 공급? 도대체 애쉬와 더스트는 자신들에게 무엇을 보낸 거란 말인가.
"아, 일단 성격은 원본을 복제해서 살짝 어레인지를 가했지만 완전하게 만들어내는 건 무리여서 말이지. 어휘능력은 한정되있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할 거야. 그 점은 유의해줘. 그럼 이쯤에서 우리의 작품의 이름을 말해주도록 할까. 바로....."
남은 것은 마지막 마디, 거기까지 읽어낸 순간 먼지가 겉히고 실내의 상황이 명확히 들어났다. 그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하며 경악한 유정의 고개가 녹슨 기계처럼 삐걱이며 돌아갔다. 시선이 도달한 곳에는 폭발에 휘말려 날아간 검은양 팀 5명이 있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자신에게 경악을 선사했던 그 광경을 다시 눈에 세겼다.
그곳엔 방금 전과 마찬가지로 5명이 있었다. 하지만 조금 다르다. 아니 조금 많이, 아주 많이 달랐다. 복장에서 분위기까지 타고난 외형을 제외한 모든 점에서 본래 검은양 5인과는 판이했다.
"두려워해라, 나도 나의 힘이 두렵다..."
라며 유정이 무심코 양손을 움켜쥐게 만들 대사를 내뱉는 또다른 세하.
"복수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바치겠어. 내 영혼까지도."
단 한 마디로 쪽지에 쓰여있던 본능에 충실해진다라는 말을 이해시켜준 슬비.
"난 이 세상이 좋아. 베어도, 베어도, 아직 사람이 남아 있거든."
역변한 목소리와 맞물려 철없는 아줌마 같다는 인상을 주는 유리.
"왜 나만 아파해야 하는 거지?"
앞선 3명과 다르게 조금 울적해지는 대사를 말하는 제이. 선글라스를 벗어서 이상한 아저씨의 이미지에서는 탈피했지만 역시 본능에 충실한 것일까 어딘가 안습한 모습에 변화는 없었다.
"후훗, 시시한 산양이었어."
그리고 맨 끝에 서있는 처음보는 여자아이.
거기까지 본 유정은 다시 고개를 돌려 진짜 검은양 팀을 바라봤다.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또다른 5명의 모습에 경악하고 있었다. 유정은 다시 쪽지를 내려다봤다. 그리곤 다시 고개를 들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암흑의 광휘....."
양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앞으로 휴가는 커녕 휴일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하리라 확신하는 유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