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가 세하와 차를 마실 뿐인 이야기
사일로시빈 2015-02-06 16
"세하야, 나랑 슬비가 물에 빠지면 누굴 구할거야?"
"게임기."
"나.랑.슬.비!"
유리가 생글생글 웃는 표정으로 이쪽의 볼을 꼬집어온다. 웃고있는데 왜 오한이 드는 것인가. 현대 미스터리인가.
스키를 타고있는 경사각의 눈썹이라던가 그 옆에 살짝 불거져나온 핏줄을 보자면 지금은 웃으면서 화내고 있는게 분명하다.
"아니, 대기업 면접도 아닌데 왜 그런걸 묻는 거야? 창의력 테스트야?"
"슬비야 나야?"
"슬비랑 너중에서 고르라면 당연히 너를....너 지금 총 꺼낸 거야?"
유리가 얼른 총을 숨기고는 덧니를 드러낸다. 건강한 치아가 반짝하고 잠시동안 북극성처럼 빛났다.
"대답 여하에 따라서 너랑 제이 아저씨를 쏴버리려고 그랬어."
"아, 아저씨는 왜?!"
"그렇네. 역시 세하는 나를 고르는구나. 에헤."
방금 전까지의 살기등등한 기세는 어디갔는지, 구름처럼 폭신폭신한 기세로 안겨온다.
이쪽을 껴안고는 거침없이 머리를 부비고있다. 처음으로 아빠한테 곰인형을 선물받은 딸마냥 천진하게 무게를 더하고 있다.
찹쌀떡같은 볼이라던가 묘하게 머리에서 나는 향기라던가 여러가지로 머리를 마비시키니까 그만둬줬으면 하는데...
순간 등 뒤에서 한기가 느껴진다. 이상하게 그림자가 길어졌다 싶었는데, 뒤를 돌아보니 슬비가 버스를 들고 있었다.
"흐응....이세하는 날 고르지 않는 거구나..."
"...어? 에...? 여기 방 안 아니었어? 왜 버스가...?"
"또 둘이서 시시덕대고 있고... 이제 그만할래."
"뭐를?! 야, 서유리! 버스! 버스 떨어지잖아! 달라붙을 때가 아냐!"
"내 앞에서... 사라져버렷...!"
"으아아아아아?!"
......는 역시 꿈이군. 월초부터 개꿈이 짜다. 굉장히 현장감이 있어서 온 몸이 젖었단걸 깨달았다. 샤워라도 하고 잘까.
시계를 들여다보는 순간 알람이 울렸다. 이건 또 이것대로 기분이 더럽군. 요즘 자주 이런 꿈을 꾼다.
악몽은 지긋지긋하다. 숙면을 취해야 다음날 좋은 컨디션으로 게임을 클리어할 수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
이렇게 된 이상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수밖에 없다.
"Oh.....그랬군요. 요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보네요."
의자에 앉아서 상담을 듣던 캐롤 누나는 백자처럼 고운 뺨에 손을 올리고 잠시간 강아지처럼 낮은 신음소리를 냈다.
벌꿀색 머리카락이 조명을 받아 노을처럼 빛나고, 선반에 놓인 약병들이 금빛을 머금어 찬란함을 더한다.
여전히 채 단추를 전부 채우지 못한 개방적인 가슴은 그렇다치고,
의료지원 담당이면서 그 흔한 가운 하나 걸치지 않아서 시선을 둘 곳이 굉장히 부족하다.
"그래서 수면제라도 받아서 푹 잘 수 있을까해서요."
"그리 좋은 생각이 아니에요. 뭐가 되었든 수면제, 즉 최면진정제란건 중추신경계를 억압하는 거에요.
세하군의 경우에는 그 중에서도 도중의 각성을 감소시키는 약물을 원하는 것같지만,
이런 약물들은 의존성이 높아서 함부로 처방하기 곤란해요."
".....어...쉽게 설명해주시면..."
"세하군은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는게 먼저라는 얘기에요."
그리고는 손가락을 살짝 물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꿈의 내용을 알면 스트레스의 원인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어..."
저희 팀의 슬비랑 유리가 저를 두고 다투다가 제가 버스에 처박히거나 칼빵을 맞고 자주 죽어버리곤하는데요...
어느쪽을 골라도 저를 죽여버리더라구요...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리가 없잖아! 자의식 과잉도 정도가 있지!
이건 총체적으로 말이 안되는 이야기다. 이런 부끄러운 이야기 아무한테도 할 수 있을리가 없다.
"어.... 그건 아무래도 조금..."
"ummm.... 그렇군요... 역시 사춘기때의 남학생은 아무래도 얘기하기가 어렵겠죠..."
음...? 캐롤 누나가 어쩐지 얼굴을 붉히면서 진료차트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에?! 아니, 아니아니아니아니 절대로 그런 쪽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매일 더 피곤하고 피곤한만큼 스트레스를 받아서 꿈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는 거군요...."
"저, 절대로 오해라니까요 그거...?!"
"이젠 하다하다 언니한테까지 성희롱이니 이세하?"
"누가 들으면 내가 상습 성희롱범인줄 알겠다 야."
뒤에서 독설을 날린 장본인은 정미다.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카락을 양옆으로 올려묶어 귀여운 인상이다.
나무색 머리카락과 새초롬한 표정에 뾰족한 입까지. 마치 먹이를 먹지못해 성이 난 작은 햄스터를 보는 기분이다.
살짝 펄러인 소맷자락에서 옅은 시트러스향을 맡는다. 이제 보니 하얀 가운을 입고있고, 약간 얼룩이 묻어있다.
학교가 복구되는 동안 여기서 캐롤 누나를 도와주고 있는지라, 몇가지 화학적인 일을 하는 모양이다.
나랑 같은 고등학생이지만 제이 아저씨가 권하는 자체개발 건강식품보단 신뢰가 간다는 점에서 이 나라의 미래는 밝다.
"오랜만에 와선 나한테 아는체도 안 하고 쪼르르 언니한테 기어가는 꼴이라니."
"내가 분명 인사했잖아."
"못 들었어."
"난 네가 또 일부러 날 무시하나 했지."
"너, 너따윌 일부러 무시할 리가 없잖아, 굳이...."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넣고 중얼중얼 불평하고 있다. 오히려 알기쉽게 까칠해서 유리나 슬비보단 편안한 느낌이 든다.
가만히 지켜보던 캐롤 누나가 두 손을 마주치며 좋은 생각이 났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wow, 그래요. 생각해보면 세하군은 운동부족이에요."
"네?"
"쉴 때는 게임만 할뿐이잖아요?"
"큭...."
"몸이 피곤하면 푹 잘 수 있어요. 그리고 동물을 보면 스트레스도 해소될 거에요."
".....동물?"
"그러니까 정미랑 다녀오세요."
난데없이 호명된 정미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털을 곤두세운 고양이같다. 좀 더 부풀면 털을 가시침마냥 발사할 것 같다.
"제, 제가 왜요?!"
"휴가에요. 좀 쉬고 오세요. 마침 근처에 강아지 카페가 있다고 해요."
"무, 무슨 관계가 있는지...."
캐롤 누나가 손을 메트로놈마냥 흔들며 훈계하는 표정을 짓는다.
"이건 중요한 의료활동이에요. 이대로 세하군이 계속 잠을 못 자면 전투력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어요. 그렇게 되면 실전에서..."
".............으..으읏... 아, 알았어요! 제가 할게요!"
"야, 야. 괜찮아?"
정미가 쏘아본다.
"왜? 나랑은 어디든 같이 가기 싫어?"
"그렇게까진 말한적 없는데."
"어차피 넌 카페랑 담쌓은 인생을 보내고 있잖아? 내가 좀 체험시켜줄께."
"부정할 수 없는 점이 아프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회초리처럼 들어오는데요 우정미 훈장님....
결코 놀러가는게 아니니까 경비로 처리하라고 유니온 법인카드까지 받았다. 이렇게 예산 낭비해도 괜찮은 건가?
아니 낭비가 아닌 건가? 혼란이 가중되는데 정미가 가운을 벗는다.
단지 외투를 벗을 뿐인데도 어쩐지 몸짓이 요염하게 느껴져서 눈을 돌렸다.
"아니... 그런데 왜 교복을 입고있는 거야..."
"네, 네가 올 줄 몰랐으니까..."
"...어?"
".....시끄러. 왜, 사복 입은 거 보고싶어?"
"뭐, 뭐...."
유리나 슬비라면 됐다, 라고 편하게 말할텐데 얘한테는 그렇게 심하게 말할 수가 없다.
힘들게 사귄 친구니까 분명 잃고싶지 않은 거겠지.
"동물은 좋아해?"
"남들만큼은."
"따로 키우진 않아?"
"그럼 게임할 시간이 줄어들잖아."
"잘나셨어, 아주."
그리곤 아주 살짝 웃는다. 그리곤 바람이 조금 불었을 뿐인데도 희미한 미소가 걷혀버렸다.
슬비가 딱딱하게 규칙적인 보폭으로 걷고, 유리가 성큼성큼 자유롭게 걷는다면 정미는 약간 머뭇거리듯 걷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걸음을 좀 더 느리게 맞춰걸어야했는데, 정미는 슬쩍 이쪽을 보며 느슨하게 말했다.
"그래도 아주 형편없지는 않구나."
"뭐가?"
"지금은 게임 안 해?"
"꺼내기 귀찮아서."
"흐응."
실은 의식적으로 그런 것도 있다.
너희 클로저들은 차원종하고 싸울 시간도 모자랄텐데, 사람이 죽어가는동안 게임기나 붙잡고 있니? 하고 들으면 할 말이 없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보다 좀 더 조심스러워진달까. 이 애 앞에선 나도 모르게 좀 더 의젓해지려고 하는 것 같다.
"요원복 잘 어울린다."
"응? 어, 뭐, 고마..."
"근데 바지가 별로야."
"?!"
쿡쿡 웃으면서 종종걸음으로 먼저 나가더니, 한 가게 앞에서 멈춰서 손을 흔든다.
"여기야!"
"오...... 그럼 실례를 무릅쓰고."
"아하하. 장례식 가니?"
"시, 시끄러... "
"다른 카페랑 달리 이런데는 입장료가 있어. 대신 음료수는 꼭 사지 않아도 괜찮아.
보통 이런 데는 음식이나 커피는 영 별로라서 마실 거면 다른데 가는게 낫지만, 이 가게는 괜찮아. 보증할께. 좀 더 비싸지만."
"넌 이런데 누구랑 오냐. 역시 유리인가?"
"......어....근데, 왜 무조건 유리라고 생각해?"
"그야 너 친구가 유리밖....아파! 아파!"
슬비한테 사람 발을 아프게 밟는 법이라도 배워온걸까, 아니면 태어날 때부터 본능적으로 알고있던걸까.
좀만 더 떠들었으면 내 발등은 함몰되서 우물이 고일 정도가 되었을 거다.
"뭐, 이젠 너도 내 친구니까, 종종 이런데 오면 되겠네."
"그렇네...응?"
어쩐지 부끄러워져서 쳐다보니 먼저 안쪽으로 휙 들어가버린다. 날 이런데 놓고가지 말아줘...
안쪽으로 들어가니 실내가 넓고, 테이블이 많지 않다. 오히려 소파가 많다. 여러종류의 개들이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다.
일단 짐승 특유의 냄새와, 굴러다니는 털뭉치가 보였다.
계산을 하고 들어가니 정미는 어느새 쪼르르 달려가 리트리버 하나를 쓰다듬고 있다.
색깔이 비슷한걸. 다른 개가 무릎에 턱을 올려놓으니 하와와하는 귀여운 소리를 내며 두 팔을 들어올리고 있다.
옆에 앉자니 시츄 하나가 기어올라온다. 분홍빛 혀를 흔들며 헥헥 소리를 내고있다. 이거 주제에 머리를 묶고있네. 귀엽구만.
저쪽에 색깔이 과일맛 사탕같은 푸들이라던가, 얼굴이 무서운 허스키도 보였지만 역시 작은 개가 안정감이 있다.
따뜻한데... 설마 여기다가 실례라도 하는 건 아니겠지. 그러고보니 요원복에 털 잔뜩 묻는거 아냐? 드라이 맡겨야 하나?
"먹을 거 사서 먹이를 줘볼 수도 있어."
"그럼 내 손을 먹을 거 아냐."
"아하하, 그럴리가 없잖아."
상냥하게 웃으며 손사레를 친다. 어쩐지 좀 더 부드러워진 기분인데. 평소에도 이러면 좋으련만.
"뭐 좀 마실래?"
"얘네가 내꺼 다 뺏어먹는 거 아냐?"
"훈련받은 애들이라 손님 거는 손 안 대."
"음........ 스노우볼라떼는 뭐야?"
"아포가토 비슷한 거야."
"쉬운 이름이 하나도 없네."
"그냥 카페라떼에 아이스크림을 띄운 거야."
"어디서부터 태클을 걸어야할지 모르겠는데."
"그럼 일단 먹어봐!"
그리곤 몸을 일으켜서 토닥토닥 카운터로 걸어간다. 저런 행동력 강한 부분은 역시 유리가 떠오른다. 친구라서 그런가.
헥헥대는 강아지의 배를 문질러주고 있자니 정미가 돌아와 벨을 건넨다.
"울리면 가져와."
"넌 뭐 마시는데?"
"버블티."
"그건 뭐야? 거품이 엄청 많은 커피야?"
정미가 간지러운 웃음소리를 낸다.
"너 정말 이런 쪽으로는 아무 것도 모르는구나."
"게임에 대해선 잘 아는데."
"좀 다른걸 알아볼 생각은 없어?"
"하고있잖아."
"뭘?"
"너라든가."
"..............."
확실히 성과가 있다. 정미는 동물을 좋아한다던가. 카페에 박식하다던가.
아무리 그래도 같이 게임을 하는 사이는 아니니까, 다른 방식은 서투른 내가 이런 정보들은 대단히 귀중하다.
일상을 지키는 것이란 이토록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얼굴이 왜 그러냐? 어디 아파?"
"........됐어, 바보야.... 커피나 가져와...."
타이밍 좋게 벨이 울린다. 버블티는 안에 타피오카 펄이라는게 든 밀크티였다.
이게 젤리같은 식감을 냈는데, 이게 생긴게 그렇다고 버블티라니. 이걸 또 펄이라 부르는건 뭐야.
스노우볼라떼라는건 둥근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둥둥 떠있는 커피였는데, 이게 얼음과 설탕의 역할을 하는 모양이다.
마시면 마실수록 달아졌다.
"어때?"
"비싼 맛이야."
"뭐야 그게."
정미는 웃을 때의 모습이 보기 좋다. 우리 존귀하고 위대하신 리더님도 좀 이렇게 웃어주면 좋으련만.
"뭐, 뭘 빤히 쳐다봐?"
'아, 미안."
"미안할건 뭐니?"
"그런가?"
"아, 그러고보니까말야."
"뭐가."
정미가 몸을 반쯤 일으켜 상체를 이쪽으로 숙인다. 손을 뻗고는 휴지로 이쪽의 입가를 슬쩍 문질러 닦았다.
아무래도 거품이 묻어있단 모양이다. 살구빛의 얼굴로 느슨하게 입꼬리를 올리고는 다시 자리에 앉는다.
"언제 알아채나 기다렸는데 의외로 둔하구나."
"요즘따라 주변 사람들이 자꾸 나를 둔탱이라 부르는 기분이 든다."
'그걸 지금 눈치챈 시점에서 둔탱이 왕중왕이 아닐까."
"킹 오브 둔탱이라니 어디의 보스몹이야. 사양할래."
".....흐응."
"근데 너 되게 엄마같다."
"....하아?"
"우리 엄마보다 엄마같아."
"넌 지금 그걸 칭찬이라고 하니?"
"칭찬 아냐?"
"절대 아냐."
"실패다...."
"그런 칭찬으로는 고래도 춤추게 할 수 없어."
"심지어 대실패인가."
약간 늘어져있자니 어깨에 있던 녀석이 볼을 핥아줬다. 귀여운 녀석....은 무슨 언제 어깨까지 올라간 거야!?
빨대로 버블티를 휘젓던 정미가 무심한척 물어온다.
"그런데말야. 아주 사소한 질문이야."
"응."
"나랑 슬비랑 유리가 물에 빠지면 누굴 구하고싶어?"
"하아?"
"겸사겸사 그 세린..선배란 사람도 포함시켜서."
또냐!? 또 이 질문이야!?
여자들은 이 질문을 안 하는 안되는 병에 걸린 건가? 아니면 무의식 중에 DNA레벨로 물에 빠지고 싶어하나?
이제 캐롤 누나나 유정 누나까지 이걸 묻기 시작하면 완벽하게 트라우마가 될 거다.
아냐. 트라우마로 굴할 바에야 아예 세상의 물을 모조리 증발시켜서 여자들이 빠질 물이 없도록 하자.
"당연히 널 구하지."
안 그런척 초조하게 테이블을 긁어대면서 빨대로 타피오카를 추출해내던 정미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에?"
"다른 사람들은 다 클로저 요원들이잖아. 자기 앞가림정도는 할 줄 안다고. 우린 클로저니까, 시민을 구해야지."
정미가 피식 웃으며 빨대에서 입을 뗀다.
"......그래. 넌 한결같구나."
"칭찬이야?"
"칭찬이라고 해둘께."
"해냈네."
"....그러니까 앞으로도 계속, 날 지켜줘."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뭐랄까, 누가 가슴 언저리에 털실 한뭉치를 넣어둔 것처럼 하루종일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었다.
샤워하다가 실제로 거기 어느새 개털 한줌이 들어가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는 했지만, 어쩄거나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그 날은 캐롤 누나의 치료법이 효과가 있었는지 푹 잘 수 있었다.
"세-하-야-아-?"
"......뭐냐 또....으억...."
야생의 서유리가 헤드락을 걸어왔다! 안쪽은 푹신한데 바깥쪽은 딱딱해! 이상한 헤드락이다!
묘하게 아픈데 또 묘하게 안정감이 있네. 밸런스가 좋군... 새로운 고문인가?
유리가 특유의 화내고있지만 화내고있지않는 유쾌한 목소리로 말한다.
"정미정미랑 단 둘이서 놀러갔다면서? 이거 질투나네-? 나도 좀 불러주지 그랬어!"
"아니 그건 다 이유가 있.... 여기서 기브업 선언하면 되냐..."
탁탁 테이블을 두드리고 있자니 슬비가 서늘한 푸른 눈으로 내려다본다.
"헤에. 아침부터 행복해보이네? 이세하."
"행복 운운할 여유가 있으면 좀 구해...."
"흥."
"세하야! 다음엔 정미정미랑 나랑 셋이서 놀러가자!"
유리가 헤드락을 한 채로 두개골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실시간으로 기술이 좋아지고 있다. 역시 너무 전투센스가 좋잖아.
슬비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오더니 축 늘어진 이쪽의 팔을 꾹꾹 잡아당기며 수줍게 쏘아붙인다.
"이세하. 설마 잊은 건 아니겠지? 우, 우린 둘이서 그, 게임..리그를..보러가기로 했잖아... 뭐가 먼저인지 잊지마..."
"알겠...알겠으니까... 일단 좀 둘 다 놔...."
제이 아저씨는 또 휴대용 믹서기에 수상한 약초들을 잔뜩 갈아넣으면서 이쪽을 보고 "청춘이구만-"하는 무책임한 말을 했다.
아프면 환자죠 이 아저씨야!하고 거세게 따지고 싶었지만 양 옆을 완벽히 봉쇄당한 탓에 그럴 겨를이 없었다.
....아무래도 오늘도 숙면을 취하긴 글렀을 것 같다.
*
저번부터 이어지던 유리세하슬비물에서 이어집니다.
발로 쓰다보니 점점 내용이 산으로 가는 기분입니다.
이젠 이 내용들이 왜 이어지는지도 모르게 되었네요.
으어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