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자(Betrayer) - 1

시류화 2015-02-06 0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아니, 이제 와서 고민해봤자 소용없다.
세하는 건블레이드를 꽉 쥐었다.

리더 역시 결코 좋지 못한 표정이다.
어린 미스틸도, 산전수전 다 겪었을 제이마저도.

" 지금이야말로, 최대의 난적인 것 같은데 말이야. 상황 좀 설명해 줄 사람? "

대치 상황에서 정적을 깬 제이의 첫 한 마디가 정적을 깨뜨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입을 열었다.

" 오랜만이에요, 제이 아저... 아니 오빠라고 하는게 더 좋으셨죠? 물론 세하, 슬비, 미스틸도 모두 다시 보게 되네, "

그녀가 웃었다. 하지만 과거의 해맑은 웃음은 결코 아니었다.
그늘이 드리워진 슬픈 미소...
한 번도 ** 못한 표정이었다.

" ... 왜 너가 여기에 있는거야? 서유리. "

세하는 천천히 입을 뗐다.

" 그걸 궁금해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더 중요한 건, 너희는 지금 '내' 궁전에서 '내' 부하들을 학살했다는 거지. "

강조되는 1인칭.
항상 우리라는 표현을 즐겨썼던 그녀와는 사뭇 다르다.
사소한 단어의 차이가 마치 넘을 수 없는 벽을 굳건히 하는 것 같다.

" 또다시 출현한 차원종들이.. 유리의 부하라는거야? "

평소와 다르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리더 슬비가 답이 이미 나온 질문을 되풀이 한다.

" 이해력도 좋은 노력파 리더께서 그러시면 곤란하죠. 그럼 또 너희들이 학살한 게 있어? 그리고... "

갑자기 총을 서서히 치켜드는 유리.
그 총구는 패닉에 빠진 분홍 머리카락의 소녀를 향한다.

" ...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없다고 생각해. "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총성. 그리고 뒤이어 들리는 탄이 금속에 부딪히는 소리.

탄은 건블레이드에 닿자마자 맥없이 엉뚱한 방향으로 튕겨나갔다.


" ... 집중해, 이슬비. "


" 세, 세하.. "


동시에 깔깔거리며 네 명과 대치하고 있는 소녀는 **듯이 웃었다.

정말 **듯이.

그러다가 집중되는 시선을 의식한듯 웃음을 거두고, 말을 불쾌한 듯 내뱉었다.


" 아아, 미안 ㅡ . 공주님을 지키는 왕자님, 너무 진부한 소재라서 재미있어서~ "


" 적당히 해, 서유리.. "


" 시끄러워, 이세하. 이제 장난은 끝났어. "


" 조심해, 온다! "


제이의 말과 동시에 유리가 빠르게 세하를 향해 접근해왔다.

세하는 급히 건블레이드를 들어 유리의 공격을 방어할 태세를 갖추었다.

하지만...


" ... 뭐해? 롤링 발칸 (Rolling Vulcan). "


그녀는 뛰어올라 그대로 세하의 머리 위로 사격을 퍼부었다.


" 중력장(重力場)! "


슬비가 유리를 제압하기 위해 중력을 조절하는 위상능력을 사용했지만,

그녀는 이미 그 영향이 미치는 곳 밖으로 이동하여 후속타를 시작하고 있었다.


" 연속 사격, 전탄 발사 .. "


동시에 들려오는 비명 소리와 퍼져가는 폭발의 연기.

그리고 유리는 저 뒤로 이동한 상태였다.


" 뭐야, 슬비.. 느리잖아? 그렇게 날 무시하더니 별 것 없네.. 남자친구도 못 지켜주고 말이야~ "


슬비는 급히 세하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자욱하던 연기는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소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상태였다.

그들 중 가장 강했던 세하가..


순간 오버랩되는 과거의 기억.

엄마... 아빠....

그리고 이번에는 세하까지..

다음은 누가될까..


" 너, 너.... "


" 괜찮아~ 옛 정이 있어서 죽이지는 않았어. 가서 캐롤리엘한테 봐달라고 하면 괜찮을거야. "


마침내 냉정을 잃은 소녀는 천천히 말을 내뱉었다.


" 검은 양의 리더로써, 검은 양을 배신한 서유리 요원을 지금부터 검은 양에서 배제시키고 적으로 간주, 섬멸하는 것을 방침으로 하겠습니다. "


수긍하지 못하는 제이와 미스틸의 표정.

과연 세하는 어떻게 했을까. 그렇게 자비없이 공격했는데 과연 납득하지 않았을까.


" 그래~ 쓸데 없는 정 찾는 모습은 너답지 않아, 리더씨~ "


" 문답무용, 내 앞에서.. 사라져버려!  위성 낙하(衛星 落下)"


동시에 허공에서 발생하는 거대한 게이트.


' 진짜로 죽일 셈이냐, 리더. '


제이는 슬비를 약간 흔들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방금 세하가 당한 부분은 그저 막기만 하려고 했기 때문에 당한 것.

반면, 이번에는 슬비의 선공이다. 검은 양의 최약(最弱)이던 유리는 결코 견디기 힘들 것이다.


" 좋아, 좋아 ~ 시프트(Shift)! "


순식간에 잔영이 되어 빠져나가려고 하는 유리,

하지만 슬비는 결코 그걸 바라만 보고 있지 않았다.


" 어딜 도망가! 공간 압축(空間 壓縮) ㅡ ! "



동시에 그녀의 탈출을 막는 거대한 블랙홀,


" 큭... "


" 죽어, 서유리. "


" 유리 누나...? 안 돼애 ㅡ ! "


" ... 정말 진심이었군.. "


미스틸의 절규와 함께 거대한 위성이 그대로 블랙홀과 배신자를 함께 덮쳤다.

그리고 거대한 폭발이 그대로 집어삼켰다.


" 하아... 하아... "


동시에 가쁜 숨을 내쉬며 그대로 주저앉는 소녀.

순간의 분노로 준비도 안 된채 너무 많은 위상력을 쏟아부어서인지, 온 몸의 힘이 풀린 듯하였다.


" 유리 누나... ... "


" 결국 비극으로 끝나는군... "


두 사람의 목소리. 슬비는 천천히 자기가 무얼 했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별 거 없다. 동료였지만, 인간을 배신한 그녀를 섬멸했다.

옳은 건가. 옳은 것이다. 클로저의 역할은 차원종으로부터 인류를 지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칼바크 턱스는. 유하나는.

왜 그들은 섬멸하지 않고 사로잡았는가.


자신은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결국은.


" 아. 아아.... 아니야... 난.. 난...."


" 맞아, 안타깝지만 죽인 건 아니야 ~ "


갑자기 들려오는 속삭이는 목소리.. 이 목소리는...?

그리고 동시에 느껴지는, 몸을 관통하는 끔찍한 고통.

자신의 이름을 급하게 부르는 아저씨와 미스틸의 목소리가 흐릿하게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슬비는 그 모든 것들이 어둠에 삼켜짐을 느꼈다.





fin.

2024-10-24 22:22:50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