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국회의원 김기태의 이야기-프롤로그
헤커스이세하 2016-12-04 0
들어가기 전에...
-안녕하세요. 올해 수능을 마친 예비 재수생입니다.
-하도 요즘 시국이 걱정이 되어서 김기태 요원의 입을 빌려 소설을 썻습니다.
-이 소설은 시국적입니다. 김기태 요원이 국회의원이다는 if 설정입니다.
-클로저스는 2020년이 배경이지만 저는 여기서 연도 설정을 다르게 했습니다.
-1차 차원전쟁을 1994년, 2차를 2012년으로 설정한 이유를 나중에 밝히겠습니다.
-코멘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관점은 대부분 김기태 의원(국민의당 비례대표)입니다. 엔 타로 갓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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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하햐하라!!!”
나는, 역사의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사랑하는 나의 부인과 함께.
마치, 역사를 증언하듯, 내 동료 당원들과 함께 말이었다.
동료들 뿐만이 아니었다.
내 주위에는, 120만여개의 촛불이 켜져 있었다.
그리고, 그 촛불을 든, 성난 국민들이 있었다.
차원 전쟁의 책임을 져라.
무능한 정부는 물러나라.
세월호 7시간의 진실을 밝혀내라.
이 정부는 비선실세의 것이 아니다.
대한 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대한 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부터 나온다.
그렇지만, 이 나라의 현실은 그렇지 못한다는 건, 우리 국민들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국민들이 뽑은 대통령이 남의 지시에 따라 국정을 운영했다니.
그것도 그 조종한 사람이 민간인 인것에도 모자라 사이비 종교의 교주라는 것이 매우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거기에 그치지 못해 대한민국의 소위 ‘특권층’이라는 자들이 대한민국을 멋대로 주무르고 있던 것이었다.
내가 지킨 이 나라가,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말이다.
이렇게 이 꼴이 날 줄 알았으면, 나는 정치에 뛰어 들지 않았을 것을….
아니, 애초에, 나는 이 꼴의 나라를 지킨 것에 자괴감이 들고 서럽게만 느껴졌다.
내가 이럴려고 클로저를 했나 싶었고….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나는 포기 할 수많은 없었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대한 민국의 국민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 이자, 한 여자의 남편이기 때문이다…!
차원 전쟁을 겪은 사람으로서, 나는 다시 외치고 있었다.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나는 포기할수 없다는 듯이 외치고 있었다.
자랑스런 국민의당 국회의원으로서, 30대 기수들 중 한명으로서, 내 목을 지르고 있었다.
‘강남을 수호한 전설의 A급 요원’으로서, 내 위상력을 발산하면서, 외치고 있었다.
“박근혜는, 하야하라!!!!”
내 이름은 김기태, 국민의당 비례대표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었다.
성난 민심의 힘은 강하다.
‘그들’의 잘못이 바로잡히기 전에는, 촛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대한민국의 희망은 밝아 올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민초(民草)의 힘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을 짊어갈 어린 희망의 꿈나무들을 위해,
영웅이었던 나도, 그리고 우리 세대의 사람들도, 사실상 남녀노소 할 것도 없이,
우리 모두 들고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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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82년 9월 11일 생이다.
올해 2016년 12월을 기준으로 하면, 나는 만으로는 34살, 우리 나라 나이로는 35살이 된다.
충남 진천군에서 태어났고, 내 어린 시절은 지극히 평범했던 걸로 기억하고 있었다.
1차 차원 전쟁까진, 그랬었다….
1994년. 1차 차원전쟁이 발발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평범한 초등학생에 불과했다.
하지만, 나의 몸에 고열이 났고, 무슨 이상한 고리가 들리더니만….
기어코, 내 몸이 이상한 기운이 느껴져서, 먼 거리에서 사물을 옮겨버린다는 장난을 치게 되는 둥….
내 몸이 이상해 졌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된 원인은, 곧 밝혀지고 말았다.
엄청난 인류의 비극으로 말이었다.
그 당시의 대통령은 ‘문민정부’의 기치를 거신, 김영삼 대통령이셨다.
처음에 보고된 외계생명체에 대해서 그분의 반응은, 다음과 같으셨다.
‘모두 허풍일테니, 국민들께 안심하라는 방송이나 하라’고 말이었다.
이 한마디가, 전 세계에 비극을 가져온 한 마디가 되고 말았다.
(내가 나중에 그분의 자서전을 읽다 보니까 안 사실이었는데, 이분은 매우 어려운 상황도 쉽게 생각하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뿐만이 아니라 김대중 전 대통령님께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국민들은 안심했지만, 그 안심 때문에, 그 외계생명체가 본격적으로 공격을 시작 했을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 당시의 기술로는 외계생명체의 몸에 상처를 거의 못 입혔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무기도 매우 강해서 단기간에 많은 도시들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해결책은 금방 찾아졌다.
정부는 그 생명체에,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종이라 해서 ‘차원종’이라 부르기로 하고, 그들이 쓰는 힘을 ‘위상력’이라고 부르기로 했었다.
그리고, 우리 인간들 중에 위상력에 눈을 뜬 ‘위상능력자’들이 발견 된 것이었다.
나도 예외는 아니라서, 정부에 의해 반 강제적으로 많은 연봉을 받는 조건으로 특수 요원이 되버리고 말았다.
이런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는게 아니라서, 유엔에서 산하기관을 만들었는데, 이 단체가 바로 유니온이었던 것이었다.
(유니온의 창설과 더불어, 우리 위상능력자를 ‘클로저’라고 부르기로 한건 모두 알 것이라고 믿는다.)
1994년부터, 나는 유니온의 수습요원 과정부터 밟아 차츰차츰 공을 세워가고, 그 와중에 사귀어 왔던 많은 친구들과 동료들이 죽는 꼴을 보면서, 마침내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경호원이 된 동시에 A+급 요원으로 승진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님은 내가 제일 존경하는 대통령님이시다. 그 분에 대한 이야기는 추후에 중간중간마다 넣을 예정이다. 여튼 나는 그 분이 서거하실때 까지 그분 곁을 지켰다.
그리고 2009년, 나는 내 인생에서 제일 큰 영향을 주었던 놈을 만났다.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데이비드 리(혹은 일본 이름으로 데이비드 소스케) 전 유니온 한국 본부장을 만난게 그 때였다.
물론 그 놈은 그때 당시에는 관리부 국장에 불과했다.
처음에는 난 그 놈을 존경했지만, 나중의 그의 행적과 계획을 알고 나서는 죽빵을 먹이고 싶어졌다.
그것도 나중에 말할 예정이다.
제 2차 차원전쟁은, 내가 S급 요원 승격전에 3번째로 실패한 그 해, 2012년에 일어났다. 그때의 행적에 대해서는, ‘갓기태와 갓의원’이라는 내 자서전을 읽으신 여러분들은 잘 아실 것이다. 한 가지만 말하자면, 그때의 에필로그 처럼, 나는 2차 차원 전쟁때 죽지 않았다…. 큰 부상을 입었지만 뭐 살았으니 그만이다. 여러분들이 궁금하다면 그것도 나중 챕터때 공개할 예정이다.
여튼, 2차 차원전쟁 이후, 내 행적들이 공개되면서, 사람들은 점차 나를 ‘갓기태’,’강남의 A급 요원’,’인성의 Aㅔ이스’,’대한민국의 숨은 영웅’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내 집 주소를 알아 내어 기습 방문이나 기습 선물, 편지들을 막 주더니만(…) 드디어는 나보고 정치를 해달라는 사람들도 등장했다.
나는 처음에는, 정치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내 부인께서(나는 2013년도 초에 오세린과 결혼했다. 그때는 호박이라고 부르고 놀렸지만, 이젠 나도 그렇지는 않는다. 어쩌갰는가. 사랑하는 나의 여인인데.) 몸소 말하시길, ‘정치를 해서 대한민국을 바꾸는 거에요 갓여보!!’
...그래서 나는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에 가입했다. 2014년 지방 선거에는 나가지는 않았지만, 2년뒤 총선에서 비례대표에 당선되는 쾌거를 이루어 냈다. (난 내 당적을 2016년에 국민의당으로 옮겼다.)
그리고 내가 비례대표로서 나름 열심히 활약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때, 내 인생을 완전히 바꾸게 될 사건이 터졌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말이었다.
나는 이 소식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도데체 이 나라를 뭐하러 지켰나.
내가 이럴려고 클로저를 했나 자괴감이 들고 서럽게 느껴지고 했던 사건이 터진 것이었다.
뭐…. 프롤로그는 여기 까지다. 다음 부터는, 아마 내 인생 스토리를 펼치게 될 것이다.
국회의원 김기태, 그리고 전 A급(은퇴 당시에는 Z+급(SSSS+보다 세 단계 위가 X+급, 그 세단계 위가 내 최종 급))요원 김기태의 이야기를 시작할 때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