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클로저스 팬픽 - 울타리(Fence) 1
과열주의 2015-02-04 1
"부모님을 모셔오라고 어제 학생한테 담임이 제대로 전달했을텐데요."
전학 온지는 한달이 다 되어가지만, 이 학교의 교장선생님이란 분을 뵌 건 지금이 처음이다. 여성으로, 곳곳에 주름이 잡혀가는 얼굴은 보기에 교장직을 맡기엔 조금 젊지 않은가 싶다.
"어머니라면 지금 입원중이시라 오지 못하십니다."
"아버님은?"
"돌아가셨습니다."
아무래도 나를 신나게 다그치기 위해 안으로 레퍼토리를 수십가지는 짜내고 있었을 터인 교장은 내 무미건조한 대답에 말문이 막힌다. 터부라도 건드린 듯 일순간 미안한 얼굴을 하기도 했지만.
전학이 잦은 탓에 담임 역시도 급하게 반에 던져넣어진 내 집안사정 따위를 파악하고 있을리가 없는데 교장이 그런 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을리가 만무하다.
"집안이 그 꼴이니 애가 이 모양이지."
가시돋친 말이 교무실 소파 한켠에서 새어나왔다.
"어머님, 그런 말은 삼가시는 게……."
"틀린 말 했나요? 남의 아들 얼굴을 피떡이 되도록 두들겨놓고 반성의 반 자도 안 보이는 얼굴로 저렇게 앉아있는데!"
만나는 사람의 기를 죽이고 싶어하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아줌마. 사람 볼 줄 아시는 분이다. 확실히 나는 반성은 커녕 이 사태에 대해 이렇다할 감상도 느끼지 않고 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진 학생도 어서 어머님께 사과드리고─"
"인정할 수 없어요!"
누구는 그럴 마음이 추호도 없는데 불만이 터져나온 것은 오히려 저쪽이었다.
"알아봤는데 능력자가 민간인에게 상해를 입혔을 때는 가중 처벌을 받게 되어 있더군요. 게다가 이 학생은 저번에 있던 학교에서도 이런 일로 전학권고를 받고 이 학교로 왔더군요. 학생의 경우에 제대로 된 징계는 퇴학일텐데."
격앙되는 어조. 교장은 진정시키려 하지만 들을 생각이 없는 듯하다.
"보아하니 그 능력이라는 것도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괴물들 상대로 쓰라고 있는 거던데 정말 큰일 벌어지면 그 땐 어떡하실 생각입니까?"
"그래도 이 하진 학생은 기관에서 채점한 능력 제어 성적이 '우수'로 그런 부분에 대해선 걱정할 필요가……."
"그럼 이렇게 수 차례 전학을 다닐 이유도 없었겠죠! 보나마나 자기 힘도 제대로 주체 못해서─"
"그건 아니죠."
아무리 글러먹은 나라도 일을 이 이상 크게 불리고 싶진 않아 잠자코 듣고 있었지만 거기서는 참지 못하고 결국 말을 자르고 입을 열고 말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속이 좁다.
"그런 능력자한테 얻어맞은 것 치고는, 걔 팔다리 두쪽 다 제대로 붙어 있잖습니까."
"하진 학생!"
위상력이란 그런 것이다. 수세기간 인간을 학살해왔던 총탄으로도 뚫지 못하는 차원종의 갑피를 찢고 그것들을 섬멸하기 위해 존재하는 힘. 그런 걸 인간에게 썼는데 결과가 고작 피떡이라니 납득할 수 없는 데도 정도가 있다. 내가 정말 그 녀석을 두들기는 데에 능력을 썼다면 그런 걸 맞고도 기절조차 안한 그 녀석은 위상능력자로서 유니온에 던져넣어져야 할 것이다. 결론은 그냥 치고받고 싸웠다는 얘기고, 내 얼굴을 보면 알겠지만 싸움의 흔적으로 왼쪽 광대 부근에 녀석의 주먹에 맞아 생긴 빨간 상흔이 있다. 그나마도 유니온의 이런저런 장신구 실드를 착용하고 있었다면 간지럽지도 않았겠지만.
그리고 무엇보다, 위상력을 민간인에게 사용했을 때 어떻게 되는지는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잘 알고있다.
"너……!"
사람을 여럿 문 들개라도 본 듯한 표정을 하는 아줌마. 교장 역시도 중재를 포기하고 지끈거리는 듯 이마에 손을 가져가 댄다. 될대로 되라 하는 심정으로 앉아있던 소파에 완전히 체중을 맡기고 늘어지는데 타이밍 좋게 교복 블레이저 안에서 울리는 휴대전화의 진동. 당연히 교내사용은 금지되어 있지만 유니온의 요원으로서 특별히 허가를 받은 것이다.
'잠시'하고 양해를 구하고 교무실을 나와 전화를 받는다. 들리는 것은 유니온 상관 관리요원의 목소리.
"여보세요. 예. 평일 이 시간에 당연히 학교지 어디겠습니까. 통신기요? 예, 지금 착용하겠습니다."
[하진. 상황보고.]
모 고층빌딩 옥상은 바람이 세차게 불어 요원복 사이사이로 찬 공기가 스민다. 왼쪽 귀에 꽂힌 소형 통신기로 들려오는 짜증 섞인 목소리. 나를 대할 때만 유독 날카로워지는 그 목소리는 분명 어린 여자의 것으로 나보다 년도로 보나 생일로 보나 한살이 어린 임지유라는 애지만 언동을 보면 언제나 연상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다. 분명히 나 이외의 사람들에겐 깍듯이 대하고 있겠지.
"오늘도 영 심기가 좋지 않으신데 갓 충전한 버스카드라도 잃어버리셨습니까?"
[안 좋을 수 밖에 없지! 또 사람 때렸다면서! 민간인 폭행이 이번으로 도대체 몇번째야?!]
"자꾸 다들 그렇게 민간인 민간인 하는데 나 역시 능력만 안 써도 넘어지면 아프고 차에 치이면 죽는 연약하기 그지없는 고교생이라고?"
[그런 궤변이 먹힐 것 같아?]
"아니. 그래서 아무 말 않고 가만히 있었어."
['나 잘했지?'라는 투로 말하지 말란 말이야!!!]
휴대전화도 아니고 즉각적인 반응으로 귀에서 멀리 떨어뜨려 놓는 것이 불가능한 소형 통신기이기 때문에 청신경이 찌잉 하고 마비되는 감각을 느끼며 왼쪽 귀를 움켜쥔다.
"크으으으으……."
[애초에 말야. 지가 무슨 만화 주인공이야?! 불의를 보면 참을 수가 없다, 뭐 그런거야? 그렇게 깡패들 볼때마다 패고 다니면 뭐 학교에서 애들이 감사의 편지라도 한통씩 써서 보내주기라도 한데?! 계속 참작해서 참작해서 겨우겨우 징계를 전학으로 눌러놔도 학교 옮길 때마다 옮길 때마다. 그러다가 정말 퇴학이라도 먹으면 어떡할 생각이야?!]
특유의 '두번 말하기'까지 시전해가며 통신기 너머로 설교를 늘어놓는 임지유. 아무도 없는 건물 옥상에서 허공에 삿대질을 해가며 파닥파닥 흥분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거, 걱정해줘서 고마워."
[누가 네 걱정 같은 거 할 것 같아?! 너 하나 때문에 우리 팀 싸잡아서 자꾸 욕먹잖아! 사회부적응자 낙인 때문에 관리요원 분도 얼마나 골치인지 알아?! 검은양 팀은 강남에서의 실적 덕에 평가도 쑥쑥 오르는데 우리는─]
남이 보스몹 잡고 레벨업 했단 소식에 초조해하는 녀석이었다. 뭐, 사실 그럴만도 한 게 임지유는 관리기관 훈련소 시절부터 이슬비 요원을 존경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도 틈이 나고 생각만 나면 '슬비 언니는~'하는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놓기 일쑤이니.
이슬비는 동갑내기 유니온 산하 요원으로서 몇번인가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내 감상은 뭐랄까 그 차가운 눈빛이나 날카로운 분위기 하며 여러모로 찌릿찌릿한 애였다. 어찌보면 임지유와 닮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임지유는 어디까지나 나에게만 그러는 것이고 이슬비는 누구에게나 그러니 차가움의 레벨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런 임지유가 기관에서 제법 괜찮은 성적을 냈음에도 이슬비가 리더로 있는 특수처리반 클로저스 '검은양(Black Lamb)'에 배정받지 못한 것은 극히 개인적인 문제 탓이라 한다. '차원종이 무섭기 때문'이라고. 그런 탓에 차원종이 아니라 인간을 상대하는 일이 많은 위상력범죄대책반 '울타리(Fence)'에 배정받았다고 한다.
[저기, 한창 알콩달콩하고 있는 중에 미안한데.]
정돈이 안되는 분위기의 통신기 안으로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목소리의 주인인 젊은 남성은 유니온 선배. 울타리의 리더이다. '알콩달콩은 무슨 개뿔이이이─!'하고 폭주하는 임지유는 무시하고,
[여기 발견했거든? 그놈이다.]
선배가 그렇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순식간에 침묵하는 통신기. 분위기가 바뀐다.
[포인트 D. 방향은 6시에서 2시. 강남을 벗어나려 하고 있다. 계속 보고할테니까 예상 경로로 움직이면서 포위망을 좁혀.]
"라져."
[네.]
나와 임지유를 제외하고도 몇명인가의 목소리가 통신기 안에서 들려왔다.
위상력이라는 이름의 이능력이 존재하는 세계에 인류의 적이 차원종 하나 뿐이라고는 말할 수 없겠죠.
그런 능력을 휘두르며 주인공들과 반대편에 서는 자들에 대항하기 위한 검은 양과는 구분되는 팀이 있다면 하는 생각에 써보는 이야기입니다.
본 스토리에선 서울 일대 위상력의 급격한 증가로 요원의 인력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미성년의 실전투입 계획 자체를 '검은양'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만, 이 팬픽의 세계관에서는 미성년의 실전투입 아래에 차원문 대책 클로저스 팀인 '검은양'과 위상능력자들이지만 클로저는 아닌 위상능력자 대책 팀 '울타리'가 존재한다는 설정입니다. 생각해보면 다른 팀이 더 있을 수도 있겠죠. 클로저들의 감시를 맡는 '양치기'라던가.
단편인 것 치곤 제목에 1이라 쓰여있습니다만, 길어봤자 앞으로 5화 이내에 분명히 끝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