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여자 -홍시영편
네크로판타지 2016-11-19 1
헬유리 문학 아님
이틀전에 클겔에 먼저 올린 글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closers&no=3100407&page=1&exception_mode=recommend
보통 팬픽은 클겔에 쓰는데
클겔안보시는 분중에서도 제 글을 봐주시는 분이 계셔서 이곳에도 올려용
여기서부터 시작된 글
글제목은 G타워의 퀘스트 이름에서 땄음
예~전에 티나 출시 초기에 티나VS하피라는 문학을 찍 싸고 그뒤로 한번도 안쓰다가
오랜만에 한편 썼어요.
재밌게봐주세요
--------
1.
“하아…”
금색과 흑색, 투톤 컬러의 머리칼을 가진 여자가 길게 한숨을 내쉬자 하얀 입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아직 계절은 가을이지만 이곳, 인적이 드문 신서울 외곽지역의 공기는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급격하게 낮아진 기온에 걸맞게, 버려진 폐건물과 들판을 가득 메운 잡초들이 만들어 내는 주변의 분위기는 스산했다. 이곳은 과거 전쟁 이후로 아직 폐허 상태로 복구가 이루어 지지 않은 지역이었다. 정부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구역인 만큼 당연히 위상변곡률도 불안정하기 때문에 민가도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덕분에 이곳을 포함한 구 수도권의 폐허들은 각종 불법행위가 은밀히 자행되는 곳이기도 했다. 물론 언제 차원종이 나타날지 모르는 이러한 지역에 함부로 발을 들여놓을 강심장은 클로저를 포함해서도 그리 많지 않다. 때문에 지금 이 근처에 존재하는 사람이라고는 그녀와, 그녀가 폐건물 안에 붙잡아놓은 중년의 여자, 그리고 곧 나타날 그녀의 주인 뿐이었다.
그녀는 초점 흐린 눈으로 저 멀리 산과 하늘의 경계를 둘러보았다. 해가 산 뒤로 자취를 감추며 남겨둔 붉은 노을 빛은 그녀에게 자신이 입은 하얀 셔츠에 묻어있는 핏자국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서 그녀는 자신의 목을 죄고 있는 초커를 어루만지며 아주 잠깐 과거의 자신을 회상했다. 강남의 마천루에 올라서서 해가 지기를 기다리며 도시를 바라보고 있던…
그때 가까운 곳에서 자동차의 엔진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는 양손바닥으로 자신의 뺨을 두어번 때리고는 목을 가다듬었다. 곧이어 나타난 검정색 고급 세단이 그녀의 앞에서 멈춰섰다. 그녀는 앞으로 다가가 차 문을 열었다.
"모든 준비는 끝마쳤습니다. 말씀하신 장치도 설치해놓았어요."
"고마워요. 역시 당신은 늘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는군요."
두터운 갈색 케이프 코트를 입고 있는 잿빛 머리칼의 여자가 차에서 내리면서 그녀를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홍시영 감시관님."
"어머 벌써부터 감시관이라고 부르는 건가요?"
"새로운 직책이 마음에 드시지 않는 건가요?"
"아뇨, 아주 마음에 들어요. 그보다…”
그녀, 홍시영은 옮기던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그녀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표정이 별로 좋지 않군요.”
“별거 아니에요. 그냥 아끼던 셔츠에 핏자국이 묻어서 조금 아쉬워하고 있던 것뿐이에요.”
그녀는 능청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개를 살짝 숙여 옷자락에 묻은 핏자국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홍시영은 무표정하게 “그렇군요.” 라고 말하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금발의 여자도 두세 걸음 뒤에서 그녀를 따랐다.
“그보다 감시관님, 다음부터는 위험지역에는 직접 오시지 않으셨으면 하는데요. 이런 일은 제가 늘 잘 처리해왔잖아요? 여기는 감시관님이 혼자 다니시기엔 너무 위험한 곳이에요.”
“어머 걱정을 해주다니 고맙군요. 하지만 이번일 만큼은 제가 직접 마무리를 짓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제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당신이 달려와 줄 거잖아요?”
“물론이죠, 감시관님.”
과거 그녀를 처음 만나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근 몇 개월 홍시영이 이렇게 직접 ‘처리작업’의 현장에 나온 적은 없었다. 게다가 처리 대상은 특별할 것이 전혀 없어 보이는 평범한 중년의 여성… 그녀의 목줄을 쥐고 있는 주인의 지시도 살해, 고문, 협박이 아닌 단순한 납치였다.
그녀는 이 지시가 평소와는 조금 다른, 순전히 홍시영의 개인적인 지시임을 직감했다. 그러나 늘 그렇듯, 그녀는 더 이상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어떤 질문을 하건, 그녀에게는 의미 없는 일이었다.
"그럼 저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록 하죠. 어떤 경우이더라도 절대… 안에 들어오지는 마세요. 아시겠죠?"
"알겠습니다, 감시관님."
허물어져 가는 오래된 폐건물 앞에서 그녀는 먼저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건물의 낡은 문을 열고 시커먼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는 홍시영의 뒷모습을 무표정한 얼굴로 지켜보았다.
2.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죠?
이게 얼마 만일까요… 8년, 9년… 아니 10년도 훌쩍 넘었군요. 제가 고등학교에 들어간 뒤로는 당신과 연을 끊었으니까요. 그 이후로 굉장히 보고 싶었어요. 당신은 어떤가요? 제가 보고 싶었나요?
농담으로라도 고개를 끄덕거리지 않아 줘서 다행이네요. 어찌 됐건 간에, 드디어 만났네요. 당신도 나도, 제가 원하는 모습으로요.
그 표정은 뭔가요? 이제 와서 저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나 보죠? 아직도 살아있어서 놀라기라도 한 건가요? 아니면 왜 당신이 여기에 있는지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건가요?
뭐 상관없어요. 당신이 할 일은 그저 듣는 것밖에 없으니까요. 당신을 만나면 하고 싶은 얘기가 아주 많았거든요. 당신도 나도 아는 오랜 옛날 얘기를요. 보자,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그래요. 제가 7살 때로 돌아가 보죠.
3.
짧은 비명과 함께 술병이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내 가구가 부러지는 소리, 여자의 흐느껴 우는 소리, 그리고 분노에 찬 야수 같은 한 남자의 고함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그것들의 마지막에 도돌이표라도 찍힌 듯, 고함 소리가 끝나고 나면 다시 처음의 비명 소리가 시작 됐다.
7살이었던 그녀는 어느 시골집 마당에 쪼그려 앉아 개구리를 잡고 놀고 있었다. 집 옆의 배수로에서 잡은 개구리의 팔다리를 압정으로 나무 판에 고정해놓고 개구리의 새하얀 배를 나뭇가지로 쿡쿡 찔러보는 일은 그녀가 가장 즐겨 하는 놀이 중 하나였다. 나뭇가지로 조심히 배를 찌르다 보면 개구리의 입에서 저절로 개골거리는 소리가 나왔고, 그녀는 그 소리가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손의 움직임에 따라 개골거리는 그 소리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자신의 바로 뒤편에서 들려오는 엄마의 비명과 아빠의 괴성은 듣지 못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개구리는 한쪽 팔이 찢어진 채로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고, 뒤편에서 들려오던 신음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에, 드르렁거리는 아빠의 코 고는 소리가 적막한 마당을 가득 채웠다.
곧 낡은 문을 열고 그녀의 엄마가 나타났다. 그녀는 쪼그려 앉은 채로 뒤를 돌아봐 자신의 엄마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두 눈두덩이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있었고 방금 닦은듯한 코피가 아직 입가에 말라붙어있었다. 그녀의 엄마는 고개를 떨구고 쪼그려 앉아있는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 시선에 나무판에 박힌 개구리와 아무 말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딸의 얼굴이 들어왔다.
“…넌 대체…”
“…?”
그녀는 그저 감정 없는 표정으로 멀뚱히 엄마의 얼굴을 쳐다 볼 뿐이었다. 엄마는 뭐라 소리를 칠 듯이 입을 크게 벌렸다가 아직 방에 코를 골고 있는 남자를 의식한 탓인지 그 상태로 잠시 얼어붙었다. 그리고는 곧 입을 닫으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랑 똑같네… 싸이코 같은 년.”
‘**’라는 단어에 나뭇가지를 쥔 그녀의 손에 힘이 들어간 나머지, 개구리의 배 속 깊숙이 나뭇가지가 박히고 말았다. 그녀의 엄마는 마치 고약한 종기가 돋은 병자를 보는 듯이 눈살을 찌푸리며 그대로 그녀의 옆을 스쳐 지나가 대문을 쾅 닫으며 사라졌다. 그녀는 싸이코가 무슨 의미인지는 정확히 몰랐다. 단지 자신을 바라보는 엄마의 눈길이 자신이 붙잡았던 개구리의 눈과 어딘가 닮아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다시 정적이 이어졌다. 그녀는 다시 나뭇가지로 개구리의 배를 찔렀다. 그러나 이번에 개구리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녀는 소리가 나오지 않자 더욱 세게 개구리의 배를 찔렀다. 이후, 반쯤 몸통이 사라진 개구리를 배수로에 내던져버릴 때까지 개구리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4.
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네요. 당신이 저를 보던 그 눈… 10년이 넘게 흘렀는데도, 여전히 당신은 저를 그렇게 처다보고 있네요.
물론 제가 좀 이상한 아이긴 했어요. 그건 뭐… 인정하죠. 당신이 절 싫어했던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해요. 그래도 그 남자를 닮았다는 말은 그냥 넘어가기 힘들더군요. 저는 그 사람처럼 쓰레기같이 무능하지도 않았고 알코올 중독자도 아니었어요. 그때까지는 당신을 미워하지도 않았고요.
아, 맞아. 그 남자 소식 궁금하지 않아요? 사실 그 남자도 이 자리에 함께 모시고 싶었거든요.
근데, 벌처스의 기록을 찾아보니 2년 전에 술에 취한 채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금지구역까지 들어가 버린 모양이에요. 그다음은 실종 처리 되어있더군요. 그 경우에는 대부분 죽거나 여기저기 해체돼서 팔려나가거나 둘 중에 하나죠. 뭐, 후자면 차라리 다행이네요. 마지막 순간에는 어딘가에 쓸모가 있었단 얘기니까…
그만 읍읍 거리고 조용히 닥치고 계세요. 이제 다음 얘기를 할 거니까요. 다음은 14살 때 이야기에요. 그 남자가 집을 나가고 얼마 안 지나서의 일이었죠.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당신도… 잘 알죠?
5.
사방이 어두컴컴하다. 쾌쾌한 곰팡이와 먼지 냄새가 그녀의 코를 찌르고 있었다. 팔을 앞으로 뻗어도 가슴 앞 20cm쯤에서 차가운 벽에 가로막힌다. 그러나 그녀는 이 공간이 익숙하다. 그녀가 중학교에 입학한 뒤로는, 자신을 싸이코라고 부르며 손가락질하는 아이들의 손에 떠밀려 심심치 않게 이곳에 갇히곤 했다. 늘 그때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 캐비닛 안에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반 친구들이 모두 하교해 학교 전체가 쥐죽은 듯 조용해지면 그제서야 밖으로 나오고는 했다.
그날은 평소와 조금 달랐다. 전날 늦게까지 TV로 영화를 봐서 그런지 피곤한 상태였고, 덕분에 이 축축하고 지저분한 캐비닛 안에서 아이들이 사라지기를 기다리다가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그러다가 커다란 사이렌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웬 사이렌 소리? 무슨 일일까? TV에서 가끔씩 들어본 적 있는 소리였다. 이건…
“케륵케륵…”
밖에서 무언가 수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그녀의 몸이 얼어붙었다. 그녀가 알고 있던 세상이 그녀를 향해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짧았지만, 그것은 명확히 이질적인 소리였다. 그녀는 식은땀으로 축축해진 손바닥으로 조심스럽게 캐비닛의 문을 짚고, 천천히 캐비닛 구멍에 눈을 가져다 댔다. 교실 강단 쪽에 또래 아이와 비슷한 키의 이상한 생물체가 있었다. 그녀는 미간을 좁히고 눈을 구멍에 더욱 가까이 가져다 댔다. 틀림없다. 저것은 TV와 교과서에서 보던 생물체들… 차원종이었다. 그 생물체는 한 손에 기이한 모습의 칼 같은 것을 들고 고개를 이리저리 까닥거렸다. 마치 냄새를 맡고 있는 것 같았다. 냄새…?
차원종의 고개가 한 방향을 향해 우뚝 멈춰 섰다. 캐비닛이었다. 그녀는 곧바로 얼굴을 뒤로 빼고 양손으로 입을 가로막았다. 끼익끼익… 낡은 교실 바닥의 기이한 소리가 점점 그녀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대로 죽는 건가? 그러나 어째서인지 두려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한 호기심이 그녀를 가득 채웠다. 그때였다.
쿵-쿵-
연달아 들려오는 진동과 함께 캐비닛이 살짝 흔들렸다. 학교 옥상에 무엇인가 떨어진 듯했다. 건물의 흔들림과 함께 괴물이 다가오던 소리도 함께 멎었다. 그녀는 굳은 채로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다가 다시 천천히 몸을 움직여 캐비닛의 구멍에 눈을 가져다 댔다. 캐비닛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괴물이 발걸음을 멈추고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쉬이익-
곧바로 산소통에서 공기가 빠져나가는 듯한 소리가 복도와 교실을 가득 채웠다. 그녀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그녀는 차원종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는 것만은 깨달을 수 있었다.
“카가갹…”
갑자기 앞에 있던 괴물이 이상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무게중심을 잃은 것 처럼 고개를 여기저기 흔들며 몸을 비틀더니 이네 넘어진 채로 짧은 팔다리를 파닥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마치 그녀가 가지고 놀던 개구리를 보는 것 같았다.
그때 그녀에게도 무언가가 들이닥쳤다. 캐비닛 안에서도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숨이 막혀왔다. 그녀는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고는 캐비닛을 열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의 동급생들이 캐비닛 문을 잠가놓은 탓에 열리지 않았다. 그녀는 밖에 있는 괴물이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사력을 다해 발로 캐비닛 문을 걷어찼다. 대여섯 번쯤 걷어차자 캐비닛 문이 부서지며 떨어져 나갔고, 그녀의 몸도 힘없이 문짝과 함께 바닥에 쓰려졌다.
“콜록콜록…”
폐 속에 모래를 가득 집어넣은 것처럼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위장은 마치 불이 붙은 듯이 뜨거웠다. ‘어서 여기서 벗어나야해.’ 그녀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힘겹게 바닥을 짚으며 일어서려 했다. 눈물과 침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힘겹게 들어 올렸을 때, 그녀의 눈앞에 평생 잊지 못할 광경이 펼쳐졌다.
자신의 앞에 있던 괴물이 입에서 검붉은 색의 끈적한 액체를 흘리며 사지를 경련하고 있었다. 그 괴물뿐만 아니라 복도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이어졌다. 20마리도 넘는 수의 괴물들이 압정에 박힌 개구리처럼 처절하게 몸부림치고 있었다. 평생 처음 보는 생명체들의 처음 보는 몸짓이었지만, 그녀는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은 모두 고통의 몸짓이었다. 그 몸짓과 함께 뿌연 공기 사이로 기이한 비명 소리들이 그녀의 고막을 파고들었다. 그 괴성들이 그녀에게는 웅장한 교향곡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도망치려는 생각도 잊은 채, 여기저기 검붉은 체액을 흩뿌리면서 바닥을 기어 다니는 괴물들을 바라보며 황홀경에 찬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내 그녀의 의식은 끊어졌다.
6.
음? 아직 제 이야기 안 끝났어요. 가만히 좀 있으세요. 그렇게 의자 묶인 채로 몸부림쳐봤자 힘만 빠질 뿐이라고요. 혹시라도 도망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요?
이 대목도 저에게는 아주 중요한 대목이지만, 그 다음 이어질 이야기가 당신에겐 더욱 중요한 대목이에요. 당신도 알고 있겠죠?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7.
그녀가 눈을 뜬 건 2주후였다. 가장 먼저 본 것은 새하얗고 뿌연 천장이었다. 뿌연 시야가 서서히 선명해져 오자 곧바로 온몸의 내장이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입에 연결한 산소 호스 때문인지 아무런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사망 시엔 8억이라는 거죠? 만약 살아도 조용히만 있으면6억이고요?”
“목소리를 낮추세요. 혹시라도 간호사들 귀에 들어가면 일이 커집니다.”
그녀의 엄마가 그녀의 발치 아래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 대신에 그녀는 자신의 엄마와 누군가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당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이 사실을 알아서는 안 됩니다.”
“무, 물론이죠. 이 비밀은 무덤까지 가져가겠습니다. 합당한… 대가만 주신다면요.”
“좋습니다. 저희 측에서 조만간 연락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일이 끝나는 대로 다른 곳으로 떠나세요. 새로 거주하실 주택은 사측에서 제공해드리겠습니다. 이곳에 있던 모든 일을… 잊으시는 대가 중 하나로요.”
“무슨 일을 말씀하시는 거죠?”
“하하, 말이 잘 통하네요. 아 그리고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이지만,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마세요. 부모가 애를 죽였다는 기사가 나오면 저희도 지원을 약속드릴 수 없습니다.”
“걱정 마세요. 어차피 의사말로는 기적적으로 살아도 오래 못 갈거라 하더군요.”
그녀는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어떤 대화가 오가고 있는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려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후 그녀의 의식이 다시 점차 흐려질 때까지, 그들의 대화를 천천히 곱씹어보았다. 이후 다시 눈을 뜬 건 이틀 후였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의사가 내린 시한부 판정과 죄책감, 혐오, 불만과 같은 것들이 한대 뒤틀려 있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모친이었다.
8.
그리고 당신이 받은 그 돈 덕분에 저는 신서울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었고, 그 덕에 벌처스에 들어갈 수 있었죠. 그리고 그 빌어먹을 벌처스 덕분에 제 반평생을 바친 계획을 드디어 시작할 수 있게 됐죠.
하지만 그전에 제 모든 빚을 청산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당신과 저의 자리를 마련했죠. 당신을 이곳으로 모셔온 그 여자… 제 그림자를 이용해서 말이에요. 그녀는 절대 절 배신하지 않아요. 당신과는 다르게 말이에요, 배신자.
당신은 절 벌처스에 팔아넘겼죠. 아니, 어쩌면 당신은 제가 그 학교에 혼자 남아있지 않게 할 수도 있었어요. 당신이 한 번이라도 절 이해하고 도와주려 했다면 말이에요. 모두 배신자, 당신 때문이에요. 제가 이렇게 되어버린 건…!
후… 미안해요. 감정이 조금 격해졌네요. 나답지 않게. 그럼 슬슬 결론으로 넘어가죠.
이 회사에 있으면서 저는 수많은 배신자들을 처리했어요. 그래서 이제는 아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제게 가장 자신 있는 것은, 저에게 반항하는 배신자에게 벌을 주는 일이라고요. 그러나 당신은 제게 아주 특별한 배신자죠. 그런 당신을 위해, 누구보다 먼저 당신에게 아주 살짝 보여드리죠. 저의 계획을요.
이 리모컨 보이시죠? 이걸 누르면 지금 당신의 옆에 있는 저 장치의 노즐이 열리고 1분 후 가스가 분사되기 시작하죠. 맞아요. 저를 이렇게 만든 그 가스가요. 30분 이상 노출되면 저처럼 소화계통의 기관이 완전히 망가지게 되고, 1시간 이상 노출이 되면 98% 이상의 치사율을 보이죠. 어디 보자… 현재 시각은 8시 반이니까, 장치는 3시간동안 가스를 분사하게 될 거에요. 그럼,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아차, 내 정신 좀 봐… 자 이제 말을 할 수 있게 재갈을 빼 드리죠.
-…사…
뭐라고요? 잘 안들려요.
떨지 말고 좀 더 크게 말해봐요.
-…싸이코 년…
…….
다행이네요. 당신이 제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면 어떻게 하나 아주 잠깐 고민을 하기도 했었거든요. 정말… 멍청한 고민이었네요. 자 그럼 다시 이걸 입에 무시고…
이걸로 앞으로 우리가 볼일은 없겠네요. 부디 여기서 고통스럽게 죽어가길 바래요.
잘 있어요. 나의 첫 배신자.
9.
끼이익-
낡은 문 내는 비명 같은 소음에, 금발의 여자는 상념에서 깨어나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주인 홍시영이 무표정한 얼굴로 건물을 나서고 있었고, 그녀의 뒤편에서 닫히는 문 사이로 재갈을 물고 있는 여자가 의자에 결박된 채로 발버둥 치는 모습이 잠깐 보이다 시커먼 문틈과 함께 사라졌다.
“이만 돌아가죠.”
금발의 여자는 굳게 닫힌 문을 잠깐 바라보다가 이내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홍시영의 발걸음에 맞춰서 그녀의 곁을 걷다가, 검정색 세단의 뒷좌석 문을 열어주었다. 홍시영은 차에 타는 것 대신 고개를 들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두 여자의 눈동자가 마주쳤다.
“나의 그림자.”
“네.”
“저것이 절 배신한 자의 말로에요.”
금발의 여자는 잿빛 여자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그 생기 없는 눈동자에는 그녀 자신의 모습이 가득 들어차 있을 뿐이었다.
“당신은 절대 날 배신하지 말아요.”
홍시영은 그녀에게 동의를 구하듯 다시 한 번 빙긋 웃었다. 그녀도 따라서 미소를 지었다.
“물론이죠. 저는 당신의 그림자니까요.”
“맞아요. 당신은 저의 그림자에요. 영원히.”
홍시영은 만족한 듯, 미소를 지은 채 문을 닫았다. 금발의 여자는 혼자 밖에 덩그러니 남겨진 채 잠시간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버려진 폐건물에는 죽음처럼 차가운 정적만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질근 감은 후, 차에 올라탔다.
검정색 세단은 재빠르게 금지구역을 빠져나왔다. 마치 버려서는 안 될 무언가를 버려두고 도망치는 것처럼, 차는 어두운 숲과 무너진 건물들을 뒤로 한 채 ‘신서울’이라는 글씨가 쓰인 낡은 표지판이 가리키는 도로 위를 내달렸다.
--------------------------------------------------
오트슨은 조속히 하피의 본명을 밝혀라.
뭔 본명을 모르니 과거이야기에서 하피를 부를 명칭이 없어져버림... 개답답
홍시영의 과거이야기를 한번 써봤음. 시점은 게임 본편 시작 직전. 설정을 지키려고 노력하면서도 홍시영 과거는 워낙에 밝혀진게 없어서 한번 입맛대로 써봄.
홍시영이 왜 인성이 개차반이 됬나 하고 상상해보면서 쓴 글이에여.
사실 생각처럼 재밌게 안쓰여져서 좀 시무룩함.
다음에는 지옥의 여자 하피편을 쓸꺼에양. 그리고 예전에 쓴 티나VS하피와 같은 타임라인으로 완결이 나게 만들 생각.
봐줄만 하다면 예전에 쓴 글도 보고가세여
티나VS하피
메인홈피
클겔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closers&no=2299263&page=3&exception_mode=recomm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