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저, 그 끝을 향해 - 2 -

키아즈 2015-02-04 1

 

 

 

분당에 위차한 대병원 옥상 헬리포트에 그 특유의 굉음을 발하는 유니온 요원 수송용 헬기가 내려섰다.

SHI-032 하마논. 유니온 전용 수송 헬기에서 내려선 사람을 병원의 원장이 직접 마중을 나왔다.

아직 분당권은 차원종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것도 시간 문제이며 언제 어디서 차원종이 쳐들어올지 몰랐다.

그런 와중에 유니온에서 추가 지원으로 클로저들을 보내왔으니 반갑지 않을리가 없었다.

 

원장은 직접 악수를 건내며 인사를 청했다.

 

"xx병원 병원장 김한수 라고 합니다. 귀중한 클로저들을 지원해준 유니온에 감사드립니다."

 

김한수의 손을 마주 쥐며 클로저들의 리더로 보이는 이가 입을 열었다.

 

"경기도 통괄 대표장님의 직속 부대 소속, 이슬비 라고 합니다. 저를 포함한 인원 14명의 숙식을 제공 받을 수 있겠습니까?"

 

차가워 보이는 표정과는 반대로 꽤나 부드러운 목소리에 김한수 내심 놀랬다.

 

"물론입니다. 이미 VIP룸의 특별실을 준비 해두었습니다. 가시죠, 안내 해드리겠습니다."

 

 

VIP룸. 그중에서도 특별실이라고 불린곳은 꽤나 대단했다.

그것은 병실이라는 개념을 떠나 하나의 저택이라고 불릴정도 였는데, 방 안에는 거실이며 욕실, 화장실 게다가 큰방과 작은방 형식으로 여러개의 방이 더 있었다. 병원의 층 하나를 전부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 대단함에 다른 클로저들이 두리번 거리며 여기저기에 시선을 빼앗겨 있었으나, 슬비는 병원장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현했다.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그 짤막한 말에 병원장의 옆을 지키던 사람들이 불쾌한 표정으로 '겨우 그게다야?" 라고 궁시렁 거렸지만, 김한수는 왠지 이 여성의 말이 최대한의 호의로 표현해낸거라고 느꼈다.

병원에서 수십년을 지낸만큼, 여러사람을 상대한 그에게 입에서 나오는 말 보다는 사람 그 자체를 볼 수 있는 눈은 있었던 것이다. 김한수는 편히 쉬라는 말을 남긴채 여전히 불만인 표정을 보이는 사람들을 데리고는 방에서 나갔다.

 

그렇게 병원 사람들이 나가자마자, 클로저들은 그동안 참고 있었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우와. 이게 무슨 병실이야?"

 

"이런 곳에서 지낼수 있으면 일부러라도 다쳐서 입원하겠어."

 

"선배님! 여기에 컴퓨터랑 게임기도 있어요!"

 

"아니, 무슨 냉장고에 없는게 없어? 어라? 이건 특급 한우잖아?!"

 

그들의 난리에 슬비는 못말리겠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그런 슬비를 재밌다는듯이 보고 있던 한 여자아이가 싱글벙글한 얼굴로 말했다.

 

"바로 작전지역으로 이동할까요?"

 

저들의 표정을 보라.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며 시골에서 올라온 촌놈마냥 구는 그들에게 지금 당장 임무를 위해 나가자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건 그들이 가여워서가 아니라, 그들이 토로할 불만을 듣고 싶지 않아서였다.

슬비는 한숨을 쉬며 "일단 휴식하라고 전해. 피곤한 녀석들 데리고 가봤자 뻔하지." 라고 말하며 방을 나섰다.

왠지 피곤해 보이는 대장의 등을 바라보며, 그녀의 오른손을 자처하는 한유아는 "다녀오세요." 라며 손을 흔들었다.

 

 

병원 내에는 꽤나 많은 환자들이 있었다.

분당 최고의 병원이라고 불리는 만큼 환자들을 수용하는것에 무리는 없어보였으나, 그들을 진찰할 의사들이 부족해보였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들이 정신없이 왔다갔다 하는 모습을 보며, 슬비는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은 들었지만 이내 마음을 접었다. 자신은 차원종에 한해서는 전략병기에 가깝지만, 일반 사람을 상대로는 그저 한명의 여성일 뿐 이었으니까.

의료적 지식도 모르는 자신이 나서봤자 폐만 될 뿐이겠지. 슬비는 1층으로 내려와 병원 밖으로 나섰다.

 

"……꽤나 가까워졌네."

 

병원의 건너편. 높이 치솟아 오른 건물들 틈 사이로 보이는 연기 뭉치들이 보인다.

이대로 밀린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차원종의 얼굴을 볼 수 있을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슬비가 바라마지 않는 일이기도 했다.

 

 

 

1

 

 

그들의 대장인 이슬비가 나가고 난 방에는 언제 그랬냐는 각자 관심을 가지고 있던 곳에서 멀어져 방의 중심, 거실 탁자에 둘러 앉았다. 그런 그들의 표정은 꽤나 진지해 보였는데, 만약 슬비가 그들의 표정을 보았다면 "이런 뺀질이들이 이제는 꽤나 믿음직한 표정을 보일 줄 아네요." 라며 감탄했을 것이다.

 

"자, 대장님이 나가신 지금이 기회에요. 지금 마무리를 지어야해요."

 

슬비의 오른손을 자처하는 여자아이, 한유아는 진지한 표정을 보이며 모두를 둘러보았다.

그런 그녀의 표정에 모두들 침을 꿀꺽이며 긴장했다.

 

"과연……. 벌써 그 날이 온것인가……."

 

"설마 이렇게 빨리 그 날이 올줄이야…."

 

"절대로 대장님에게 들켜서는 안돼. 이건 그야말로……."

 

모두들 긴창한 표정으로 꺼내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어찌나 비장한지, 누가 들으면 곧 죽을 사람들의 유언으로 들렸을 것이다.

그런 그들의 말을 끝낼려는 것인지, 한유아가 탁자를 손바닥으로 팍 소리나도록 내려치며 일어섰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그들이 이렇게 까지 긴장하며 비장하게 굴었던 이유를 말하기 위해.

 

"이슬비 교육대장님 비밀 생일파티! 절대로 오늘 성공 시켜야해요!"

 

모두들 그에 동조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이 방에는 식재료가 넘쳐나. 생일상은 문제없다."

 

"케이크는 없지만…… 필요하다면 근처 베이커리에서 뺏어올까?"

 

"나는 오늘을 위해 특별히 유니온 특제 신상 외투를 준비했지."

 

"어? 그거 꽤 비싸잖아? 네 월급으로 그걸 어떻게 구해?"

 

"그냥 새로 다듬어진 검을 자랑하러 연구소에 들렸더니 주던데."

 

"강탈했구만."

 

서로 자신의 선물을 자랑하며 떠드는 이들을 보았다면, 슬비는 방금전의 감탄을 철회하고 일대일 대련으로 그들의 정신상태를 다듬어 줄려고 했을 것이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정신을 차릴 이들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다들 모른척 하고 있었지만 짐작은 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것이 자신들의 마지막 일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이 두렵다거나 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자신들은 그 한명 한명이 모두 대장에게 은혜를 입은 자들이다.

누군가는 차원종에게 가족을 잃었으며 누군가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입었다.

어떤 자는 자신의 눈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으며, 또 어떤 자는 친한 친구를 잃었다.

 

그런 그들을 직접 거두어들여 키워준 사람이 이슬비, 바로 자신들의 대장이었다.

그들 중에는 슬비보다 나이가 어린자도, 동갑인자도, 나이가 많은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이슬비를 따른다. 대장을 신뢰하며 그녀의 등을 지킨다.

 

무섭다고해서 도망친다면 누가 자신들의 대장의 등을 지켜주나.

아무리 강하다고 불리며, 실제로도 강한 그녀를 지켜줘야 하는것이 자신들의 의무가 아닐까.

그것이 죽을지도 모를, 아니 높은 확률로 죽을 임무에서 도망치지 않은 그들의 의지였다.

 

서로 자신들의 선물을 자랑하던 그들은 갑작스레 들리는 흐느끼는 소리에 소리가 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붉은머리를 무릎사이로 넣은채 작게 흐느끼고 있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여러 연령대가 모인 자신들의 부대에서도 제일 어린 막내 이지환이었다.

 

"선물…… 꼭, 생일날 주, 주고 싶었는데……."

 

지환의 말에 모두들 쓴웃음을 지을수 밖에 없었다.

대장의 생일은 4월 말 이므로 생일까지는 정확히 일주일 이상이 더 남았다.

모두들 같은 마음이었다. 정말로 운이 좋아서, 혹은 기적이 일어나 자신들이 모두 살아남으면 꼭 대장의 생일날 생일 축하 파티를 열자고. 생일 같은건 챙기지 않는다고, 그럴 시간에 훈련하라고 말하면서도 생일 케이크 앞에서 부끄러운 얼굴로 초에 붙은 불을 끄는 그녀의 얼굴을 보자고.

 

"지환아, 우리 모두 같은 마음이야. 하지만 알지? 그럴수 없는 이유를."

 

평소에도 귀여운 막내라며 그를 챙기길 좋아해 지환의 보모라고 불리던 한유라가 지환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지금 당장 전투가 벌어질지도 몰라. 여기에 있는 녀석들 중 마지막까지 누가 살아남을지도 모르지."

 

자조적인 민수의 말에, 그의 옆에 있던 지아가 그의 뒷통수를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그녀의 모습에 다들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조금이나마 웃어 보였다.

 

"그러니까 오늘이여야만해. 우리 모두가 살아있는, 우리 모두가 모여있는 건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유아의 말에 모두들 동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환도 고개를 들어 눈가에 고인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작은 생일파티였다.

자신들의 대장 몰래 기획한 것이었다.

평생 그녀의 곁을 지키리라 맹세했던 그들이 마지막을 예감하며 여는 마지막 생일 파티였다.

 

 

 

슬비는 병원 밖을 둘러보며 지형을 숙지했다.

차원종들의 공세 앞에서 전부 무너져내려 형태를 유지할수 없을 지형을 숙지하는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슬비에게 내려진 명령은 다른 지역에 위상벽들이 설치되는 동안, 최대한 성남에서 다수의 차원종들을 묶어 놓는것.

그리고 가능하다면 차원종의 퇴치. 슬비 혼자라면 대규로 범위 공격으로 게랄라전을 펼칠수 있겠지만, 그녀가 지켜야 할 부대원들이 있는 이상 최소한의 퇴로와 지형의 이점을 이용해야 한다.

 

병원 주위를 한바퀴 둘러본 슬비는 이만하면 괜찮겠지 싶어 병원 안으로 들어서려 했다.

그녀의 눈에 이상한 복장의 사내가 걸리지만 않았다면 그대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사내는 꽤나 두꺼워 보이는 검은색 외투와 마찬가지로 검은색의 핏이 살아있는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 모습만 본다면 전혀 이상할것이 없었겠지만, 그 두꺼워 보이는 외투가 꽤나 특이했고, 그 특이점은 외투라는 옷을 이루는 구성물에 있었다. 자신의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저 외투를 이루는 것은 분명….

 

슬비는 사내를 향해 걸어갔다.

사내한테 다가가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에게 견제 수준의 위상력을 전개했지만 반응이 없다.

슬비가 사내의 앞에 다가설때까지 사내는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병원 건물을 바라보고 있는것 같았다.

 

"실례지만 신분증을 확인할 수 있을까요?"

 

꽤나 정중한 부탁이었지만, 사내는 슬비의 말이 들리지 않았는지 미동도 없었다.

슬비는 계속해서 여러분 불렀지만 여전히 사내는 반응하지 않았다.

이 정도로 무시를 받으면 보통 화내는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슬비는 화를 내기는 커녕, 오히려 사내를 향해 도발했다.

 

"차원종, 그 중에서도 털이 귀하다는 차원수의 털로 옷을 해입은것도 대단하지만 그런 옷을 입고 당당히 도시에 나타나 정신을 놓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런 슬비의 도발이 제대로 먹혔는지, 미동도 없던 사내의 고개가 조금씩 숙여지더니 슬비를 향했다.

사내의 얼굴을 제대로 본 슬비는 사내가 꽤나 미남이라고 생각했다.

매서운 눈매와 갸름한 얼굴형. 너무나도 진해 마치 어둠 그 자체라고 생각될 만큼의 머리카락. 그리고 슬비를 꿰뚫어 보듯이 바라보는 황금색 눈동자는 왠지 모르게 거북하게 느껴졌다.

 

사내는 장시간 슬비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행동이 위협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슬비는 그런 사내를 내버려두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1분 조차도 1시간이라고 느껴질때쯤 사내가 입을 열었다.

 

"인간 여자여, 묻겠다. 인간이란 존재할 가치가 있는가."

 

사내의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시간이 들었다.

너무나도 어이없는 질문이었기에, 평소였다면 이 사내가 충분히 의심드럽다고 판단했을 상황에서 슬비는 반응하지 못했다.

그 잠시동안의 침묵. 그것을 어떻게 판단했는지, 사내는 다시 입을 열었다.

 

"대답할 수 없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스스로 자신의 종을 믿지 못하는 자들이라면, 그것으로 되었다."

 

그 순간, 사내한테서 상상조차 하지 못할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꼈다.

평소와는 다른 틈에 의해 벌어진 방심. 너무나도 어이없게 자신에게로 쏟아져 오는 그 기운을 슬비는 방어 한번 제대로 못하고 받아들였고, 슬비는 그대로 병원 건물에 쳐박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주변을 지나가던 사람들의 눈길이 사내를 향했다.

그리고 그것이 못견디도록 혐오스럽다는 듯이, 사내는 인상을 찡그렸다.

 

"하찮은 벌레가 몸을 기어도 지금의 기분보다 나을 것이다. 역시 이들은 벌레보다 못한 존재였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사내의 주변이 크게 일렁이더니 크고 작은 거대한 공간이 나타났다.

유니온에서 차원문이라 불리우는 그것 이었다.

사내의 주변에 나타난 차원문에서 차원종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종류만 해도 여러가지 였으며, 거대한 문에서 나오는것들은 상위급 차원종들 이었다.

 

그리고, 사내의 주변에 나타난 무수한 차원문들을 능가하는 크기의 문이 하늘에 열렸다.

 

그것은 하나의 커다란 성. 거대한 암석 덩어리 위에 세워진 고고한 왕의 성.

 

그 성의 주인이 입을 열었다.

 

"우리 '스스로 존재하는 자' 를 차원종이라 부르며 업신여겨 짐의 심기를 불편케 한 죄, 너희들의 죽음으로 갚도록 하여라."

 

 

사내가 손을 휘둘렀다.

단지 그 뿐인데, 그의 주변에 있던 형체 있는 모든것들이 무너져내린다.

대지에 가라앉은 병원 건물을 바라보며, 사내는 웃었다.

 

"사냥 시작이다."

 

 

 

 

 

 

 

 

 

2024-10-24 22:22:45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