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저, 그 끝을 향해. - 1 -

키아즈 2015-02-04 2

 

 

대한민국의 수도라고 불리는 서울은 폐허로 변해버렸다.

곳곳에서 타오르는 불길은 그 기세를 죽이지 않고 타오르며 지상을 뒤덮고 있었으며, 한순간에 벌어진 상황에 피난 하지 못한 일반인들의 시체가 처첨한 모양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수백, 수천의 차원종 무리들은 서울을 불바다로 만든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었는지, 그 기세를 잃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모든것을 박살내며 진격했다.

 

2026년. 4월. 아직은 차가운 바람이 부는 봄이었다.

 

 

1

 

 

 

유니온 성남지부에 속한 이유한은 5세라는 어린나이에 위상력을 발현한 특이 케이스였다.

대부분의 클로저들이 어린나이에 위상력을 깨닫는다고는 하지만, 그만큼 어린나이는 좀처럼 볼 수 없었다.

유한의 어린시절은 위상력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유니온에 소속되어 보호, 관찰되며 그 스스로 위상력을 다스릴수 있는 수준에 이르러서는 현재 나이 15세에 B급 요원으로 승급한 엘리트였다.

유니온의 예산 문제로 클로저들이 대폭 줄어든 지금, 클로저들의 등급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정도로 그 관문이 높아졌다.

현재의 B급 요원이라면 과거 '그 시절'의 A급 요원에 달하는 능력이었다.

 

그런 그에게 상부는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라며 기대를 아끼지 않았고, 그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다.

아마 이대로 별반 다르지 않은 내일이 이어졌다면, 이유한은 멀지 않은 앞날에 권력도 손에 쥐었을 것이다.

 

"드라군 블레이더……."

 

유한은 무너져 가는 건물속을 재빠르게 다가오는 대상을 바라보며 작게 읊조렸다.

그것의 손에 쥐어진 쌍검이 그와 함께 돌진해온다.

상과 하. 두자루의 검의 이점을 살려 좌와 우로 베어져 오는 그 검을 유한은 자신의 애검을 이용해 막아냈다.

좌우로 베어져 오는 그 교차점. 그 순간을 자신의 검으로 막아냄과 동시에 화려한 뒤돌려차기가 둔탁한 타격음을 내며 명중했다. 다가오던 속도 그대로 카운터를 당한 차원종은 그대로 반대편 건물의 잔해속에 쳐박혔다.

그 모습을 확인도 하지 않은채, 유한은 자신의 몸에 위상력을 둘러싼채 12층에 달하는 건물에서 뛰어내렸다.

아무리 위상력으로 신체를 보호한다고 해도 꽤나 아찔한 모습이었지만, 유한이 뛰어내릴때에는 이미 건물의 대부분이 무너져 내려 지상과의 높이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제대로 착지한 유한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변은 이미 차원종들에 의해 지옥을 연상케하고 있었다.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건물이 하나도 없었으며, 여기저기에서 일어나는 비명과 총기가 뿜어내는 총성만이 가득했다.

일주일. 단 일주일만에 서울을 점령한 차원종들이 성남까지 내려온 것이다.

지금의 상황으로 보건데, 서울과의 1차 방어선을 담당한 21사단은 그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으리라.

 

유한은 순간 망설였다.

이대로 후퇴하여 수원이나 용인에서 다른 클로저들과 저들을 막아낼지, 아니면 아직도 들리는 저 비명소리를 도와주어야할지. 유니온에서 배운 매뉴얼에는 이럴 경우 일반 시민들보다는 클로저가 더 우선시 됀다.

비정하게 보일수도 있지만, 클로저는 인류의 희망이다. 그 전력을 보존시킬 필요가 있다.

 

하지만 유한은 그 한순간의 망설임조차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분명 자신은 엘리트였다. 자기가 이런말 하는것도 좀 그렇지만, 자신이 살아남으로써 앞으로 구해질 생명의 수는 저들의 배는 되리라. 하지만 자신은 클로저 이전에 한명의 인간이였다.

 

유한은 자신의 검에 위상력을 흘려보내며 비명음이 들리는 곳으로 향했다.

 

그들을 구해낸다. 그것은 클로저로써는 비난 받아 마땅한 선택이었지만, 상관하지 않는다.

자신 또한 자신과 같은 클로저에게 그 생명을 구원 받았기에.

 

 

2

 

 

김유정 경기도 통괄 대표장은 굳어진 표정을 풀수가 없었다.

서울이 무너진 일주일만에 성남에 차원종이 나타났다. 성남지부는 연락이 끊겼으며 방어선을 구축했단 군 병력은 하루도 버티지 못했다. 이것은 보통의 사태가 아니었다. 김유정은 이번 일이 쉽게 해결되지 않을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차원종 침공에 의해 회의가 소집되었다.

경기도 통괄 대표인 김유정이 상석에 앉아 회의를 지켜보았고, 경기도 각 지부의 지부장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다만 그 내용들이 참으로 가관인지라 김유정의 표정은 회의 내내 굳어져 있었다.

 

"그러니까, 모든 병력들을 철수 시키고 방어선을 구축해야 한다는거요! 지금 성남에서 손실된 병력만 해도 몇인지 알아?! 자그마치 일개 사단이 사라졌다고!"

 

"이런! 당신은 생각이 있는거야?! 성남이 무너지면 그 다음은 멀쩡할것 같아? 한번 물러나면 계속 물러날수 밖에 없어! 지금 당장 성남에 추가 병력과 클로저들을 투입해야 한다고!"

 

"클로저들은 소중한 전력이야. 그들을 파악된 수만 수천에 상위급 차원종이 득실거리는 곳에 투입하자고? 정신병원을 알아보고 있다면 네 좋은곳을 알려주지."

 

"당장 이럴시간이 없어요. 저희가 이러는 동안에도 성남의 시민들과 군인들이 목숨을 잃어가고 있어요. 다들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성적으로 방법을 알아봐야 합니다."

 

"하! 이성적? 인천지부장. 당신은 자기 구역이 안전하다고 이성적인가 본데, 그곳이라고 멀쩡할것 같아? 이러니까 여자를 지부장으로 앉히는걸 반대……."

 

"뭐, 뭐야?! 광주지부장 너 지금 말 다했어요? 그쪽의 냄세나는 논밭을 면상에 덮어줄까!"

 

김유정은 이제는 귀를 막고 싶었다.

평소 온화하고 냉정한 인천지부장까지 저 상태가 된 이상, 이 회의는 의미가 없었다. 별다른 대책도 세우지 못한채 끝나겠지.

김유정이 모든걸 포기한채 '나도 모르겠다,' 라는 표정으로 그들의 열띤 토론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열띤 토론은 누군가의 방해로 멈춰졌다. 회의실 문을 열고 당당하게 들어오는 어느 여성에 의해서.

 

"광주지부장님. 지금 지부장님의 발언은 이 회의 참석해 계시며 모든것을 결정할 권리를 가진 통괄 대표장님을 비하하는 발언입니다. 그 발언을 사과하지 않으시면 같은 여성인 제가 여자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갑작스레 등장한 여성의 말에, 방금전만 해도 목청을 높이며 고함을 지르던 광주지부장은 벙어리가 될수밖에 없었다.

그는 절대로 김유정 통괄 대표장을 비하할 발언을 할 사람이 아니었지만, 어떻게 말하다보니 그녀까지 피해를 본 상황이 된것이다. 광주지부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김유정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사죄의 뜻을 보였다.

그의 그런 행동에 애초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김유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사과를 받아주었다.

 

그 모습은 바라본 여성은 광주지부장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가 폈다. 다른 사람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광주지부장은 확실하게 보았다. 그것은 여성 나름대로의 사죄였을 것이다. 그녀가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지부장인 자신이 더 높은 위치에 있었기에, 그런 자신에게 무례를 범한 것을 그녀는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다.

광주지부장 또한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사과를 받아주었다. 자신의 발언이 지나친 점도 있었지만, 그녀와는 적대시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강했기 때문이다.

 

여성은 김유정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무언가를 전하기 시작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김유정의 표정은 놀라움, 불만, 걱정등등 다양한 감정을 표현해내고 있었다.

 

전할 말이 끝났는지, 여성은 그대로 김유정의 뒤로 물러났고 김유정은 자신의 앞에 놓여진 마이크를 툭툭치며 마이크를 테스트했다. 회의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입을 여는 그녀였다.

모두들 그녀가 무슨 말을 꺼낼지 그녀의 입에 시선을 집중했다.

 

"일단, 지금까지의 토론은 전부 없었던 걸로 하며 기록에서 삭제하겠습니다. 기록에 남기기에도 창피할 수준의 회의 내용이었으니까요."

 

김유정의 말에 지부장들은 내심 뜨끔거리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본 회의는 갑작스러운 서울권내의 차원종 침공에 의한 피해를 막고자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어떤 방법으로 그런 대군단이 감지기에도 걸리지 않고 도시 한복판에 나타났는지는 유니온 본국에서 진상을 밝혀낼 것입니다. 저희의 임무는 차원종등에게서 일반 시민들을 지켜내는것이며, 가능하다면 차원종을 전멸, 혹은 그 수를 줄이는것."

 

막힘없이 명령을 하달하는 김유정의 모습에 지부장들은 압도당하는 것을 느꼈다.

그녀 자신이 클로저가 아닌  평범한 인간에 불과할진데, 그녀는 다른 사람을 이끌어가는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들을 이끌어간다. 김유정 그녀는 위에 서는 자의 힘을 가지고 있다.

 

"군에 연락하여 수도방위군과 6군단을 경기도에 투입. 위상벽을 사용하여 서울을 다른 지역에서 분리시킵니다. 그 과정에서 있을 차원종에의 방어는 클로저들이 맡도록하며, 수원, 이천, 파주, 여주의 클로저들을 일부 소환하여 임무를 맡깁니다. 그리고 성남에는 경기도 통괄 대표장의 휘하에 있는 직속 클로저들을 투입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유정의 발언에 다들 놀란듯한 표정을 보였다.

다른것은 그렇다쳐도, 그녀의 직속 부대라는것은….

 

"혹시 이슬비 요원을 투입하시는 겁니까?"

 

한 지부장의 질문에 김유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 유니온에 큰 공적을 기여한 검은양팀의 리더이며, 지금은 제 밑에서 후진들을 양성하고 있습니다만 그녀라면 성남의 상황을 바꿀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혹시 그녀가 못미덥나요?"

 

"아, 아닙니다. 천만에요."

 

'오히려 차고 넘치죠.' 그 말은 속으로 삼킬수 밖에 없었다.

지부장들은 김유정의 뒤에 서있는 분홍색 머리의 짧은 단발머리 여성을 바라보았다.

등장과 동시에 광주지부장의 입을 막아버린 그녀는 김유정이 가진 최강의 카드였다.

유니온이 인정한 요원 등급을 초월한 SS급 위상 능력자인 그녀라면 분명 승리의 열쇠가 되겠지.

 

"그럼 모두들 내용을 숙지했을거라 생각하고 이만 회의를 마칩니다. 각자 자신의 일을 소홀히 하지 마세요. 지금은 비상사태입니다."

 

지부장들은 다들 입을 맞춰 대답을 하고는 자신의 일을 하기 위해 회의장을 떠났다.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가자 회의실은 텅 비었지만, 김유정과 이슬비는 회의실을 떠나지 않고 남았다.

아직 해야 할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하아……. 왠지 모르지만 이번 사태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괜한 기우일까?"

 

"저도 느끼고 있어요. 예전에 느꼈던 것과는 다른…… 그래요, 헤카톤케일이나 아스타로트가 나타났던 그때와 같은 느낌……."

 

"다른 사람들은 아직도 연락이 안되니?"

 

"전혀요. 유리와 테인이는 외국에 있고 제이씨는 연락두절, 세하는…."

 

말끝을 흐리는 슬비를 바라보니, 평소의 그녀다운 차가운 표정이 아닌 슬픈 표정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김유정은 한숨을 쉬었다.

 

"행방불명이라……."

 

최강의 위상 능력자라고 불렸으며 수많은 사람을 구해낸, 영웅으로써 취급받았던 아이.

마지막 임무를 끝으로 그의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지, 그 임무를 맡았던 클로저들이 모두 처참하게 도륙당한 상태로 발견되어 그의 무사함을 바랄 뿐 이었다.

 

 

 

 

 

2024-10-24 22:22:44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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