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惡意)

Felless 2016-11-13 1



"아직도 포기하지 않는거야?"



몇번이고 몇번이고, 피투성이 처참한 몰꼴로 쓰러져서는, 그런데도 건블레이드를 지팡이삼아 일어나려고 하는 너는 어째서? 스스로의 욕망에 솔직해져도 좋잖아. 더러운 윗사람들에게 속아서, 놀아나고. 자기 배만 불리기 급급한 역겨운 돼지들에게 이용당하고 배신당하고... 솔직히 지치지 않아? 일어나려는 너의 건블레이드를 장난치듯 가볍게 발로 차버리자 바로 균형을 잃고 추하게 넘어지는 너는... 아아, 알고 있어. 진절머리가 날만큼 올곧은 아이라서 포기할 수 없다는 사실쯤은. 이런 상황에서도 일어나려 애를 쓰는 마치, 벌레와도 같이 추한 모습을 응시하며 그런 너의 머리를 짓밟고 비웃어.



"억울하고, 화나고 비참하지 않아? 모두 네가 무력하기에 벌어진 일이야. 자, 이세하. '나'를 받아들여."


"웃기는 소리 집어치워."



아아, 이것도 아닌건가? 그렇다면... 너의 머리에서 발을 치우고 이번엔 상냥하게 그 상처투성이 몸을 감싸안고 상냥한 웃음을지어보자. 다정한척 그 얼굴을 매만져주며 바라던 말을 속삭여주자. 상냥하고 다정한 상대, 희망을 속삭이는 목소리. 이런 비참한 상황으로 몰아넣은 사람들따위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잖아? 나는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너 자신. 내면에서 네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내가 이럴 수 있는거야. 멍청하고, 어리석고 가엾기 그지없구나. 너의 노력은 모두 '재능'의 것. 너의 무능은 모두 '너의 잘못'이라니.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잖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현실이라면...



"모두 뒤엎는거야. 네가 원하던 세상으로 바꿔버려. 보여줘, 저 더럽고 추악한 높은 이들에게. 어머니의 아들이 아닌 이세하의 존재를 똑똑히 각인시키는거야."


"엄마가 아닌, 내 존재...?"


"그래. 그 누구도 아닌 이세하를.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너의 노력, 괴로움, 원망을 알게 해주는 거야."


"하지만 다들... 싫어할거야."


"뭘 걱정하는 거야? 나만은 끝까지 네 편일거야."



정말 한없이 어리석어. 지그시 두 눈을 감고 겉으로는 친절하게 웃어보였다. 눈가의 상처를 보고는 혀를 내밀어 핥아 피를 닦아내며 너덜너덜한 몸을 끌어안아줬다.



"자, 이제 모두에게 복수하러 갈 시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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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나 쉬운 일을... 그동안 나는 도대체 뭐때문에 괴로워했던걸까? 불타오르는 건물, 불타오르는 짐승들. 과연 자기 뱃속만 채운 이들답게 살찐 돼지의 형상을 한 짐승들은 깔끔하게 도살됐다. 살인? 이건 살인이 아니라 엄연한 심판. 나는 정당한 권리를 행사한 것뿐이다.



"이세하! 너 지금 뭘 하고 있는거야!?"



아, 그러니까... 누구더라? 분홍 머리의 매번 귀찮게 굴던... 그래, 이슬비였지? 눈 앞의 무기가 나를 겨눈다. 경악과 공포... 그리고 알 수 없는 감정으로 얼룩진 눈으로 바라보는 그녀는... 왜? 나는 그저 사람도 아닌 짐승을 처리했을 뿐인데?



"보시다시피 살찌우기에만 여념이 없던 돼지를 처분했는데? 왜 그렇게 바라보는거야?"



아직도 피가 흐르는 건블레이드를 바닥에 질질 끌며 앞으로 한 발자국 내딛자 그녀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왜 피하는거야? 어째서? 왜? 결국 너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아? 아아, 그렇지. 애초에 너와 나는 정 반대였으니까. 그렇다면 역시 필요없어. 건블레이드의 피를 위상력으로 모두 털어내고는 그녀를 겨눴다.



"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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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꿈 꾸길, 이세하.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본인 위에서 중2병군이 대신 말해준 그런 것들이 부정당하면서 바보같이 중2병군-큡세하-의 꼬임에 넘어가서 합체(?)를 합니다. 그리고 나와서 윗분들로 바베큐 파티를 하고 오니 슬비가 충격에 빠져있고 세하는 슬비의 눈빛만 보고-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인가-얘가 나를 이해해주기는 글러먹었구나 하고 희망을 놓습니다. 이 전까지는 그래도 원래 세하로 돌아올 가망이 보였지만...-선생님, 선생님은 더이상 가망이 없습니다. 내, 내가 고*라니!!!-포기하고 완전 융합으로 끝나는 이야기. 사실 더 쓰기에는 귀차니즘이 너무 강력했습니다.

2024-10-24 23:12:09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