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막한 이야기

흑신후나 2016-11-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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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끝이 지나가고 있었다.

 

저녁노을의 볼이 수줍은 듯이 붉게 물들어 있었고 건물사이에 가려지며 나타나는 금색의 빛깔은 보는 눈을 즐겁게했다.

 

세하는 저녁노을을 두 눈에 새기며 걷고 있었다.

 

보통 세하같았으면 진즉에 노을이든 뭐든 신경쓰지 않고서 게임기를 열심히 두드렸을 것이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좋아하는 게임기 조차도 꺼내지 않고서 그는 그에 옆에서 같이 걷고 있는 그녀와 열심히 발을 맞추고 있었다.

 

윤기있는 검은 머리가 길게 느려뜨려져 여성미를 뽐내었고 웃고있는 입사이로 고양이 같은 송곳니는 귀여움을 더해갔으며 반짝이는 푸른 두 눈은 퍼런 호수를 연상시킬듯 깊고 맑았다.

 

그녀의 이름은 서유리.

 

세하와 같은 검은양팀의 클로저이다.

 

그녀는 뭐가 그리도 재미있는지 연신 재잘재잘 떠들어대며 세하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세하도 역시 재미있었는지 귀찮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입은 미소를 띄고 있었다.

 

어느덧 큰 도로에서 중간 도보로, 중간 도보에서 작은 인도로, 작은 인도에서 조그만 골목길로 들어섰다.

 

골목골목에 드문드문 있는 가로등은 불이 하나둘씩 켜지고 있었고 좁고 좁은 골목사이로 태양빛이 스며들었다.

 

"세하야 다 왔어."

 

유리는 옆을 돌아보면서 말하고는 자신의 손으로 집 하나를 가리켰다. 낡고 누추해 보이는 집이였다.

 

"그래 조심해서 들어가고. 내일은 중요한 임무가 있다니까 늦지않도록 해."

 

"너야말로 게임하다가 늦잠자서 슬비에게 혼나지나 말라고~"

 

배웅하는 세하의 말에 유리는 웃으며 대답하였다.

 

"알았어,알았어, 그럼 간다."

 

뒤돌아서 돌아가는 세하

 

유리는 왠지모를 아쉬움만이 가득한 모양이다. 유리는 머뭇머뭇거리다. 결심을 했는지 세하에게 말을 걸었다.

 

"세하야!"

 

"응? 왜? 무슨 일 있어?"

 

"저..저..그러니까.."

 

"말해봐."

 

"우..우..우..우리...우리"

 

"우리?"

 

"우리집에서 저녁 먹고갈래?"

 

힘들게 유리의 이 한마디가 목구멍에서부터 올라왔다. 유리의 이 한마디는 소리가 되어 세하의 귀로 들어가 뇌를 때렸다.

 

"에?"

 

"왜...싫어?"

 

당황하는 세하, 힘이 빠진듯이 말하는 유리, 이윽고 세하가 미소를 띄며 말했다.

 

"그래 좋아 같이 먹자."

 

"정말? 진짜로?"

 

"그래 진짜로."

 

급격히 밝아지는 유리의 얼굴

 

유리는 세하를 끌고서 자신의 집안으로 들어갔다.

 

의외로 집안은 넓었다. 거실, 부엌, 침실도 있었고 기본적으로 집이 갖추어야 할 것은 갖추어져 있었다.

 

유리는 신속하게 음식을 내왔다. 정말 빠른 속도였다고 놀라는 세하였지만 그 저녁이 라면이였다는 것을 확인하고서는 이해하는

세하였다.

 

세하와 유리는 라면을 빠르게 비워갔다.

 

이윽고 라면은 금새 바닥을 드러냈다. 유리는 자신의 배를 연신 두드리며 포만감을 만끽했다.

 

"아~ 잘 먹었다."

 

"잘 먹었어 유리야"

 

웃음짓는 세하였다. 세하는 일어나서 옷을 챙기기 시작했다.

 

"가려고?"

 

"그래 가서 엄마 밥도 챙겨줘야해,저녁 해 지기 전에 들어가야해."

 

".......저..저기 세하야...세하ㅇ...."

 

"그럼, 잘 먹었어, 다음에 내가 요리해줄게."

 

떠나가는 세하를 보며 유리는 울상이 되었다.

 

유리는 세하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유리는 세하를 껴안으며 말했다.

 

"가지마."

 

"안돼. 미안해 유리야."

 

세하는 가려고 했다. 그러나  세하의 손목을 잡고 있는 무언가가 있어서 세하는 움직일 수 없었다.

 

세하는 뒤를 돌아봤다. 유리였다.

 

"내가 싫어?"

 

"어?"

 

"난 조금이라도 오래있고 싶은데 너는..."

 

유리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언제나 그래.. 넌 항상 나에게 거리를 두고 있었어.....다가가도...다가가도..항상 너는 한발자국 물러나기만 하고..."

 

"비열하게 포기할 만하면 다시 앞으로 다가와 괜시리 기대하게 만들고.."

 

눈물은 더욱더 많아져 이윽고 폭포처럼 흩어졌다.

 

"나는...나는..너를 보면..히끅..참을 수 없을 정도로..흐흑...으아아아아앙!"

 

이윽고 터진 울음보에 분위기는 금새 가라앉아버렸다.

 

"나는.....너를 좋아한다 말이야!"

 

구슬프게 우는 유리였다.

 

세하는 그런 유리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유리에게 다가가

 

유리를.....

 

꼭 안아주었다.

 

"후엣?"

 

"유리야 미안해.. 내가 너의 마음을 잘 몰랐어."

 

"네가 그렇게 나를 좋아할줄은 몰랐어.. 미안해."

 

"네가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줄은 몰랐어.. 미안해.."

 

"너의 마음을 몰라서 정말 미안해.."

 

"그러니까.."

 

세하는 손을 올려서 눈물을 닦아주고 머리를 쓰다듬는다.

 

따스한 감각에 유리는 포근함을 느꼈다.

 

"울지마."

 

"응.."

 

유리는 세하에게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너는 모르는게 있어."

 

"응? 뭐가?"

 

"난 너를 싫어하는게 아니야. "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세하와 유리였다.

 

"좋아해. 많이많이 너를 좋아해."

 

 세하는 유리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의 포개었다.

 

처음 당황했던 유리였지만 이윽고 세하를 받아드리고 둘은 길게, 오랫동안 서로의 입술을 느꼈다.

 

창문에서 저녁노을이 내려와 둘을 비추었다.

 

은은하고 곱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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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4 23:12:08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