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잎 흩날리는 길 아래에서
은빛나래별 2016-11-10 8
제 주관대로 쓴 관계로 캐붕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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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뜬 그녀가 다정히 팔짱을 낀 커플을 바라보았다. 내리쬐는 햇살은 눈부셨고 벚꽃이 흩날리는 봄의 풍경은 가슴에 온기가 느껴질 것만 같이 아름다웠다. 단정히 땋아내린 분홍빛 머리카락이 그보다 더 옅은 색의 벚꽃잎과 함께 바람에 맞춰 살랑살랑 흔들렸다.
"슬비야! 거기서 뭐해? 이리로 와!"
"응. 유리야."
이슬비는 자신이 짝사랑 중인 이세하의 연인이자 자신의 친구인 서유리를 보며 살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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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세하를 향한 마음을 알아챈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항상 게임기를 들고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 그를 보며 화를 내는 것은 검은양 팀 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었고, 그녀는 그를 딱히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간간히 무심한 듯 내뱉은 다정한 말은 그녀를 쑥스럽거나 부끄럽게 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좋아한다나 사랑한다의 감정이라 느끼진 않았다.
그가 정식요원이 됐을 때에는 보다 성숙해진 그의 모습에 살짝 놀라기는 했지만 그가 평소와 같이 게임기를 꺼내드는 모습을 보고는 변하지 않았다고 느끼는 그녀가 있었다. 그게 왜 실망스러운 기분이 들었는지는 그녀 자신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감정을 제대로 직시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 듯 넘어갔다.
그 이후 시간이 지나고 그녀는 특수요원이 되었다. 검은양 팀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유일한.
특수요원이란 직책과 검은양 팀의 리더, 또 검은양 팀 내의 유일한 특수요원이라는 점은 그녀의 어깨에 짐을 더했다. 소중한 팀원들이 다치지 않도록, 상처입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녀는 보다 더 많은 임무를 수행했고 또 보다 더 많은 짐을 떠 안았다. 당연히 그녀가 해야 할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이슬비는 검은양 팀의 리더고 모두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다.
허구한 날 게임만 해대는 이세하, 발랄하고 유쾌한 서유리, 항상 어딘가 아픈 제이 씨, 귀여운 미스틸테인. 모두가 소중한 그녀의 팀원이었고 그녀가 리더를 맡고 있은 검은양 팀을 이루는 주축이었다. 그런 그들을 위해 그녀는 그녀가 힘들더라도, 그들의 웃음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야, 이슬비.'
'왜?'
'너 요즘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혼자 특수요원이 되서 부담을 가지는 건 알겠는데, 너무 그러지는 마.'
걱정 되니까.
걱정 되니까... 그 말에 그녀는 얼굴을 붉혔다. 그가 가끔 툭툭 내뱉는 말은 그녀를 두근거리게 하곤 했다. 그러나 그 두근거림은 곧 사그라들어 흔적이 남지 않았다. 그치만, 이번엔 달랐다. 걱정 되니까라는 그의 말은 그녀의 머리 속에 남아 그를 볼 때마다, 걱정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그를 생각 할 때마다 그녀를 괴롭혔다. 어째서 그러는 지는 그녀도 알 수 없었다.
'사랑이구나. 사랑인거야.'
'사랑?'
'그래. 우리 슬비도 드디어 사랑을 하는구나! 난 슬비 네가 언제쯤 연애를 할지 항상 걱정 됐다니까?'
'연애를 안 하는 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에잇, 그건 중요치 않아. 그래서 상대가 누구야? 응?'
그녀는 그때 팔에 매달려 물어오는 서유리를 피해 달아났다. 서유리가 내뱉은 걱정이라는 단어에 이세하가 떠올라서 무척이나 부끄러웠다. 그가 말한 걱정 되니까, 가 다시 그녀의 머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가 사랑인 지 아닌 지 헷갈려 하고 있던 그녀의 마음을 꿰뚫은 것은 그가 특수요원이 된 후였다.
특수요원이 된 그는 차분하게 내린 머리와 가라앉은 금빛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게임을 여전히 즐기긴 했지만 임무 시간에 게임기를 꺼내지 않았고, 또한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 처럼 게임에 빠져 임무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임무에 책임을 가지고 그가 할 바를 다 하고 있었다.
'이슬비.'
'응?'
'나도 이제 특수요원이니까, 너 혼자서 무리하지 마.'
'무리하는 거 아니야. 나는 검은양 팀의 리더고, 당연히 이래야 하는 거야.'
'그래. 그래도, 나누면 네가 덜 고생하잖아. 함께 하자. 혼자 떠맡으려고 하지 마.'
그녀는 그리 말하며 미소짓는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그가 빛나 보였다. 그의 웃는 얼굴은 그 이후에도 그녀를 졸졸 쫓아다녔으며 그녀를 괴롭혔다. 그가 예전에 말했던 걱정 되니까 보다 더 많이.
사랑, 서유리는 이게 사랑이라고 말했었지. 기분 좋게 두근거리는 가슴을 한 손으로 누른 그녀가 살며시 웃었다. 이런 감정은 정말 오랜 만이라 자연스레 웃음이 나왔다.
그녀는 이세하를 좋아했고, 사랑했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은 그에게 고백할 용기가 없었지만 언젠가는, 용기가 날 언젠가에는 그에게 고백하리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서유리와 그가 사귄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녀의 고민을 들어 준 이후로 서유리도 종종 그녀에게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고민을 털어내곤 했다. 서유리에게 그녀도 고민을 털어놓았으니 그녀도 서유리의 고민을 들어주곤 했는데 그 사람이 이세하였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들이 사귄다고 한 날, 그녀는 그를 향한 마음을 접어야 할까 고민했다.
당연한 고민이었다. 서유리는 그녀의 친구였고, 또한 소중한 팀원이었다. 그녀가 마음을 접고 두 사람을 응원해 주는게 누가 봐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치만, 마음이 아픈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그날 밤 혼자 숨죽여 울었다.
이세하를 향한 마음이 사그라들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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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비야, 뭐해?"
"아니야. 갈게."
그를 향한 마음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쉽게 켜진 불빛이 아닌 만큼 쉽게 꺼지지도 않는게 당연했다. 그래도, 이제 그를 똑바로 마주할 수 있다. 그들이 함께 서 있는 것을 바라볼 수도 있다. 언젠가, 훗날에는 그를 향한 마음을 추억으로 느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이슬비는 그들을 향해 환히 웃으며 그들에게로 달려갔다. 무척이나 화창한 봄날, 벚꽃길 아래 서 있는 그들의 위로 벚꽃잎이 흩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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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비의 짝사랑을 생각하며 썼습니다! 그치만 음악과 밤의 마력에 기대서 쓴지라 오글거릴 수도... 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