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 & 하피] 거울 나라

루이벨라 2016-11-04 2

※ 하피 과거 날조 주의(이외 인물들 성격 날조 주의)









 어느 곳에 펭귄을 기르는 집이 있었습니다. 펭귄은 원래 무리를 지어 사는 동물이기 때문에 한 마리만 있으면 쓸쓸할 것이라고 주인은 펭귄의 집 안쪽에 거울을 빙 둘러 붙여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펭귄은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맞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수많은 친구라 생각하고 살고 있답니다...



* * *



 천성적으로 누군가와 잘 지내는 타입이었다. 타인이 보는대로 그대로 표현하자면 '붙임성이 좋다' 아니면 '사교성이 좋다' 라는 말을 늘 들어왔던 나였으니까.


 친구는 많았다. 위상력에 각성하기 전 평범한 학교를 다녔을 때도, 위상력에 각성한 직후 아카데미에 들어갔을 때도 내 주변에는 으레 친구들이 많았다. 내 탈색된 벽안이 너무 이쁘다고 몰려드는 친구, 머리 예쁘게 만져달라고 부탁하는 친구, 맛 좋다고 소문난 디저트 가게가 근처에서 2호점을 냈다고 같이 가자고 하는 친구, 훈련 힘들지? 하면서 물을 가져다주는 친구...


 내 주변에는 언제나 친구가 많았다. 내가 혼자 다녀본 기억은 없었다. 못해도 2명은 꼭 나와 같이 다녔기 때문이다. 그 2명은 시시각각으로 변했지만 나한테는 상관없었다.


 그야, 나한테는 다 같은 친구일뿐인걸?


 아카데미에 들어간 뒤에도 전에 있었던 학교에서 사귀었던 친구들하고 서먹해지지도 않았다. 나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두배의 친구들이 생기게 된 결과였다. 아카데미 친구가 아니면 전학교 친구를 만나고 다녔다.


 친구들과 함께 이곳저곳 많이 돌아다녔다. 유원지, 디저트 가게, 옷가게, 영화관 등등...10대 소녀가 다니고 싶어하는 곳은 왠만해서는 다 다녔다.


 그렇게 몇년을 보냈다. 아카데미에서의 생활은 따분했지만 그래도 참을만했다. '친구' 가 이렇게 많았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화장실에서 손을 닦고 있는데 문득 정신이 들었다. 수많은 소녀들이 복닥거리는 화장실 안에서 나만 홀로 툭 튀어나온 혹처럼 혼자인 사람은 나뿐이었다. 적어도 두사람씩은 짝지어서 호호거리며 저마다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느 틈에 내가 혼자 온 것일까? 내가 어디를 간다고 하면 꼭 붙어다니는 친구가 있었는데 말이다.


 그냥 내 단순한 착각일거라고 생각해 점심을 먹으러 갔다. 무슨 스토커도 아니고 계속 내 뒤만 따라다닐수도 없으니. 그리고 내가 점심을 먹고 있으면 나타나줄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날 난 배가 아프다는 핑계로 일찍 기숙사로 들어가 쉬었다.


 그때였다. 내가 겉돌고 있었다는 걸 피부로 실감났던게...그때가 처음이었다.




* * *




 언젠가부터 곧장 연락을 자주했던 친구들에게 연락도 함부로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내가 계속 생각해왔던 다정했던 친구들의 모습은 없었다. 내가 전화를 할때마다 대다수의 아이들이 내게 내미는 태도는 딱 두가지였다.


 난처한듯 빨리 전화를 끊으려는 기색과, 아예 귀찮다는 듯 본색이 드러나는 태도. 이렇게 두가지였다.


 ...왜 날 피하려고 하는거야? 우리, 잘 지냈잖아? 같이 영화도 보고, 같이 파자마 파티도 했고, 같이 와플도 맛있고 먹고, 그랬잖아? 같이...했던 친구들이었는데?


 몇년정도 흘러서 지금 상황에서 차분히 생각해보면...어쩌면 난 이런 아이들에 대한 태도를 미리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난 혼자였던 적이 별로 없어서 늘 옆에 누군가가 있어야했다. 옆에 아무도 없으면 미칠듯이 괴로웠다. 그러기에 난 그 공백이 조금이라도 새어나가지 않게끔 계속 친구들을 만들었다. 친구가 많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 새로 사귀는 친구들과 같이 스티커 사진도 많이 찍었다. 밤이 되면 으레 책상에 앉아서 그 스티커 사진을 휴대하기 편한 수첩에다가 빼곡히 붙여놓았다. 수첩에는 수많은 아이들의 사진이 있었다. 그 사진 속에서의 공통점은 언제나 내가 가운데라는 거, 내가 가장 활짝 웃고 있다는 것. 그 수첩을 가끔씩 볼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지 모른다.




 봐, 난 이렇게 친구가 많잖아? 난 이 아이들 앞에서 항상 행복하다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어. 응, 그래. 이 아이들과 같이 있으면 늘 행복한거야. 이렇게 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친구들이 많은거야. 이렇게 날 즐겁게 해주는 친구들이 많다고. 수첩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말이야.




 ...그 수첩은 이미 버린지 오래였다. 그 수첩의 사진 속에 있는 소녀들의 얼굴이 모두 공통적인 '한 사람의 얼굴' 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고 나서 버렸다.


 그 수첩에서 웃고 있는 건 '나'. 나밖에 없다.


 맞거울 속에서 빙긋 웃고 있는 건 백 명의 나 자신.


 모두 맞거울에 비친 '나 자신' 이었다.


 ...나는 거울 나라라는 신비한 곳에서 혼자 살고 있던게 아닐까.


 아카데미의 삶이 지겨워진 것도 그쯤이었다. 그리고, 도망쳐버렸다. 수첩 따위는, 아카데미에 그대로 남기고서.




* * *




 "...이세하에요."


 양과 늑대라는 기묘한 조합이 공동전선을 이루게 되어서, 필연치 않게 자기소개를 하는 자리에서 그 소년은 그렇게 말했다. 어딘지 모르게 쑥쓰러운, 그리고 자기가 이렇게 자기소개를 하는 상황이 약간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이었다.


 저 소년의 얼굴을 어디서 본적이 있다했더니 예전에 아카데미에서 강연 초청으로 왔던 차원종의 마녀, 알파퀸을 그대로 똑 닮은 모습이었다. 비록 눈색과 머리색은 달랐지만 말이다. 미리 받아서 읽어본 프로필에서 이미 저 소년이 알파퀸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 별로 놀랄 눈치는 없었지만 난 그럼에도 놀라고 말았다.


 내가 그 소년을 보자마자 느꼈던 '어디서 본적이 있는 얼굴' 이라는건 강연에서 스쳐지나듯이 본 알파퀸의 얼굴과 매치가 된게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내가 어디서 본적이 있다고 했다고 한 얼굴은...


 거울 속에서 생긋 웃고 있던 내 자신을 떠올리게 했다.




 그 후로 조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은밀히 관찰하는 것은 괴도의 소양 중 하나. 본인이 감시받고 있다는 건 눈치채지 못하게끔 관찰을 몇번 해본 결과, 다분히 추측이 되어지는게 있었다.


 제법, 사람들과는 어울리기는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겉돌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어느 정도의 친분은 있어보이지만 뭐라고 해야할까...깊게 관여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혼자있는 시간은 언제나 게임. 난 적어도 게임은 즐기는 엔터테이먼트라고 알고 있었는데 게임을 하는 소년의 모습은 언제나 진지하다 못해 어딘지 모르게 게임에 지나치게 열중하려고 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마치 무언가를 잊기 위해서, 잡생각 따위는 안하고 싶다는 듯, 처절하게. 그 이외의 시간에는 나타와 합동작전 혹은 자기 혼자서 작전을 하러 가는 거 같았다.


 내가 소년에게서 본 분위기는 거짓이 아니었다. 다만 저 소년도 나처럼 그 분위기를 숨기려고 많이 노력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나와는 다른 점은 난 주변에서 공허함을 채우려고 노력했지만 소년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저 자기가 혼자 참고 있으면 되는 것으로 느끼는 거 같았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소년에게 다가갔다.


 "어머, 지금 뭐하시는건가요?"

 "...? 까, 깜짝이야...!"


 그냥 말을 걸어서는 주위를 끌 수 없을거 같기에 난 소년이 하고 있던 게임기를 살짝 캐치해갔다. 시야에서 게임기가 사라지자 소년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뒤에서 게임기를 쥔채 생긋 웃고 있는 나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뭐에요, 하피씨인가요. 게임기 돌려주세요."

 "그러고 싶진 않네요."

 "...윽, 지금 한창 기록 세우고 있었단 말이에요...!"

 "걱정마요. 일시 중지 버튼은 눌러드렸으니까요. 저와 잠깐 대화만 해드린다면 돌려드리죠."


 그 말에 소년의 표정이 약간 누그러졌다. 하지만 게임기를 중간에 낚아챈 나한테는 아직 약간 불만이 쌓여있어보였다.


 "...무슨 이야기요."

 "왜 아무도 어울리려고 하지 않으신가요?"

 "...네?"


 내 질문이 정곡을 찔렀는지 미묘하게 본표정을 가리고 있던 가면이 흔들리는 걸 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의 흔들림이었을 뿐. 다시 얼굴에 가면을 쓰는 것으로 보아 보통내기는 아니었다.


 "...혼자인게 편하니까요."

 "혼자인게 편하긴 하지만 좋은 건 아니에요."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건가요."

 "이런 경우에 아마, '동병상련' 이라고 했던가요?"


 동병상련. 같은 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의 처지를 잘 알고 이해한다, 라는 뜻이었던가. '병' 은 아니지만 우리는 같은 처지였다. 아니 그전에 같은 처지라고 할 수 있을까. 난 사람이 많음에도 외로움을 느꼈고, 이 소년은 사람이 없었기에 외로움을 느꼈다.


 뭐, 결국은 외로운 이들이라는 건 같은 처지이지 않나.


 "..."

 "말하고 싶지않으면 안해도 괜찮아요. 다만, 전 걱정이 되어서 그래요."

 "...뭐가 말이죠."

 "...가끔 사무치게 외롭잖아요."


 사무치게 외로워서, 맞거울에 비친 나 자신을 보고 안심을 했던 내가 뭐라고 할 처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말해주고 싶었다.

 3년 전 벌쳐스에 붙잡히고나서 난 누군가의 그림자로 살아야만 했지만 그 생활 속에서 오히려 전보다 외로움을 덜 느낄 수 있었다. 그건 그만큼 누군가의 깊은 속내를 볼 수 있어서 그런게 아닐까. 나를 믿는 사람, 그 존재 하나만으로도 구제가 되어지는 걸 느꼈다.


 믿을 수 있는 자가 '나' 만 존재하는 거울 나라에 혼자 갇혀있는건, 너무 차갑지 않나. 타인과 손을 맞대도 만져지는건 차가운 거울의 촉감 하나뿐. 차가운 것보단 따뜻한게 더 좋으니까.


 "거울을 보며 혼잣말거리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건 당연한거 아닌가요."

 "정 힘들다면 저하고 단둘이 연습해볼래요?"

 "연습이라뇨. 무슨 연습을..."

 "살아가는 연습, 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려나요."


 싫지는 않은 표정.


 "그보다 할말 다 하셨으면 게임기 돌려주세요. 모처럼 기록 세우던 중이었는데..."

 "좋아요, 드릴게요."

 "?!"


 게임기를 오른손에 쥐어주면서 살짝 허리를 굽혔다. 그렇게 서로 닿아진 건...잠깐의 정적 후 소년이 잔뜩 붉어진 얼굴로 반문했다.


 "...무, 무슨 짓이에요?!"

 "어머, 제가 이세하군의 첫키스라도 뺏은거 같은 반응이네요. 어머, 정곡이었나요?"


 저 붉어진 얼굴이 사실이라는 걸 확연히 드러내고 있었다. 유유히 가면서 난 묘하게 궁금해졌다. 내가 원래 즉흥적이기는 했지만 왜 갑자기 소년에게 '같이' 변해보자고 권유를 했을까, 하는.


 ...뻔한 답을 묻고 있었다.


 나와 같이 소년이 자신의 거울 나라에 갇혀있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겠지.








[작가의 말]



이제 세하슬비와 세하레비 단편만 쓰면 세하렘(플레이캐릭터만)은 다 완성하는건가...


본 소설은 작가가 가노 도모코의 『유리 기린』이란 작품을 보고 영감을 받아 쓴것입니다.

2024-10-24 23:12:01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