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고 어려진 세하와 슬비
포이코 2016-11-04 1
내 작고 어려진 세하의 동.거
띠딕, 띠디디디! 띠디디디!
귀를 시끄럽게 하는 알람소리에, 새하얀 이불에서 더듬더듬 손이 삐져나와 침대 옆 간이 서랍장에 놓인 디지털 시계의 머리를 꾹 하고 눌렀다. 7시를 가리키는 시계는 제 할일을 마치고 다시 조용하게 시계침을 움직여 시간을 표기했고, 이불을 걷고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는 사람은 신서울 강남 지부를 담당하는 팀《검은양》의 리더, 이슬비였다.
"벌써 아침이네… 아야, 어깨가…… 어제 너무 무리했나?"
쇼핑몰 내부에 출현한 차원종들을 소탕하느라 휘둘러댄 팔 때문에 욱신거리는 어깨통증이 찾아와 얼굴을 찡그렸다. 이상이 생긴 곳은 없는지 몸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을 때, 침대의 좌측 모서리에서 조그마한 손이 툭 튀어나오더니 낑낑거리며 작고 귀여운 인형같은 생물체가 기어올라왔다.
"안녕, 슬비!"
카라에 새하얀 털이 달린 검은 가죽자켓에 노란 넥타이, 흰색 와이셔츠와 황토색 바지를 차려입은 30센티미터 가량의 작은 생물, 새까만 고양이 귀와 살랑이는 작은 꼬리를 달고 있는 세하가 한쪽 손을 반짝 들고 인사했다. 슬비는 어깨 통증으로 인해 찡그리고 있던 얼굴을 곧바로 펴며 작은 세하를 향해 활짝 웃었다.
"안녕, 세하야?"
검은양 팀의 일원이자 차원전쟁의 영웅, 대량학살의 마녀인 알파퀸의 아들인 이세하, 그가 왜 이런 모습이 되었는지, 왜 슬비의 집에서 **하고 있는가에 대한 이유는…… 조금 어이없는 사정이 있었다.
이 일은 2일 전, 쇼핑몰 일대를 순찰하던 세하와 슬비가 차원종과 전투를 벌이던 도중 일어난 사건이다.
칙, 파바바바바박!
"아아아아악!"
"이세하!"
쇼핑몰 일대를 순회하던 도중 발견함 차원종과 격전을 벌이던 도중, 이제까지 본 적 없는 새로운 타입의 차원종이 바닥에서 튀어나와 세하의 발목을 잡고 전격같은 공격을 흘려보냈다. 세하의 비명소리에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그를 지원하기 위해 단검을 던져 화염 폭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상성이 좋지 않았던 탓인가. 화염에 반응해 터져버린 차원종과 동시에 폭발에 세하가 휘말려버렸고, 슬비는 재빨리 상대하던 차원종들을 마무리 지은 후 아직까지도 치솟아오르는 검은 연기를 치워버리며 세하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연기속으로 뛰쳐들었다.
"이세하! 괜……차… 응?"
바람에 날려가며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속에서 쓰러져 있던 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게임기를 두드리고 있던 밉상인 이세하가 아니라, 작은 검은색 고양이 귀와 살랑거리는 꼬리, 그리고 그와 함깨 작아진 30센티미터 가량의 세하였다.
"저기…… 뭐지, 이건?"
섣불리 건드리지 않고 단검의 칼집으로 볼을 찔러보았다. 꾸욱꾸욱 하며 어린아이 특유의 부드럽고 연한 피부와 살결처럼 저항 없이 칼집이 밀려들어갔다. 칼집을 집어넣고, 더 자세하게 조사를 해보기 위해 장갑을 낀 손으로 조심스럽게 작은 세하의 뒷덜미를 잡고 들어올리자 들어올린 충격때문인지 작은 세하가 눈꺼풀을 움직이며 눈을 떴다.
"우…… 누구에여?"
"이, 이세하?"
혀짧은 발음에 한번 놀라고, 어려진 목소리에 두번 놀란 슬비가 놀란 눈으로 세하를 바라보고 있을 때. 세하가 슬비의 네임태그를 천천히 읽었다.
"이…슬비? 슬비이! 이름 이쁘다!"
"…………!"
말없이 잠시 굳어져있던 슬비는 작아진 세하와 함깨 떨어져있던 작은 건 블레이드를 회수하는 것은 잊지 않고, 슬비는 이제까지 내 본적 없는 최고속도로 사이킥 무브를 구사해 최대한 빠르게 김유정이 있는 곳, 검은양의 임시본부로 향했다.
"언니! 이거 제가 키울게요!"
"이, 이거? 키워? 스, 슬비야. 키운다느니 어쩐다느니 하는건 둘째치고 일단 세하의 몸상태를 확인하는 작업이 우선시되고, 설령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해도 세하의 보호자분께 허락을 받는게……."
"그럼 곧바로 진행해주세요!"
도착하자마자 인사할 틈도 없이 재빠르게 자초지종을 설명한 그녀는 유정의 눈을 똑바로 쳐다본 채 무언의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의욕이 충만하다 못해 잔뜩 흔들어놓은 미개봉 콜라마냥 터질 것 같은 슬비의 모습에 당황한 유정은 그녀의 말대로 세하의 신체검진을 진행하기 위해 유니온에 미리 보고를 한 후 본부로 향하려 했으나.
"예? 구, 국장님. 그렇지만 세하가 차원종에게 당한것은 물론이거니와, 이런 상황은…… 네? 예전에도 있던 일이라고요? 게다가 인체에는 무해하다니. 그런 보고는 들은적이… 잠깐. 여보세요. 국장님? 국장님!!"
하아, 하고 한숨을 쉬며 이마를 짚은 유정은 이번에 세하의 어머니, 서지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네, 서지수 씨. 처음으로 인사드립니다. 세하의 관리요원인 김유정이라고 합니다. 네. 다름이 아니라 세하가……."
유정은 세하의 어머니에게 세하에게 벌어진 자초지종을 설명한 후 슬비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고, 잠시 후 들려온 대답은 유정의 상관인 데이비드 국장에게 들었던 대답보다 훨씬 더 충격적이였다.
"네, 네. 그렇게 되었습니다만… 네? 인상착의요? 분홍 단발머리에 푸른 눈동자. 작은 키에…… 네? 상관 없다고요? 아니, 잠시만요. 서지수 씨. 서지수 씨! 네? 잘해보라니 그건 또 무슨…… 여보세요? 여보세요!"
끊어진 전화를 호주머니에 집어넣으며 관자놀이를 짚은 유정은 슬비에게 눈길을 돌리며 물었다.
"…얘, 슬비야. 세하 어머니께서 너한테 기회는 놓치지 말고 잘 해보라는데, 이게 대체 무슨소리니?"
유정의 그 말에 슬비는 며칠 전 구로에서 잔류하던 도중 훈련 프로그램을 수행한 후 세하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고는 마이 페이스를 잃고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앗, 네, 네? 자자잘해보라니 무슨 뜻일까요? 저도 잘은… 아, 그럼 유정 언니. 최종적으로 허락은…?"
"하아, 그래. 떨어졌어. 국장님도 세하 어머니도 대채 무슨 일이길레…… 오늘의 나는 불행한 것 같아…."
보통 유정이 저러고 있다면 자그마한 위로의 한마디라도 건네주었을 슬비지만, 오늘은 얼굴에 평소에는 보기 힘든 웃음꽃을 피운 채 철저히 유정을 무시하고 세하를 데리고 나와 자신이 살고있는 집으로 향했다.
"슬비이, 여기가 어디야?"
슬비의 어깨 위에 매달려있는 세하가 처음오는 장소에 대한 경계심에 슬비에게 묻자, 슬비는 그런 세하를 안심시키듯 웃으며 말했다.
"내 집으로 가는 길이야. 그런데 세하야, 누나라고 불러주지 않을레?"
"누나? 슬비 누나야?"
세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안그래도 어린아이 특유의 귀엽고 맑은 목소리의 톤을 높게 올리며 말하자, 슬비는 웃, 하고 소리를 내더니 세하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아니, 그냥 이름으로 불러줘…."
TV에서 보던 모에사라는게 이런걸까, 라는 것을 알게 해 줄 정도로 충격적인 세하의 모습에 슬비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고, 얼마 후 슬비는 작은 빌라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에서 유달리 새것으로 보이는 4층 빌라 하나에 들어갔다. 2층으로 올라가 201호의 붉은색 도어락의 덮개를 열고 비밀번호를 누르자, 띠리릭 하는 소리와 함깨 자물쇠가 풀렸다.
"우리 집에 어서와, 조금 지저분하긴 하지만……."
딱히 지저분하고 뭐고 할 것 없이 깨끗한 편이지만 슬비는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다.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한 후 세하를 데리고 우측에 위치한 방으로 들어가자 잘 정돈된 책상과 여러가지 책들이 꽂힌 책장. 작은 옷장과 침대, 그리고 그 옆에 놓인 간이 서랍장과 알람기능이 달린 디지털 시계가 전부인 간소한 방이 보였고, 깨끗한 방의 모습에 세하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깨끗하다아… 여기가 슬비 방이야?"
"응, 그리고 오늘부터 세하가 지내게 될 집이야."
"우리 집?"
고개를 갸웃거리고 더이상 반문하지 않고, 유정을 보고 아무말도 하지 않거나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아무런 자각이 없는것으로 보아 세하의 기억중 일부가 변형된 것이 확실해졌다. 그리고 쇼핑몰에서 확인했던 신체의 상태와 퇴화된 언어선택 능력, 행동패턴은 세하의 정신적, 신체적인 퇴화를 의미했고, 세하를 원래부터 되돌리기 위해서 이제부터 뭘 해야할지는 유정과 함깨 단서를 찾아봐야겠지만…….
"응, 슬비 집. 세하 집. 앞으로 잘 지내자?"
"응!"
……사실,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은 별로 원하지 않는 슬비였다.
왜냐고 묻는다면,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안 어울린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귀여운 것에는 사족을 못쓰는 슬비이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시작된 세하와의 동.거는 세하의 상태를 점검하자는 것도 있지만, 슬비의 개인적인 욕심이 담겨있기도 했다.
절 안다고요?
본 것 같다고요?
당신, OBT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