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미래의 노을
차현아 2021-12-23 8
"그럼 네 이름은....... 노을이라고 하자."
미래는 제 앞에 있는 자신과 똑같은 모습의 누군가에게 그런 이름을 지어주고 있었다.
"노을?"
노을이라고 지명당한 누군가가, 미래와 똑같은 목소리로 그렇게 되물었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며 노을이라고 다시금 되뇌어준 미래가 얘기를 이었다.
"네 머리카락, 머리카락이 노을처럼 붉어서 예뻐. 그래서 노을이라고 지어줬어. 마음에....... 안들어?"
혹시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표정으로 대답을 기다리는 미래의 모습에 그녀는 어떻게 대답할까를 고민했지만, 바로 대답하지 않으면 슬퍼하는 표정을 지을 것 같아 정신을 차리고 만다.
"아니. 마음에 들어."
고개를 저으며 빠르게 대답한 건, 단순히 미래가 그렇게 이름을 정하자고 했던 것 때문은 아니었는지 다소 밝은 표정의 그녀. 실제로 마음에 들었던 건지, 아니면 단순히 그림자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보다 지금이 훨씬 나았던 건지, 어쩌면 둘 다 한몫을 했던 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미래와 똑같을 정도로 닮은 그녀는 그렇게 노을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노을은 미래의 그림자였다.
연무극장에서의 시련을 겪은 이후 시궁쥐 팀에 속한 인원들은 각자 변화들을 겪었다. 제 3 위상력의 각성이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시련의 과정들에 대한 여파가 생각보다 컸던 모양인지 악몽을 꾸는 횟수가 늘어난 이들도 있었다.
누군가를 보며 눈물을 흘리거나 슬퍼한 탓에 업무를 다하지 못하기도 했고, 어떨 때는 그로 인해 팀원간의 합이 맞지 않는 등 현장에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여 좋지 않은 해프닝이 생긴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이 그러한 차질을 빚는 빈도가 줄어들었고, 이후에는 그러한 일이 벌어지는 경우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는건 이후의 이야기.
그러나 그런 해프닝이 다 끝난게 아니라는 듯, 미래에게 다른 쪽으로의 해프닝이 하나 더 발생하고 만다.
"....... 미래가, 두 명이네?"
두 명의 미래를 보며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은하였다. 그런 은하의 질문에 말없이 은하와 비슷하거나 같은 반응을 보이는 시궁쥐 팀의 일원들은 지금 상황에 대해 어떤 식으로 물어야할지를 생각해야만 했다.
"안녕. 잘 잤어?"
미래가 팀원들에게 인사를 건네자, 옆에 있던 미래의 모습을 띤 붉은 머리카락의 여성. 노을도 말없이 그들에게 손을 흔들며 제 방식대로 인사를 건넨다. 서로 어색하게나마 인사를 마쳤을 때, 미래가 입을 열었다.
"이 아이는 노을이라고 해. 내 그림자야."
그림자라는 이야기에, 팀원들은 미래의 그림자를 떠올렸다. 때론 가시가 되어 차원종을 꿰뚫거나, 미래를 지키는 벽이되었다가 했던 그 그림자가 미래와 똑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적잖이 놀란 모양이었다. 그런 반응을 즐기는 건지, 말없이 활짝 미소를 짓는 그 모습에 조금은 긴장하는 팀원들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까 내 옆에서 자고 있었어. 혼자 둘 수는 없어서 데려왔는데....... 다시 데려다주고 올까?"
미래의 질문에 어디에? 라는 질문을 속으로 삼킨 팀원들의 모습을 눈에 담은 미래. 그런 미래의 옆에서 노을이라고 불린 그녀가 나를 혼자 두지 말라는 듯 양팔로 미래의 팔을 필사적으로 감싸는 모습을 보인다. 그럼과 동시에 팀원들을 향해 보내지 않으면 안되냐는 눈빛을 보내자, 팀원은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미래 씨를 저렇게 따르는데, 같이 다녀도 상관없을 것 같아요."
"맞아요. 조금 눈에 띄긴 하지만, 사람은 많을 수록 좋으니까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는 말을 속으로 삭힌 루시의 한마디로 인해, 결국 그런 결론을 내리며 노을 역시 이들과의 일과에 함께하게 되었다. 그런 해프닝이 지나고, 시궁쥐 팀의 일과가 시작되었다.
이들은 정식 클로저들과는 달리, 유니온 측에서 내려오는 공식 임무는 없었다. 신변이 확실하지 않거나 문제가 생겼던 이들을 관리. 실상으론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팀의 인식이 강한 쪽에 속해서였다. 그것이 관리요원의 성향에 따라선 그렇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기도 했지만, 그들의 관리요원인 오세린은 그런 성향의 인물은 아니었다.
결과적으론, 정식 클로저들과의 협력 관계 이외에는 이들에게 실질적인 업무를 맡기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그런 기관으로 보는게 맞을 정도였다.
때문에 시궁쥐 팀의 일과는, 그들이 공식적으로 팀을 결성하기 이전에 했던 일과를 수행하는 노선을 그대로 타고 있었다. 심부름꾼이라는 신분으로 했던 그 일을, 그 때보다 더 능숙하고 원활하게 처리하게 되었다는 변화만 있을 뿐이었다. 불과 1년이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이들은 이러한 계통에서 손에 꼽히는 해결사로 불리고 있었다.
물론 노을의 경우가 예외적이긴 했지만, 그런 우려를 잠재우듯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노을 역시 이들과 비슷한 실력을 행사했다. 마치 미래가 했던 그대로의 행동 양식을 습득하기라도 했는지, 미래가 그랬던 것처럼 익숙한 모습으로 보일 뿐이었다.
그걸로 노을에 대한 우려가 전부 덜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의 신뢰를 준 영향으로 구역 순찰은 인원을 나누어 순찰하기로 했다.
"미래. 우리끼리?"
미래와 노을이 한 쌍이 되어 한 구역을 순찰하기로 했다. 이들 사이에서 문제가 일어날 거라고 보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 결정처럼 보였다. 그래서 노을이 짧게 물은 것이다.
"응. 괜찮아. 친구들이 믿어주니까."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는 미소를 지으며 노을에게 답하는 미래. 그런 모습을 보던 노을이 잠깐 뒤쪽으로 시선을 보내다가, 자신도 그런 미래를 믿겠다는 듯 마찬가지의 미소를 지어보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미래는 노을의 손을 잡고는 그녀를 인도했다. 마침 미래가 가장 많이 와본 적이 있는 구역이었기에 그 걸음걸음에 자신감이 물씬 흘렀다.
그런 자신감에 힘을 실어주듯, 구역을 지날 때마다 미래와 안면이 있는 주민들이 미래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네왔다. 매번 비슷한 인사들이었지만, 오늘은 동생과 함께 다니냐는 멘트가 추가됐을 뿐 그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사람들을 두 사람. 미래와 노을은 기쁘게 받아들였다.
업무를 진행할 때도, 식사를 할 때도 두 사람은 말 그대로 자매처럼 지금의 순간들을 함께했다. 미래 역시 평소와는 다른 지금의 순간들이 새롭고 반가운 기분이 들었고, 노을은 미래와 함께하는 순간들이 새롭게 다가오며 다음은 뭘 할지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미래에게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기라도 했는지 불안을 스스로 안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조금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노을의 모습을 보며 무슨 일일까 싶으면서도, 이후에 물어보면 될 일이라는 생각에 넘어간 미래였다.
그렇게 해가 내려갈 즈음의 시간이 되고, 강이 보이는 공원을 순찰하던 때였다.
"으음....... 왜 이러지......?"
미래가 피곤한 모습을 보이며 눈을 비볐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졸음에 당황했는지 눈을 비비다 무력하게 무너지는 상황에 놀란 듯, 미래를 부축한 노을은 주변을 둘러보다 앉을 수 있는 공원 벤치를 발견하고는 그쪽으로 미래를 부축하며 나아갔다.
벤치에 앉은 두 사람은, 갑작스레 무력해진 미래의 머리를 노을이 제 다리에 눕히는 것으로 자세를 안정시킬 수 있었다. 누워있는 미래와 그녀를 눕히며 앉은 노을이 서로 시선을 마주했다.
"미안해, 노을아....... 나 때문에."
평소에는 이럴리 없다는 목소리로 노을에게 사과를 건네는 미래. 평상시에는 지금까지 일과를 완수할 때도 지금처럼 피곤함이 찾아온 적이 없었다. 차원 재해가 발생했을 때에도 지금처럼 피곤했던 적은 없었다. 그런 사과에 노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내가 미안."
노을의 그런 사과에 잠깐 멀뚱한 시선으로 보던 미래는, 이내 미소를 지으며 노을을 바라볼 뿐이었다.
"조금만....... 쉴게......."
그렇게 의식을 잃기 전에 옅은 목소리로 노을을 부르며 잠들어버리는 미래.
"미래?"
노을이 그런 미래를 불렀으나, 평온하고도 새근새근한 숨소리가 미래에게서 흘러나올 뿐이었다.
"미래......."
돌아오지 않는 미래의 답변에 조금은 쓸쓸하게 미래의 이름을 부르곤, 강 너머로 지고 있는 노을에 시선을 돌렸다. 붉은 태양으로 젖어든 노을의 운치는, 누가 보더라도 도심에선 보기 힘든 절경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노을 역시 저렇게 젖어든 노을을 미래와 함께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기에, 서글픈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곳에서 보던 노을들과는 다르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을 정도라 노을은 생각했다.
"이제, 나와도 돼."
누군가 있다는 걸 아는 듯 주변에서 약하게 들릴 정도로 혼잣말을 꺼낸 노을. 그 한마디에, 노을의 오른편으로 살벌한 기관음을 내며 노을에게 총구를 겨누는 이가 있었다. 시궁쥐 팀의 같은 팀원인 김철수였다. 팀 차원에서 미래가 어떤 위협이 있을 거라 판단했기에, 그가 둘의 주변에서 멀찍이 떨어져 감시했던 것이다.
"....... 미래는?"
그렇게 묻는 것과 함께 제 눈으로 미래의 상태를 살피는 철수는, 그저 잠들어있을 뿐이라는 걸 확인하고는 한시름을 놓았다.
"괜찮아. 자고 있어."
자신에게 총구가 겨눠지는 위험한 순간임에도, 평온하게 대답하고는 미래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노을. 그 손길이 따뜻했는지, 미래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네가 나타난 목적이 뭐냐."
그런 분위기와는 상반된, 날이 선 분위기를 띠는 철수의 질문이 이어졌다. 미래가 지금의 상황이 된 것이 노을이 원인이라는 것을 예상한 모양이었다.
"....... 미래가, 보고싶다고 했어."
한 번에는 알 수 없는 대답을 꺼낸 노을의 이야기에, 뭘 보고 싶었냐는 철수의 질문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나. 그림자."
그림자인 자신을 보고 싶었다는 노을의 대답을 단서로 삼아, 잠시간 과거를 돌아보던 철수는 시간이 날 때면 항상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보던 미래의 모습들을 떠올렸다. 그 모습들에서 직접적인 얘기를 꺼내진 않았지만, 그림자 너머에서 무언가를 찾기 위한 미래의 눈빛을 그는 기억해냈다. 그리고 그런 미래의 바램이 지금의 모습으로 나왔다는 것이 노을 자신이라 말하고 있었다.
"그럼 왜 미래의 모습을 갖고 나타난거지?"
철수는 정말로 몰라서 그런 질문을 했다기보다, 무언가의 확신을 받아내기 위한 느낌의 질문을 노을에게 던졌다. 마치 위협요소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기 위한 느낌으로도 보였다.
"미래 없으면, 나도 죽어."
그리고 그에 호응하듯 당연한 걸 말하는 것처럼 철수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런 대답으로 자신 스스로가 미래에게 해를 입힐 수 없다는 것을 시인했다고 판단했다. 육체의 주체인 미래라는 존재 자체가 사라지면 자신도 죽을 것이라는 말을 지금의 대답으로 충분히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노을의 그러한 대답이 확신을 준 건지 철수는 총구를 내리며 허리의 권총집에 제 총을 집어넣었다.
이후로는 서로 말없이 눈앞에 펼쳐진 노을을 바라볼 뿐이었다. 고요하게 내려앉는 석양을 보던 둘의 사이로, 적막을 달래듯 순풍이 머물다 지나갔다.
".......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 미래한테."
자연스러운 침묵으로 일관되던 순간을 깬 노을의 이야기에, 철수의 시선이 노을에게로 향했다.
"쓰레기섬, 거기서 죽은 아이들이 전해달래."
자신 역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일까, 그는 노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처음엔 자기들도 죽고 싶지 않았대. 그래서 죽고 난 이후에 많이 힘들었대."
노을은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했지만, 사실 살고 싶었기 때문에 아파하면서도 살겠다는 희망을 안고 악착같이 버텼다는 아이들의 이야기들을 회상했다.
"그런데 미래가, 먼저 죽은 자신들을 위해 울어줬대. 매일매일."
미래가 죽은 아이들을 직접 묻기 시작한 순간부터, 다른 아이들이 죽는 그 순간들이 올 때마다 빠짐없이 매일매일 무덤에 찾아와서 울어줬다고 노을은 말했다. 아이들은 그런 모습에 처음은 무슨 바보 같은 짓을 하냐며 욕도 했지만, 그게 들릴 리 없다는 것은 그 아이들이 잘 알았을 거라는 말과 함께 얘기를 잇는 노을이었다.
"저렇게 울다가 우리들처럼 죽는 거 아니냐며, 아이들이 많이 걱정했대."
매일 이어지는 미래의 추모에, 지켜보는 자신들이 슬펐다며 오히려 위로해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는 것까지 전했다.
"그래서 더는 힘들지 않대. 위로를 질리도록 받았대. 그러니까 우린 괜찮다고 전해달래."
그리고 더는, 슬퍼하지 말라는 아이들의 바람을 끝으로 당시의 회상을 끝마치는 노을.
"그 아이들이 말해온 것들을 전해주고 싶어서, 내가 이렇게 나올 수 있었어."
그런 염원을 누군가 들어주기라도 한 것처럼, 자신이 이렇게 나올 수 있었다는 말과 함께 이야기가 끝났다.
일반적인 상황뿐이었다면, 지금처럼 미래와 노을이 직접 대면해서 소통할 수 있는 순간은 없었다. 이미 그런 예를 다른 팀을 통해서 확인된 사안이라는 걸 철수는 기억해 냈다. 그러나 지금처럼 노을이 미래와 직접 소통할 수 있었던 것은, 일반적인 상황이 아닌 상황을 겪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이 D백작이 마련한 연무극장에서의 시련인 것은 아닐까라는 결과로 연결시키면서, 지금의 정황이라면 그런 시련의 연장선이 미래에게 벌어진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더한 그였다. 자신을 포함한 은하, 루시에게도 그랬던 것처럼.
"그때, 너 역시 미래를 직접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나?"
그로 인해 나온 철수의 확신을 기반한 질문에, 노을은 말없이 미소를 지으며 미래의 머리를 쓰다듬을 뿐이었다. 무언의 긍정이었다.
"....... 그럼 직접 전해주면 되는 일이지 않나."
그런 철수의 질문에 애석하다는 듯 고개를 젓는 노을.
"이제, 돌아가야 된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다 되었다는 듯 몸이 점차 흐려지는 것을 제 시선으로 확인한 노을. 철수 역시 마찬가지로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대신 전해줘. 미래한테."
그러니 대신 자신이 했던 말들을 전해달라며, 철수에게 부탁한 노을이었다.
"그런 말은 스스로 전해라. 그게 네 역할이지 않나."
하지만 모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민의 여지도 없이 노을의 부탁을 거절하는 철수였다.
"....... 무책임해. 너."
생각지도 못한 대답을 들은 것처럼. 적어도 잠시간의 고민 정도는 할 것 같았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처럼, 어이없다는 듯 인상을 쓰며 그렇게 지적했다. 이렇게까지 들어놓고서 뒤로 빼는거냐며 혀를 차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 문제는 너와 미래 둘만의 문제니까, 내가 관여해선 안될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나 지금의 정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그런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은 노을은 한 방 먹은 것처럼 허탈한 표정을 짓고 만다.
"나였네. 무책임한 건."
스스로 그렇게 인정하며 한숨을 쉰 노을은 아주 잠깐, 미래를 눈에 담고는 철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러면, 미래를 잘 부탁해."
그런 부탁을 끝으로, 노을은 미래에게 스며들며 사라졌다. 노을이 사라지면서 미래의 머리가 벤치에 닿으려 했을 때, 철수가 제 팔로 미래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받쳤다. 자신의 예상이 맞다면, 미래는 곧 깨어날 것임이 분명했다.
"으음......."
그의 예상이 맞았는지 미래가 천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자신을 받치고 있는 철수의 모습을 보던 미래가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주변을 둘러보다가, 철수를 보며 물었다.
"노을...... 어디 갔어......?"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같이 있었던 노을이 보이지 않아서였다. 무슨 말을 해줄까를 짧게 고민하던 철수가 입을 열었다.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거짓을 말하기보다,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으로 그렇게 답했다. 실제로 그는 거짓말을 할 정도의 말재간은 없었다. 그의 답을 들은 미래는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스스로 떨쳐내고는 고개를 저었다.
"고마워. 김철수."
그리곤 그녀는 철수에게 고마움을 전했고, 철수는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은 벤치에서 일어났다. 철수는 먼저 걷고 있겠다는 말을 남기며 천천히 자리를 벗어났고, 미래는 가장 붉게 물들어있는 노을을 눈에 담았다. 조금 전보다 더욱 붉어진 그 노을을 보며, 눈이 부셔서였는지 슬퍼서였는지 모를 눈물이 흘러 천천히 훔쳐냈다.
"괜찮다고 해줘서 고마워. 더는 슬퍼하지 않을게."
노을에게서 나왔던 이야기들을 전부 들었던 건지, 미래는 자신보다 먼저 간 친구들에게 그런 인사를 끝으로 다시금 다짐하는 눈빛을 보였다. 조금 전보다 몇 층 더 견고해진 것이, 마음을 다잡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시선을 내려 자신의 그림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위로해줘서 고마워. 노을아."
그렇게 얘기하고는, 먼저 앞서가던 철수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미래의 그림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고마움을 드러낸 미래의 인사에, 노을은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어쩌면 어떻게 다 들었냐며 크게 당황하고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밤을 걸친 노을이, 미래의 앞길을 길게 비추었다.
미래와 미래의 동반자라 할 수 있는 그림자를 통해 짧은 일화를 작성해봤습니다.
앞으로의 앞날을 맞이하기 위해 굳은 다짐을 하는 미래를 보고 싶어서 부족하게나마 써봤네요.
검은손 이후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이미지는 미래의 검은손 일러스트를 채용했습니다.
기존에 썼던 것을 약간 다듬어 올린 것이기 때문에, 보시는 데에 어떨지는 모르겠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른 글로도 참가해볼게요.
여튼, 참가에 의의를 두고 올리며 이만 마치겠습니다.
다른 분들도 이번 공모전에서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