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그림동화] 작은 플로프 이야기
Valcun 2021-12-23 18
아주 먼 옛날, 누구도 알지 못하는 차원의 평화로운 바다가 있었어요.
플로프는 거기에 살고 있던 착한 차원종이었답니다.
죽은
이유는 내 진짜 친구가 아니어서야.
진짜 친구를 찾으려면
신나게 놀면서 죽지 않는 친구를 찾아야 해.
신나게 놀다가 친구가 죽으면 내 진짜 친구가 아니다. 진짜 친구를 찾으려면 신나게 놀면서 죽지 않는 친구를 찾아야 한다.
놀다 죽으면 내 친구가 아니야! 살아남야 내 친구인걸? 내 진정한 친구는 나와 놀아서 살아남아야만 해!
플로프의 눈에 광기가
어렸다.
“그래, 플로프. 이제 알겠니?”
“아주 잘 알 것
같아, 언니.”
플로프는 몽롱하지만
불타는 눈으로 대양왕 아스모데우스의 눈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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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프가 아스모데우스를
따라 나선 지도 벌써 몇십 년, 그 동안 플로프도 많은 친구들을 사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세상의 뜻이
그러한 것이었을까? 플로프는 여전히 제대로 된 친구를 찾지 못했다. 같이
놀다 보면 친구들은 찢어져버리고, 뜯겨버리고, 망가져버렸다. 그런 것들은 친구라고 부를 수 없었다. 애초부터 친구로서 기능하지도
못했다.
그렇기에 적절한
친구를 찾아야 했다. 발견해야만 했다. 언니가 준 한없이
검붉은 액체. 친구를 찾기 위해 이것까지 마셨다. 좋은 거라고
했다.
그래서 플로프는
이 잡듯이 친구를 찾아다녔다. 그러던 중에 클로저 한 분대를 만난 것이었다.
“넌 내 친구지? 친구 맞지?”
플로프는 클로저
분대를 보자마자 깔깔 웃으며 돌진했다. 꽝 하는 소리와 함께 세 명의 클로저가 땅바닥에 엎어져 버렸다.
“어지러워도 놀 거야, 놀아야 해!”
하지만 플로프는
그런 건 안중에 없었다. 중요한 건 노는 것. 새로운 친구들과
죽을 때까지 노는 것이었다.
그리고 검증해야
했다. 친구가 될 자격이 있는지. 자신이 진심을 다해 놀았을
때도 죽지 않을 정도로 튼튼해야 했다.
그렇기 위해서는
물싸움이 제격이었다. 플로프는 닻에서 쓰나미 같은 물보라를 뿜어내며 외쳤다.
“친구라면, 피하지 말고 버텨!”
하지만 평범한 클로저
분대가 강력한 차원종의 일격을 받아낼 리가 만무했다.
짧은 머리를 한
남자 클로저는 쓰나미에 비껴맞아 저 멀리 날아가버렸다. 얼마나 멀리 날아갔는지 근처에서 몸을 찾아볼
수도 없었다.
두 번째 여자 클로서는
흑장발을 휘날리며, 간신히 건물 뒤로 숨어 화를 면했다.
그리고 세 번째
클로저로 쓰나미가 다가갔을 때, 플로프는 보았다. 고통과
공포에 가득 한 그녀의 표정을. 이건 놀이가 아니었다. 고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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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실을 깨닫자 플로프는 머리를 해머로 얻어맞은 것 같았어요.
이미 쓰나미는 플로프의 손을 떠나간 지 오래였어요. 이미 늦은 것 같았지만
플로프는 울부짖었어요.
“아니야! 제발… 버티지 말고 피해!!”
하지만 플로프의 외침이 무색하게, 세 번째 클로저에게 정통으로 쓰나미가 덮쳤어요.
벽에 세게 부딪힌 그 클로저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눈을 뒤집어버리고 말았어요.
“안 돼, 안 돼!!”
플로프는 울부짖었어요. 친구를 죽이고 만 거에요.
플로프는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가, 죽어버린 그 친구에게 사과하고 싶었어요.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고. 내가 잘못했다고.
하지만 마음 속 다른 존재가 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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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두 명의 친구가
남았다.’
그 외침이 들리자마자
플로프는 아까 날아갔던 첫 번째 클로저를 찾기 시작했다.
부산의 거리를 샅샅이
뒤진 플로프는 마침내, 골목길 끝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있던 그 클로저를 찾을 수 있었다.
“흐아압!”
이번에는 수영을
할 시간이었다. 플로프는 클로저를 끌고 동해 바다 깊은 먼 곳까지 데려간 후, 뒷덜미를 붙잡은 채 다이빙했다.
안타깝게도 첫 번째
클로저는 수영을 잘 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한참을 허우적대던 클로저는 결국 바닷속으로 꼬르륵 가라앉고
말았다.
“숨 쉴 수 없다면, 죽어야지!”
플로프는 클로저의
목을 잡고, 저 멀리 심해 속으로 내려가며 외쳤다.
하지만 플로프는
그 때 보고야 말았다. 숨이 막혀 죽어가고 있는 클로저의 모습을 말이다. 눈빛이 점점 흐려지는 것까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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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프는 그 표정을 보자마자 깨달았어요.
진짜로 숨을 쉴 수가 없다는 걸요.
“서둘러, 안 그러면 내가 널!!”
플로프는 잡은 목을 서둘러 놓아버리고, 재빠르게 클로저를 업고 수면 위로
돌아가려고 했어요.
하지만 동해 바다는 깊어도 너무 깊었어요.
결국, 플로프를 미약하게나마 잡고 있던 손에 힘이 풀리며, 첫 번째 클로저는 바다 깊숙이 가라앉고 말았어요.
플로프는 수면 위로 올라와서 목 놓아 울었어요.
친구를 또 죽이고 말았어요. 숨이 막혀서 고통스럽게 죽어간 그 친구를 헤아려보니, 플로프도 죽고 싶었어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얼마나 아팠을까요?
플로프가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요?
하지만 마음 속 다른 존재가 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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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한 명 남았다.’
플로프는 잊고 있었던
한 명의 클로저를 떠올렸다. 아까 온 힘을 다해서 날린 쓰나미를 피해버린 그 클로저. 흑장발을 휘날리며 화려한 움직임을 보이던 그녀라면, 자신을 만족시킬
수 있을 게 분명했다.
플로프는 광기에
찬 눈으로 마지막 클로저를 찾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 부셔진 대로변에 똑바로 서 있는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시간이 좀 흐른지라, 몸을 추스르고 제대로 놀
준비를 한 게 분명했다.
“가만 안 둘 거야, 이 괴물 녀석아!!”
클로저는 플로프를
보자마자 눈이 뒤집혀서, 쥐고 있던 쿠크리를 들고 곧장 돌진했다.
물론 플로프에게
이 정도는 장난 수준이었다. 그녀가 휘두른 쿠크리를 가볍게 피해버린 후, 플로프는 그녀에게 반격을 가했다.
정말 빠른 속도라
그 상태 그대로 그녀를 베어버릴 것만 같았지만, 놀랍게도 클로저는 그걸 아슬아슬하게 피해버렸다.
그 후로는 피하기의
연속이었다. 클로저의 공격은 너무나도 단조로웠고, 지루했다. 쿠크리를 휘두르는 궤적이 플로프의 눈에는 한없이 느리게 보였다.
하지만 플로프도
좀처럼 클로저를 맞추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히 이 정도면 맞추겠거니 했는데, 클로저는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공격을 날리는 족족 피해버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살이 떨리는
대치 상황이 이어졌다. 하지만 플로프에게는 아니었다. 상대가
날리는 공격은 지루하기 그지없었고, 자신이 날리는 공격은 쉽다는 듯이 피해버렸다.
이건 노는 게 아니었다. 분명히 친구를 놀리는 거였다. 그리고 나쁜 친구는 죽어야 마땅했다.
“터져, 터지란 말이야! 죽어!!”
플로프는 진짜로
죽일 듯이 닻을 휘두르다가, 온 힘을 다해 닻으로 클로저를 내리쳤다.
인간의 나약한 몸으로는
버틸 수가 없는 충격에, 결국 그녀는 쿠크리를 꽉 쥔 채로 아**트 바닥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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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제서야 깨달았어요. 플로프가 나쁜 말을 했다는 걸요.
“아… 아니… 잘못 말했어…”
하지만 이미 늦어버린 거였어요. 죽으라고 외쳤더니 진짜 죽어버린 친구.
그 친구의 목숨이 돌아올 수는 없었답니다.
“친구야… 괴롭혀서… 미안해…”
플로프는 엉엉 울면서 자책했어요.
오늘 플로프는 친구를 세 명이나 죽였어요. 아주 나쁜 아이에요. 벌을 받아야 해요.
하지만 플로프의 소원은 이루어질 수 없었어요.
마음 속 다른 존재가 말했거든요.
‘다른 친구를 찾으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