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알파 나이트 2편
슬비너무귀엽습니다 2022-01-16 1
(혹시 안 보신 분 있다면 1편부터 봐주세요!)
5일이 흐른 뒤 작전 실행일.
제이는 며칠 동안 전투를 치르지 않아 한껏 굳어있는 몸을 풀어주며 중령의 브리핑을 들었다.
“제이 너도 알다시피 우리는 부산의 전력을 온전히 너를 지원하는데 쓸 수 없다. 전력 자체가 부족한 것도 있고, 독기가 가면 갈수록 심해져서 방호복 수량이 되는 대로만 편성이 가능하기 때문이지. 미리 그 일대의 차원종을 정리해놓긴 했다만.”
“그 정도는 이미 염두에 두고 있었어요. 상관없습니다.”
담담한 제이의 말에 중령은 그저 고개만 한 번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크게 전력을 둘로 나눌 거다. 한쪽은 시민들을 보호할 거고, 다른 한쪽은 아폴리온과 너의 전투 사이의 길목에서 지연전을 수행할 예정이다.”
“지연전을 수행하는 부대는 3개의 부대로 쪼개어 주요 대로변이나 다리를 사수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작은 길목까지 막기에는 전력이 부족해.”
“차원종 군단의 일부가 방해하러 오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겠군요.”
“물론 그저 손가락만 빨며 구경할 건 아니다. 나머지 길목 중 지도에 나와 있는 길목에는 전부 징발한 차량이나 폭발물로 진로를 방해해놨지.”
“하지만 명심해라. 지도에 나오지 않은 길도 물론 있고, 지금 아폴리온이 있는 곳에서 이동하면 자연히 길은 열려. 아폴리온이 있는 곳에 차원종이 가는 건 시간문제라는 거다.”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상 거의 없음을 말하는 중령의 말에도 제이는 그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이미 다 상정한 일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도움 하나 없이 아폴리온과 차원종을 한꺼번에 상대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으니 어떻게 보면 더 낫다고 할 수도 있겠지.
중령은 크게 한 번 숨을 내쉬고는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이미 준비는 다 마쳤으니 언제든지 작전을 수행해도 된다만, 정말 괜찮겠냐?”
“걱정도 그 정도면 과합니다, 중령님. 그리고 이미 돌이키기에는 늦었다는 것도 잘 아시잖아요?”
빠악-
“악! 갑자기 멀쩡한 뒤통수는 왜 때리는 겁니까?!”
애꿎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제이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따졌지만 중령은 그렇게 쳐다보면 어쩔 거냐는 눈빛으로 말했다.
“말하는 꼬라지가 열 받는 걸 어쩌겠냐. 슬슬 작전이나 시작하자고. 죽지나 말고 돌아와라.”
“중령님이나 죽지 말고 잘 살아계십쇼.”
중령이 던져주는 인이어를 받아 착용한 제이는 곧바로 위상력으로 몸을 강화한 채 땅을 박차고 달리기 시작했다.
“아폴리온이 있는 곳이 어디라고 했었죠?”
[현재 자네가 향하는 방향에서 그대로 직진하면 나올 걸세. 움직이고 있지는 않으니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거야.]
“......이제 위치 설명은 필요 없겠네요.”
[그런가? 그래도 그 주변의 멀쩡한 감시카메라나 드론으로 아폴리온과 그 일대를 살피고 있으니 특이사항이 발생한다면 바로 전해주지. 그러니 되도록 인이어는 착용하고 있게.]
아직 육안으로 확인조차 못했건만 벌써부터 몸이 저릿저릿할 정도로 강한 독기와 위압감이 느껴진다. 이미 짐작하고 있었지만 상대는 고작 A급 따위가 아닌 그보다 훨씬 윗줄의 적이다.
그렇게 몇 분간을 더 달렸을까.
마침내 아폴리온이라 명명된, 부산의 재앙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걸 보자니 자주 읽는 성경의 말씀이 떠오르는군.]
담담하게 말하고는 있지만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진 못하는 중령의 말이 인어어를 타고 들려왔다.
─황충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예비한 말 같고, 그 머리에 금 같은 면류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
<흐음……. 버러지 같은 인간이 또 왔구나. 오로지 양분 외에는 가치없는 족속들.>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고 또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고 그 이는 사자의 이 같으며, 또 철흉갑 같은 흉갑이 있고 그 날개들의 소리는 병거와 많은 말들이 전장으로 달려 들어가는 소리 같으며.
<그래도 느껴지는 힘은 나쁘진 않구나. 네놈을 섭취하고 이곳을 쓸어버린다면 파리왕을 쓰러트리고 다시 폭식의 왕의 자리를 찾을 수 있겠지.>
또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어 그 꼬리에는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해하는 권세가 있더라.
<자아, 비록 미천한 존재지만 거미줄에 걸린 벌레처럼 필사적으로 이 몸을 즐겁게 해보거라. 그렇지 못한다면 상상치 못한 끔찍한 죽음을 맞을 것이야.>
그 이름은 히브리말로는 아바돈이고 그리스 말로는 아폴리온이니.
아직 아무도 모르는, 전(前) 폭식의 왕이 제이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주춤,
“......큭!”
자신도 모르게 몸이 절로 몇 발자국이나 뒤로 물러섰다.
마치 평범한 사람이 사자와 같은 포식자를 눈앞에 두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것처럼, 응당 이리 해야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몸이 저 존재와 멀리 떨어지려고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폴리온은 짙게 미소 지었다.
<두려운 모양이구나. 이상하게 받아들일 것 없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니. 인간 주제에 이 몸을 배알하고도 멀쩡히 서있는 것만으로도 상찬 받아 마땅한 것이다. 다가올 죽음을 받아들이고 주제에 맞게 고개를 내민다면 내 자비를 베풀어 고통은 주지 않으마.>
스으읍, 하아-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쉬고 내쉰다.
괜찮아, 할 수 있다.
하나같이 다 괴물들뿐인 울프팩 팀원들보다 강한 것 같지는 않다. 정신만 차리고 냉정하게 싸운다면 분명 이길 수 있다.
그렇게 결심하고 위상력으로 전신을 강화하자 온몸을 짓누르던 압박감이 조금 덜해졌다.
제이의 신체 곳곳에 피어오르는 염화(炎火)를 본 아폴리온은 혀를 찼다.
<쯧, 굳이 벌주를 마시겠다는 거로구나.>
[할 수 있겠나, 제이? 이쪽에서 차원종을 막고 있어 그 일대에 차원종은 거의 없겠지만 전투가 시작되면 인이어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확률이 커. 이제 이쪽에서 정보 전달과 상황이 악화되었을 시에 퇴각 명령 등을 해줄 수 없다. 퇴각하려면 지금뿐이야.]
“몇 번이나 말했습니다. 아폴리온은 제가 잡는다고.”
쩌적, 콰아앙─!!!
위상력으로 강화된 다리로 강하게 땅을 박찬다. 순식간에 가까워지는 아폴리온의 몸체.
“흐읍!”
쿠웅!
날아가던 속도 그대로 아폴리온의 얼굴에 발차기를 날리자, 가소롭다는 듯 아폴리온은 팔만 살짝 움직여 공격을 막아냈다.
<뭐냐, 이게 끝은 아니겠지?>
“당연히, 아니지……!”
염화염동권.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요체는 확립한 제이만의 공격 스타일.
외부에서 계속해서 발화를 일으킨다면 산소가 부족해져 호흡이 힘들고, 발화도 약해지기 때문에 외부에서의 발화보다는 상대와 접촉하여 내부를 전소시키는 공격. 하지만 그를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상대에 가까이 접근해야 한다.
콰앙, 빠직, 쿠우웅─!!!
발차기를 날린 자세에서 불꽃을 이용하여 자세를 고치고 순식간에 주먹과 발을 이용해 세 번의 타격을 행한 뒤, 그와 동시에 위상력을 끌어내 아폴리온의 내부를 전소시킨다!
<큭……! 뭐냐, 이 공격은?!>
생소한 공격에 타격을 받아 잠시 인상을 찌푸린 아폴리온이었지만, 본질적으로 아폴리온은 군단장 급의 차원종.
비록 파리왕 벨제부브에게 패배하고 위대한 존재의 총애를 되찾기 위해 외부차원에 정벌을 나오는 신세가 되었다지만 그 힘은 쇠하지 않았다.
<저리, **라─!!!>
화악, 후우웅─
아폴리온의 일갈에 일순간 공기가 아폴리온을 향해 쏠리더니 막대한 독기를 머금고 그대로 제이를 향해 뿜어졌다.
제이는 바로 독기에 반응해 땅을 박차고 순식간에 뒤로 물러섰지만, 이미 들이마신 독기는 어쩔 수 없었다.
“크읍……!”
휘청
순간 세상이 빙글 돌고 다리에 힘이 풀릴 정도로 강대한 독기. 위상력을 끌어올려 독기를 몰아냈지만 절로 모공이 송연해지는 엄청난 위력이었다.
<감히, 버러지가 주제도 모르고 기어오르는 구나……!>
이번에는 아폴리온이 강하게 땅을 박차고 제이에게 기다란 손톱을 휘둘렀다.
후웅─!
바로 고개를 숙여 손톱을 피한 제이였으나, 그 자세에서는 손톱이 휘둘러지는 동시에 휘둘러지는 꼬리를 피할 재간이 없었다.
퍼억, 콰아앙─!
“크흡, 쿨럭! ***……!”
이건 좋지 않았다.
공격이 먹히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만전의 상태인 아폴리온에게 근접전을 행하기에는 저쪽의 수가 너무 많다. 강철도 종잇장처럼 찢어버릴 손톱에 순식간에 사람을 녹일 정도의 독기, 그리고 방금 꼬리를 맞았을 때의 물리력 말고도 무언가 자신을 밀치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아마 척력장의 성질을 지닌 보호막이겠지.
그렇다면 공격 방법을 바꾸면 될 뿐.
“하압!”
화르륵, 콰가가가강─!!!
위상력을 끌어올리자 삽시간에 주변이 잿더미로 변하기 시작했다. 돌, 나무, 차량, 벤치 등 주변의 모든 것을 가리지 않고 불태우는 강대한 힘.
<바보 같긴, 그렇게 정면으로 온다면 반응하지 못할 것 같나!>
온몸에 불꽃을 두르고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제이를 겨냥한 아폴리온은 방금 한 것처럼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독기를 담아 제이에게 내뿜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아니?!>
제이에게 닿기도 전에 불꽃에 흔적도 없이 살라진 독기는 아무런 방해가 될 수 없었고, 급히 위상력을 끌어올려봤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순식간에 아폴리온의 지척까지 도달한 제이는 아폴리온의 정중앙에 강하게 주먹을 처박고는 내부에서 발화시킴과 동시에 외부에서도 강하게 불꽃을 쏘아냈다.
“이거나, ***라아아!”
콰아아아앙─!!!
<끄, 끄아아아아악!!!>
척력장마저 순식간에 돌파당하고 불꽃을 직격당해 온몸이 그슬리고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은 아폴리온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감히, 감히이이이……! 벌레 주제에에에에!!!>
아폴리온이 크게 소리를 지르자 일대에 독기가 짙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력을 다하는 것인지 피어오르는 위상력은 끝모를 힘을 담고 있었다.
“누가 누굴 보고 벌레라고 하는 거지, 이 벌레가!”
이어지는 전투는 단순하다고 표현할 만큼 비슷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제이가 가까이 접근해 염화염동권을 날리면 아폴리온은 그에 반격해 마주 주먹이나 발차기를 날리고, 손톱을 휘두르거나 꼬리로 방어했다.
멀리서 불꽃을 사용한 원거리 공격에는 마찬가지로 한껏 끌어올린 독기를 쏘아내 약화시키고, 약화된 공격은 척력장으로 맞으며 무시했다.
제이가 이상함을 느낀 건 그렇게 수십 번의 공방이 이어졌을 때였다.
“너, 왜 먼저 공격을 하지 않는 거지?”
현재 진행되는 전투가 누군가에게 크게 기울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이상하리만큼 아폴리온은 제이에게 먼저 공격을 하지 않았다. 오직 제이가 공격하는 것을 막고 반격만을 할 뿐.
사방에 퍼져 있는 독기 때문에 제이도 적지 않은 내상을 입었지만, 아폴리온은 그보다 더 큰 타격을 입었을 터. 수십 번이나 불꽃에 안과 밖이 모두 타올랐으니 아무리 강한 녀석이라도 꽤나 타격이 클 것이었다.
제이의 말에 아폴리온은 이제 깨달았냐는 듯 조소를 지었다,
<이제 깨달았느냐, 벌레야? 이래서 하등종족은 어쩔 수 없군.>
그렇게 말한 아폴리온은 크게 날개를 펼치며 말했다.
<네놈의 동족들이 내 아이들을 이곳에 오지 못하게 막고 있던 것쯤은 이미 예전에 알고 있었다. 아마 이 몸과 네놈의 전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할 요량이었겠지.>
아폴리온은 고개를 스윽 위로 들고는 하늘을 보며 미소지었다.
<하지만 지상이 막힌다면 창공을 이용하면 될 뿐. 황충은 바다를 제외하면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는다. 네 동족들을 상대할 최소한의 아이들을 제외하면 모두 이곳에 불러 모았지. 아무래도 네놈들은 전략을 제대로 모르는 듯 하구나.>
아폴리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방에서 호퍼형 차원종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동서남북을 가릴 것 없이 모든 방향에서 날아온 차원종들이 제이와 아폴리온의 머리 위에서 가만히 비행하고 있었다.
푸른 하늘을 뒤덮어 누렇게 변할 정도로 수많은 차원종이 허공을 수놓자 아폴리온이 제이를 비웃었다.
<이제 어쩔 테냐, 벌레야? 이 많은 숫자를 감당하면서 나와 싸울 수 있겠느냐?>
아폴리온의 도발적인 말에도 제이는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아폴리온은 표정을 구기고 분노한 표정으로 외쳤다.
<포기한 모양이구나. 하지만 이제는 늦었다! 네놈의 시체를 갈가리 찢어 느낄 수 있는 가장 강한 고통을 준 뒤에 그 잔해를 잘근잘근 씹어 먹을 것이야!>
그 말과 함께 수많은 차원종들이 제이를 덮침과 동시에 아폴리온이 쏘아낸 독기가 제이를 향해 쏘아졌다.
위급한 순간임에도 제이는 작전을 시작하기 전 중령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그런데 알고는 있겠지? 말은 이렇게 해도 우리가 막는 차원종은 극히 일부라는 거 말이다. 그놈들은 메뚜기 같은 녀석들이라 하늘을 날아다녀서 애초에 통제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방해가 들어와도 상관없다고 한 거고요. 어차피 우리가 노리는 건 그게 아니잖아요?’
‘그거야 그렇지. 우리가 막는 시늉조차 안 하면 저 녀석들은 그냥 도착하는 대로 너에게 달려들 테니까. 하지만 이렇게 우리는 너희를 막고 싶어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고오오─
짧은 회상을 마치고 눈을 뜬 제이의 주변에는 강한 아지랑이가 일렁이고 있었다.
가장 먼저 이상함을 느낀 건 아폴리온이었다.
‘음……? 무언가, 분위기가 바뀌었다.’
당연히 아폴리온도 일군의 군단장이었고, 제이의 능력이 염화(炎火)인 것을 알았을 때 군단의 피해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불과 벌레는 천적에 가까운 대상이니까.
하지만 자신이 본 벌레의 능력으로는 한 번에 군단 모두를 불태울 수는 없다. 한 번에 자신의 아이들을 모두 불태우지 못한다면 그 뒤는 지독한 소모전이 반복될 뿐. 그렇게 된다면 이 도시 전체에 독기를 퍼트린 자신이 훨씬 유리한 싸움이다.
이미 그러한 계산을 끝마치고 군단을 긁어모은 아폴리온이었으나, 그녀가 생각지 못한 것이 있었다.
아직 제이가 전력을 다하지 않았을 가능성.
“하아아……!!!”
제이는 조금씩 기어를 올리듯 위상력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그에 호응하여 서서히 몸집을 불리는 청염(靑炎)을 본 아폴리온의 안색이 점차 새파래졌다.
<그, 그만! 아이들아 어서 물러서…>
“이미 늦었어.”
제이의 눈이 푸르게 번쩍이고, 푸르른 불꽃이 삽시간에 차원종들을 자비 없이 불태우기 시작했다.
<아아……. 아, 안 돼……!>
“불타올라 지옥에나 떨어져라, 벌레들.”
그 때 병사들을 지휘하며 남은 차원종들을 정리하고 있던 중장은 저 멀리서 피어오르는 푸른 불꽃을 바라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휘익─. 성공했나? 아주 잘 타는군.”
“와아…….”
마찬가지로 옆에서 같이 불꽃을 구경하며 입을 헤 벌리고 있는 병사를 본 중령은 장난기가 돌았다.
“이봐, 저 기술에 이름을 붙여주면 저 친구가 좋아하지 않을까? 안 그래도 사람들 구하러 다닐 때 온갖 기술명을 말하고 다녔잖아.”
“예, 예?! 이, 일병 김승범! 잘 못 들었습니다!”
“에이, 그러지 말고. 자, 푸른 불꽃이니까 블루 플레임은 어떤가?”
*
한동안 타오르던 푸른 불꽃이 결국은 멎고, 상공을 뒤덮던 차원종들은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전부 불타올라 없어졌다.
<크, 크으으……!>
“헉, 허억…….”
생각보다 위상력의 소모가 크다. 그 이상으로 체력이 부족하다. 예상 이상으로 차원종이 많이 밀려온 탓일까.
제이가 어떻게든 숨을 몰아쉬며 체력을 회복하려던 그 때, 아폴리온이 눈을 치뜨며 쏜살같이 날아왔다.
<이렇게 된 이상 네놈과 이 도시의 인간 놈들을 전부 먹어치우고, 더 나아가 이 세계의 모든 생명체를 다 죽여 내 양분으로 삼아야겠다!>
콰아앙!
“크으윽, 커헉!”
호흡과 호흡 사이의 빈틈을 찔려 무방비 상태에서 얻어맞아버린 제이는 수백 미터가 넘게 날아가 잔해 사이로 떨어졌다.
쿠우웅─
“으, 으윽…….”
쌓인 데미지가 커서 일어나기 힘들다. 위상력도 얼마 남지 않았고, 몸은 성한 곳 하나 없어 피가 줄줄 흐르고 있다. 더 싸우기 힘들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다.
그래도 어떻게든 일어나기 위해 땅에 손을 짚지만 계속해서 미끄러진다.
저벅, 저벅.
<그래, 그렇게 땅을 기어 다니는 게 너같은 벌레에게 어울리지……. 안 그래?>
콰앙!
“크아악!”
어느새 근처로 온 아폴리온이 다시 한 번 제이를 걷어차 날려버린다. 이번에는 멀리 날아가지 않았지만 계속된 공격과 고통이 제이의 의지를 꺾어놓으려 하고 있었다.
“히, 히익…….”
“사, 사람인가?”
갑자기 들려오는 사람의 목소리에 정신이 멍해졌다. 왜 여기에 사람이?
아폴리온과 싸우는 동안 원래 있던 자리에서 상당히 멀리까지 이동한 건가?
<호오, 마침 여기에 벌레가 더 있구나. 변변치는 않아 보이지만 양분으로 삼으면 되니 상관없어.>
“괴, 물……. 괴물이다……!”
“엄마아아아……. 흐어엉…….”
꽈아악.
“크, 흐아압!”
어떻게든 다리에 힘을 주고 남아있는 위상력을 긁어모아 신체를 강화해 일어선다. 수도 없이 얻어맞아 팔다리에 감각이 잘 없고, 뱃속이 울렁거리지만 어떻게든 버틴다.
<뭐냐, 네 녀석. 아직 포기한 게 아니었나?>
“솔직히 방금까지는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이제는 포기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거든……!”
여기서 죽으면 나 혼자 죽는 것이 아닌, 당장 여기의 사람과 나아가 이 도시의 사람들이 죽는다.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그렇게 둘 수는 없다는 의지가 그의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다시 싸움이 시작됐다.
하지만 방금과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을 아폴리온은 깨달았다.
아까에 비해 결코 빠르지 않은 속도, 더 약해진 위상력과 불꽃. 위협을 느낄 요소가 어디에도 없다. 자신도 약해졌지만 그 이상으로 저 인간도 약해졌다,
그러나 아폴리온은 아까와 달리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크윽, 떨어져라!>
콰아앙!
“하, 아아아아아……!”
몇 번을 날려버려도 다시 일어선다.
콰직, 쿠웅!
<좀, 죽으란 말이다!>
분명 나약한 인간이라면 버티지 못할 공격을 수십 번은 얻어맞았음에도 쓰러지지 않았다.
후웅. 콰아앙─!
<뭐냐, 네놈은……. 도대체 뭐냔 말이다아아─!!!>
공격해오는 팔다리를 망가뜨리고 부러뜨려도 기어코 일어나 불꽃이 휘감긴, 뜨거운 주먹을 내질러 온다!
아폴리온은 벌벌 떨리는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미 자신의 몸도 허용할 수 있는 범위 밖의 충격을 입었다.
더 이상 싸운다면 이제 목숨조차 장담할 수 없다. 파리왕과 일전을 겨룰 때조차 느껴** 못한 죽음의 공포가 엄습해온다.
<다, 다가오지 마라……. 내게 다가오지 말란 말이다─!!!>
“하, 그렇게는, 못하겠는데…….”
어느새 부산 도심이 아닌 이름 모를 섬까지 몰린 아폴리온은 발악처럼 독기를 내뿜고 손톱과 꼬리를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하지만 그럼에도 무시무시한 열기를 뿜으며 사신처럼 다가오는 저 인간을 막을 수 없었다.
날아가던 독기는 불꽃에 남김없이 불살라졌고, 손톱과 꼬리는 팔과 다리에 막혀 더는 나아가지 못한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온 몸을 잠식한다.
어느새 자신의 시야를 가득 채운, 남자가 휘둘러오는 불꽃이 휘감긴 주먹이 아폴리온이 기억하는 마지막이었다.
*
아폴리온이 죽었다.
그 시체는 산산조각이 나 흩어졌고, 겨우 섬을 벗어났지만 힘이 다해 폐허의 한복판에 쓰러져버렸다.
“쿨럭, 크흐……. 진짜 죽을 것 같네…….”
이겼다. 비록 몸은 길가에 굴러다니는 쓰레기마냥 너덜너덜해지고 위상력은 바닥이 나다 못해 그 근원까지 쥐어짜낸 것만 같아도 결국은 이겼다.
“아아, 여보세요? 에라, 고장났나보네.”
아폴리온을 물리치는데 성공했다고 중령에게 말하려고 했지만, 역시나 인이어는 작동하지 않았다. 고장은 났지만 형체라도 유지하고 있다는 게 오히려 대단한 것일까.
한때 대도심이었던 폐허의 한복판 가운데에서 쓰러진 채 누워있다는 것이 제이에게 묘한 감상을 느끼게 했다.
그때 만신창이가 된 제이의 위로 그녀의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A급 차원종을 상대하면서 용케도 살아남았네, 신입.”
“A급 차원종은 개뿔, A급이 한 트럭으로 몰려와도 그걸 상대하는 것보단 나을 거야.”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제이가, 긴장을 풀며 미소를 머금는다.
지나 선배인가. 차원종이 하나라도 더 나왔더라면 그대로 죽을 뻔 했는데, 이제는 편히 쉴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안심이 된다.
“정보가 실제와 달랐나보네. 무섭진 않았어?”
무섭진 않았냐고?
"무서워 죽는 줄 알았지. 다리는 멋대로 후들거리고, 여기저기 안 쑤시는 데가 없고, 실은 지금도 죽을 거 같아. 피를 한 사발은 토한 것 같은데……."
제이를 향해 손을 뻗으며, 그녀가 묻는다.
"그런데 왜 도망치지 않았어?"
왜 도망치지 않았을까. 제이도 스스로 의문이 들었다.
아폴리온은 끔찍할 정도의 강적이었다. 독기는 스치는 것만으로도 피륙을 상하게 했고, 본신의 힘은 A급 차원종 따위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이 압도적이었다. 한때는 인간의 힘으로 맞서는 게 가능할지 의심조차 들었다.
하지만.
손을 맞잡으며, 제이가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몰라, 머리는 도망치고 싶어 하는데 몸은 멋대로 적을 향해 뛰어들더라고. 뱃속이 뒤집어 지도록 맞아가면서도, 계속 위상력을 짜내버렸지 뭐야."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제이는 뒤를 돌아보았다.
"근데 이거, 생각보다 꽤 멋진 일이네."
제이와 아폴리온의 싸움에 완전히 붕괴된 재난 현장에서도 살아남은 가족이,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울고 있었다.
"사람들을 구하고, 미래를 지키는 거."
-完-
-후기-
클로저스 게시판에는 한 번도 글을 써본적 없는데 공모전을 연다고 해서 부족한 실력이나마 참가해봤습니다.
완전 금손분들이 너무 많아서 부족한 점이 많은 이 작품을 낼지 고민해봤지만 쓴 게 아까워서리...
편수 자른 이유는 망할 ajax 오류인가 뭐시긴가 때문에...
(알건 모르건 상관없는 주절주절
1. 마지막은 제이 배경 이야기인 참전 영웅 A군의 기록에 살 좀 붙인 겁니다. 오리지널로 마무리할까 생각했는데 저 마무리가 가장 여운에 남는 것 같아서요,
2. 다들 눈치채셨겠지만 중간의 아이= 장미숙입니다. 기억 못 한 이유는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못했다는 걸로.
3. 여기서 나오는 중령은 오리캐입니다. 실제로 클로저스에 안 나오고, 실제 중령이 저렇지도 않으며 군 지식이 없는 관계로 많은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일정 맞추겠다고 부랴부랴 써서 낸 거라 부족한 점이 많을 테지만 감안하고 재미있게 봐주세요 ㅎㅎ
이제 얼마 남지 않았지만 마지막까지 공모전에 작품 올리는 모든 금손분들 응원합니다!
(사투리 고증, 게임 내부 설정 등에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감안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