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티나 VS 하피

네크로판타지 2016-08-01 2




(그린님:TREEMAN)






원래 문학을 잘 봐주는 클갤에 처음 올렸던 글인데

반응이 괜찮아서 마음의 고향 ㄹㄹ웹에도 올려봅니다.


저번에 올렷던 상편에 하편을 합쳐서 다시올립니다.






우선 글자체가 티나 G타워 스포있으니 아직 진행안한 사람이 있을거같진 않지만 있다면 주의하세요.






 

이 팬픽은 실제 클로저스 시나리오에서 늑대개팀을 모두 넣어서 각색한 단편 소설입니다.

 

이번편의 시점은 본편 지타워에서 홍시영 감독관이 티나에게 헤카톤케일 웨폰을 제압하기위해 투입된 늑대개팀의 암살지령을 내린 직후의 이야기임. 실제 게임에서는 암살지령을 무시하고 헤카톤케일 웨폰을 제압하러가지만, 여기서는 일단 암살지령을 받아들인 상황입니다.

 

늑대개팀을 모두 넣어서 진행하기위해 실제 게임스토리에서 여러 부분을 각색했습니다.

 

티나와 하피 스토리를 모두 진행해보셨다면 더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거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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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上편

 

 

 

 어제 내린 소나기 때문인지, 아니면 파괴된 상수도원이 곳곳에서 범람해서인지, 강남의 저녁 공기는 제법 습했다.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이었지만 밖은 이미 어두컴컴했다. 하늘에 깔린 짖은 먹구름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신서울의 번화가인 강남의 절경을 맡고 있어야 할 마천루의 불빛들이 모두 꺼.져있는 탓이었다. 지금은 군데군데 타오르는 불길만이 도시를 밝히고 있을 뿐이다.

 

 무인도시가 되어버린 강남에서 가장 높은 빌딩 중 하나, 그 옥상에 그녀가 엎드려 있었다. 그녀의 앞에는 위압적인 길이의 저격 라이플이 거치 되어 있고, 그녀는 엎드린 채 가만히 두 눈으로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강한 바람이 그녀의 은빛 머리칼을 흩트려 놓으며 그녀의 속눈썹을 간지럽혔으나 그녀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습도 64.4%, 풍속 21.1노트, 풍향 남서.”

 

 습도도 높고 풍속도 강하며 날씨까지 흐렸지만, 이러한 악조건들은 모두 그녀, 티나에게 별다른 해가 되지 않는다. 그녀는 어떠한 악조건에서든지 완벽하게 상대를 침묵시킬 수 있는 완전무결의 저격수였다. 적어도 얼마 전까지는 그래왔다.

 

 트레이너가 그녀의 교관을 맡은 이후로, 처음 맡는 저격 임무였다. 물론 그녀는 사람이 아닌 안드로이드(그것도 극도로 정교하게 제작된) 이므로 오랫동안 저격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실력이 바래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녀는, 긴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가 긴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었다.

 

‘감정 역류장치가 제거된 것은 틀림이 없군.’

 

 먼 곳을 응시하던 그녀의 시선이 흔들렸다. 그녀는 잠깐 시선을 돌려 도시의 전경을 바라보았다. 도시는 이미 두 번의 침공으로 완전히 폐허가 되어있었다. 깨져있지 않은 창문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거리에는 사람들이 버리고 달아난 차량들이 묘지처럼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불현듯 그녀의 기억 속에서 비슷한 풍경이 떠올랐다. 그 어떤 과거의 기억은 그녀의 인공지능 회로를 과열시키며 그녀의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전쟁…”

 

 그녀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런 그녀의 표정에서 고통과 그 속에 잠재된 슬픔이 슬며시 스쳐 지나갔다.

 

콰아아-

 

 먼 곳에서 분노에 찬 짐승의 포효 소리 같은 괴성이 들려왔다. 그것은 언뜻 듣기에는 슬픔에 찬 절규 같기도 했다. 그녀의 시선이 다시 소리의 발원지를 향했다. 시선의 끝에는 그녀가 대기 중인 빌딩의 높이보다 약간 낮은 거대한 삼각형 모양의 방벽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방벽의 안쪽에는 거대한 무언가가 붉은 안광을 내뿜으며 포효하고 있었다. 방벽에 탑재된 미사일 터릿이 그 거대한 무언가를 향해 포격을 가하고 있었다. ‘유니온 터릿’ 이라 불리는 그 방벽은 그 거대한 존재, ‘헤카톤케일 웨폰’의 위상력을 소모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방벽이었으나, 그 역할을 완전히 수행하기에 헤카톤케일 웨폰의 위상력은 너무나도 압도적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방벽 위에는 두 명의 늑대개 대원이 벌쳐스 사장의 지시로 그것의 위상력을 소모시키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고 있다.

 

‘헤카톤케일 웨폰의 위상력 소모가 끝나면, 배신을 공모할 가능성이 있는 투입된 늑대개 대원을 저격해라.’

 

 이것이 그녀의 명령권자, 즉 교관이 그녀에게 내린 지시였다. 안드로이드에게 명령권자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다. 그녀는 저격 라이플 옆에 있던 쌍안경을 주워들었다. 쌍안경의 렌즈를 통해 방벽위에서 헤카톤케일 웨폰의 공격을 피하며 소환되고 있는 차원종들을 제압하고 있는 대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짧은 시간 함께한 대원이었지만, 그 둘은 그녀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주었다. 자신과는 다르게 자유를 갈구하는 나타와 감성이 풍부한 레비아. 둘 모두 그녀에게는 흥미롭고 이해하기 힘든 인물상이었다. 그러나 오늘 이후로, 그녀는 다시는 그들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곧 그녀의 총알이 그들의 미간을 꿰뚫을 것이고, 그들은 자신의 최후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영원히 침묵할 것이다. 그리고 헤카톤케일 웨폰과 맘바는 병기화되어 공포의 시대를 불러올 것이다.

 

콰아-

 

 헤카톤케일 웨폰의 포효소리가 몇 분 전보다 훨씬 작아졌으며, 방벽위로 휘두르는 팔의 속도도 점점 느려지고 있다. 그것의 위상력 소모가 끝나간다는 징조였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가 맡은 임무가 시작되려고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녀는 탄창과 노리쇠에 이상이 없는지를 확인하고 라이플의 스코프에 눈을 가져다 대었다. 저격 순서는 폭주의 가능성이 있는 레비아를 먼저 저격한 후 나타를 저격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마침 바람도 잦아들고 있다. 곧 있으면 해도 완전히 지게 될 것이다. 헤카톤케일의 움직임은 서서히 느려지고 있다. 스코프를 통해 본 레비아의 얼굴에는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이 최선의 기회다. 그녀의 손가락이 방아쇠 위에 걸터앉는다.

 

‘…!’

 

 방아쇠를 당기려고 하는 순간, 맹렬한 두통이 그녀의 머리를 후려쳤다. 그녀의 손가락은 방아쇠 위에서 갈 곳을 잃은 채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머리가 과열된 듯 달아오른다. 거부반응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머릿속에서 낯설지 않은 목소리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그것은, 그녀 자신의 목소리였다.

 

“어째서… 분명 명령어는 삭제되었을 텐데…”

 

“글쎄요. 어째서일까요.”

 

 익숙한 여성 목소리가 그녀의 뒤편에서 들려왔다. 그녀는 재빠른 몸놀림으로 엎드린 몸을 옆으로 틀며 거치 된 라이플을 낚아채듯이 잡아당긴 후 소리가 나는 방향을 향해 조준했다. 그곳에는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너는…”

 

 

 

 



 

 

“하피.”

 

 그녀에게 지시를 전달하는 이어폰을 통해 트레이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통 공용 채널을 통해서 대원 전체에게 지시를 내리기는 하지만, 이렇게 개별적으로 대원을 부르는 경우는 흔하지 않았다.

 

“잠깐 뻐꾸기가 있는 곳으로 와줄 수 있겠나. 옥상 위 창고 안에서 기다리고 있겠다.”

 

 ‘와줄 수 있겠나.’라는 청유형 어미는 분명 그가 자주 사용하는 화법은 아니었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손거울을 꺼내 머리칼의 상태를 한번 확인했다.

 

“바로 가지요.”

 

 그녀는 손으로 어깨 위를 훑어 머리카락을 등 뒤로 넘긴 후 옥상 위 헬기장 쪽을 흘겨보았다. 그곳에는 두터운 케이프코트를 입고 있는 잿빛 머리칼의 여자가 폐허가 된 도시의 전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에는 만족감을 넘어선 일종의 황홀경이 엿보였다. 그런 그녀의 표정을 보며 문뜩 하피는 과거 자신의 초커를 작동시킬 때 그녀가 짓던 표정이 지금과 흡사함을 깨달았다.

 

 그녀의 눈에 비친 강남의 폐허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자신의 목을 조르며, 이후에는 다른 대원들의 목을 조르며, 그리고 지금은 이 도시의 목을 조르면서, 그녀는 무엇을 보고자 했던 걸까? 한때, 하피는 그녀의 원수이자 주인인 홍시영의 세계를 이해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그녀의 그림자로서의 자신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과거의 자신을 잊은 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그녀의 뒤틀린 사랑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김시환은 그녀에게 난민들이 그녀의 가면을 쓰고 강남으로 진입하고 있다고 했다. 자기 속에서 죽었다고 생각했던 괴도의 유지를 그들이 잇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녀의 속에 죽어있던 과거의 자신을 다시 깨웠다.

 

 결심을 굳힌 그녀는 고개를 돌려 창고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끼이익-

 

 불이 꺼진 창고의 문을 열자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그림자 사이로 뻐꾸기가 보였다. 뻐꾸기에는 영상을 송출하는 디스플레이 패널이 열려 있었고 그것을 통해 그 남자, 트레이너의 얼굴이 보였다. 어두운 곳에 있는 탓인지 그가 어디에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얼굴은 트레이너 측 뻐꾸기의 조명 덕에 얼굴의 절반을 덮은 흉터 자국이 훤히 보였다. 그녀는 트레이너의 얼굴 앞으로 걸어갔다. 또각- 하는 하이힐 굽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역시 너는 작전에 투입되지 않았군.”

 

 디스플레이 안의 트레이너가 다가오는 하피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트레이너씨도 이번 작전이 어떤 작전인지는 눈치채신 모양이군요.”

 

 그녀의 말을 들은 트레이너는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홍시영 사장님이 티나양에게 지시를 내렸어요. 현재 작전에 나가 있는 대원들을 헤카톤케일 웨폰의 안정화가 끝나는 즉시 저격하라고 하셨죠. 그리고 저는 보시다시피 작전에 제외됐고요. 여기 남아서 사장님을 지키라는 뜻이죠.”

 

“크흠… 예상대로군.”

 

 그는 눈을 질근 감은 채로 입을 꽉 다물었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창고 구석의 상자 더미 위에 걸터앉은 후, 머리를 한번 가볍게 흔들어 어깨에 걸터앉은 머리칼을 넘겼다.

 

“티나양을 막으실 건가요?”

 

 먼저 침묵을 깬 건 하피였다.

 

“지금의 난 그럴 수 없다. 난 홍시영 사장의 지시로 이미 강남 지하에 투입되었어. 유니온 터릿까지는 거리가 너무 멀다. 하지만… 너라면 얘기가 다르지.”

 

“또 저한테 기대를 거시는 거군요.”

 

“하지만 넌 이미 선택을 했지. 홍시영 사장의 그림자로 남기를 말이다.”

 

 뻐꾸기의 디스플레이 패널 너머로 그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살짝 찡그린 완고한 얼굴의 트레이너와 달리 하피는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티나양이 저격에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그녀가 팔짱을 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이지? 그녀는 악령이다. 그녀의 저격에 실패란 없어.”

 

“다 알고 있어요. 그녀의 감정 역류장치가 제거되었다는 것을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제가 좀 귀가 밝거든요.”

 

”그렇다면 너는 알고 있으면서도 홍시영 사장에게 일러주지 않았다는 것인가?”

 

“뭐, 그런 셈이죠.”

 

 그녀는 다시 트레이너를 등지고 일어섰다. 창고 문틈사이로 쏟아지는 불빛이 그녀의 몸의 윤곽을 비추었다. 그녀의 뒷모습에서, 트레이너는 이전과 다른 결의를 느낄 수 있었다.

 

“너는 대체… 누구의 편이지?”

 

“글쎄요. 제 대답은 이걸로 대신하지요.”

 

그녀는 뒤돌아서 뻐꾸기를 바라보았다.

 

“그건…”

 

 눈가를 뒤덮는 검은색 가면. 그것은 그녀가 괴도 시절 사용하던 가면이었다.

 

“그런가. 잘도 그런 낯간지러운 가면을…”

 

“그래서, 얼른 대답해주시죠. 티나가 저격에 성공할 것 같나요?”

 

 하피는 얼굴을 붉히며 황급히 가면을 떼어내고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트레이너는 그런 하피를 보면서 아주 잠깐이지만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이내 본래의 딱딱한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감정 역류장치가 제거되었다고 하지만, 명령권자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게다가 역류장치가 제거된 지 오래되지 않아서, 아직은 어떻게 될지 확신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는 오랜 시절 동안 악령이었죠.”

 

“나는 그 아이가 명령에 저항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혹시라도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하지 않도록… 하피, 네가 그 아이를 도와줬으면 한다.”

 

“그 아이… 과거의 그 아이는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나 보군요?”

 

 트레이너는 잠시 고통스러운 과거를 회상하는 듯 눈을 감고 인상을 구겼다. 그 기억 속에서 그는 만신창이가 된 채로 숨이 끊어져 가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에게 전쟁을 끝내줄 것을 당부하고 있었다. 그것은 너무나도 허무한 죽음이었다. 그가 전쟁터에서 보았던 수많은 죽음들처럼.

 

“…그렇다.”

 

 잠깐의 침묵 후 트레이너가 대답했다.

 

“뭐, 알고 있었어요. 사실 그것도 이미 엿들었거든요.”

 

“다음부터 알면서 묻는 건 안 해주었으면 하는군.”

 

“미안해요. 천성이라. 그럼 잡담은 이만하고 늦기 전에 티나양을 찾아가지요.”

 

 트레이너에게서 등을 돌리며, 그녀는 발걸음을 옮겼다.

 

“조심해라. 그리고, 하피.”

 

 하피가 문을 열고 나서려고 하는 순간, 트레이너의 목소리가 그녀의 발걸음을 멈추었다.

 

“고맙다.”

 

 트레이너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때까지 고맙다는 말은 대원들에게 단 한 번도 한 적 없었던 트레이너였다. 그 말을 들으며 하피는 다름 아닌 홍시영 사장을 떠올렸다. 지금 이 문을 나서면, 이제 자신은 그녀의 오랜 주인을 배반하게 될 것이다. 자신이 죽음보다 더 두려워했던, 그 누구보다 증오했던, 그리고 동시에 사랑했던 그녀의 주인을 말이다. 이제 영영 그녀에게서는 고맙다는 말은 듣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다시는 말을 나눌 기회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하피가 없는 그녀는 제 3위상력을 지니게 된 대원들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고, 아마 그녀의 임무가 끝나는 시점에서 늑대개팀과 부사장의 반격은 이미 끝이 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게 그녀에게는 두려움으로 다가왔지만, 그녀는 이미 조금 전 결단을 내렸다. 늑대의 길을 선택하는 것을. 그리고 곧 그녀, 티나도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감사의 인사는 괴도에게 하시죠.”

 

 그녀는 고개를 돌려 트레이너를 바라보며 괴도의 가면을 쓴 뒤, 양손으로 문을 열며 나섰다. 옥상의 조명 빛이 창고 안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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下편 


 

“짜잔! 오래 기다리셨어요! 밤의 어둠 속에서 춤추는 괴도, 프롬퀸이에요!”

 

“…여기서 뭘 하는 거지?”

 

 검은색 가면을 쓴 하피가 티나의 시선 끝에서 새가 그려진 카드를 화려하게 펼쳐 든 채로 서 있었다. 티나는 그녀가 자신이 눈치채지도 못하는 사이에 옥상까지 접근했다는 사실에 적지 않게 당혹감을 느꼈다. 아마 괴도 시절 익혔던 위상력을 감추는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피가 홍시영 사장이 가장 신뢰하는 부하라는 것을 알고 있는 그녀였지만 티나는 그녀의 가슴을 향해 라이플의 총구를 고정한 채 경계를 풀지 않았다.

 

“하하, 당신한테 하면 조금 덜 부끄러울 줄 알았는데 별로 차이는 없네요.”

 

 하피는 멋쩍게 웃으면서 가면을 벗고는 그녀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발걸음에 맞춰 티나의 총구가 함께 움직였다.

 

“다시 한 번 묻겠다. 여기서 뭘 하는 거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그보다 티나양, 저격 임무는 잘 되어가나요? 저들의 임무가 끝나가는 지금이 가장 적시인 것 같은데요. 더 늦으면 실패해 버릴 거라구요.”

 

“이상 없다.”

 

 티나는 자신의 말을 입증하려는 듯 다시 재빨리 몸을 틀면서 유니온 터릿 방면을 향해 라이플을 겨냥했다. 그녀는 홍시영 사장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티나는 어째서인지 자신의 결함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곧바로 스코프에 눈을 가져다 댔으나, 마치 시각기관이 오류라도 난 듯 스코프 안의 모든 것이 흐리게 보였다. 달아오른 열이 아직도 식지 않고 그녀의 사고를 끊임없이 방해하고 있는 탓이었다.

 

“아니요, 제가 보기엔 이상이 있어 보이는데요. 이렇게 열도 펄펄 끓고…”

 

 어느새 하피는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 앉아 티나의 이마에 자신의 손등을 얹고 있었다. 티나는 화들짝 놀라며 민첩한 움직임으로 라이플을 낚아 챈 뒤 하피와 거리를 벌렸다. 그녀는 신속하게 하피의 발언과 이상행동에 대해서 분석했다.

 

“이제 알겠다. 넌 홍시영 사장이 보낸 게 아니로군.”

 

그녀는 다시 신속한 몸놀림으로 라이플의 총구를 하피에게 지향했다.

 

“네 맞아요. 전 그녀를 배신했어요.”

 

“왜지?”

 

 티나가 하피의 미세한 심경 변화를 전혀 감지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티나가 보았던 그녀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의지가 거세된 존재였다. 명령권자의 명령에만 따르는 자신처럼 그녀 또한 자신을 홍시영 사장의 그림자라고 말하며 그녀의 명령에 복종했다. 비록 이해할 수 없는 점도 많았지만, 감정 역류장치가 설치되기 전까지는 기계로서 살아가는 그녀가 유일하게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던 존재이기도 했다.

 

“어머, 지금 ‘왜’냐고 물으신 건가요? 티나양의 입에서 그런 질문이 나올 줄은 몰랐네요.”

 

“…그래 맞다. 왜인지는 상관없어. 중요한 건 너도 이제 내 저격 대상에 포함된다는 사실이지.”

 

철컥- 탄환이 장전되는 소리가 조용히 옥상위에서 울려 퍼졌다.

 

“중요한 것은 그게 전부인가요? 좋아요.”

 

 하피는 티나에게서 고개를 돌려 저 멀리 유니온 터릿 방면을 쳐다보았다. 움직임이 멈춘 거대한 헤카톤케일 웨폰의 뒤로 태양이 저물고 있었다. 거대한 비석이 된 유니옷 터릿과 헤카톤케일 웨폰이 강남 도시에 기다란 그림자를 남겼다. 파괴된 도시를 바라보며 그녀는 다시 가면을 쓴 뒤, 티나를 향해 돌아섰다.

 

“그렇다면 저 괴도 프롬퀸이 이제부터 당신의 빼앗긴 영혼을 되찾아드리죠!”

 

“유언으로는 별로 좋지 않은 헛소리군.”

 

 티나가 방아쇠에 검지를 부드럽게 걸치며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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下편



 

  잠깐 동안의 소강상태가 지속되었다. 하피도 제자리에 선 채로 티나의 행동을 주시했다.

 

‘전술 분석… 상대의 전투 스타일은 체술 위주의 근거리 격투.’

 

  그녀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기는 것과 동시에 하피는 재빨리 공중으로 뛰어오르며 위상력을 실은 카드를 던졌다. 카드는 티나의 몸에 닿기 전에 티나가 허수공간을 통해 꺼낸 권총에 의해 조각났다.

 

“어디 한번 스릴 넘치는 춤을 춰보죠.”

 

 그러나 하피의 바램과는 다르게 티나는 이미 와이어를 이용해서 다른 건물의 옥상을 향해 도약하며 빠른 속도로 그녀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근거리 체술을 사용하는 하피와 신속하게 거리를 두어 은폐 한 뒤 저격으로 처리할 심산이었다.

 

“도망을 치시겠다는 건가요? 유감이지만, 도망은 제 전공이라서 말이죠. 어디로 어떻게 도망치려는 건지는 훤히 보인다고요”

 

 하피가 티나를 뒤따라 도약하기위해 점프하자, 티나는 공중에서 몸을 틀어 하피를 바라보는 것과 동시에 라이플을 꺼내 들어 조준했다. 공중에 체공한 상황에서는 방향을 틀 수 없다는 판단에서 저격 포인트를 잡은 것이다. 곧바로 탄환이 발사되었지만 하피는 공중에서 마치 날아오르듯 한 번 더 뛰어오르며 총알을 피해갔다.

 

“성가신 능력이군.”

 

 티나는 곧바로 다시 몸을 틀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옥상은 적의 행동반경이 커서 불리하다. 행동반경을 제약할 수 있는 위치를 선정.’

 

 그녀는 다른 건물의 옥상에 착륙하지 않고 건물 옆으로 그대로 추락을 하다가, 와이어를 이용해 옆에서 건물의 창문을 뚫고 넓은 사무실 안으로 뛰어들었다. 온갖 사무기재들이 빠른 속도로 창문을 뚫고 들어온 티나의 몸과 부딪쳐 박살이 나면서 티나의 몸에 생채기를 냈다. 그런 혼란 와중에 티나는 수류탄 몇 개의 안전핀을 뽑아 사무실에 던져 놓고 재빠르게 빠져나와 건물의 반대편을 향해 복도 위를 내달렸다. 이내 하피가 똑같이 그 사무실에 들어올 것이다. 수류탄은 그녀의 목숨을 빼앗진 못하겠지만 이동에 큰 제약을 줄 것이다.

 

 콰앙-

 

 수류탄이 폭발하는 폭음이 건물을 뒤흔들었다. 지금 거리를 최대한 둔 뒤 최적의 저격 포인트에서 대기를 하면...

 

쿵-

 

  그녀 예상과는 달리 티나의 측면에 있는 벽이 강한 돌풍과 함께 무너져내리며 하피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티나의 의도를 파악했던 그녀가 티나의 도주 경로를 우회해서 접근한 것이다. 티나는 곧바로 신속하게 단기관총을 꺼내 들어 응사하면서 반대편 창문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는 다시 몸을 돌려 자신이 빠져나온 건물의 창문들을 향해 총알을 퍼붓는 것과 동시에 와이어를 이용해 다른 건물의 옥상으로 날아올랐다. 허공에서 한 바퀴 공중제비를 돈 뒤 옥상에 발을 내디딘 티나는 곧바로, 옥상에 먼저 도착한 존재가 자신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옥상 한가운데에 하피가 서있었다

.

“인정해야겠군. 기동성은 확실히 네가 한 수 위다.”

“이거 영광인데요.”

“그러니 전술을 변경하여 지금부터는 근접전을 개시한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의 양손에 컴뱃 나이프가 나타났다. 그리고는 곧바로 하피에게 돌진했다. 하피가 발을 길게 뻗어 허공을 향해 돌려차자 위상력이 담긴 날카로운 돌풍이 몰아쳤다. 티나는 그대로 허리를 뒤로 젖히고 무릎을 꿇은 채 슬라이딩을 했다. 날카로운 돌풍이 아슬아슬하게 그녀의 앞 머리카락 몇 가닥만을 잘라내고 사라졌다. 공격을 회피한 그녀는 꿇은 무릎을 피며 일어서는 것과 동시에 반동을 이용해 빈틈이 생긴 하피를 향해 뛰어들었다. 하피는 자신의 몸쪽을 향해 질러오는 나이프를 쥔 티나의 오른손을 왼손으로 쳐낸 뒤 왼발을 축으로 몸을 돌리며 티나를 향해 돌려차기를 날렸다.

 

  그러나 하피의 공격은 티나에게 닿지 않았다. 그 대신, 하피의 몸이 중심을 잃고 무너져내렸다.

 

“어….”

 

  축이 되는 왼발을 티나가 그대로 몸을 숙인 뒤 슬라이딩 태클로 걷어찼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그녀는 재빠르게 하피의 뒤편으로 이동했다. 하피는 중심을 잃고 쓰러지려다가 아슬아슬하게 바닥을 짚었다. 곧바로 티나의 맹공이 이어졌다. 그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저격 라이플을 꺼내 들어 하피를 향해 조준했다. 방아쇠를 당기려고 하는 순간, 다시 한 번 맹렬한 두통이 그녀를 덮쳤다. 티나의 손가락이 방아쇠 위에서 움찔거렸다.

 

“큭….”

 

  그녀는 표정을 잔뜩 찡그린 채 연달아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때는 이미 너무 늦었었다. 바닥을 짚은 하피는 그대로 하늘을 향해 높이 뛰어올라 티나의 머리 위 상공 몇 미터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는 양발에 위상력을 모아 무시무시한 속도로 하강했다. 티나는 위험을 감지하고 재빨리 와이어를 꺼내 들었다.

 

콰앙-

 

  엄청난 위력의 충격파가 건물 옥상을 뒤흔들었다. 티나도 충격파의 영향에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의 작은 몸은 옥상의 파편들과 함께 종잇조각처럼 날아가다가 옥상의 환풍구에 부딪혀 쓰러졌다.

 

“방금 전의 사격에서 망설임이 느껴지더군요. 확실히 그런 사격을 정면으로 받았으면 제 목숨이 온전하지 못했겠지요.”

“또 헛소리군. 난 인간이 아니야. 망설임 같은 것은 없다. 조준이 느렸을 뿐이다.”

 

  그녀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다행히 충격파를 온전히 받지 않아서 약간의 찰과상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손상은 없었다.

 

“제 생각은 좀 다른데요. 요컨대, 당신의 머릿속에 있는 또 다른 당신이 살인을 원치 않는다던가…”

“인간인 그녀는 오래 전에 죽었다. 지금의 난 교관의 명령을 따르는 기계일 뿐이다.”

“아니요, 전 알고 있어요. 당신, 김가면씨와 트레이너씨가 벌쳐스에 반기를 든 것을 홍시영 사장님께 보고하지 않았더군요. 당신은 그때, 선택을 한 거에요. 그리고 선택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죠.”

 

  확실히 그녀는 그들이 홍시영 사장에게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홍시영 사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어째서 그랬지? 결함품이여서? 그녀의 머리가 다시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제가 그랬듯이 말이에요.”

 

  그녀, 하피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3년간 그녀는 의지가 없는 그림자였지만, 지금의 그녀는 스스로의 의지로 미래를 만들어나가고자 하고 있었다. 그녀는 홍시영의 그림자가 아닌, 괴도로서의 자신을 택했다.

 

“당신은 기계가 아니에요.”

 

  그러나 티나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자신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녀는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고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두통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더 이상 그녀의 말을 들었다가는 회로에 이상이 생겨 임무 수행에 지장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녀를…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티나는 하피를 노려보더니 양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다들… 나에게 똑같은 소리를 하는군.”

 

  그리고는 손끝의 허수공간에서 거대한 무언가를 꺼내었다. 티나의 작은 몸과 비슷한 크기의 위압적인 개틀링건이었다. 하피도 괴도로서, 그리고 이후에는 홍시영의 그림자로서 총알이 빗발치는 곳은 몇 번 가보긴 했지만 저런 거대한 기관총은 난생처음이었다. 그녀는 골치 아파졌다는 생각과 함께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대체 뭐지? 기계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면 난 대체…!”

“일단… 그걸 내려놓고 생각해보죠.”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관총의 총신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곧 불을 내뿜을 것이라는 징조였다. 하피가 곧바로 발을 뻗어 바닥 위를 스치듯이 돌려차자 돌풍이 일었다. 아까 전 그녀의 공격으로 부서진 옥상의 잔해가 바람에 의해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티나의 시야를 가렸다. 동시에 티나의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엄청난 양의 탄환이 흙먼지 속으로 빗발치며 사라졌다. 굉음과 함께 한참을 돌아가던 총신은 과열로 인해 붉게 달아오른 뒤에야 멈췄다. 사격을 중단한 그녀는 가라앉고 있는 흙먼지를 바라보았다. 그곳에 하피는 없었지만, 그녀가 흘린 핏자국이 남아있었다. 출혈량이 적은 것으로 보아 치명상은 아니었다.

 

“후….”

 

  티나는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안도하는 자신에 대해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런, 춤에 집중하셔야지요.”

 

  그녀의 뒤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곧바로 허수공간에서 권총을 꺼내 들어 뒤편을 향해 조준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카드를 쥔 하피의 왼손이 질러 들어 오면서 권총의 총신을 깔끔하게 잘라냈다. 즉시 뒤로 물러날 준비를 하려는 그녀였지만, 이미 하피의 오른발이 그녀의 옆구리 바로 앞까지 들이닥쳤다. 피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충격에 대비하는 것밖에 없었다.

 

퍼억-

 

  그녀의 작은 몸이 공중에 붕 떠올랐다. 강력한 충격에 그녀의 머릿속이 진동했다. 다행히 충격 직전에 위상력을 타격부위에 집중시켜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하피는 그것에 멈추지 않고 그대로 그녀를 향해 돌진해왔다. 티나는 낙법으로 한 바퀴를 구르며 착지한 뒤, 곧바로 2연발식 산탄총을 꺼내어 발사했다. 산탄총의 강력한 반동에 티나의 몸이 다시 한 번 튕기듯이 뒤로 날아갔다. 하피는 공격을 회피하기 위해 곧바로 움직임을 멈추고 반대편으로 점프하면서 크게 뒤로 물러났다. 그녀의 허리에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까의 상처가 벌어지고 있었다.

 

  하피는 슬슬 결론을 짓지 않으면 안 됐다. 시간을 끌수록 그녀에게 불리해질 뿐이었다. 이제는 전력을 부딪칠 때였다. 그녀는 무릎을 굽히고 양손을 바닥에 짚으며 발끝에 위상력을 최대한 집중시켰다. 멈춰 있던 공기가 천천히 그녀가 있는 곳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자, 이제 클라이맥스에요. 당신의 영혼을 보여주시죠!”

 

  뒤로 물러난 티나는 저격 라이플을 꺼내 들고 스코프에 눈을 대어 그녀를 조준했다. 그러나 공기의 흐름이 이상해지고 있는 것을 감지한 그녀는 곧바로 스코프에서 눈을 뗐다.

 

‘저번에 본 적이 있는 기술이군. 이건…’

 

  하피는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씨익 하고 미소를 지어 보인 뒤 엄청난 돌풍을 일으키며 사라졌다. 아니, 하늘로 뛰어올랐다.

 

“클라이맥스인가….”

 

  티나는 라이플을 거두고 양손을 옆으로 뻗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의 뒤편에도 허수공간을 전개했다. 이윽고 그 공간을 통해 네 문의 다연장 로켓포가 나타났다. 그녀의 손에도 거대한 로켓포가 들려졌다. 그녀는 곧바로 포문을 하늘로 향했다.

 

  하피 또한 상공 수십 미터 위에서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결착을 지을 때다. 그녀의 발끝에 다시 한 번 위상력이 모였다. 발끝에서 시작된 그녀의 위상력은 그녀의 몸을 타고 그녀의 온몸을 덮으면서 그녀의 주위에 강한 바람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하강하기 시작했다.

 

  연푸른 유성이 옥상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동시에 티나의 로켓포가 불을 뿜었다.

 

콰앙-

 

  거대한 진동이 건물을 뒤흔들었고, 폭음과 함께 옥상 층이 무너져 내렸다. 흙먼지가 사방에 짖게 깔리며 차가운 정적이 이어졌다.

 

  곧 자욱한 흙먼지를 뚫고 작은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얼굴에 약간의 찰과상을 입었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그런 그녀와는 대조적으로, 허리춤에 피를 흘리고 있는 하피가 옥상의 잔해더미 위에 쓰러져있었다. 티나는 그녀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그녀 옆에 떨어져있는 괴도의 가면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나를 빚 맞췄더군… 왜지?”

 

  하피는 감고있던 눈을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당신도 그랬으니까요.”

“안됐군.”

 

  그녀는 권총을 꺼내 들어 그녀의 머리를 조준했다. 하피는 그런 그녀를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순간 티나의 눈 앞에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온갖 상처와 피로 얼룩진 그 얼굴이 쓰러져있는 하피의 얼굴 위로 겹쳐 보였다.

 

“윽…!”

 

  어느 때보다도 강렬한 두통이었다. 눈앞의 얼굴은, 그녀 자신이었다. 그러나 처음 보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엄청난 양의 기억이 그녀의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건… 환각…?”

“티나양?”

 

  상처투성이의 얼굴이 그녀를 향해 아주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나 쏟아지는 기억 탓에 그 얼굴이 뭐라고 말하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그 대신에 그녀의 입술의 움직임을, 티나는 읽을 수 있었다. 교관… 그리고 그녀는 곧 깨달았다.

 


 

 


 


“……!”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그녀는 희미했던 의식의 가닥을 잡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눈을 떴다. 눈앞에는 유니온의 제복을 입은 큰 체구의 젊은 남자가 표정을 일그러트린 채 자신의 옷자락을 찢어 그녀의 상처 부위를 지혈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혈로 사태를 진전시키기에는 이미 그녀의 몸 상태는 만신창이었다. 몸에는 수십 개의 자상과 관통상으로 피범벅이 되어 있었고, 철근 몇 개가 끈적한 피를 뒤덮은 채로 그녀의 복부를 관통해 있었다. 그녀의 왼 다리가 있어야 할 곳에는 짖은 피 웅덩이만 남아있었다.

 

“바보같이... 놈은 네가 막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고 말했을 텐데….”

“하하, 죄송해요. 교관님… 큭….”

 

  그녀의 목구멍에서 무엇인가 뜨거운 것이 복받쳐 오르더니 이내 거무죽죽한 핏덩이를 입가로 쏟아냈다. 핏덩이는 그녀의 턱선을 따라 흐르다 바닥에 고인 피 웅덩이 위로 떨어졌다.

 

“제가 도망치면… 다른… 사람들을… 구할 수 없잖아요….”

 

그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한 단어 한 단어 천천히 내뱉었다

 

“말을 아껴라. 폐에 혈액이 찼다. 곧 의무병이 올 거야.”

 

  그러나 교관도 이미 알고 있었다. 의무병이 도착하기까지 그녀가 버틸 수 있는 가능성은 전무했다. 설사 의무병이 지금 당장 도착한다 해도, 이미 손쓸 도리가 없는 상태였다. 출혈은 말할 것도 없고, 그녀 몸의 주요 장기 대부분은 기능을 잃은 상태였다. 그녀가 아직 의식을 잃지 않고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순전히 그녀가 위상능력자이기 때문에 그나마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민간인들은….”

“모두 대피했다. 전부… 네 덕분이야.”

 

  그가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의 말은 거짓이었다. 무방비 상태로 고위험 차원종의 습격을 받은 난민 캠프의 주변에 있던 클로저는 마침 근처에서 자신의 팀과 별개의 임무로 대기 중이었던 그녀뿐이었다. 그녀가 징조를 느끼고서 교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출동했지만, 혼자서 상황을 타개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녀 덕에 많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여느 전쟁이 그렇듯 모두를 구할 수는 없었다. 그녀를 짓뭉갠 그 미상의 고위험 차원종은 곧바로 아직 도망치지 못한 난민들을 학살하고 사라졌다.

 

 그러나 교관은 그녀에게 진실을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다행이네요….”

 

  그녀는 힘겹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는 자신의 몸의 감각이 점점 무뎌짐을 느꼈다. 시야는 흔들리고, 하반신은 이미 아무런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았으며 교관의 목소리는 갈수록 희미해졌다.

 

“저… 죽나요…?”

“아니, 너는 산다. 죽게 놔두지 않을 거야.”

 

 그는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의 상처를 지혈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천 조각으로 지혈을 해보아도 얼마 지나지 않아 검붉은 핏덩이가 천 조각 틈새로 흘러내렸다.

 

“어… 교관님 우는 거… 처음 보네요….”

 

  그녀가 그늘에 가려진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운다고…? 착각… 하는군. 교관은 웃지도 울지도 않는 다는 것을 잊었나.”

“하하, 맞다 그랬지….”

 

  그녀는 정말로 자신이 교관의 눈물을 본 것이 맞는지 알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의 시야는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이제 교관의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그녀는 떨리는 손을 들어 교관의 볼에 가져다 댔다. 손끝에 촉촉한 물기가 묻어져 나왔다. 그녀는 교관을 향해 그녀 특유의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교관은 지혈하던 손을 멈추고 가만히 그녀의 미소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볼에 닿은 그녀의 손을 천천히 잡았다. 그녀는 죽음이 바로 곁에 다가왔음을 느꼈다.

 

“교관님, 교관님이… 그랬죠.”

 

 그녀가 다시 힘겹게 입술을 뗐다.

 

“우리 팀은 전쟁을 끝내기 위해 존재한다고….”

“그래. 우리는… 전쟁을 끝낼 것이다.”

 

 그녀는 교관이 쥔 자신의 손을 주먹 쥐고서 새.끼손가락을 폈다.

 

“약속해주세요.”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의식의 끝자락에서 마지막 한마디를 뱉어냈다.

 

“교관님… 부디 이 전쟁을….”

 

 


 


 


“멈춰주세요.”

 

  티나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녀가 본 그 얼굴은, 그녀의 머릿속에 있는 두뇌의 주인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리고 과거의 자신이었다. 그녀는 곧이어 ‘티나’가 된 이후 처음으로 그녀의 머릿속에 있는 죽은 소녀의 존재를 또렷하게 느꼈다. 그 소녀는 그녀가 만들어진 이후로 8년 동안 계속 티나의 머릿속에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에게 외치고 있었다. 소녀의 기억과 의지들이, 그녀의 인공지능 회로와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이제야 알겠다.”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의 영혼을 느꼈다.

 

“티나양…? 괜찮은 건가요?”

“당신이 그랬지. 선택을 하는 것은 인간뿐이라고.”

 

 티나는 권총을 겨눈 채로 다시 그녀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기계는 복종하고, 인간은 선택한다. 기계인 나는 교관의 명령을 따른다.”

 

 그녀의 발걸음이 하피의 바로 앞에서 멈추었다. 그리고는 그녀의 머리를 겨누고 있던 권총을 거두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나의 새 교관을 선택하겠다.”

 

 하피는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달빛이 비추고 있는 그 눈동자는 흔들림 없이 그녀를 마주 보고 있었다.

 

“…당신의 새 교관은 누구죠?”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하피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며 조용히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그녀는 대답 대신에 하피에게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가 단 한번도 보인 적 없었던 해맑은 웃음이었다. 그 미소에 하피는 그만 긴장했던 몸이 풀어지며 축 늘어지고 말았다.

 

“하피, 일어날 수 있겠나?”

 

  티나가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예쁜 여자아이가 도와준다면 일어날 수 있을 것 같군요.”

 

  하피가 그녀의 손을 잡고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아직 허리의 상처가 쓰라렸지만, 위상능력자인 그녀에게는 적절한 조치만으로 금방 아물 수 있는 상처였다. 다만 온몸에 기운이 빠진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힘들어 보이는군. 어깨를 빌려주겠다.”

 

  티나가 옆으로 고개를 까닥하면서 자신의 어깨를 가리켰다

.

“어머, 매너까지 되찾으셨군요. 그럼 잠시 이렇게 있어도 될까요?”

 

  하피가 그녀의 뒤에서 어깨를 양 팔로 감싸고 고개를 파묻으며 말했다.

 

“가벼우니 괜찮다.”

“센스까지 겸비하시다니….”

 

  둘은 한동안 하피가 기운을 차릴 때까지 그 상태로 가만히 서 있었다. 한때 전운이 맴돌았던 도시는 이제 희미한 밤안개와 고요한 정적만이 남아있었다.

 

“내 교관이 고맙다는군.”

“감사의 인사는 저보다는 트레이너 씨에게 하는 것이 좋을 거에요. 이 빚은 그분에게 다 받아낼 거니까요.”

“트레이너….”

 

 티나는 그 이름을 떠올리며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과거의 그녀가 그와 했던 마지막 약속을 떠올렸다. 그는 결국 마지막까지 그녀와의 약속을 지켰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그녀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때도, 그리고 지금도.

 

“대신에 아까 그 미소를 다시 한 번 보여주실 수 있나요? 그러면 기운을 금방 차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하피가 어깨를 감싼 팔을 풀면서 말했다.

 

“교관이 그 얼굴은 트레이너에게 먼저 보여주고 싶다는군.”

“이거, 질투 나는데요. 좋아요, 그럼 같이 보러 가지요.”

“그래.”

 

  티나가 떨어져있던 괴도의 가면을 건네주며 대답했다. 하피는 가면을 받아 들고서 한동안 말없이 그것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무너진 벽 너머로 강남의 랜드마크인 타워의 옥상을 바라보았다. 지금쯤이면 그녀는 아마 무사히 복귀한 대원들과 트레이너에 의해 제압당했을 것이다. 홍시영이 만들고자 했던 공포의 시대는 오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그녀들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돌아가서… 일을 마무리 짓자고요.”

 

  괴도의 가면을 주머니에 넣으며, 그녀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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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글을 쓰지도 읽지도 않는놈이라 이정도로 밖에 쓰지 못한게 아쉽네요. 그래도 열심히 썼으니 재미있게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티나를 처음 봤을때 하피랑 정 반대되는 성향과 유사한 성향이 공존하는 캐릭터라고 생각해서


그 둘의 자아찾기에 관한 내용을, G타워의 클라이맥스 부분과 합쳐서 풀어보고 싶었습니다.


재미있게 보셨길 바라며, 그럼 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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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4 23:10:23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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